교회성장학

[스크랩] 신-복음주의에서 파생된, 신-사도개혁운동

수호천사1 2013. 4. 4. 13:23

신-복음주의에서 파생된,  신-사도개혁운동 

"신-복음주의(Neo-evangelism)"란 용어를 처음에 만들어낸 사람은 해롤드 오켕가(Harold J. Ockenga, 1905-1985)였으며 < Ockenga, Evangelical Root, p.38, 1978 >, 그는 1947년 찰즈 훌러(Charles Fuller)와 함께 훌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이 되었으며 나중에 연임하였다.<1947-1954 and 1960-1963>

뿐만아니라 신-복음주의 기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를 창간(1953)하고 운영이사장을 25년간, 편집장을 12년 역임 함으로써<한종희, 신복음주의 신학은 다원주의 신학, p.112> 오켕가(Ockenga)는 훌러신학교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가 "신-복음주의 신학"의 산실이 되게 하였고 두 기관을 통하여 신-복음주의 사상을 널리 보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주의"와는 전혀 다른 "신-복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자신들의 명칭인 "신-복음주의"란 말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보수적 용어인 "복음주의" 명칭만 사용하고 보수적 신앙인들처럼 활동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협력하고 기독교의 흐름을 종교다원주의로 이끌고 있으며, 수십년간 많은 신학생과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훈련시키면서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래서 지금은 "신-복음주의"가 "복음주의"로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신-복음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복음적 기독교가 변질되도록 유도해온 신학사상이 "신-복음주의"이므로 그 변화의 뿌리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신-복음주의"란 용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 "복음주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신-복음주의").


1. 신-복음주의 신학의 바탕

1) 오켕가(Ockenga)의 신학사상

오켕가(Ockenga)는 1948년 자신이 제창한 "신-복음주의(Neo-evangelism)"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현대주의(modernism)와 근본주의(fundamentalism) 사이에(in between)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Jeffrey Khoo, Biblical Separation, 1999, p.91 >

 
『 신-복음주의는 복음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삶의 사회학적(sociological), 정치적(Political), 경제적(economic) 영역에 강조점을 둔다 . . . . . . . . . . 신-복음주의는 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그리고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 즉 인류의 역사문제(the antiquity of man), 노아홍수의 타당성 문제, 하나님의 창조방법 등을<현대주의자들이 성경을 부인하기 위하여 문제삼는 것들-역자주>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두었다(emphasised the restatement of Christian theology).』< Harold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1976,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성경은 신앙면에서 오켕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립(in between)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 편에 서든지 아니면 세속에 속하든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요구한다(수24:15). 

그러나 신-복음주의는 중립적 입장에서 현대주의자들과 타협할 수 있도록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기로 다짐하면서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신-복음주의 신학"은 현대주의자들, 로마 카톨릭, 신비주의자들과 타협점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신학을 변경할 수 있으며, 복음운동(evangelical campaigns)이라는 명목으로 주저함 없이 사회학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여 그들과 손을 잡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전통적 성경관을 무시하고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새로운 이론을 적용한다. 

그 새로운 이론들로서 기독교를 변질시켜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변질시켜 나갈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훌러신학교의 싱크 탱크(think tanks)에 속하는 랠프 윈터(Ralph Winter)같은 분은 새 언약(new covenant)를 무시하고 아브라함 언약(Abrahamic covenant)를 주장하면서 지금 신약교회는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해 가는 것으로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복음전파가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도록 아브라함에게 사명이 주어졌는데 아브라함은 그 사명에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랠프 윈터는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된 새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으로 바꾸고는 "성경에는 오직 한가지 언약만 있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아브라함 언약이다"라고 하였다.< Dager, Media Spotlight, WCM, Part II >

이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땅에서 어두움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통치가 복음을 통하여 땅 끝까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처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을 현대 선교와 결합시킨 것을 가리켜서 "비밀선교(Secret Mission)"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비밀선교 사역을 위하여 세계선교미주본부(U.S. Center for World Mission)를 창설하였다. 

윈터(Winter)의 주장에 의하면 그의 선교사역은 예수님이 내리신 지상명령에 의하여 사도들이 시작한 선교사역에 뒤따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선교사명(성경에 없는 논리)을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아브라함 언약을 반복하기 위하여(to re-iterate) 오셨다고 하므로써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새언약을 무시해버린다. 

이것이 오켕가가 주장한 대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45년 이상 기독교 안에 널리 확산되어온 "신-복음주의 신학"의 한 단면이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구속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성취된 새 언약을 무시하면서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어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없이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며, "십자가의 도"(고전1:18)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복음"(갈1:8)를 전하는 것이며, 종교다원주의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본다.

아브라함 언약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밝히기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복을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그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믿게 하시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그 언약은 약속의 자손, 즉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실 때 비로서 전파되기 시작하는 새 언약의 복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오르시기 전 복음전파의 지상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되<한글개역에는 "제자를 삼아"로 되어있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kjv). 

예수님께서 직접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셨고 지금까지 친히 관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내용은 구약의 선지자가 예언한 "새 언약"(렘31:31)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되었다고 증거한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이 땅에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라고 하면서 확인해 주었다(갈3:8-9).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이 복음사역을 맡아서 실행하게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자손)를 통하여 성취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창12:1-3, 창22:18). 

마지막 때에 성경을 잘못 전하는 자가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해준 말을 기억하면서 그 잘못을 지적해 낼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성도들은 기록된 성경말씀을 근거로 분별력을 가지고 거짓 교훈들을 가려내야 한다(유1:17-18, 계2:2). 

예수님도 지금 그것을 바라고 계신다(마24:24-25). 

신-사도개혁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이끌고 있는 피너 와그너도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의 싱크 탱크(think tanks) 멤버이므로 윈터(Winter)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성취된 새 언약(new covenant)을 무시한다. 

그가 주장하는 슬러건(slogan)에서 그것이 역력히 나타난다. 

와그너는 예수님의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 비유(마9:17)를 인용하면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새 가죽부대(new wineskins) 안에 들어와야한다"라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 모든 교회가 신-사도개혁운동에 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교회가 성경에 기초한 교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회의 통치는 제2의 사도시대에서 다시 시작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고 "신-사도개혁운동"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CB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교회의 통치가 마침내 제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2장에 언급한 것이며, 교회의 터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CBN interview, Jan 3, 2000, cited in letusreason.org > 

또 그는 언급하기를 "성경적 교회의 통치는 1980년대 선지자의 은사 사역과 1990년대에 사도의 은사 사역이 인식되면서 제자리에 찾아오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Peter Wagner, article - "The Great Transfer of Wealth, Are you ready?" >  와그너에 의하면 현재의 기존 기독교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엡2:20)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의 기독교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종교의 영(the spirit of religion)"의<성경에 없는 신조어> 영향권 안에 있는 것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그 종교의 영은 지금 "신-사도개혁운동"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 종교의 영을 몰아내기 위하여 "기도투사(Prayer Warrior)" 팀을 구성하여 영적 투쟁에 나섰으며, 와그너 지도자 양성소(Wagner Leadership Institure)를 통하여 그 임무를 담당할 많은 신-사도들을 배출하고 있다. 

와그너에 의하면 근 2000년 동안 참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워진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해서 교회의 통치가 제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globalharvest.org > 

와그너는 신-사도개혁운동의 사명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가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바로 지금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낡은 가죽부대이기 때문에 신-사도들을 통해서 세워지는 새로운 교회를 담을 수 없으므로, 지금 이 시대는 새 가죽부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와그너는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가죽부대"는 새 언약의 피를 상징하는 "새 포도주"를 전제로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미 새 언약의 피(새 포도주)를 흘리셨고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써 이미 신약교회가 사도들에 의하여 세워져서 지금까지 기독교가 전해져 왔다. 

마지막 때에 다시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구약의 개념으로 금식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9:17)라고 비유로 대답하셨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성취될 "새언약(new covenant)"(렘31:31)에 대한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에서, 그는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 "포도주"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My blood of the New Covenant)니라"(마26:28-kjv)<한글개역에는 "새(new)"라는 말이 빠져있음>라고 하셨고, 또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22:20)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는 "새 언약"의 성취로 말미암아 전개될 새로운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것은 곧 예레미야 31:31-34에서 예언된 새 언약이 성취되는 것이다(히8:8-12).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 날에 제자들에게 임하자 제자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새 언약이 성취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바로 "새 포도주"가 임했다고 전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직분을 가리켜서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하였다(고후3:6). 

그 새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 바로 신약교회인데 그 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믿음 위에 세워지는 교회"였고(마16:18), 이것이 바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였다(엡2:20). 

그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바탕으로 하여 기독교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해 오고 있며,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그 동일한 믿음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의 사건은 예수님께 임명받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해서 이미 2000여년 전에 이미 성취된 비유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찬식(눅22:19)에서 "새 포도주 (새 언약의 피)"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기념한다(고전11:23-26).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새 포도주"를 다시 마시게 된다(마26:29). 

그러므로 와그너가 "새 가죽부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신-사도개혁운동"이 바로 그 새 가죽부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새 포도주"로 이미 성취된 "새 언약(new covenant)"(렘31:31) 을 무시하는 것이다. 

만일 와그너의 주장대로 한다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포도주"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새 언약의 피가 아니라, 새롭게 받았다고 하는 신-사도들의 표적과 기사의 은사가 바로 "새 포도주"가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와그너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그가 말하는 "새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를 이상한 표적과 기적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새 언약(new covenant)"을 무시하는 것은 곧 "새 언약의 중보자(the Mediator of the New Covenant)"(히9:15) 이신 그리스도(딤전2:5)를 무시하는 것이다. 

또 "새 언약"을 무시하면, "새 언약의 피"와 직접 관계된 "십자가"가 부담스러워진다. 

오늘날 교회안 강단에서 십자가가 점점 사라져가고 극장의 무대처럼 되어가는 것이 그러한 신-복음주의 바람 때문인지 궁금하다. 

랠프 윈터(Ralph Winter)가 새 언약을 무시하고 아브라함 언약만이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와그너에게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으며, 이것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이다. 

새 언약을 무시하는 복음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고후11:4, 갈1:8) 이며, 그것은 곧 종교다원주의를 향한 만인구원설의 문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신-사도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새 언약의 일군"(고후3:6)들이 아니며, 또 교회의 통치를 다시 시작해야 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엡2:20)도 아니라고 본다. 

와그너는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역사를 다시 쓰자고 하는데,< Peter Wagner, The Second Apostolic Age > 그것은 신-사도들을 통하여 신-사도행전을 다시 쓰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본다. 

성경말씀에 오류가 있다고 여기며 직통계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신-사도들은 그처럼 성경의 교훈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본다. 

오늘날 신-사도개혁운동의 신-사도와 선지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 빌 해몬(Bill Hamon)은 "세상이 아직까지 목격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교회(a new church that the world never seen)가 일어나고 있다" 라고 하였다.< letusreason.org/Latrain27.htm >  해몬(Hamon)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새 언약(the New Covenant)"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새 언약의 일군들"(고후3:6)이 아니라는 배경에서 나오는 발언이라고 본다. 

그는 제2 사도시대의 신-사도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임명받은 사도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도임을 밝히고 있는데, 자신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 세대의 새 혈통(new breed of Joshua generation)을 이어받은 마지막 때 "새 종족(new breed)"의 사도들이라고 주장한다.< Bill Hamon, Apostles, Prophets and the Coming Moves of God, 1997, pp.34,39,131 > 

이러한 신-사도들이 모세와 엘리야에게 주어졌던 능력을 가지고 세상 끝날, 요한계시록 18장에 나오는 "큰 성 바벨론의 대 멸망(the mighty fall of Babylon the Great)"에 함께 역사할 것이라고 한다.< Bill Hamon, ibd. pp.110, 139 >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친히 "큰 성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는 것이며, 교회가 거기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성 바벨론"을 멸망시킨다는 내용은 없다. 

기록된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기독교 신학을 새롭게 다시 진술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빌 해몬(Bill Hamon)의 이러한 주장은 랠프 윈터(Ralph Winter)가 "새 언약"을 무시하고, 구약의 "아브라함 언약"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해몬(Hamon)은 "큰 성 바벨론"을 멸망시키는데 가담하는 것이 신-사도들이 세우는 21세기의 특별한 교회의 사명이라고 한다. 

그것은 "만물을 회복(Restore All Things)"하는 것이며, 신-사도들이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않는다고 한다.< Bill Hamon, ibd. pp.109,110 > 

그와 같은 사명을 가진 교회는 해몬(Hamon)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의 사도들이 세우지 아니한 어떤 새로운 교회(a new church)를 의미한다. 

그 새로운 교회를 오늘날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하여 세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신-사도개혁운동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아닌 현대판 신-사도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옛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운 터(엡2:20)가 아닌 새로운 교회의 터를 닦고 그 위에 어떤 새로운 세계적 교회를 세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와그너는 신-사도개혁운동을 주도하면서 가공할 일을 벌리고 있으며,  훌러신학교는 그러한 싱크 탱크들(think tanks)의 잘못된 교리들을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2) 맥가브란(McGavran)의 실용주의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신-복음주의(Neo-evangelism)"는 신학적으로 중립을 지킨다고 하면서 동시에 복음전파의 목적을 위해서는 주저없이 세상의 다양한 사회환경적 여건에 맞추고 비성경적인 것과 타협하는 방법론에 강조점을 두었는데, 그 배경에는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선포한 것이 오늘날 교회성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도날드 맥가브란(C. Donald McGavran)이다.

그는 수십년간 인도 선교사로 파송받아 선교하였지만 고작 20-30개 정도의 작은 교회밖에 세우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교회성장에 대하여 고심하던 중에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실용주의를 선택해야 함을 결정하였다 < John MacArthur, "But Does It Work?"> .

그러므로 맥가브란 자신이 쓴 저서나, 그 책을 인용한 피터 와그너의 저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맥가브란의 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가 근 33년 동안 인도 선교사역에서 받은 고충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으며 그의 선교정책과 교회성장론이 어떤 방식으로 전환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 우리는 하나님이 명백하게 베푸신 것인지 아닌지에 비추어서 선교방법들이나 정책들을 고안해낸다(devise). 

산업에서는 이것을 가리켜서 "되돌아오는 반응에 비추어 수정하는 운영(modifying operation in light of feedback)"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불러 들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교회를 확장시켜야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방법과 선교기구와 정책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해외선교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방법에 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ruthless)가 되라고 사람들에게 교육한다. 

만일 사용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 확장에 잘 활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집어치우고(throw it away), 무엇인가 잘 활용되는 것을 취하라. 

방법들(methods)에 관한한, 우리는 지독히도(fiercely) 실용주의적(pragmatic)이며,  교리(doctrine)는 별개의 것(something else)이다"』 < Donald McGavran, "For Such a Time as This", 그리고 Peter Wagner 의 "Pragmatic Strategy for Tomorrow's Mission, 1973, p.47 에서도 인용됨,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실용주의(Pragmatism)란 무엇인가?  그것은 철학사상인데,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실용성이 있는 것만이 참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 이다. 

사람의 이성으로 옳고 그른것,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여 실생활에 적용하는 사상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러한 철학사상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지지한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맥가브란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실용주의자(an unabashed pragmatist)로 변하였다.< John MacArthur >

그리고 그는 실용주의 방법으로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교육기관을 오레곤주에서 세웠는데, 그것은 바로 1957년에 설립한 교회성장학교(The Institute of Church Growth) 이다. 

1965년 그 학교는 훌러신학교와 합병하여 훌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안의 대학원 과정으로 세계선교부(The School of World Mission)가 되었으며,  철학개념인 실용주의 방법을 동원하여 교회성장학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합병하는 같은 해에 대학원 과정에 심리학 학부(School of Psychology)도 함께 개설(1965)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때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Church Growth)은 "신-복음주의"와 접목하게 되었다. 

훌러신학교를 설립한 찰즈 훌러(Charles Fuller)는 라디오 복음전도자로서 인기있는 프로그램을<"Old Fashioned Revival Hour">진행하고 있었고, 그 당시 세계적 복음전도자였던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적극적으로 훌러신학교를 지원하였다.< Jeffrey Khoo, Biblical Separation, 1999 >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복음주의 신학"과 "철학적 개념의 실용주의"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서 활용가치가 뛰어난 교회성장 학과로 널리 인기를 얻기 시작 하였다.  성경의 교리를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설을 믿지 않는 교수들도 강의하였다. 

나중에 그것이 발각되었을 때 그 교수가 "제한적 무오설(Limited Inerrancy)" 즉, "성경은 믿음과 생활에 관해서만 무오하며, 그 밖에 부차적인 것, 과학, 지리, 역사에 관한 기록에는 오류가 있다" 라고 주장만 하면 계속 훌러신학교에서 교수하게 하였다.< Jeffrey Khoo, p.92>  린드셀(Harold Lindsell)은 이점에 대하여 "훌러신학교가 오늘날 현대주의(modernistic), 에큐메니칼(ecumenical), 은사주의(charismatic)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H.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1976, p.214>

성경의 교리를 무시하고 철학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는 무엇이라고 경고하였는가?

"누가 철학(philosophy)과 헛된 속임수(vain deceit)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2:8)

위의 본문에서 보면, 철학은  1) "헛된 속임수"와 같은 계열에 속하며,  2) (믿음과 소망 등을) 노략(강탈)하고,  3) 수준이 낮은 초등학문에 속하며,  4)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한다. 

그 당시 초대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이나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 중에 하나인 철학이 그런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경고하였다. 

철학은 "그럴듯하게 보이는 학문체계(plausible system)"< Albert Barnes, NT Commentary>이기 때문에 그당시 거짓교사들은 철학을 가지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속이려고 한 것같다. 

그들이 골로새교회에 철학사상을 끌어들이는 것은 "헛된 거짓을 기독교 안에 혼합하는 것(the empty deceit of philosophy blended with Christianity)"< John Wesley, NT Commentary> 이며, "철학을 신학에 적용하는 것(as applied to theology)"< Bretheren, NT Commentary>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는 심리학(Psychology)을 공부하지 않고,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을 할 줄 모르면 목회가 안 되게끔 변해버렸다. 

그것들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목회에 적용해야만 교회는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965년부터 시작된 교회성장학(Church Growth)은 오켕가가 주장한 말 대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the restatement of Christian theology)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에 역점을 두고, 맥가브란의 말대로 "방법들(methods)에 관한한, 우리는 지독히도(fiercely) 실용주의적(pragmatic)이며, 교리(doctrine)는 별개의 것(something else)이다" 라는 바탕위에 신학교육을 실시하여 수없이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학위를 주었으며,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많은 신학도들과 목회자들이 훌러신학교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아갔다. 

그들은 "교회성장학"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신학교에서 학위 받은 것을 자부하면서 배운대로 성경의 교리를 중요시하지 않고, 신학을 다시 진술할 수 있는 타협적 신학과 철학사상과 심리학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 개념을 가지고 복음사역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훌러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이 시작된지 근 50년이 가까워오는 오늘날, 그 영향력은 홍수와 같아서 지금 전 세계의 기독교의 흐름과 기독교의 문화를 장악하고도 넘친다. 

그것이 오늘날 복음주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복음주의의 거대한 물결이며, 기독교가 심각한 영적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 이유라고 생각된다. 

홍수가 나면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매우 귀하게 된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런 상황으로 급히 변해가고 있다고 본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은 풍성하여 넘치는 것 같은데 성도가 되게하는 참 진리는 찾아보기 힘들어진다(암8:11).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철학에 근거한 실용주의 사상은 복음이 전해져서 믿는 사람만 많아지고, 교회가 성장할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서 결과만 좋다면 그 방법도 좋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Peter Wagner, Your Church Can Grow, p.161,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그래서 신학의 정립 보다는 방법론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로 말씀하셨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면서 아무리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낸 사람들일지라도 주님은 그들을 외면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사역 결과는 좋은듯 했으나 그들의 사역 방법이 나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옳지 않게 여기시는 방법, 즉  불법으로 목적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단호히 선포하시기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마7:21-23).  신-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거룩하게 구별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예수 믿는 자들이 "성도(거룩하게 구별된 무리)"라고 불려지려면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 . ." (고후6:14-7: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롬16:17)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5:11)

"범사(all things)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딛3:10)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 . .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요이1:7-11)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18:4)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6)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마7:13-14, 눅13:24)을 발견하고 그 길로 가야한다.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고 불편하며 인기가 없는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과거에 참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간 "옛적 선한길"(렘6:16) 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 길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생명의 길은 옛적 그대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새로운(new- or neo-) 길은 "닦지아니한 길"(렘18:15)이며, 우리가 가야할 "그 옛길"이 아닌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영원히 변치 않으심과 같이 신앙의 길도 변하지 않고 성경의 교리로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다. 

"건전한 교리(sound doctrine)"만이(딤후4:3-kjv) 우리를 그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2. 신-복음주의(Neo-Evangelism)와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의 혼합 

 맥가브란의 수제자였던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1981년 맥가브란의 뒤를 이어 훌러신학교 교회성장학의 주임교수가 되었고, 1982년에는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으로 이름난 빈야드 운동가(Vineyard Movement)이며 신-은사주의자(Neo-charismatic)인 죤 윔버(John Wimber)와 함께 훌러신학교 내에 "표적과 기사와 교회성장(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 이라는 학과를 신설하고 윔버는 객원교수가 되었다.< globalharvest.org/peter.htm > 

죤 윔버는 1974년부터 4년간 훌러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와그너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치유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운동(Pentecostal)과 은사주의(Charismatic)에 특히 큰 관심을 가졌다. 

그 후 윔버는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는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1982년 훌러신학교와 손잡고 "표적과 기사"의 치유전문 학과를 개설한 것이다. 

죤 윔버가 "표적과 기사의 능력사역"을 통하여 개발한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운동을 가리켜서 와그너는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이라고 불렀고, 그가 저술한 "성령의 제3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이란 책에 처음 소개하였다. 

성령의 제3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은 피터 와그너가 최초로 소개한 기독교신학이론(christian theological theory)인데 아래와 같이 구분하였다.< wikipedia >

제1 물결: 20세기 캘리포니아, 아주사(Azusa)에서 시작된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
제2 물결: 1960년대 개신교(Protestant)와 카톨릭(Roman Catholic)으로 확산된 은사주의운동(Charismatic Movement)
제3 물결: 1980년대 죤 윔버에 의한 신-은사주의운동(Neo-charismatic Movement) 또는 표적과 기사운동(signs and wonders)

윔버의 "빈야드운동"은 한국의 여러 교단(고신, 합동, 통합, 기성)에서 이단 또는 사이비로 규정한 바 있다.<1995-1998> 

성경에도 잘못이 있다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를 무시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표적과 기사"는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 때에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 거짓된 "큰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이 예고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 .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11,24). 

윔버는 신-복음주의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의 사역도 역시 방법론에 의존하고 있다. 

윔버의 능력사역은 두 가지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데, 경험(experience)과 실험(experimentation)이다.<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 

그가 간증하는 경험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일화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이며, 그의 능력전도는 실험, 즉 "시도와 시행착오(trial-and-error)"의 실지시험(field test)을 통해서 자리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 . . . 나의 근성(at the core of my being)은 행동주의자이다. 능력전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새로 발견한 신학(my newfound theology)은 실지시험(field-test)이 필요하므로 세계로 나가서 내가 생각한 성경의 교훈이 서구사회에 실제로 적용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see if what I thought . . . in fact worked . . .). 그래서 1978년 나는 훌러신학교를 떠나서 현재 캘리포니아, 아나하임에 소재한 "빈야드 크리스챤 휄로쉽(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의 목회자가 되었다. 50명의 소그룹 분위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능력전도의 나의 이론들을 시험하였다(tested). 』< John Wimber & Kevin Springer, Power Evangelism, Revised, 1992, p.13,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능력사역은 검증되지 아니한 자신의 신학을 현지실험을 통해서 그것이 효과적인지를 스스로 확인한 것인데, 그 윔버의 신학은 바로 "기독교 신학을 재점검하여 다시 진술하는 오켕가의 신-복음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것이며, 윔버의 방법론은 맥가브란이 주장한 대로 성경의 교리를 뒤로 하고 철저히 실용주의에 의존하는 심리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윔버는 케빈 스프링거(Kevin Springer)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능력사역이 어떤식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An interview with John Wimber, Part II: Discovering the Healing Ministry,"  First Fruits, May/June, 1985, p.18)<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 
 
『 우리가 그 사역을 어떻게 하는가를 말씀드리자면, 소그룹을 가지는 것이 첫번째 시작 요소였습니다. 우리의 크리스챤 생활은 주로 소그룹 모임으로 해왔지요. 그래서 제가 멤버들에게 "정말, 시도와 실패(trial and error)를 (실습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곳은 바로 소그룹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모임에서 바로 첫번째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An interview with John Wimber, Part II: Discovering the Healing Ministry,"  First Fruits, May/June, 1985, p.18)<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하나님의 성령의 "표적(signs)과 기사(Wonders)"를 나타내기 위해서 시도와 실패(trial and error)를 거듭하는 실험을 거쳐서 얻으려고 한 것이 윔버의 능력사역의 출발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기사"는 사람이 고안해내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시도하고 실험한다고 해서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기사"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남으로 사람들을 심히 놀라게 한 것이었다(눅10: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도리어 제자들에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확신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눅16:31-kjv)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믿음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표적과 기사보다도 더 권위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라고 하였다.

 보지않고 믿는 믿음은 장래의 영광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는 즐거음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확실히 증언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은 우리가 보지않고도 믿는 복된 믿음이다. 

마지막 때의 믿음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못하여도 "예수를 사랑하고, 장래의 영광을 기뻐하는 것" 이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육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신령한 세계를 보아야 한다. 

이 원리를 알지 못하면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아 그들의 올무에 발목이 잡힌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큰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인데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마24:11,24).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signs)을 구한다"(마16:4, 눅11:29)라고 하셨고(눅11:20), 그 이유는 "시대의 표적(signs)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16:3, 눅12:56). 

사탄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변장하며 그의 일군들도 의의 일군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얼마든지 그렇게 표적과 기사들을 행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놀랍고 큰 일이 아니라고 성경은 증거한다(고후11:14-15). 

다시말해서 마지막 때는 악한 시대이고, "영적으로도 음란한 세대"이므로 사탄은 이상한 체험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영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있는 교회 안에 들어가서 가짜 큰 표적과 가짜 큰 기사를 얼마든지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신비주의의 거센 물결이 세상을 휩쓸게 되리라는 예고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이상한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고 한다면, 그는 미혹의 영에게 사로잡히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성경말씀 속에서 거룩하시고, 영원 불변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신의 머리 속에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 

따라서 영적으로 분간하지 못하고 잘못된 기독교 분위기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기독교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도의 때이므로 교회 안에는 "배도하는 일"(살후2:3)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오늘날 기독교의 대세는 "넓은 길"(마7:13)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치유 개념은 로마 카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그는 기적에 대한 타당성을 말할 때 로마 카톨릭에 더 신빙성을 두었고, 윔버가 소유한 "신적 치유(divine healing)"의 풍성한 유산은 로마 바티칸이 지정한 성인들(saints)의 기적에도 나타난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기적에 관한한 개신교식 접근보다도 로마 카톨릭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는 것들을 그의 저서인 "능력 치유(Power Healing)"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래서 그의 능력치유의 개념은 로마 카톨릭의 신비주의에 가깝다.

 
『 나는 특별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적 치유(divine healing)라는 것은 개신교(Protestant)와 카톨릭 전통(Catholic traditionss)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 . . 로마 카톨릭 교회는 기적에 대한 설득력 있는 표준(stringent criteria)을 가지고 있으며, 기적의 신빙성을, 특별히 치유의 신빙성을 확실히 하였다.  치유(healing)는 성인(saints)의 반열에 올려지는데 있어서 필요조건 중의 하나이고 초자연적 보증의 표시(a supernatural seal of approval)이다. . . . . . 많은 개신교의 신학들(Protestant theologies)에 비하여 로마 카톨릭의 신학(Roman Catholic theology)은 현대식 기적들(modern miracles)의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프랜시스 맥낫(Francis MacNutt)은<1960년대에 은사주의 회복을 강하게 주장하였던 로마 카톨릭의 사제로서 치유에 관한 책을 썼다-역자주> 기록하기를, "사실상, 대부분의 개신교인들 보다도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더 치유(Healing)를 이해하기가 쉽다. 

그 이유는 성인들의 반열에 올릴 때 지금도 요구되는 치유의 은사를 포함하여 기타 특별한 은총을 받은 성인들의 전통(tradition of saints) 속에서 우리가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 카톨릭 신자들은 신적 치유(divine healing)를 믿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다"라고 하였다. 』(John Wimber & Kevin springer, Power Healing, 1987, pp.7,10,11) <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치유 개념은 심령치료(Psychic Healing)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성경에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날 때 치유하는 사람이 "직관적 통찰(intuition)"로서 치유받는 사람의 속을 파악하고 치료한다는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흔히 심령술사(psychic healer)들에게서 타나나는 현상이다. 

심령술사들은 치유 방법에 있어서 묵상하거나, 마음 속에 형상화하는 것이나, 기타 심리작용과 심리학으로 교묘하게 내적 치유를 다루는데,  아네스 샌포드(Agnes Sanford)와 그의 제자들이 행하는 수법이다.< Agnes Sanford는 1960s-1980 사이에 미국의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의 중요 인물이며, "내적치유 운동(Inner Healing Movement)"의 창시자이다-역자주> 

윔버가 진술하는 능력치유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가 그러한 심령치료의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그는 서구식 복음주의를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대부분 서양의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직관적 통찰(intuition)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John Wimber, Power Evangelism, Revised, p.10> 

윔버가 그렇게 비난하는 이유는 그가 치유받는 사람의 속사정을 직감적 통찰로 감지하는 동양의 신비적 풍습(Eastern mystical practices)을 실습하기 때문이다. 

윔버가 그러한 것을 실행할 때에 보통 사교(occult)의 최면술사들이 손을 뻗어 손에서 기가 흘러나오게 하여, 그 영기(aura)로 심령치유(psychic healing)하는 방식도 모방한다.< Media Spotlight >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 예고하신 말씀대로라면,  마지막 때에는 성경적이 아니더라도 큰 표적과 기사가 얼마든지, 실제로, 많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으며, 또 예수님은 그 놀라운 표적과 기사들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셨다.

맥가브란(McGavran)이 실용주의 철학개념으로 심리학을 신학교에 도입한 이후 심리학과가 개발되어 오고 있는데 그 심리학의 성격은 기술적 용어로 "신경언어심리학(psycho-neural linguistics)"이라고 하며,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에서 아주 널리 발견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Dager, Media Spotlight, vil.22, Apr. 1999 > 

그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신분석의 인공두뇌학(Psycho-Cybernetics)"과 부분적으로 결합(overlap)하여 마음을 새롭게 프로그램(reprogram)하므로써 생각과 습관을 바꾸게 하는 심리요법이다. 

기독교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많이 의존하는 것은 A. W. 토저(Tozer)의 말대로 "심리학의 이런 저런 학설을 교묘히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얄팍한 종교"를 보이는 것이다.<토저, "내 자아를 버려라", 규장, pp.22, 26> 

훌러신학교는 미국 심리학 협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역사상 최초로 신학교에 심리학 학과를 도입하였다.< wikipedia >  훌러신학교가 죤 윔버와 함께 "표적과 기사와 교회성장"이라는 학과를 시작하였는데, 바로 그러한 심리학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보며, 그것은 신본주의(하나님 중심)가 아니라 인본주의(사람 중심)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문화에 큰 매력을 느끼고 <신접자, 술사, 복술자, 박수, 진언자 등, Ref.신18:9-11> 그 문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꾸며내는 것들을 더 신뢰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학대하였으며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구약교회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하였다. 

하나님이 그 내용을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는 마지막 때의 신자들이 그것을 거울삼아서 똑 같은 죄(신18:9-11)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0:1-11)


3.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

피터 와그너의 "신-복음주의"와 죤 윔버의 "신-은사주의(제3의 물결)"가 서로 만나서 혼합하여 대대적인 또 다른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로 "신-사도개혁운동" 이다. 

이 운동은 지금까지 존재해 오던 개신교의 교단들을 종식(the end of denominations) 하고 새로운 개신교의 통합된 미래상을 구현하자는 운동(postdenominational movement) 이다. 

이것은 과거의 전통을 배격하고 절대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시대에 나타나는 일종의 새로운 교회일치, 또는 교회통합 운동이라고 본다. 

피터 와그너의 영향을 받은 오순절교파(Pentecostals)와 은사주의자들(Charismatics)이 신-사도개혁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데, 그 수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4억명(400 million)에 달하며, 모든 개신교 교단들(Protestant Denominations)에 속한 사람을 다 합친 것 보다도 더 많은 숫자인 것이 통계로 나타났다.< talk2action.org, Resource Directory for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 

거기에다 개신교 교단들 안에서도 피터 와그너의 영향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까지 합치면 굉장한 숫자이며, 과연 와그너는 기독교의 거대한 집단(mega-block)을 "신-사도개혁운동"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전통적 기독교를 종식하고 새 시대에 새로운 사도들(the new apostles)을 통하여 새로운 기독교의 역사,  즉 새로운 사도행전을 써나가자("we can be history makers")는 것이다.< Peter Wagner, The Second Apostolic Age > 

그 역사적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피터 와그너는 스스로 "사도(apostle)"가 되어 앞장서서 이 "신-사도개혁운동"을 이끌고 있다고 본다. 

그 엄청난 지지자들은 서로 관계하는 조직망(relational network)을 형성하고 있는데,< talk2action.org > 거기에는 국제사도연합(Internatonal Coalition of Apostles: ICA), 기도투사 네트워크("prayer warrior" network), 세계추수사역(Global Harvest Ministries) 같은 여러 기구들이 있다.

특히 와그너 지도자 양성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 WLI)같은 전문기관에서는 독특한 실천목회 훈련을 실시하는데, 학생들은 신-사도개혁운동의 현장에서 능력사역을 하는 자들을 통하여 손을 얹고 안수하는 임파테션과 그 활성화(impartation and activation)를 훈련받는다.

그래서 와그너는 WLI website에서 자신의 리더쉽학교에 관하여 설명하며 약속하기를, "학생들은 그들의 신령한 성직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성령으로부터 임하는 생동적이고 기능적인 임파테이션과 그 활성화를 획득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란 무엇인가? 

바울이 롬1:11-12에서 “내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너희에게 나눠주어(Imparting)”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신-사도개혁운동에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준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도적 권위가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사도가 손으로 안수하여 그 성령의 능력을 전달하면(임파테이션 하면), 안수 받은 사람은 초대교회에 사도들에게 임하였던 동일한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소위 신-사도개혁운동에서 말하는 임파테이션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쓰러짐, 바닥에 딩굴기, 몸 떨림, 거품물고 까무러치기, 괴성을 지르는 것, 짐승소리, 동물처럼 기는 것, 낄낄거리며 웃기 등인데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표적과 기사 라고 한다. 

이러한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는 로마 카톨릭을 포함한 다양한 교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온 세계에 신비운동으로 퍼지고 있는데 소위 성령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이며, 알파코스, G-12, 빈야드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와그너 지도자 양성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에서 이러한 신비적인 것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약 50개국에 지교를 세운것으로 알려져있고, 한국에도 이미 2005년에 세워져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본격적으로 일어날 신비주의에 조심하라고 하셨다(마24:11,24-25, 고후11:14-15).

피터 와그너는 어디에 근거하여 자신을 신-사도라고 하며 또 신-사도개혁운동을 범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신-복음주의 신학은 성경적 교리를 외면하고 철학적 실용주의 개념으로 신학을 다시 진술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학 개념으로는 성경에 없는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와그너는 그러한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경을 무시한다고 본다. 

그래서 와그너는 사도의 정의(definition of apostle)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자기는 성경이 말하는 사도의 증거들, 즉 고후12:12(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 고전9:1(예수를 직접 본것), 고전3:10(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은 터위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 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타협이 안되는 그 성경구절들의 자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My reason for this is that I do not understand these three qualities to be non-negotiables....)" 라고 하였다. < globalharvest.org/spheres.htm, "Understanding How Apostles Minister in Different Spheres", May 20, 2010 > 

와그너가 자기는 고전3:10(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은 터위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 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그가 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아놓은 터가 아닌, 신-사도들이 닦는 새로운 터 위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와그너 나름대로 새롭게 진술하는 신학적 배경인 것같다. 

이러한 주장들이 바로 신-사도개혁운동의 특징이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은 성경 밖에서 활동하는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그러므로 성경적 객관성이 없이, 주관적으로 무엇이든지 주장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적 교리를 떠난 신-사도개혁운동이라고 본다. 

피터 와그너는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각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로고스(logos)'와 '레마(rehma)'를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는 제안을 오순절(Pentecostal) 신학자들이 만들어 놓았다. . . . '레마'는 성경의 66권(신.구약 전체)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말씀으로 간주하였다"라고 하였다.< Peter wagner, Engaging the Enemy, 1991, pp.15-16 > 

이것은 와그너 자신이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와그너는 그러한 직통계시에 의해서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 globalharvestministries.org/index.asp?action=about > 

신-사도개혁운동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도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도인 것을 어떻게 아는가? 

와그너는 그 수많은 신-사도들의 사역을 알아보고 구분하려 할 때 현상학적 접근(phenomenological approach)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globalharvest.org/spheres.htm >  현상학적 접근이라는 것은 철학적 개념인데,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므로 본체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현상만이 실재적이다 라고 주장하며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사도개혁운동에 속한 사도들의 사도적 자질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아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사도들이 안수하였을 때, 쓰러짐, 바닥에 딩굴기, 몸 떨림, 거품물고 까무러치기, 괴성을 지르는 것, 짐승소리, 동물처럼 기는 것, 낄낄거리며 웃기 등, 여러가지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도적 은사를 받은 것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나타나는 사도적 은사의 현상을 따라서 교회조직사도, 기능사도, 협력사도, 회중사도, 소집사도, 특사사도, 동원사도, 지역사도, 마켓팅사도 등으로 분류하는 희한한 일들을 행한다. 

그처럼 사도의 권위를 정하고 분류하는 것은 현상학적 철학이론에 불과한 것이며, 성경적 증거는 아니다. 

그러한 현상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출7:10-12, 마24: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러한 철학적 개념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도들에게 임하였던 동일한 성경적 계시가 오늘날에도 직통계시를 통하여 그들에게 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본다. 

성경은 벌써 그런 이상한 현상들이 마지막 때에 나타날 것을 예고 하고 성도들을 권고하였다. 

유다서1:17-18에 보면, 마지막 때에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욕망대로 행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그들은 "흉내내는 자들(mockers)"이라고 하였고,<한글개역성경에는 "기롱하는 자들"로 번역됨> 그런 상황이 일어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칭 사도"라고 하며 흉내내는 자들을 분별해 내었는데 그들의 특징은 "거짓말하는 자들(Liars)"이었다(계2:2-kjv). 

그러한 경험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마지막 때의 성도들도 그렇게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글을 기억하면서 많이 나타나게 될 "자칭 사도"들을 구별해 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지금 말세의 끝 부분에 사는 우리 예수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를 흉내내면서 "자칭 사도" 라고 하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으로 분별해 내야 한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거짓 사도"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였다(고후11:13). 

또 예수님도 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으므로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거짓 사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데 기록된 말씀으로 그렇게 지켜주신다. 

거짓 선지자는 마음에서 지어낸 말을 하기 때문에(렘23:16)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국 탄로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거짓 선지자와 꿈꾸는 자들이 일어나서 꿈(dream)과 이적(sign)과 기사(wonder)를 행하며 미혹할 때에 하나님의 "그 명령을 지키며"(신13:4), 하나님의 "명하신 도"(신13:5)를 기준으로 하여 그들을 분별해내고, 그들을 처벌하라고 명령하셨다(신13:1-5).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러한 속임수들을 발견하고 분별(히5:14) 할 수 있으며,(건전한 교리의 단단한 식물을 먹을 줄 아는 성숙한 신자로서- P.E. Hughes)  하나님이 그 목적을 위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하여 마감한 신.구약 성경, 66권을 주셨다(히1:1-2).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하여 공인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에 더 추가하거나 빼내지 못하도록 확정하셨다.

잠30:6 = "너는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고전4:6 =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계22:18-19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도에게 명하셔서 기록하게 하신 "이 책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신 것은 사도 요한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다른 사도들에게도 적용되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도들이 기록한 계시의 말씀에서도 누구든지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못한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속의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에게 주신 계시로써 마감되었고 그 기록된 말씀이 곧 성경이다. 

그래서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라고 하였다. 


4. 결    론

결론적으로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은 성경적 운동이 아니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유1:18)의 인본주의 운동이며, 와그너는 그의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매우 위험한 도전을 하고 있다고 본다.  피터 와그너는 훌러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오켕가(Okenga)의 "신-복음주의 신학"과  교회성장학의 아버지"인 맥가브

란(McGavran)의 "실용주의"가 몸에 배인 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성경관은 점차로 변하면서,  "교리는 별개의 것"  >>>  "성경에도 오류가 있음"  >>>  "기록된 성경말씀 보다는 직통계시가 더 유효한 것"  이라는 순서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가 신-사도개혁운동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을 보면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아무 부담감 없이 새롭게 진술하는 신학을 적용하는 것 같으며, 그러한 성경관은 오늘날 전통을 무시하고 절대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 사상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본다. 

와그너는 할 수만 있으면 성경을 떠나서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인기를 얻으므로 리더쉽을 유지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일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맥뮬렌(MacMullen)이 가경(the Apocrapha)에 있는 요한행전(Acts of John)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그 요한행전을 통해서 임하였다고 보았는데, 와그너는 맥뮬렌의 그 말을 인용함으로써 정경이 아닌(신.구약 66권의 성경이 아닌) 가경이(로마 카톨릭에서는 가경을 믿음) 하나님의 구원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설명하였다.< Peter Wagner, 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 pp.81-82 > 

그는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성경이 아닌 것에서도 성경(정경)과 같은 권위를 도출해 내는데 그것이 바로 신-복음주의 신학이며 신-사도개혁운동의 사상이라고 본다. 

오늘날 널리 확산되고 있는 신-복음주의 신학과 신-사도개혁 운동은 한마디로 성경적이 아니며,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며 홍수처럼 잘못된 신앙으로 전 세계를 덮어버리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세상 끝을 장식하기 위하여 전개되는 마지막 때의 현상(살후2:3)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끝날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들을 그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미리 보여주시면서 계속 반복하신 말씀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다(계2:7,11,17,29, 계3:6,13,22). 

그리고 경고하셨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come out of her 음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우리들은 마지막 때에 나타난 신-사도들의 말을 듣지 말고, 예수님의 사도들이 전한 기록된 말씀을 듣고 깨달아 분별해야 한다고 믿는다(히5:13-14).      

  
신광철 목사 

출처 : 행복충전소 † 대명교회
글쓴이 : 大命敎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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