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

[스크랩] 나는 누구인가?

수호천사1 2012. 11. 14. 10:28

나는 누구인가?


   오늘의 지구촌에는 200여 나라가 있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인구 10억 명이 훌쩍 넘는 큰 나라가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나우르공화국과 같은 인구 1만명 미만의 작은 나라들도 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다양한 나라들로 지구촌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약 70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들을 각각 피부색을 이유로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분류한다. 혈통과 지역적 전통에 따라 민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렇게 분류된 사람들이 지구촌에 흩어져 살고 있다.

   지구촌에 살고 있는 70억이 넘는 사람들. 저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무엇을 위해, 왜 사는 것일까? 도대체 사람들이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를 묻는 것은 다른 말로 존재적 가치를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모든 사람들의 존재적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는 3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첫째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요, 다음은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사람이며, 마지막으로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과연 그럴까? 얼핏 생각하면 사람이 살아야 할 존재적 가치에 대해 아주 그럴 듯하고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각자 자신의 오른 손을 가슴에 얹고 깊이 생각해 보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세상에서 꼭 있어야 할 사람인가? 혹,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사람은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있으나 마나한 사람은 아닌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가?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존재적 가치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르고 산다면, 불행한 일이다. 이런 삶은 하루하루가 무미건조하고 권태스러울 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른다면 짐승의 삶과 무엇이 다르다 할 수 있으랴.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람도 동물이라고 말하나 보다. 동물은 동물이지만 고등동물이라며 다른 동물과 차별를 두나 보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사람은 결코 동물이 아니다. 동물(動物)이란 생물계의 두 갈래 가운데 하나로 현재 100만~120
만 종이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약 80%는 곤충이 차지한다고 한다. 동물은 원생동물부터 척추동물까지 23개 문(門)으로 분류되며, 주로 유기물을 영양분으로 섭취한다. 동물은 운동ㆍ감각ㆍ신경 따위의 기능이 발달하였으며, 소화ㆍ배설ㆍ호흡ㆍ순환ㆍ생식 따위의 기관이 분화되어 있다. 그리고 생물(生物)이란 생명을 가지고 스스로 생활 현상을 유지하여 나가는 물체를 말한다. 생물은 영양ㆍ운동ㆍ생장ㆍ증식을 하며, 동물ㆍ식물ㆍ미생물로 나뉜다. 또한 생명(生命)이란 보통 생물로서 살아 있게 하는 힘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영혼(靈魂)이 존재하지 않는 육체(肉體)로서의 동물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내용이다. 육체와 함께 영혼이 존재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동물과 동일하게 이해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어찌 감히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된 피조물인 사람을 동물과 동일시 할 수 있으랴.

   그렇다면 이제 깊이 생각해 보라. 동물이 아닌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왜 사는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진정한 이유를 아는가? 정녕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참 가치를 아는가? 아직도 그 가치를 모른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산다면, 참 불쌍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적 참 가치를 알고, 그 가치에 맞게 산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살기 때문이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했다.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은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흡족하셨다.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 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그만큼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존재적 참 가치를 인정해 주길 원하셨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사람의 모양을 따라 오신 목적을 분명히 깨달아 믿는 것을 원하셨다.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베드로가 시원하게 해드린 것이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예수님은 놀라운 복을 약속하신 것었다.

   예수님은 다른 때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는 말씀도 하셨다. 이는 자신의 존재적 참 가치를 밝히신 선언이다. 이 세상에 오셔서 무엇을 위해, 왜 사신 것인지를 밝혀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따를 것을 바라시며 증거하신 선언이셨다.

   세상에서는 석가모니와 공자,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4대 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석가모니와 공자,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을 각각 종교의 창시자라고 한다. 석가모니는 불교, 공자는 유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독교.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다. 그런데 왜 소크라테스를 종교의 창시자들과 동격의 반열에 두어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게 된 것일까?

   소크라테스는 고대 희랍의 대 철학자요 사상가였다. 그는 평생 제자들을 가르칠 때 화두로 사용한 말은 '너 자신을 알라'였다고 한다.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 아니다. 본래 어떤 신전에 새겨진 글을 그가 자신의 가르침에서 가장 큰 화두로 삼은 것이다.

   이 말로 희자되는 아주 재미있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위대한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줄도 모르면서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산다. 그렇지만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구도자의 마음으로 부단히 노력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 더불어 성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주 그럴 듯한 이야기로 단순히 우스갯소리로 여겨지는가? 아니다.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 자신의 존재적 참 가치를 알 수 있으랴. 자신의 존재적 참 가치를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보람있고 활기차게 살 수 있으랴. 오히려 살아가는 세상이 덧 없고 고달프게 여겨질 것이다. 미래에 대한 꿈도, 소망도 없는 초라하고 진부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누구인지를 바르게 안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 얼마나 살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100년 미만의 짧은 생애를 산다. 그것을 사람이 살아야 할 전생애로 여긴다. 이 세상에서 살다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생애는 이생뿐이 아니다.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존재해야 할 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 이후에 다가올 새로운 삶을 준비하라. 사람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 시작되는 삶의 분기점이다. 그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증거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 죽은 자들을 심판하사 어떤 사람은 영원한 구원으로,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나눈다고 증거한다. 영원한 구원은 영원한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요, 영원한 멸망은 영원한 저주와 고통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다. 세상에서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죽음 이후에 새롭게 시작될 영원한 삶에서 어떤 삶을 원하는가? 영원히 행복한 구원인가, 영원한 저주와 고통이 동반되는 멸망인가? 결정은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사는 날동안 결정된 일은 죽음 이후에는 영원히 번복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사는 날동안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려는가? 죽음 이후의 세상에서 어떤 삶을 원하는가? 영원히 행복한 구원의 삶인가, 영원한 저주와 고통의 삶인가? 영원히 행복한 구원은 기쁨과 감사의 복된 삶이 계속되고, 영원한 저주와 고통 엮시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런 삶은 이 세상에서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삶이다. 이 세상에서 사는 날동안 결정되어야 할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과라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라.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찾으라. 진정한 존재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죽음 이후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비결이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 죽음 이후를 위한 바른 준비다. 그러므로 이제는 자신의 존재적 참 가치를 바르게 깨달아 가치에 맞는 삶을 사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궁극적 목표를 삼아야 한다.

   성경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존재적 가치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다고 증거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영화롭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이유가 이 때문이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힘쓰라.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순종하는 것 이외에 어떤 방법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라.

   하나님을 노엽게 하지 말라.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죄를 하나님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죄를 사람들은 흔히 살인
간음도적질거짓말모함 등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들만 죄로 여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죄의 본질이 아니다. 죄의 본질에 의해 파생되는 죄된 열매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명령을 가볍게 여겨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곧 불순종이다. 불순종이 여러 가지 죄된 열매를 맺게 한다. 그것들로 인해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하며, 죽음 이후에는 영원한 저주와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명령을 소중하게 여겨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영원한 저주와 고통의 나락이 아닌 영원히 행복한 구원을 이룰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하신 분이시지만,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피조물로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영원한 존재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엄중한 계율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순종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너희가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선포하심으로 영원한 존재로 창조되었지만 죽음을 당하게 되어 유한한 존재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불순종은 모든 죄의 본질인 것이다.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인가?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가? 이것을 아는 것은 진정한 존재적 참 가치를 아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무어라고 말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말로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결정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자기성찰의 기회는 될 수 있지만, 올바른 자기 존재의 참가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꼭 있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사람이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어서 있으나 마나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무익한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무익한 존재가 있다면 하나님은 실패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실 수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어찌 이 세상에서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사람이나 있으나 마나한 사람을 창조하셨으랴. 결코 그럴리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자신의 존재적 참 가치를 직시하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도 믿으라.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무조건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 자신의 의사로 조건을 달려 따지지 말고 무조건 순종하라.

   오늘을 살기 힘들고 어렵다고 여겨지는가? 그래서 삶의 의욕이 저하되고 활기란 찾을 수 없어 상심의 나날을 보내는가?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무력감에 빠져 자괴감이 드는가? 자꾸만 다른 사람이 원망스럽고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원망스럽게 여겨지며 어떤 절망감에 휩싸이는가? 이제 용기를 내라.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현실을 수수방관하여 낙오자가 되도록 방치하지 않으신다. 우리를 당신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실 것을 아직도 원하시기 때문이다.

   일어나라. 고개를 들라. 목소리를 높여 '나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외쳐라. 어떤 어려움도 두려워 말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감당할 힘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능력 주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현실의 삶이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라 여겨져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라. 그리하면 모든 삶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다. 왜냐하면 순종은 형통하게 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을 기쁘게 한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하늘나라의 열쇠를 기억하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동일한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신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가진 자는 이 세상에서 어떤 일도 두려워하거나 겁낼 이유가 없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씀의 약속을 믿으라. 이런 약속을 믿는 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존재할 참 가치를 아는 자라 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왜 이 세상에서 사는가? 모든 사람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뜻에 의해 세상에 태어났고 세상에서 살아간다.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곧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참 이유요, 참 가치다. 그러므로 사람을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 있을 뿐,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사람이나 있으나 마나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아야 한다.

   모든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장 우수한 피조물로 영혼이 깃든 존재다. 온 우주 삼라만상에 사람만한 피조물이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영혼이 깃든 존재를 사람 외에 결코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영혼이 존재하는 하나님의 피조물. 이것이 우리의 존재적 참 가치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밝히시기 원하셨다. 영원한 관계로 우리의 하나님이시길 원하셨다.

   이제 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겨 존중하며 말씀을 철저하게 순종하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힘쓰라. 그래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적인 참 가치와 목적을 깨달을 수 있다. 이제 그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라.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와 참 가치를 바르게 깨달은 자로서 당당함을 잊지 말라. 더 이상은 세상에서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목적을 상실한 사람이 되어 마지못해 살아야 하는 불행을 자초하지 말라. 자기만족을 추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라. 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 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라.

   2012. 5. 7 (월)


  글/
불꽃 石一進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글쓴이 : 왕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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