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옥에 있는 영에게 전파(선재적 그리스도 사역)

수호천사1 2012. 9. 11. 11:11

베드로전서 319절의 그리스도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말씀은 수천 년의 기독교 역사가 흘렀지만 여전히 난해구절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대부분 성육신 이후의 그리스도의 사역성에 대해서만 강조를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온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만 그리스도의 사역성에 대해 자세히 안다면 이 구절이 난해구절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이후에만 활동하신 것이 아니라 성육신 그 이전에도 여전히 무형적으로 활동을 하신 것이 성경에는 수없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라는 말씀 중에 란 바로 이 선재적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고, ‘옥에 있는 영들이란 죄악에 속해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보면 결국 이 말씀은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노아를 통해 노아 당시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임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시에 노아가 멀쩡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홍수를 대비해서 방주를 짓는 것 자체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수가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또한 단순히 방주만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면서 말씀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도 노아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말해준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해석을 밑받침해주는 것이 그 다음 구절에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그러니까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해도 듣지 않음으로 해서 겨우 여덟 명만이 구원을 얻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을 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성으로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그리스도를 대신해 전했다는 말로 이해하십시오)

 

그리스도성이라는 이 말이 여기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글을 계속 읽어보십시오.

 

지금까지 교회에서 이 구절이 난해구절로 남아 있는 것은 선재적 그리스도의 사역성에 대해 별로 의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이라고 하면 의례히 지옥을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교회의 역사를 보면 선재적 그리스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 해서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구원론에 있어서 늘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을 한 것으로부터 우리의 구원이 시작된 것으로 인식을 하게 되었고,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이때로부터 시작된 것인 양 알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교리적 신학적으로야 선재적 그리스도도 말을 하고, 당신의 백성을 만세 전부터 택했다고는 하고 있지만 성경을 깨달아 자신의 신앙에 실질적으로 적용을 하는 면에서는 그렇지를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이 선재적 그리스도 안에서 선재적 그리스도로 통해서 예정 계획 설계 진행 착수가 된 것인데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라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이 선재적 그리스도의 사역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알지를 못하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을 위해서 행하신 구속사역만을 강조하고 고조를 하다 보니 현금의 기독교가 구원론에 대해 희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선재적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서부터 계셨는데, 그렇다면 창세 이후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유형적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무형적으로 계시면서 무엇을 하셨는가?

 

우주만물과 지구의 창조도 그리스도 안에서 무형의 그리스도가 창조를 하셨습니다. 사막의 모래 속에 사는 전갈도, 광야의 독수리도, 돌짝밭의 독사도 무형의 그리스도가 무형적 활동으로 지어 놓은 것입니다. 우주공간도 그리스도의 무형적 활동으로, 공간의 천체도, 그것들의 범위도 그리스도의 무형적인 활동입니다.

 

무형의 그리스도가 이렇게 창조를 하게 된 이유는 택자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택자의 기본구원은 물론이고 성화구원의 그 성격 성질이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성화구원이라는 그 성분이 그리스도성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설교의 내용이 여기에 맞아야 그게 진짜 설교요, 그게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그냥 인간의 생각으로 연상을 하면서 말한다면 허공에 지구가 있는데 이 지구는 물질세계이지 신령세계는 아닙니다. 그러니까 영계, 영적인 세계인 신령세계는 물질계가 아니니 이 신령세계는 물질세계와는 성격이 다르고 성질 성분이 전혀 다른 것이니 물질세계의 개념을 가지고는 그 신령세계를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설교의 바탕이 지구 안에서 고물고물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바탕을 거기에 두니 목적도 역시 그렇게 되어집니다.

 

우리가 기독관의 입장에서 보면 신령계가 공간의 어느 구석에 눈에 안 보이게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영원 전에 그리스도라는 분이 선재적 그리스도로 무형적으로 계시면서 당신이 누리시던 그 천국을 보시면서 이 천국을 누구와 같이 누릴꼬해서 그 대상자로 인간 나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좋은 세계를할 때의 이 좋은 세계는 물질세계는 아닙니다. ‘이 좋은 세계를 나와 같이 누리자해서 그 대상자가 당신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모든 예정 계획 설정을 해서 이 공간에다 지구라는 것을 딱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지구를 만들 때는 인간의 천국에서의 누림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천국의 그 세계를 주려고 세상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천국)를 주려고 하는 그 성격이 그리스도라 그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성격을 가지게 되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계(세상)를 창조한 원인이 한 마디로 하면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을 당신처럼 만들어서 천국을 같이 누리게 하겠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 천국을 당신처럼 누리게 하려니 사람의 성격을 질적으로 그리스도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고, 그렇게 하자니 그런 실력을 키울 장소인 이 지구가 필요하겠기에 지구를 만든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이 지구 안에는 사람뿐만이 아니고 짐승도 말할 수 없이 많이 있는데 이 모든 각이한 존재들이 이 안에서 사는 법칙이 있고, 그리고 이 안에서 어떤 성격을 갖고 활동을 하고 활용을 하는 그 성격들이 다 있습니다. 또한 그 활용의 범위와 그 적용성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간에게는 네 멋대로 살아라그게 아니고 그 법칙 속에는(그 법칙을 따라 살면) 누구를 닮도록 되어 있느냐 하면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성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돼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시는 원인도 창조도 그리스도요, 그 다음에 진행도 방편도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마지막 그 날까지 모두는 그리스도성으로서 진행되고 있고, 방편도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재세기간 동안에 거기에 의사적으로 맞아 들어가면, 수종들면 자기가 그리스도로 닮아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두 다 영원 전서부터 원인이 그렇고, 창조가 그렇고, 진행이 그렇고, 방편이 그렇고, 결과가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 나를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에 의사적으로 맞게 살아가면 모두 다 그리스도로 맺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인 내가 그리스도와 성격 성질 성분이 단일성적으로 통일이 되어서 본래부터 인간 나를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그 천국을 나도 역시 그와 같은 기쁨과 향락과 쾌락으로 누리고 다스리며 영원히 그리스도와 인격적 수수관계를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나를 창조하신 궁극목적이며, 바로 이런 존재로 만들어지라고 나로 하여금 이 땅을 거처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매사에 이런 관점으로 보지를 않는다면 인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목적을 알지 못하게 되며, 그 결과는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천국을 누리고 다스릴 수 있는 실력인 그리스도성을 입지 못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국은 천국에서의 누림성이 그만큼 자체적 축소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장차 이런 결과로 나타나지 않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하신 구속사역만 알 것이 아니라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서부터 무형적으로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하신 구원사역도 바로 알게 되면 보다 더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수가 있게 돼서 보다 더 효율적 효력적 능률적으로 주님을 닮아갈 수가(그리스도성을 덧입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기초로 작성했습니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궁극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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