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힘 창1:1
본문주해
하나님(!yhla;엘로힘)
성서가 제일 처름으로 소개하는 하나님의 이름 곧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름은(!yhla;엘로힘)이다. 이 이름은 전에는 이방인의 신에게도 사용되었던 보통 명사이다. 보편적으로 (hla;엘로 아흐)의 복수형으로 보이는 이 단어는 성서에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참 하나님을 지칭하는데, (la;엘)이나 (hla;엘로아흐)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되었다.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쓰인 것은 하나님의 위엄을 반영한 것이지, 정말 복수명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yhla;엘로힘)이라는 명사가 일관되게 단수형 동사를 취하고 있으며, 형용사나 그것의 대명사에 있어서도 역시 단수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복수형으로서의(!yhla;엘로힘)이라는 신명(神名)의 형태가 다른 셈족어에는 없으며, 심지어 성서 아람어에도 없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참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으로서의 (!yhla;엘로힘)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시는 모든 신성한 행위의 주체로서 진정한 존경과 경외의 대상임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주제강해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신'의 명칭은 성경의 '엘로힘'(!yhla)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엘로힘'이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여호와'와 함께 하나님의 칭호에 가장 빈번하게 쓰였는데 구약성경에만 약 2,000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원뜻은 '강하고 지고한 신'이며, 하나님의 신(神)적 본질과 속성을 충만히 나타내 주는 성호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인생들이 경배하고 순종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는 면과 이 성호 안에 '삼위일체'로 계시는 하나님을 암시하는 요소도 있습니다. 과연 '엘로힘'으로 명칭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그 명칭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경외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어떤 신학자들은 '알라'(alah)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라'(alah)는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 '두려워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어떤 초월적인 신적인 존재들을 '두려운 대상'으로 여겼는데, 하나님 역시 인간들이 두려워해야 할 '창조주'로서 '경외의 대상'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인생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전합니다(참조; 잠13:13;잠14:16;빌2:12). 바로 인생 위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참조; 시2:11;잠1:7;고후7:10,11). 이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경외심'이 결여된 인생이 곧 '죄인'들이요(참조; 렘2:19), 미련스러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나와 이웃과 세계를 대하는 '지혜'가 점점 소멸되어감을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2. '삼위일체로 계신 자'를 암시해 줍니다.
'엘로힘'은 율법적으로 볼 때 복수형 명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수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은 창1:1부터 '하나님'을 계시해 주되 '단독적 신(神)'이 아닌 '삼위일체'로 계신 '신'임을 암시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창1:26에는 벌써 '우리'라고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삼위'를 증언해 주고 계십니다. 이 '우리'는 결국 '성부, 성자, 성령'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한분'이시면서 그 한 분 안에 각기 독립된 신, '세 인격'이 계신다고 하는 이 '삼위일체'론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불가능한 '신적 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이러한 사실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로 계신 하나님'. 이 사실이야말로 인간들이 지어 낸 신과 우상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적 본질'중 하나입니다.
3. '위엄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수의 신학자들은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아울'(aul)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아울'(aul)은 '강한 능력'이라는 뜻인 바 '엘로힘'은 강력한 초인적 능력을 소유하신 '위엄자'라는 의미를 띠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도 죄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평가 절하하는 것도 죄요 무지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신적 능력'을 불신했기에 배신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역시 마찬가지로(참조; 행5:1-11) 교회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지전능성을 불신했기에 하나님을 기만하려다가 멸망당했습니다. 특히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능력보다 사탄의 '계교'를 더 의뢰했기에 '인류 불행'의 시조가 되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신앙하는 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초인적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간들이 소유하지 못하고 행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신 '위엄자'를 경배하고 의뢰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신적 능력 중에 가장 큰 능력이 바로 '사랑'임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사랑의 노력'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하나님이기에 '위엄'이 있으시며 인생들이 그 위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참조; 빌2:5-11).
4. '절대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이 '엘로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만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신적 권세자'에게는 이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방인들이 만들어 낸 신화 속의 '신'들도(참조; 창12:12;창31:30) 또 '천사'들에게도(참조; 시8:5) 혹은 '지도적 인간'(참조; 출21:6)들에게도 '엘로힘'이란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는 '보통 명사'로 사용했고 '하나님'께에만 '고유명사'로서 '엘로힘'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영어로 'God'은 '하나님'을, 'god'은 신화적인 '신'을 가리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을 고유명사 '엘로힘'으로 나타냄으로써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참되고 유일한 '절대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는 '신적인 대상'이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위대한 '종교적 성인들', 또 '스승', '물질, 부, 영예', 혹은 '어버이, 배우자' 또는 자신의 지혜와 건강 등등.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구하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의지의 대상이 될 수 없음도 유념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진리와 생명과 사람을 계시하신 하나님만을 '절대자'로 받들고 의뢰해야 지혜로운 인생이 됩니다(참조; 고전8:5,6).
5. '주관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엘로힘'을 영역성경들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즉 'Firstinfront'(우두머리), 'Leader'(지도자), 'Governer'(주관자)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엘로힘'은 세상 만물과 역사와 인생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이 세상과 삶의 주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창3:6)
주제관주.
엘로힘(강하신 하나님)
a. 엘로힘은 강하신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임(욥9:4)
b. 엘로힘은 하나님이 경외의 대상임을 나타냄(시89:7)
1. '엘로힘'의 읨
a. 강하신 하나님을 나타냄
㉠ 큰 권력과 강한 손을 가지심(출32: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 이적과 기사에서 나타남(신26: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로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 힘이 강하고 지혜로우심(욥9:4)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팍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자가 누구이랴
b. 하나님의 능력 있으심을 나타냄
㉠ 힘의 근원이심(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능력으로 역사하심(엡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음(히4:120)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c. 하나님의 위엄 있으심을 나타냄
㉠ 하나님의 위엄은 거스릴 수 없음(출15:7)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같이 사르니이다.
㉡ 하나님의 위엄은 스스로에게서 나옴(시93:1)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 세상을 진동시키는 위엄임(사2:19)
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d. 하나님이 경외의 대상임을 나타냄
㉠ 경외의 의미
① 하나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본임(잠1:7)
② 악을 미워함임(잠8:13)
③ 생명의 근원임(잠14:27)
㉡ 경외의 대상이신 하나님
① 사람의 두려워할 바임(시89:7)
②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심(신10:12)
③ 다른 신을 제하여 버려야함(수5:15)
④ 세계의 모든 족속이 경외함(전12:13)
⑤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함(합2:20)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축복
① 사람의 택할 길을 하나님이 가르치심(시25:12)
a.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신 말씀 가운데(출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b. 시편 기자의 고백 가운데(시89:7)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c. 애굽의 속박에서 구하신 역사 속에서(출12:41,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을 인하여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42절)
d. 영혼을 멸하시는 미래의 심판에서(마10:28)
e. 성도를 도우시는 역사에서 (단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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