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종말

[스크랩] 한국교회 몰락의 조짐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전격공개)

수호천사1 2012. 8. 8. 11:58

한국교회 몰락의 조짐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전격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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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 법적인 조치까지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교회를 대거 등지고 있다는 조짐이 드러났다.

안티운동은 젊은이들 안에서 세상에 급속히 퍼져 나갔다.

 

정치적으로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기독교 운동을 크게 확산시켰다.

여기에 대부분 신앙이 약한 젊은이들은 교회를 속속히 떠나는 중요한 빌미를 주었다.

 

그리고 불교인 노.무.현이 자살하면서 그 분노가 괜히 기독교로 확산이 되었던 것이다.

정치적 갈등과 분노를 철저히 반기독교를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확산시켰던 전략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사회 전체로 반기독교 안티운동이 급속히 퍼져 나갔던 원인이다.

올림픽 매달도 과거 같으면 기독교인이 약 절반 가까이 거의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번 금매달을 살펴보면 종교 중에서는 대부분 불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종교적으로 기독교를 저항하는 것을 마치 자신들의 신앙이 된 것일까??

 

.불자 금매달.

 

*사격-진.종.오 2관왕

*사격-김.장.미

*체조-양.학.선

*양궁-오.진.혁

*양궁-최.현.주

*양궁-기.보.배 2관왕

*폔싱-김.지.연, 구.본.길, 원.우.영, 김.정.환 등등 그 외에도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단일 금매달 기독교인은  8월 7일까지 겨우 유도 김재범 선수 1명이었다.

어떻게 5년 안에 약 50%를 차지했던 기독교가 거의 전멸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 심각한 것은 금매달을 딴 불자 중에 부모가 기독교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양궁 오.진.혁, 폔싱 원.우.영 같은 경우 부모가 기독교인이라고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자녀가 무교나 불자가 되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

심각한 반기독교로 말미암아 젊은이들이 무교와 불교로 개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보면 이미 기독교가 참패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들이다.

안티운동, 민족주의, 정치운동 등등으로 나타난 복합적인 기독교 불신운동의 결과다.

 

결국 과거 정치포탈들과 진보언론들과 방송들은 기독교 죽이기에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국민 정서로 접근한 반기독교 운동은 기독교 배척을 급속히 팽창 시켰다.

 

특히 종교편향을 날마다 운운하면서 나타난 종교갈등은 폭발적인 안티운동을 양성하였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이런 사태를 영적으로 직시해야 한다.

 

반기독교 운동으로 기독교 젊은이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하나님의 복으로 세워진 나라가 하나님을 버린 결과는 참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지금 정신을 차리고 순교하는 각오로 안티들과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

상식적으로 기독교 집안에서 불교로 개종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죽은 뒤에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모두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잠깐이지만 영원한 것을 놓친 결과 그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다.

 

누구든 하나님을 대적하고서 미래의 영원한 생명은 결코 보장을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다 부족하다. 목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목사 비판에 목숨을 걸고 있는가?

 

차라리 자기 교회를 떠나라!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목사와 교회는 많다.

굳이 교회 안에서 분란을 만들고 더 이상 안티들에게 먹거리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의 목사들을 모두 교회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맡긴다고 해도 비판은 똑같이 일어난다.

사람은 부족하다. 잘난 목사, 인기 목사, 부족한 목사, 덜 떨어진 목사 등등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스스로 교만한 행위가 될 것이다.

목사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교회 안에서 갈등과 싸움을 종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교회의 성도들을 지옥 불구덩이로 넣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들의 싸울 것은 성도 간 싸움이 아닌 영적으로 이 악한 세상과 싸워야 한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등지는 현상은 미래 한국교회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매달을 딴 자들이 이방종교라면 그들의 종교는 급속히 퍼져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포교에 그들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뷸교포털과 신문들 일제히 기고)

이런 중대한 문제는 더 이상 교회가 과거와 같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면 안 된다.

 

대안은 이것이다.

교회 안에서 청소년 인재들을 찾는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전체로 확산시켜야 한다.

 

음악, 예술, 스포츠 등등 교회 안에서 신앙인 중에서 인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방종교가 먼저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로 영적전쟁이 시작되었다.

 

가수든 축구든 양궁이든 뭐든 대형교회는 인재들을 교회 안에서 신앙으로 발굴해야 한다.

신앙의 모임과 각종 대회를 통해서 인재를 조기에 찾아야 할 중요한 시대적인 현상이다.

 

불교는 종교편향으로 일거에 대거 젊은이들을 독식하였고 그 결과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비겁한 전략을 사용하지 말고 교회 안에서 철저히 양육해야 한다.

 

이제 정말로 영적 전쟁이 시작 된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준 반기독교 결과의 열매는 참혹한 결과를 만들었다.

 

설마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된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여 이제 우리가 서로 싸울 시간이 없다. 영적전쟁에 나서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더 이상 안티들과 이방종교에 밀린다면 기독교 존폐까지도 걱정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력하게 교회가 다시 일어서는 신앙의 열정이 폭발해야 한다.

 

시간이 급하다. 너무 젊은이들이 많이 흔들렸고 교회를 떠나 교회를 대적하고 있다.

이런 것은 정치적 혹은 문화적인 현상이 아닌 영적으로 심각한 교회에 대한 도전이다.

 

이번 스포츠에서 보여준 기독교의 몰락이 과연 우연일까?

쟝미란은 뒤에서 차가 들이받아 목을 다치는 결과로 이번 올림픽에 힘든 결과를 얻었다.

 

박태환은 언론들의 무리한 슌양과의 이간질 전략으로 엄청난 중압감을 받고 출전하였다.

축구에서도 박주영 선수와 기독교가 많은 대표팀을 종교적으로 공격하였고 크게 흔들었다.

 

오심판정을 받은 신.아.람과 조.진.호 등등 모두 우연인지는 몰라도 기독교인이었다.

여자 뱨드민턴 실격도 대부분 기독교인들로 코치의 전략을 따른 것 밖에 죄가 없다.

 

뷸교는 종교편향으로 종교갈등을 조장해서 종교적으로 젊은이들을 철저히 세뇌시켰다.

기독교를 이제 사회 전 부분에서 약화시키는 운동이 우리도 모르게 진행이 되고 있었던 것!

 

사실 이번 올림픽에서 과거 절반을 휩쓸었던 기독교는 철저히 무너진 현상을 보였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올림픽에 나간다. 결코 다른 종교를 겨냥 않는다.

 

그러나 뷸자들은 기독교를 이기는 것을 마치 신앙이 되어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목이나 팔에 염주를 주렁주렁 걸고 나와도 절대 종교편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종교자유로 세레모니를 하거나 십자가를 걸고 나오면 종교편향인가?

이미 한국사회는 반기독교라는 또 하나의 해괴한 신앙사상이 젊은이들을 휩쓴 것이다.

 

젊은이들의 불신앙과 타락과 이기주의와 오만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기독교가 몰락한 서구사회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기독교 현상과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선수들에게 당부한다.

올림픽 금매달? 그것 천개 만개 신앙과 관련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부러워 할 이유도 없다. 기독교인들이 금매달을 세상의 천한 것으로 생각하지 못하는가?

금매달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임하는 신앙인의 자세가 불신앙보다 약하면 되는가?

 

금매달을 앞두고 임하는 선수들은 그 앞에서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떨지 말라.

그것은 세상의 것으로 우리의 영광의 가치와 조금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 금매달을 통해서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하늘의 상급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 세상의 가치인 금매달 앞에서 영원한 세계를 얻은 자들이 떨어서야 그것이 신앙인가?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금매달을 우습게 여겨라.

그 앞에 우리의 가치와 비교한다면 그런 것들은 잠깐의 영광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 땅에서 부르는 세상의 금매달을 가지고 하늘을 위해서 싸울 뿐이다.

누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세상의 금매달 앞에서 떨게 하는가?

 

그런 신앙은 우리 것이 아닌 세상의 가치와 신앙에 불과하다. 동매달이든 금매달이든 금매달 할아버지든 기독 선수들이 힘써서 얻지 못한다고 해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은 금매달을 따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색깔이 무슨 색깔의 매달이든지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다. 금매달에 목숨거는 세상 사람들처럼 우리의 가치는 그것이 아닌 그 이상이다.

 

요즘 갑자기 기독교 반발이 두려운지 몰라도 포털들이 교회비판을 멈추고 살짝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반기독교로 무장한 자들이 장악하고 있다. 언제든지 이들은 다시 기독교를 유린할 수 있는 세력들이다.

 

사실 뷸교가 살아남는 방법은 종교편향을 이용한 반기독교 신앙으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이 성공함으로 우리의 젊은이들이 기독교에 대한 반발심이 커지게 된 것이다.

마치 무교와 무신론과 민족주의가 좋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전형적인 민족주의 운동!

 

 

기독교는 세상과 교회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탈피해야 한다.ㅡ홍보요망

 

기독교인과 세상 사람들이 서로 재능은 비슷할 수 있지만 신앙을 위한 헌신은 전혀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 향한 목적을 분명히 실천할 수 있는 신분이 있다.

 

 

교회가 반기독교 확산을 약화시키려면 교회와 세상이란 이분법적인 시각을 탈피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는 믿음의 원리는 바른 성경적인 세계관이 아니다.

 

만약 성도가 찬송가만 불러야 한다면 그럼 왜 세상에서 성악가가 되고 작곡과 작가가 가능?

물론 성도의 신분으로는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 최선이며 또한 신앙의 의무라고 본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또 다른 사회적인 신분이라는 이중적인 세계관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요즘 정교분리만 주장해서 이런 사회적 신분과 활동까지 크게 위축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이것은 매우 근본주의적인 세계관이며 또한 성경적인 원리에도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신약시대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라는 두 가지 세계관의 원리가 모두 나타난다.

 

이것은 성도의 신분과 속세의 신분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성도라면 모두에게 해당된다.

만약에 성도의 신분만 강조한다면 찬송가만 불러야 하고 세상 직장은 모두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과 함께 또한 세상의 시민권이 동시에 공존한다.

현재 반기독교가 곳곳에 확산이 되고 있는데 굳이 전근대적인 근본주의로 나가야 되는가?

 

반기독교 운동은 교회 안에서가 아닌 사회에서 일어난 정교분리 파괴의 운동이다.

여기에 기독교인들이 과거와 같이 정교분리에 묶여서 교회의 입장만 고수해야 하는가?

 

오히려 세상의 직장을 가질 수 있듯이 세상의 모든 문화와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물론 신앙적으로 크게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심한 노출과 비신앙적인 것)

 

그렇지 않는 이상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연예인이 될 수 있고 세상의 문화를 가질 수 있다.

다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것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 최종 목적은 연예인의 명성이나 혹은 그 부귀를 자신이 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모든 성취된 것들은 자신에게 또 하나 있는 영적인 신분으로 나타나야 한다.

 

즉 세상의 문화활동을 통해서 그 수익과 명성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상적인 성도와 세상의 신분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반기독교 운동으로 교회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들을 차단하고 억제시키는 기능은 기독교인들의 세상에서의 활동으로 가능하다.

 

이제는 세상과 벽을 쌓고 우리들의 신분만 주장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안티들은 기독교가 이분법적 시각을 고집하고 교회의 신분만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에서 마음대로 교회를 유린하면서 교회는 세상과 벽을 만들기 원하고 있다. 이런 안티들의 전략에 보수주의 기독교는 근본주의를 버리고 세상에 나가야 한다.

 

이것은 결코 세상과 신앙의 타협이 절대로 아니다.

성도가 직장과 연예인과 스포츠인과 작가가 된다고 해도 성도라는 신분은 변함이 없다.

 

성도라는 신분은 철저히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영역에 해당되는 영적인 부분들이다.

그리고 성도들도 세상의 신분으로 세상의 영역에서 각자가 세상의 영역에서 활동한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성도와 세상 나라의 신분은 구분이 되며 또한 공존한다.

이런 구분이 없이 국가와 교회가 일치된다는 정교유착은 중세시대 교황정치에서 나타났다.

 

이 사상은 교회와 세상이 각각 구분이 아닌 교회가 세상을 지배했던 정교유착의 사상이다.

이렇게 지배한 결과 중세시대 교황정치는 세상의 활동자체를 엄격히 배제한 구약정치였다.

 

그 이후 세상과 교회를 아주 분리시키고 교회의 입장만 강조하는 근본주의가 나타났다.

이런 운동의 결과는 교회의 지배력이 세상의 지배력을 점령해야 한다는 사상과 가깝다.

 

이런 근본주의 사상은 교회의 신분만 강조하는 청교도 운동과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바른 성경적인 세계관은 성경적인 정교분리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교분리는 교회와 세상은 구분이 되면서 또한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신분과 세상 나라의 신분은 각각 구분되고 또한 공존하고 있다.

 

이것이 정상적인 사고라면 기독교인들의 직업적 연예활동을 배척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일반 직업이 가하다면 기독교인들의 세상의 활동은 대폭적으로 허용이 되어야 한다.

 

안티운동이 확장하는 이 시대에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는 것만 강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교회는 교회의 영역과 영적인 활동이 있으며 또한 세상의 직장과 활동과 구분된다.

 

서로 분리되면 또한 구분되면서 그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신약시대의 세계관이다.

지금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또 하나의 신분일 뿐이다.

 

그렇다고 죄를 짓는 행위까지 허용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신앙에 위배가 되지 않는 이상 기독교인들의 세상 활동은 법이 허용하는 모든 곳에서 가능해야 한다. 물론 건전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에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무분별한 도덕 파괴주의자들과 맞서야 한다. 동성애, 성 상품화, 음란 문화들과 거리를 주는 것은 최소한의 신앙인의 양심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활동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모든 활동의 최종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세상의 명예와 부과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세상의 신분만 해당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신분 외에 바로 하나님의 신분인 성도라는 신분이 공존한다.

 

비록 세상에서 활동하는 박주영 선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또한 김혜자씨도 자신의 연예활동과 명예를 통해서 구호선교에 심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도들은 두 가지 모두가 있지만 최종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가야 한다.

만약에 어떤 기독 연예인이 그의 명예와 부귀와 명성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는 성도의 신분을 망각하는 자가 될 것이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특히 김장훈씨의 선행은 바로 기독교인들의 두 가지 신분에서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들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나가서 과감히 보여주어야 한다.

 

 

얼마 전 [소.향]씨라는 분이 엠비씨의 인기 프로그램 나,가,수에 출연을 하였다.

이를 두고서 기독교인들 조차 세상의 노래를 부를 수 있냐고 비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히 근본주의자들의 시각이며 바른 성경적 시각이 아니다.

근본주의는 세상과 교회를 분리시키고 교회의 시각만 인정하려는 단일정치 사상이다.

 

그러나 신약시대는 유대교적이며 이슬람적이고 중세시대의 카톨릭적 신본정치가 아니다.

기독교는 오히려 세상 그 어떤 종교에서도 주장하지 않은 정교분리의 종교를 주장한다.

 

이 정교분리는 교회와 세상을 분리시킨다는 의미를 말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는 교회와 세상을 동시에 모두 인정한다는 종교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문제는 후자인 교회와 세상을 동시에 인정하지 못하는 근본주의가 기독교 사상인가?

이것은 철저히 구약시대 유대교적인 신정정치의 사상이며 배격해야 할 일이다.

 

신약시대는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국가에서도 없었던 두 가지 질서가 탄생한다.

그것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고 육적인 세상 나라로 구분이 된 것이다.

 

물론 그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출발을 하였고 그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성장한다.

그래서 세상에 보이는 나라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나라로 구분이 된 것이다.

 

이런 참 성경적 정치와 질서를 모르고 약 천년 이상 유대교적인 정교유착이 나타났다.

그 결과 교회는 참혹할 만큼 타락을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성경을 바로 알아가면서 신앙의 영역과 세상의 영역이 동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교분리가 나타나면서 종교의 자유가 부여 된 것이다.

 

만약에 교회와 세상을 단일정치로 해석한다면 다른 종교는 없애야 하는 중세정치가 된다.

대표적인 곳은 바로 이슬람의 정교유착과 신정정치라는 단일정치의 모습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전근대적인 정치가 아닌 신약성경에 기초한 정교분리의 정치다.

기독교의 발전과 함께 세상은 정교분리라는 가장 이상적인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요즘 반기독교는 세상에서 나타난 기독교에 대한 저항이며 기독교 죽이기 운동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세상과 교회라는 이분법적인 기준에 빠져서 적극 대응하지 않고 있었다.

 

불교는 세상과 불교를 유착시켜서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대거 수용하였다(정교유착만 강조)

반면 교회는 오히려 거리를 두는 보수주의 성향으로 세상으로부터 비판만 얻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원하는 것은 세상과 교회를 혼합시키는 영적인 간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즉 교회는 세상에 있기 때문에 세상의 공간에서 신앙의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정교분리에 너무 매여서 정작 세상을 향한 교회의 역할마저 거부하는 것들이다.

그 결과 교회와 세상은 분리가 된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가장 큰 장벽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철저히 율법적인 신앙이며 또한 성경적인 내용도 아니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직업과 교회의 직분을 대부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정교분리만 주장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직분을 가지면서도 죄가 되지 않는 이상 모든 일을 한다.

 

이것은 성직자라는 즉 교회의 대표나 직종이라는 자들과 분명히 구분이 되는 것이다.

일반 성도들은 과감히 세상에서 문화적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세상의 가수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또한 활동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세상 가수는 세상의 직업일 뿐이며 교회에서 찬양을 부르는 것과 구분이 되는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으로써 세상 가수라면 그 직업도 건전한 방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맞다.

유흥업소만 전전하는 그런 문화적인 모습은 바른 성도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건전한 가요를 만들어가는 세상의 문화까지 거리를 두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은 오히려 세상과 교회 사이에 큰 장벽을 만들고 저항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찬양을 부를 수 있듯이 성도들은 세상의 직업 가수로써 가요를 부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두 가지 영역이 있으며 또한 그것은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즉 성도로써의 공동체라는 교회 안에서의 활동과 그리고 동시에 시민으로써의 활동이다.

이렇게 성도는 한 가지 영역 안에서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한 가지 존재만 인정한다면 세상의 많은 직업들은 배척해야 하는 영역이 된다.

그러나 성도는 두 가지 신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한 가지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신분이며 또 한 가지는 바로 세상에서의 신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있듯이 또한 세상의 나라인 국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신분과 시민권이 있으며 동시에 국가의 시민권이 있다.

이것은 중세시대의 정교유착 정치가 아닌 신약시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다.

 

우리는 육적으로 세상의 나라에 속하지만 영적으로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날 우리는 비로써 육적인 세상을 벗어나 영적인 곳에 이른다.

 

그 때에 우리는 한 가지 신분만 나타난다. 곧 하나님의 성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있을 때는 세상나라와 신분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신분이 공존한다.

 

지금은 세상의 영역에서 온갖 불신사상들이 위협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기독교인들은 바로 자신의 세상적인 신분과 영역에서 빛이 되어야 한다.

 

세상과 교회를 구분시키는 것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신앙인으로써 그리고 동시에 세상의 직업 안에서 신앙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너무 이분법적으로 접근한 결과 세상 가수라는 직업까지 색 안경을 쓰고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죄를 옹호하는 노래나 심한 노출은 피하면서 건전한 신앙인으로써 시민의 모습이 중요하다. 드라마 혹은 가수나 연예인들에 대한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자신의 영예를 시상식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개인의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 이런 부분들까지 종교적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분명 잘못된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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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호산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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