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스크랩] 관문선교의 중요성

수호천사1 2012. 8. 2. 10:59

관문선교의 중요성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복음에 쉽게 마음을 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관문도시들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위치한 곳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선교지로서 관문도시를 주목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선교사가 비교적 쉽게 접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같은 접근제한 지역에서 선교사들의 정착과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 사실 중국의 많은 농촌과 소도시는 외국인의 통행마져 허가되어야 하는 미개방지역이다. 선교사들이 정착을 하려면 학교나 기업체, 혹은 거주지가 필요한데 사실상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바로 위에서 제시된 관문도시들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농촌과 소도시지역에 복음을 전하려면 불가피하게 이곳에 기반을 둔 비거주선교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


관문도시의 교두보로서의 역할외에도 도시와 그 변화를 잘 살펴보면 많은 선교의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중국도시선교의 중요한 문제점은 선교사들이 도시에 밀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그들에게 단지 주거지거나 비자를 연장해줄 근거지로 생각할 뿐 도시를 전략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결여되어 있다. 선교사는 한 도시에 살면서 우연히(?) 연결되는 선교의 기회를 포착하여 사역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떤 선교사들은 아이템을 발견해내지 못하여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몰라 방황하고 있다. 문제는 그 아이템이라는 것에 매우 중복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서 증폭된다. 게다가 심각한 경우는 선교사들이 서로 경쟁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도시를 선교지로 생각하고 도시전체를 대상으로 생각을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전체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려는 표적도 없이 여기저기에 총을 쏘는 식이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양한 표적을 발견하는 한 방법은 각 도시내에서 종족집단의 분포를 발견하는 것이다. 도시내 종족집단에는 민족뿐만아니라 계급, 계층 및 여러 형태의 직업 및 사회집단이 있다. 도시내 이러한 종족집단의 다양성은 사역을 위한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우리는 학교나 병원, 제자훈련 등과 같은 선교프로젝트나 도구를 생각하기 이전에 이들가운데 있는 선교적 기회를 가늠하고 한 두개의 집단에 촛점을 맞추어 접근해야 한다.

 

동원가능한 선교자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승패는 아군의 전력을 어떻게 총동원하는냐에 상당히 좌우된다. 관문도시에는 현지 조달가능한 선교자원이 존재한다. 우선 일정규모의 도시에는 전체적으로 공식교회이든 가정교회이든간에 교회가 존재한다. 필자는 카자스스탄과의 국경지역에 가까운 한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곳에도 강력한 가정교회 네트웍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교회가 전혀 없을 것으로 예상된 미전도종족 지역에 헌신된 신자들고 구성된 교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과 협력하여 그지역 선교에 드려진다면 보다 빠른 성취를 경험할 것이다. 그 외에도 크리스챤 유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있다. 또한 동료 선교사들이 존재한다. 선교사는 현지 교회와의 협력과 평신도 및 사역자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선교자원의 동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사역의 착수와 효과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많은 선교사들이 이러한 사역에 드려지고 있다. 어떤 분들은 현지교인들을 양육하고 도전하여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가도록 돕고 있다. 또한 어떤 사역자들은 유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선교사로서의 비젼과 사명을 불러일으켜서 그들이 어떤 목적으로 그곳에 왔던지 전문인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도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선교자원과 선교의 대상 및 기회를 효과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일이다. 우리는 막연한 선교동원이 아니라 타겟이 분명한 동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교사자신의 대상과 목표, 그리고 전략이 분명해야 한다. 

 

도시를 통해 주변지역 선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행했던 선교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도시를 주요 선교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그는 바라보았다. 결과적으로 에베소에서의 선교는 아시아지방 전체의 복음화와 연결되었다. 도시가 그 주변지역, 그리고 도시주민이 농촌지역의 주민과 지니고 있는 관계의 망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도시는 주변지역으로 나아가는 선교적 스프링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처럼 도시내에서 이주민들의 일부를 제자화시켜 그들을 사역자로 세우고 주변지역에 대한 교회개척사역을 전개할 수 있다.

 

영적전쟁이 치열한 곳이기 때문이다. 

 

비브그릭은 인구통계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투쟁의 최종 대결장은 도시내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도시에는 예루살렘과 바벨론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 오히려 사단의 견고한 진이 도시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켈커타와 베나레스는 힌두교의 요새이며 라사는 라마교세력의 중심이고 매일 세계인구 1/5이 그곳을 향해 기도하고 있는 메카는 이슬람교의 중심이다. 이러한 도시들에는 침투가 어려울 곳이고 박해가 심하며 심지어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많은 어두움의 세력들은 관문도시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그 영향력은 도시에 짙게 깔린 구조적인 악과 도덕적인 타락, 그리고 만연된 물질주의(맘몬)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따라서 도시에서의 주거와 활동이 비교적 자유롭다고 해서 그 선교적 성과가 쉽게 나타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중국의 관문도시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회주의의 영향력에 의해 전통종교의 힘은 줄어든 상태이지만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그리고 새롭게 퍼지고 있는 물질주의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도교 불교, 혹은 민족종교들의 부활로 인해 도시는 사단의 활동에 보다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도시에서의 기회만큼이나 도시에서의 전투는 치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이 싸움을 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를 향해 나아가는 사역자들은 무장을 더욱 가다듬어야 한다(엡6:10-17). 그리고 이교적이고 반역적인 도시를 향해 나아갔던 사도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중보기도의 지원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엡6:19). 우리가 도시에서의 전쟁을 도외시한다면 전투에서 이기기 전쟁에서 지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관문도시는 아군도 적군도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거점인 것이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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