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참된 예배란

수호천사1 2012. 7. 27. 19:05

참된 예배란

 

참된 예배의 신학적 원리





인간은 예배적인 존재로 창조하셨고 맨먼저 내적인 예배를 원하셨고 다음으로는 외적인 고백을 원하신다. 예배의 제단은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기도 그리고 다른 경건의 행동들에 의해 영적으로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이다. 예배할때 주요한 일은 순종함으로써 그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나님께 인간이 할수있는 최대의 봉사이어야한다. 그래서 예배의 내용은 준비되어야하고 예배를 통하여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져야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 또는 응답하는 순서는 찬양과 기도와 헌금이며 하나님께 받는 순서 또는 하나님의 응답은 말씀과 축도라고 할수있다. 드리는 자세는 신본주의로 드려야하며 말씀은 귀로 받는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받아야 하며 다음과 같은 예배라야 참된 예배라고 할수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는 자는 그에게 아들과 딸로서 순종하고 또한 종으로서 복종하기를 배워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는 사람과 다른 특별한 속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올바른 예배를 드릴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꾸며 만든 모든 형태의 예배는 불경한 것이며 거부되어야 한다. 인생의 주요한 목적이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것인데 하나님께 진지하지 않고 드리는 인본주의적 예배는 예배의 완성인 순종을 낳을수가 없는 것이다.
예배의 원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다.

1) '신령과 진정으로의 예배 ( ejn pneuati kai ajlhqeia dei proakunein)'(요4:20-24)

예배의 장소를 물어오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오히려 방법과 내용을 대답하신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실것임을 그리고 제사제도의 완성과 동시에 폐지하실 것임을 계시하신 말씀이다.

예배란 말인 (proakunew=프로스퀴네오)는 '경의를 표한다'란 뜻 외에도 신령과 진정(24절)이란 요소가 포함된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물질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는 순전히 지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에 대한 반대되는 영적인 활동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세상에 속한 성소'에서 드려지는 물질적 예배는 최고의 예배일 수가 없다고 한다(히9:1).

예배란 '신령'(엔 프뉴마티= 성령안에서),다시 말하면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예배이라야 한다. 결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이나 유대인들이 드렸던 예배의 본질적인 문제는 단순히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의 문제이었다. 사마리아인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진리가 결핍된 예배이었고 유대인의 예배는 정성이 빠진 형식적인 예배 즉 신령이 결핍된 예배이었음을 지적하신다. 예배는 '진정' (엔 알레데이아=진리안에서), 다시 말하면 '진리'로 드려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서 나온 명백하고 뚜렷한 지식임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균형을 이루어 예배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찾으신다. 특이한 점은 신령과 진정이 합쳐진 단어 앞에 (ejn ; 엔)이라는 전치사를 썼다는 것이다. (ejn ; 엔)이란 전치사는 장소적 개념을 함축한다. 결국 신령 안에서, 진정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곧 장소의 개념을 초월한다는 의미로서, 이 두 요소 중 어느 하나를 약화시킨다면 올바른 예배의 형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내적인 예배를 원하시고 다음으로 외적인 고백을 원하신다. 주된 제단은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과 진리> 로 충만한 영적인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방법으로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예배이어야하며(마4:10), 하나님 앞에만 무릎 꿇는 예배(시95:6)이어야하고, 중보자되시는 그리스도안에서(in christ)그리스도 중심으로 그를 통해서만 드리는 예배이어야 하고, 성령의 능력안에서 드리는 예배 즉 성령의 역사가 없는 인간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 이교도의 예배와 다른 예배 이어야한다. 따라서 기독교 예배는 바른 신학에 기초하는 예배가 되어야하며 삼위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빌헬름 한(Vilhelm Hahn)의 말처럼 예배 가운데서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역을 깨닫게하고 그 인간들로 현재적인 응답을 하도록 역사하는 것이 성령이므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모셔드리고 그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예배이어야하는 것이다.

예배는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드리는 예배(시96:9)이라야한다. 사람이 꾸며낸 모든 형태의 예배는 불미스러운 것으로서 거부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의 법과 원칙에 따라 바르게 예배하는곳 이외에는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다.
교회도 예배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신령과 진정의 원리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고 여러 예배의 양식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나쁜것은 없는 것이다.


2) 하나님께 응답하는 예배.

예배가 주일에 드려지는것은
초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으로 시작되었고, 예수 자신이 주의 첫날에 모여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 이 사실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요20:14,26). 성령이 강림한 날도 이 날이었다. 사도시대의 교회가 주의 첫 날에 예배를 행하고 있었다는 데 대해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행2:7).

예배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이미 하신 바에 대한 사람의 응답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예배를 이끌고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예배를 명하신다. 하나님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에 불타는 열심을 가지셨고 다른 존재와 예배를 나누려고 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당연한 응답이 예배이다.

창4:3-4절에서 제사의 시초를 볼수있고 창4:26절에서 예배의시초를 볼수있다. 구약 성경에서 예배의 원리는 제사에 있음을 발견할수있다. 동물을 희생하여 제물로 드리는 것이 제사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알수있다. 창4:2-7절에서 가인은 곡식을 아벨은 양을 잡아 드렸다.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아벨의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가인의 예물은 받지 아니 하신 사건이 기록되었다. 이를 성경은 아벨이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마음 자세를 결정)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가납하셨다고 해석하고 있다(히11:4).

구약의 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사람의 신앙의 응답이었다.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으시는 여부는 드리는 사람의 마음 자세에 달렸음을 말씀하신 내용이 많이 있다(사1:11, 삼상15:22).

예배는 바로 <계시와 응답> 의 가장 실감나는 현장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육신의 사건과 구속 사건 그리고 부활의 사건 속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은 너무나 뚜렷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인간들로부터 감격적인 응답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이 응답의 대열에 서있는 무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그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What God has done), 무엇을 하고 계시며(What God is doing), 그리고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What God will do)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을 이룬 사람만이 참다운 예배의 정신을 깨달을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응답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다(요한 4:23).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먼저 사람을 부르심으로써 이루어젔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고 표현했다(요일4:10).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실 때 그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예배라는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배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응답은 곧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예배는 바로 그 만남의 장(場)인 것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사역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다.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이 예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과 인간이 동등한 자격으로 만날 수 없으며, 공의로운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추악한 죄인이 설 수가 없다. 인간은 도무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였으나 하나님이 부르시고 만나 주신 것이다.

신앙고백을 같이 하는 무리들 즉 신앙인들과 신앙인들의 만남인 교회가 하나님과 신앙인들이 만나는 만남이 바로 예배이며 신앙공동체로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 예배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때 설레임으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출처근거:주영우 장로님 홈<신학편> 참된 예배의 의미는 무엇인가?中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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