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증 여섯번째 이야기>
예수의 사랑으로 인종차별을 극복할 수 있을까?...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아마도 흑인 다음으로 차별을 받는 인종이 있다면 바로 우리 아시아인들일 것이다.
나는 20여년전 첫 남편의 외할머니와의 일을 겪으면서 인종차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어린 나이에 경험했다.
첫 결혼을 미국사람과 했던 나는 미국에 오자마자 시할머니 댁에 살았다.
시할머니는 나에게 미국 생활에 아직 적응도 안되었을 당시 내 자신이 '나' 가 아닌 단지 '아시아인' 이란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다.
그 당시의 그분의 나이가 85세였는데 그분은 어릴적 부터 집안에 노예를 두고 살았던 가정에서 자랐다.
내가 그분을 처음 대면했을 때 나의 존재가 어떤 사람인가를 가르쳐 주겠다며 얘기해줬던 말이 나는 평생 잊지를 못한다.
그분은 내게 "흑인은 살인하고 도둑질하며, 아시안은 사기치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니 우리 집안은 백인 외에 다른 인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집안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너를 받아준 것에 대해 감사함으로 생각하고 집안일을 열심히 도와야 할 것이다".
대학교 1학년 꽃다운 나이에 어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온 미국에서 처음으로 들었던 말이 " 거짓말 하며 사기칠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고 집안일이나 열심히 도와라" 라는 말은 마치 내게 주어진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분은 그야말로 나를 노예부리듯이 집안일을 시켰고 심지어 내가 해놓은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분이 늘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로 날 때리기까지 했었다....힘없는 노인네가 기운도 없이 휘두르는 폭력이었지만 지팡이로 맞는 아픔보다 차별을 받는 위치에 놓여있다는 마음의 상처가 오히려 더 큰 아픔이었다.
뿐만아니라 92년도 동아일보사에 기자로 입사하기 전까지 모든 이민자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나도 창문 블라인드를 만드는 공장과 건축 공사판에서 노가다를 하며 모두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육신의 고난은 물론 인종에대한 심한 차별대우를 받아본 경험이 있다.
그렇게 시작한 미국생활에서 어느덧 세상이 바뀌어 지금은 흑인이 대통령이 된 이 나라를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남다르다.
모든 이민자들이 그러하듯 나의 나라를 떠나오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몇년전 뉴욕에 출장을 갔다가 타임스퀘어 중앙 제일 꼭때기에 LED의 화려한 빛을내며 자랑스럽게 걸려있던 '삼성' 의 광고를 보면서 할머니의 지팡이와 그 광고가 오버랩 되어 그 자리에 한동안 서서 알수없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지금도 나의 심장을 뜨겁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종족간의 인종차별 이나 개개인의 백그라운드와 행실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차별행위에 대해 매우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중에 하나다.
가끔 뉴스에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노동착취와 차별등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물질 만능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이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는 행위,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 등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내가 실제로 미국에 살면서 겪은 차별대우를 떠올리며 그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이런일을 당한다는 사실이 현실로 느껴지게 되면 매우 분개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직접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소설속에 나오는 얘기정도로 취급하고 삶속에서도 이런 생각 조차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볼 수있다.
마치 불편한 진실은 회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죄성을 보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하나님이 만든 모든 인간들, 그의 백성들에 대한 시선이공평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이것이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고통을 준 '원수를 사랑하라' 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보자.
개인의 원수 뿐만 아니라 나라에 원수진 백성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을 과연 나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가 있는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말할 나위 없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본인을 사랑하라는 말이 얼마나 어색한 말인지를 보면 알 수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만드신 자녀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 조차 인종과 역사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이고, 가진 것이 없는 자, 고통받는 자, 그리고 모든 원수진 자들을 단지 주님의 백성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가져본다.
받아들이기 싫은 불편한 진실이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요나' 선지자의 일을 상기시켜주신다.
히브리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 성 밖에 초막을 짓고 햇볕을 피해 박넝쿨 그늘 아래서 쉬고 있었다.
그런데 벌레 한 마리가 그 박 넝쿨을 못쓰게 만들었고 그는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고 타는 듯한 동풍이 불어와 요나는 기력을 잃고 화나가서 그만 죽기를 자청했다.
얼마나 괴롭고 화가나면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 나는 요나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순간을 이용해 요나에게 주님의 우선순위를 가르치셨다.
큰 물고기의 뱃속에서도 살아난 경험을 한 후에도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대한 선교 사명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니느웨 사람들이 누구던가 그 당시 히브리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면 니느웨 사람들은 일본인 같은 존재다.
하나님을 모르는 잔인한 니느웨 사람들은 히브리 문명을 파괴했고 히브리인들을 포로로 잡아 입에 갈고랑이를 꿰어 잡아갔다.
이런 사람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라니... 히브리인 요나는 그 민족의 절대 원수인 니느웨 사람들에게 선교사로 파송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수치며 모욕이었던 것이다.
니느웨가 40일 후에 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히려 유황 불에라도 떨어져라! 라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솔직히 내가 그당시의 요나였어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통이난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욘 4:10-11)
나는 우리 민족과 원수진 다른 민족에 대한 사랑은 물론 나와 다르게 생긴 인종과 나와의 환경이 다른 처지에 놓인 개인 한 사람에게도 관심을 두고있지 않은데...
요나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가르침에 대해, 과연 나는 불평하지 않고 주님께 순종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성탄을 기념하는 이 귀한 날...
내 자신에게 던져본다....
출처: http://blog.daum.net/yuripak00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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