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그램은 사후체험에 대한 다양한 연구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특히 사후세계를 다녀온 사람들이 전하는 체험사례를 통해,
뇌 의식과 마음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전의 사후체험 연구는 남의 주목을 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비화를
소집하는 것에 그쳤으나 최근의 몇몇 학자들과 의사들은 다른 세계에
다녀왔다는 그들의 주장 뒤에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사후체험자들의 체험담들
(“천장으로 떠오른 다음 터널을 빠져나갔어요.”,
“그러자 아주 평화롭고 빛으로 가득한 세계가 보였어요.”,
“꿈에 그리던 완벽한 일체감과 평화로움이 느껴졌죠.”,
“언어와 텔레파시로 대화도 하고 나무 등 모든 것이 살아있었어요.”,
“소리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햇볕과 아름다운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은 사후체험에 대한 새로운 의학연구를 통해 뇌의 기능이 정지된 후에도
마음이 살아있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를 제시하는 것을 뒷받침 한다.
사후체험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이것을 과연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후체험자들이 허무맹랑하게
지어낸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하지 않은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이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임사체험자들 주변의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고 아끼는 측근이나 친척의 죽음 앞에 모든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해서 민감해져 있고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럴 때에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
그들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좀 더 열리게 되지 않을까?
<사진 설명> 터널을 통과하는 것은 임사체험의 대표적인 체험 중 하나입니다.
영혼의 무게
인간이 다른 그 어떤 피조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영혼(靈魂)을 가진 영적 존재(靈的存在)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기도 하고,
잘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
이는 가장 큰 불행 중의 하나로서, 그 손실 또한 이만 저만 큰 것이 아니다.
인간의 참된 가치(價値)는 영혼의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가에 달려있는데,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얘기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통전적인 존재다.
육체는 영혼을 담는 질그릇과도 같다.
실상 인간의 인간됨을 결정짓는 것은 육체 안에 담긴 영혼인 것이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130:5-7)
참된 ‘나’의 존재는 곧 ‘내 영혼’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육체에 모시지 않고 , 영혼에 모신다.
그래서 영혼은 하나님을 뵙는 지성소(至聖所)인 것이다.
영혼에 항상 밝은 등불을 켜 두고, 어두움이 깃들지 않도록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영혼은 하나님의 숨결인 ‘영’과 ‘인격’을 나타내는 ‘혼’을 하나로 묶어서
한 단어로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본질이 다른 '영'과 '혼'인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5:23에는 가장 명확히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이와같이 인간은 영과 혼과 육체가 결합된 통전적(通全的)인 존재(存在)인 것이다.
영은 하늘에서 온 영적인 것, 즉 하나님적인 어떤 것이다.
인간은 영을 지닌 존재,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창2:7),
영원(永遠)한 것을 꿈꾸고 사모하며, 영원한 것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원한 뜻,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 놓고도 기꺼움으로 행복하다고 고백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혼은 인격 즉 지(知), 정(情), 의(意)를 나타내는 정신적이고 인격적인
그 어떤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알고 느끼고 뜻을 판단하며 사는 인격적인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복잡한 존재라고 하는 이유는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마음의 세계만을 다루려고 해도 끝이 없을 정도인데
영적인 하나님의 세계와도 닿아 있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니 그렇게 쉬울 리가 없는 것이다.
육체가 그 어떤 이유로 부서지고 깨져서
영혼이 더 이상 육체에 머물 수가 없게 되면 육체와 영혼이 분리(分離)된다.
이것을 의학적 판단으로 죽음이라고 한다.
죽음으로서 흙으로 된 육체(肉體)는 소멸(消滅)되어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숨결로 만들어진 영혼(靈魂)은 영원히 불멸(不滅)하여,
하나님 면전(面前)에 서게 된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사후(死後)의 세계는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최대 관심사(關心事) 중의 하나로서,
현세(現世)의 삶을 규정짓는 토대(土臺)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혼의 무게를 달아 보시는 분이시다.
다니엘5장 25-28절에 그 장면이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하루는 벨사살 왕이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손가락이 나와서 벽에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글자를 기록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었는데,
다니엘이 왕 앞에 불려 나가서 꿈을 해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벨사살 왕께서는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主宰)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은,동,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神像)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이처럼 금생뿐만 아니라
내생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정확하게 달아 보시고,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