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메이슨

[스크랩] <로스트 심벌>-2

수호천사1 2012. 2. 14. 17:48

 

<로스트 심벌>-2

  

2탄부터는 <로스트 심벌> 가운데

주요항목 Best 10을 정해 하나씩 소개하겠다.

 

 

1. 보아즈와 야긴

2. 뒤러의 <멜랑콜리아I>

3. 장미십자회

4. 보이지 않는 대학

5. 아이작 뉴턴

6. 앨버트 파이크

7. 슈라이너

8. 동방의 별

9. 워싱턴 국립성당

10. 크립토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소설 읽는데 큰 지장은 없는,

하지만 알고 나면 읽기의 즐거움이 확! 커지는

10가지 핵심단어들이다.

 

 

1. 보아즈 & 야긴

 

'보아즈(Boaz)'와 '야긴(Jachin)'은 소설 속 악당 말라크가 두 다리에 새긴 문신의이름이다. 본문 2장과 71장에 잠깐 나온다. '솔로몬의 성전에 있던 기둥 이름'이라는 옮긴이의 설명이 있음에도 여기에 올린 것은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의 고대신화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솔로몬의 성전 (상상도)

  

솔로몬 성전은 BC 1000년 경, 솔로몬왕이 세운 유대교 성전이다. 유일신 ‘여호와’를 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지었는데, 당시 경제적으로 전성기에 이른 이스라엘이 당대 최고의 기술을 수입해 세운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미국의 과학자인 램버트 돌핀(Lambert Dolphin)의 계산에 따르면 이 성전 건축에 투입된 재료는 금 3,750톤, 은 37,500톤으로, 오늘날의 돈으로 환산하면 약 560억 달러쯤 된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이 성전은 BC 6세기에 들어서 바빌로니아의 침공을 받아 파괴되었고, 유대인들도 대거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 램버트 돌핀 홈페이지 http://ldolphin.org/TMTRS.html 

 

중요한 것은 이 건물이 해외 기술자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훌륭한 건축물을 지을 만한 자재와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인근 페니키아(레바논)지방으로부터 이를 수입해 성전을 짓게 했다. 이 사실은 구약성경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 

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 거할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같이 내게도 그리하소서

...

당신은 금은 동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또 아로새길 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하나를 내게 보내어

내 부친 다윗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비한

나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고 

레바논에서 백향목과 잣나무와 백단목을 내게로 보내소서

...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가로되

...  

내가 이제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부친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역대하 2장 1절~13절) 
 

 

즉, 솔로몬은 이웃 나라 '두로'의 '후람'이라는 왕에게 자재와 기술자를 지원받았던 것이다. 후람은 이미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왕 때부터 친한 이웃이었다. '두로'라는 지명은 '티루스(Tyrus, 현대어로는 티레 Tyre)'를 가리키는 것으로, 시리아와 레바논 일대의 해안지방, 즉 '페니키아'를 뜻한다. 페니키아는 백향목을 비롯한 고급 목재가 풍부하였고, 당시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이집트와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집트의 건축비법을 전수받은 기술자도 많았던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완성된 성전의 규모와 구조에 대해 상세히 묘사하고 있는데, 성전 앞에 세운 기둥에 대한 대목도 있다.

 

전 앞에 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고가 삼십오 규빗이요 각 기둥 꼭대기의 머리가 다섯 규빗이라
성소같이 사슬을 만들어 그 기둥 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만들어 사슬에 달았으며
그 두 기둥을 외소 앞에 세웠으니

좌편에 하나요 우편에 하나라

우편 것은 야긴이라 칭하고

좌편 것은 보아스라 칭하였더라

 

(역대하 3장 15절~17절) 

 

 

  보아즈(좌)와 야긴(우)

이런 모양으로 성전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이 성전을 지은, 두로에서 파견된 기술자는 누구였을까? 성경에는 그의 이름도 적혀 있다. 바로 '히람'이라는 사람이다.

 

솔로몬 왕이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저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니 놋점장이라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이 구비한 자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작을 하니라

(열왕기상 7장 13절~14절)

성경에는 이 정도의 기록만 남아있지만, 프리메이슨에게는 매우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성전 건축가의 이름은 '히람 아비프(Hiram Abiff)'로서, 메이슨 단원들이 자기 선조(先祖)로 삼는 인물이다. 그는 성전건축의 총책임을 맡은 감독이었다. 그런데 7년 공사가 끝나고 성전이 거의 완성될 무렵 3명의 인부들로부터 석공조합과 관련된 비밀을 가르쳐 달라는 위협을 받았다. 하지만 히람은 이를 거부하였고, 결국 그들로부터 암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히람은 죽음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프리메이슨은 자신들이 솔로몬의 성전을 지었던 석공들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기술은 그보다 이전,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짓던 때부터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프리메이슨에게 히람은 바로 그러한 역사와 전통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뉴욕에 있는 프리메이슨 대지부의 스테인드 글라스

좌로부터 솔로몬왕 - 히람 아비프 - 두로왕 후람

프리메이슨 장식물 가운데 이들의 3종 세트를 자주 볼 수 있다.   

 

히람의 전설과 함께 '과부의 아들', '레바논의 백향목' 등도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한다. 

'과부의 아들'은 히람의 출신성분을 설명하는 말이고, '레바논의 백향목(Cedars of Lebanon)'은 성전을 짓기 위해 히람이 싣고 온 목재를 뜻한다. 이 용어들은 프리메이슨 내부의 암호나 하부조직의 이름 등에자주 사용된다.

 

"과부의 아들을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입니까?"

- <로스트 심벌> 1권 p.415  

 

하여간 우리는 보아즈와 야긴을 통해 솔로몬의 성전, 히람 아비프 등 프리메이슨의 핵심 전설을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어디선가 기둥 두 개가 보인다면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게 아닌가 의심해 보시길... 혹시 컴퍼스나 직각자와 같이 있다면... 백프롭니다!!

 

프리메이슨 단원들의 내부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상징물 도표 (1776년)

늠름하게 서 있는 두 기둥은 물론 보아즈와 야긴이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Gray Lodge No.329 내부 모습

왼편 문 앞에 기둥 두 개를 세워놓은 게 보인다.

 

확대해 보면...

 

보아즈와 야긴이다.

프리메이슨 롯지 입구에는 이 두 기둥을 세우게 되어있다.

 

 

2. 뒤러의 <멜랑콜리아>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와 그의 작품 <멜랑콜리아 I>은 <로스트 심벌>에서 암호를 푸는데 결정적인 힌트가 되었다. (책본문 66장, 68장, 70장) 프리메이슨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한다.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1471~1528)

이탈리아에서 꽃피운 르네상스를 알프스 건너 북유럽으로 전파한 인물  

 

 

유명한 그의 사인

AD = 알브레히트 뒤러

  

뒤러의 일반적인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옛날에 올린 '코뿔소 사건' 포스트를 참고하시길... (여기클릭!)

여기서 중요한 건 그의 작품 <멜랑콜리아>이다. 

  

뒤러의 동판화 <멜랑콜리아>, 1514년 작품이다.

 

서양미술사가 노성두님이 옛날에 이런 글을 쓴 걸 본 적이 있다.

 

1990년의 일로 기억한다. 쾰른 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업이었다.

지도교수 요아힘 가우스 교수가 뒤러 판화 <멜렌콜리아 Ⅰ>을 내놓고 이런 말을 했다.

“이 작품은 나의 교수 임용논문 주제였다.

그 당시 나는 작품에 얽힌 모든 수수께끼를 다 해결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십여 년이 지나서 돌이켜 보니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한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러나 나는 내심

도대체 손바닥만한 판화 한 점이 뭐길래,

또 500년 전 뉘른베르크 시골뜨기 화가가

무슨 대단한 예술의 천재를 지녔기에 그토록 대단할까 싶었다.

귀국 후 뒤러 수업을 하다가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근데 말이죠, 뒤러가 정말 그런 것까지 죄다 생각하고 붓을 들었을까요?

현대 미술사학이 너무 과잉해석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질문에 대해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 <건축문화> 2001년 1월호 중에서

 

<멜랑콜리아>는 뒤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통해 평생 100점의 유화, 350점의 목판화, 100점의 동판화, 900점에 이르는 소묘를 남겼는데, <멜랑콜리아>가 그의 판화 가운데 최고걸작이라는데에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면서, 뒤러 연구가들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대단한 골칫덩어리이기도 하다. 도대체 그림 속 인물과 사물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백가지의 이론들이 분분한 가운데 아무도 확실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독일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전설적인 미술사학자 어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특히 뒤러 작품해석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뒤러를 연구하는 모든 사람이 파노프스키의 저서 <알브레히트 뒤러의 생애와 예술> (1943)을 거쳐가야 할 정도라고 하는데... 그는 <멜랑콜리아>를 뒤러의 '정신적 자화상'으로 해석했다.

 

날개달린 여인이 뭔가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있다. 

컴퍼스를 들고 팔꿈치를 기댄 자세로 보아 

어떤 작업중에 잠시 고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앞을 직시하고 있는 강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서양의 고대의학에 따르면 '멜랑콜리(melancholio)'는 '흑담즙질'을 뜻한다. 히포크라테스는 우리나라 '사상의학' 처럼 사람의 체질을 4가지로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흑담즙이 많은 체질은 우울증 성향을 띈다고 설명했다. 성격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우며 늘 일에 매달리다가 깊이 좌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뒤러는 젊어서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파노프스키에 따르면 바로 그러한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작가의 자화상이 바로 이 그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결국, 창조하는 작가의 고뇌를 담은 것이다. 배경에 보이는 사다리는 이 건물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나타내며, 바닥에 널린 건축가의 연장들은 혼돈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창조작업을 뜻한다. 

 

파노프스키 이후 주류학자들의 해석은 거의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전제는 결국, 모든 예술 작품은 작가의 정신세계를 반영한 것이며,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작가가 처했던 상황과 심리상태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화제를 '마방진'으로 돌려보자.

 

작품 속 오른편에 조그맣게 그려진 마방진

가로, 세로, 대각선 어디로 더해도 4숫자의 합이 같다.

 

주류학자들에 따르면 마방진은 수학의 신비로움을 드러내는 의도로 그려졌다고 한다. 벽에 걸린 천칭, 모래시계, 컴퍼스와 막대자 등의 도구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생성 비밀을 측량하려는 예술가의 야심을 돋보이게 하는 소품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대하며 신비주의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앞서 말한 '4체질론'에 따르면 '우울질'인 사람은 측량, 건축, 연금의 신인 토성의 지배를 받고, 그와 반대인 '다혈질'은 목성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따라서 사색에 열중하여 우울질이 높아지면, 토성의 영향을 줄이고 목성을 보강해 기분을 전환해야 한다. 점성술에 따르면 토성은 3방진과 관련이 있고, 목성은 4방진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멜랑콜리'를 보완해 주기 위해 목성을 나타내는 4방진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정말 너무들... '과잉해석' 하는 거 아냐?

 

나는 감히, 둘다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류학자들의 해석은 턱없이 부족하고, 신비주의적인 해석은 턱없이 오버하는 것으로 보인다.

 

뒤러는 신플라톤주의자도 아니었고, 점성술과 연금술에 도통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타고난 천재성과 성실함, 발빠른 현실감각을 무기로 자기직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미술사업가일 뿐이었다. 그는 일기 및 편지, 연구노트 등을 많이 남겨, 다른 어떠한 화가들보다 개인 이력이 잘 정리돼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삶에 대해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다 알고 있는데, 그 어떤 기록에도 그가 점성술이나 연금술에 심취했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프리메이슨 공부를 너무나 열심히 하느라 미술 공부를 게을리했던 댄 브라운은 다음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뒤러는 다른 누구보다도 르네상스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화가 겸 철학자 겸 연금술사였지요.

게다가 평생을 바쳐 고대의 수수께끼에 심취하기도 했고요.

오늘날까지도 뒤러의 작품에 숨겨진 메시지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예요."

 

- <로스트 심벌> 2권, p.5

 

1510년 경, 독일의 마술사이자 점성술사, 연금술사였던 아그리파*가 <신비주의 철학(De Occulta Philosophia)>이라는 3권의 책을 써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책들 속에는 '마방진의 신비'를 비롯한 각종 신비주의 사상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동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았던 뒤러가 이 책을 읽었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아니 책은 안 읽어도 어디선가 들어서라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마방진이니 점성술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세간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무렵이므로...  

* 본명은 하인리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 폰 네테스하임 (Heinrich Cornelius Agrippa von Nettesheim, 1486~1535)

 

나는 뒤러가 마방진을 비롯한 난해한 상징들을 그림 속에 채워 넣은 것은 그것이 '최근의 놀라운 발견들'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잘 팔리게 하려고' 넣은 것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한다.

 

학자들이 공인하는 바대로, 뒤러는 '후원자의 주문을 받고 나서 작품을 만드는 중세적인 장인이 아니라 먼저 작품을 만들어 놓고 시장을 개척한 야심만만한 사업가'*였다. 다시 말해 상품이 될 만한 주제를 정해 미리 판화제작을 해 놓고, 사람들에게 한 점씩 팔았던 것이다. 그가 활동했던 뉘른베르크는 당시 독일 전역을 통틀어 활판인쇄와 판화제작에서 가장 선구적인 기술을 자랑했던 곳이다. 새로운 소식이나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당장 책이나 판화로 찍어냈고 그것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코뿔소 사건' 같은 일이 생겨난 것도 그러한 배경 때문이다. * 신준형, <파노프스키와 뒤러>, (시공아트, 2004), pp.10-11.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지 않은가?

 

뒤러는 이 그림 속에 자신의 철학을 담은 게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수수께끼들을 담은 것이다.

 

 

뒤러의 사업계획은 적중해서 신상품 <멜랑콜리아>는 대박이 난 모양이다.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이 판화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곳곳의 유명 박물관에서 쉽게 구경할 수 있다. 나 혼자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본 결과 현재 <멜랑콜리아>가 소장된 곳들은 대영박물관, 워싱턴 국립박물관, 파리 국립문서보관소,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캐나다 국립박물관, 프랑크푸르트의 Stadel Museum, 스위스 Vevey의 Musee Jenisch, 미국 코넬대학교내 Johnson Museum 등등... 많았다. (뒤러 연구가들은 뭐하나 몰라... 이런 거나 조사해 놓지...)  

 

<멜랑콜리아>에 등장한 돌덩어리

얼핏 보기엔 평범한 듯 하지만 수학적으로 매우 복잡한 도형이라고 한다.

찌그러진 오각형 6개와 정삼각형 2개가 결합된 신기한 8면체!

 

 

<멜랑콜리아>는 분명 신비로운 수학과 마법의 비밀들로 가득찬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이 화가 본인의 철학과 세계관 때문에 그려진 것은 아니다. 뒤러는 이 외에 어떠한 작품에서도 이런 주제를 담아내지 않았다. 당시 대기업이었던 뒤러 공방에서는 이런 부류의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딱 한편을 서비스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런 부류의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혹시, 석공의 후예들 아니었을까?

...

 

뒤러의 <멜랑콜리아>에 담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석공의 지식이 수학과 기하학에 기반하고 있으며, 신의 비밀에 가까워지려는 고뇌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즉, 그 시기에 이미 프리메이슨의 철학과 지식으로 무장된 소비자층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3. 장미십자회

 

'장미십자회(Rosicrucian)'는 수수께끼의 단체이다. 실존하지 않았으면서도 현재까지 조직이 운용되고 있고, 실존하지도 않은 채 대중을 패닉으로 이끌었다. <로스트 심벌>에서는 85장에 등장한다.

 

장미십자회는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수수께끼의 전설에 버금가는 불가사의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초기의 현인들이 가지고 있던 비밀의 지혜가 대대로 전해지면서

가장 총명한 두뇌를 가진 자들만 그 내용을 연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로스트 심벌> 2권, p.105 

  
1614년, 독일에서 <Fama Fraternitatis>이라는 라틴어 제목의 팸플릿이 하나 발표됐다. ‘장미십자회의 발견’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은 책자는 저자를 밝히지 않은 채 C.R.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C.R.은 'Christian Rosencreuz (기독교인 장미십자가)'의 약자로, 책의 본문은 그가 만든 '장미십자회'라는 단체의 유래에 관한 것이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C.R.은 독일 사람인데, 16세 때 성지순례를 떠났다가 여행을 계속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마스쿠스와 이집트, 모로코, 스페인 등지에서 머물며 자연과학과 철학, 그리고 마법을 마스터하게 됐다. 그는 독일에 돌아와 뜻이 맞는 동지들을 모아 자신의 비밀지식을 가르쳐 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장미십자회의 시작이다. 그 멤버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서 비밀리에 활동하다가 1년에 한 번씩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임에 대해서는 100년간 비밀로 하자는 약속도 하였다. 
C.R.은 독일에서 활동하다가 106세에 죽었는데, 그가 묻힌 장소는 비밀로 유지돼 오다가, (책이 발간되기) 얼마 전에 발견됐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120년이 지나서 발견된 그의 시신은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무덤에는 ‘나는 120년이 지난 후 다시 나타날 것이다’라고 써있었다고 한다.)
 
이 책은 발표되자마자 사람들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신비스런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그 속에 독자들에게 장미십자회 가입을 권유하는 도발적인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공개할 수는 없지만, 가입의사가 있는 사람들이 뜻을 밝히고 있으면 결국 자기들에게 전달된다고 하면서, 희망자들의 참여를 유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히트를 치고 나면 2탄이 제작되기 마련!

 

 

이듬해인 1615년, 속편이 나왔다.

역시 저자미상의 작은 팸플릿이었던 이 문서는 <Confessio Fraternitatis>이라는 제목에 '장미십자회에서 유럽의 모든 지성인들에게 밝히는 선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여기에서는 전편보다 심화된 장미십자회의 비밀스러운 지식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밝히고 있었다. C.R.이 여행하면서 보았던 아랍세계에서처럼 앞으로는 비밀스런 지혜를 가진 새로운 사람들이 지도자가 될 것이며, 이 운동에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권의 출판 이후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지식을 얻기 위해 너도나도 가입을 시도했던 것이다. 1614년에서 1622년까지 200여 개의 답신들이 출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가입의사를 표명할 정도였다고 한다. * Christopher McIntosh, <The Rose Cross and the Age of Reason>, 미국 뉴욕, E. J. Brill (1992), p.27

 

그러나 결국 누가 장미십자회에 가입하게 됐는지, 장미십자회는 어디에 있는 단체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2년 간의 사건이 단지 해프닝처럼 여겨지면서, 점차 장미십자회는 실존하지 않는 단체이고 누군가 장난을 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소문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616년, 이번에는 3탄까지 등장했다.

이것은 여러모로 전작들과 크게 달랐는데,  제목부터 <장미십자가의 화학적 결혼식 The Chymical Wedding of C.R.C.>라는 이상한 이름이었고, 그 내용은 기괴한 우화였다. 주인공 장미십자가가 어느 왕과 왕비의 결혼식에 참가해 7일 간의 혼례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 하루하루마다 7단계의 연금술적인 변화가 진행되어 마지막에는 인공 난쟁이가 만들어진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연금술의 변성과정에 대한 설명이었다. 사람들은 김이 확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분명한 메시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연금술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알리려 했던 것이었다.  

 

장미십자회 1,2,3탄 메시지의 영어원본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crcsite.org/library.htm

 

 

   연금술은 단순히 금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사진은 현대의 연금술사 Julien Champagne(1877-1932)의 연구실

 

 

'연금술'하면 흔히 여러가지 금속을 합해 금을 만들거나, 각종 마술 재료들을 섞어 '현자의 돌'을 만들려는 노력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결코 그렇지 않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신비주의적 철학체계였다. 다양한  물질들과 그 합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주와 변화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였고, 궁극에는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추구했다. 연금술은 현대과학이 정립되기 전, 마법과 과학 사이의 어디쯤에서 불타고 있던 최첨단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신에 대한 건방진 도전'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서양사회에서는 신학이 모든 것을 지배하였던 긴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부터 연금술 연구가 시작될 수 있었다. 특히 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론에 혹하여 유럽의 군주들 가운데에는 연금술사를 중용한 경우도 많았는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곁에서 활약한 존 디(John Dee, 1527~1608)나 합스부르크 황제 루돌프 2세 주변의 미하엘 마이에르 (Michael Maier, 1568~1622)등이 유명한 '궁정연금술사'들이었다.

 

미하엘 마이에르가 쓴 <Atalanta fugiens>(1617)라는 책에 그려진 삽화

이 책은 연금술의 역사와 이론을 정리한 유명한 연금술 교본이다.

 

 

 

루돌프 2세는 연금술에 대단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의 존 디(좌)를 불러 강의를 듣는 모습 (1580년대 초)

 

 

연금술이 이처럼 각광받던 시대였으니 장미십자회 사건이 큰 화제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제 조금이라도 '끼'가 보이는 학자들은 전부 장미십자회와 관련됐다고 믿게 되었다. 로버트 플러드*와 아이작 뉴턴은 물론 데카르트, 파스칼,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까지... 모두 장미십자회의 회원이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는 없었다. 장미십자회 자체가 실존하는 조직이 아니었음에랴... * Robert Fludd (1574~1637) : 영국의 저명한 신비주의 철학자, 과학자.

 

더 재미있는 일들도 발생했다. 장미십자회의 허구설이 들끓자 이제는 진짜로, '짝퉁' 장미십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Rosicrucian, Rozenkreuz, Rose Cross, Rosy Cross, Rose-Croix 등, 여러 나라 말의 '장미와 '십자가'라는 단어가 들어간 유사 단체들이 우후죽순 처럼 등장했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네가 진짜 장미십자회라며 우겼다.

 

이러한 유행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독일에서는 18세기 들어 '황금 장미십자회(Gold- und Rosenkreuz)'라는 단체가 등장해 큰 세력을 얻었는데, 이들은 프리메이슨과 같은 시기에 유럽의 엘리트들을 양분했던 중요 비밀계파로 기록된다.

1888년 런던에서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황금여명회(Golden Dawn)'는 그보다 더 유명한 조직이다. 이 단체의 본명은 '황금여명의 헤르메스회(The 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로서, 장미십자회원들이 설립한 분파조직이다. 이들은 1890년대부터 영국 오컬트의 총본산 역할을 하며 신비주의 운동을 주도해 갔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유명한 시인 예이츠(W.B. Yeats) 등이 주요멤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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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화신'이라 일컬어지는 알레이스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

1898년 황금여명회에 가입한 뒤 충격적인 마법들을 선보여 악명높았다.

오지 오스본의 노래 'Mr. Crowley'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가장 큰 장미십자회는 미국의 'AMORC(Ancient Mystical Order Rosae Crucis)'라는 단체로서, 세계적으로 25만 명 정도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호세에 있는 AMORC 본부

이들은 프리메이슨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신비를 자신들이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며,

이집트 건축과 상징들을 중시한다.
홈페이지 : 
http://www.amorc.org

 

 

장미십자회는 프리메이슨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둘은 기본 관심도 비슷했고, 참여하(려)는 사람들 자체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 보다도...

 

장미십자회의 등장으로

'비밀결사'의 개념이 비로소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프리메이슨은 자기네들이 이미 고대부터 존재해 온 단체라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하지만 잘 알려진 바대로 그들은 1717년 6월 24일이 되어서야 세상에 나왔다. (그 날에 대해서는 옛날에 써 놓은 글이 있는데...  여기 클릭! )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는 애기다.

 

물론 그들이 1717년 이전부터 존재하기는 했을 것이다.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이었던 애쉬몰(Elias Ashmole, 1617~1692)의 일기를 보면, 1646년 10월 16일 오후 4시 30분에 랭카셔에 있는 Warrington 지부에서 입단식을 통해 프리메이슨 단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분명히 적혀져 있다. 이것은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가 거론된 최초의 기록으로, 그렇다면 이 단체는 1646년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엘리어스 애쉬몰. 그는 골동품 수집가와 연구가로도 유명한데 

자신의 수집품들을 옥스퍼드대학에 기증해 세계최초의 박물관을 만들기도 하였다. (1667년) 

지금도 옥스퍼드의 박물관은 그의 이름을 따서 애쉬몰리언 박물관이라 불린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나중에 공개된 개인의 기록일 뿐이고, 당시 대중들은 프리메이슨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확실히 17세기에 장미십자회 소동을 겪고 나서야 세상에 존재를 드러냈던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사람들이 비밀결사에 대해 깊은 흥미를 느끼는 걸 보고 커밍아웃하기로 맘먹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유럽 사회는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이제는 과학자들이 모여 비밀스런 단체를 만들 차례가 되었다...

 

2탄은 일단 여기에서 끝!

3탄을 기대해 주세요~      

 

 http://blog.naver.com/kurtnam/150076296019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음모론)
글쓴이 : 등대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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