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교회개혁. 끈질긴 인간의 아집과 싸우는 과정

수호천사1 2012. 2. 14. 11:21

교회개혁. 끈질긴 인간의 아집과 싸우는 과정
삼일교회 소송 대리인을 통해 확인한 소송 취하와 합의 과정

입력 : 2011년 09월 04일 (일) 12:26:52 / 최종편집 : 2011년 09월 05일 (월) 01:42:04 [조회수 : 610] 김문정tbblclip@hanmail.net

범죄고발 소용없는 아집의 질긴 저항

모 커뮤니티에서 상당기간 탁월한 성경교사로 활약하던 사람이 실은 문란한 성행각으로 물의를 빚어 교단에서 퇴출되다시피 하자 필리핀으로 의료선교를 나가 선교사로 행세하며 현지처와 다수의 내연녀, 사생아까지 두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순간. 증언과 증거까지 구비된 마당에 이 사람의 실체를 드러내 더 이상 교회와 세상을 기만하는 행각은 얼마든지 중단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이 밝혀져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순간부터 더욱 능구렁이가 되어 갔다.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간교한 말장난을 부려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이분이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는 왜곡된 확신에 빠지도록 교묘히 유도했다. 그는 지금도 필리핀에서 선교사로 행세한다.

미성년과 여성 성추행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다비타의 집 전 모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죄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는 태양처럼 환하고 뚜렷하게 빛날수록 그와 아내는 더욱 강하게 죄를 부인하며 늪으로 빠져들었다.

전 목사의 아내가 필자에게 신원을 숨기고 보낸 협박문자로 처벌을 받게 되었을 때 나는 그가 재판받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두했었다. 그때 그녀는 대법원 유죄 확정된 남편과 지금 벌금형을 받고 법정에 선 자신의 처지가 모두 필자 때문인 것처럼 화를 냈다. “당신이 뭔데 우리 가정을 이렇게 파괴해!“.

그녀는 오직 영적인 사람만 이 사건이 음해인 것을 알 수 있다며 내부 고발자와 피해자를 싸잡아 싸이코 패스라고 억지를 부리다가 검사에게 몹시 꾸중을 당했고 필자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그녀와 같은 기독교인으로 분류되는 것이 억울한 맘이 생겨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녀와 그 남편 목사는 지금도 자신들이 신천0 이단에 음해를 당했다고 떠들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전병욱 목사 역시 죄가 드러나자 벗은 몸을 감추기 위해 제일 먼저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선수를 쳤다. 황형택 목사도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자 사임을 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물러서는 듯 했지만 실은 반대자들을 척결하고 득의양양 복귀할 기회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 진실이 잠시 고개를 숙이는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의기양양할수는 없다.  바로 그 때,  스스로 덫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 강북제일교회 황형택 목사의 괴로운 표정 (사진: 뉴스엔조이)

 이렇게 진실 앞에 승복하지 못하는 질긴 육의 혈투는 크리스챤 커뮤니티의 성경토론과 논쟁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논리가 부족하고 근거가 없는 주장을 내세우다 허를 찔리면 상대가 영성이 부족하여 자신의 심오한 말 뜻을 알지 못한다며 판을 뒤엎는다. 필자는 해를 거듭할수록 교회개혁은 결국 인간의 구체적 행위가 아닌 그 이면의 아집과 싸우는 것임을 깨닫는다.

대부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증거로 심각한 범죄 행위를 고발하고 폭로하면 그 진실앞에 고개를 숙이고 말 것 같지만 바로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점점 강팍해지고 거짓이 늘어나 그의 실체가 강렬한 빛 앞에 추하게 드러난다. 위험신호를 봐도 감지하지 못하고 확연해지는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말과 변명, 증오와 공격으로 자신을 방어하며 벼랑끝으로 내달린다. 육신의 아집이 질기고 강할수록 그를 겨냥한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이 예리해질 수 밖에 없게 되는 이유다.



한 명의 자매를 통해 먼저 대화 요청

통화가 되는 순간 삼일교회 소송 대리인이었던 정00 변호사는 필자의 별명을 부르며 웃었다. “주검보님. 글 읽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통화로 필자는 그간의 이야기를 비교적 자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극적인 합의에 이르게 되었는지. 소송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비난을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럼에도 왜 디테일한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선동되어 들끓는 무차별적 비난과 돌팔매에 강경하게 맞설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고충들까지.

삼일교회의 소송취하를 알린 필자의 기사가 정정보도된 것에 대한 정 변호사의 생각도 들어봤다. 블로거를 도왔던 모 단체가 내세운 합의 과정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정 변호사가 바로 잡은 내용들은 이렇다.

첫째. 그들은 공지를 통해 ‘처음부터 소취하가 최선이라고 권고했고, 마침 삼일교회와 루크(블러거 지00)님의 중재를 주선하려는 성도들과 만나게 되어 몇 번인가의 만남을 통해 상호 합의에 이르렀으며’ 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이 대목을 이렇게 고쳐 잡았다.

“교회와 지씨의 중재를 주선하는 성도들은 없었고, 그냥 한 명의 자매가 있는데 늘 그 자매를 통해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번에도 그 자매를 통해 대화를 요청해 왔더군요. 일전에도 지씨가 한번 합의를 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어머니께 사과를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거절했습니다.”


사과하고 사과받는 단순한 합의

둘째. 그 단체의 공지는 ‘루크님과 삼일교회가 소 취하를 위하여 조건을 합의하는 과정의 핵심은 루크님 블로그에 게시할 삼일교회에 대한 사과문의 내용’이고, 그 이유는 ‘전병욱 목사 성추행 사건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인정하고, 교회 시스템의 개선 정도는 확인하면서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들의 공지와 지씨의 사과문에는 합의 과정에서 삼일교회가 어떤 제도 개선과 소통 문제 등을 지씨로부터 협상 조건으로 제시받아 이를 실현하기로 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정 변호사의 이야기는 달랐다.

“ 그 과정은 그렇게 교회 시스템의 개선을 논하며 지씨가 교회 측에 협상 조건을 걸거나 건의를 전달하고 교회가 받아들이고 하는 식의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그날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짚어주었는데 지씨는 전부 받아들이면서 그냥 잘못을 인정하는 상황이었는걸요. 사과하고 사과받고. 단순하게 그런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지씨와 상호 협상 조건을 걸고 합의할 이유도 없었고 그럴 성질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


삼일교회에 게시된 보고문으로 최종 판단해야

셋째. 그 단체에서 발표한 공지에 의하면 블로거의 사과문의 수위를 정한 쪽이 그 단체의 운영진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저희 운영진은 아래와 같은 내용이라면 도움을 주신 누리꾼들의 양해를 구하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루크님도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대목 역시 정 변호사는 인정하지 않았다.
“사과문을 우리가 써서 줬고 지씨가 가서 고쳐 왔죠.”

필자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다섯 가지 쟁점 중 세 개만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은 어떻게 된 것인가. 정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쟁점에 대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것이며, 최종적 판단은 자신이 삼일교회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을 통해 내리는 것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 변호사의 주장은 삼일교회의 강 모 목사와 이 모 목사가 뒷받침해주었다. 따라서 지씨의 사과문 내용 중 일부의 의미가 분명치 않아 자의적 해석의 여지가 있었던 것은 사과의 뜻을 밝힌 지씨가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교회 측이 문장의 자구를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느슨하게 수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소여부, 몰랐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넷째. 지씨가 필자의 기사 중 ‘지씨가 법에 의한 처벌과 압박 때문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고 쓴 대목을 정정보도 요청한 것에 대해 정 변호사의 생각을 들어봤다.

“ 글쎄요(웃음). 본인이 검찰의 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사과했다고 주장한다면야 누가 그 속내를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그분이 그때 자신이 처한 위태한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검찰로부터 기소 결정(5.31)을 통보받고 교회의 장로들과 부목사들에게 즉시 기별했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다 알고 있었거든요. ”


강 모 목사, '기소결정 알린 것으로 기억한다'

지씨로부터 연락을 받아 만남을 가졌던(6.1) 강 모 목사는 지씨를 만난 당시 지씨의 기소여부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 내용을 지씨에게 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제가 그 날 만났을 때 기소 결정 되었다고 전했던 것 같은데요. 물론 기억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증거는 없습니다. 그날 두 시간 가까이 얘기를 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기소 결정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그렇게 중요한 내용이 대화중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는게 더 어렵다.


허위사실로 여론전 시도, 위험한 발상

마지막으로 정 변호사는 말했다.
“교회는 전임 목사 사임 이후 빨리 사태를 종결짓고 안정해야 했기에 교회를 믿고 사태수습을 맡겨 달라는 뜻으로 글을 내려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런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그분은 많은 허위사실을 담고 있었음에도 여론에 기대서 교회 측의 법적 대응을 무산시켜 볼 생각이었는지 계속 여론전으로 나가시더군요. 언제든 사과만 하면 소송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게 교회의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여론의 비난에 밀려 멈출 이유가 없는 소송이었습니다. ”

그는 정정보도문이 나온 경위도 읽어보았다며 지씨에 대한 씁쓸함을 내비쳤다. "그분의 글로 참 많은 비난과 험한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법적으로 그분을 어렵게 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런 모습. 많이 안타깝군요."


마지막까지 아집이었는가

필자는 지씨가 전병욱 목사의 사임을 끌어내기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수고한 정의로운 필객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하지 않던가. 사태가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을 그는 용납하려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또한 자신의 주장들을 냉정하게 검토해보지 않고 ‘글을 내려달라’ 는 요청을 단순한 협박으로 받아들인 것이 문제였다. 다른 블로거들이 전 목사의 사임에 만족하며 문제가 될 만한 글을 내리고 서서히 일상의 현실감을 되찾고 있을 때, 지씨만 홀로 끝까지 간다고 기염을 토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필자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는 교회와 합의한 과정을 밝히는 일에 몹시 민감했다. 그가 순수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잘못을 인정한 순간, 내려놓은 사람의 평안을 얻었을 것이다. 진심에 어린 사과이자 화해였다면 그것이 참으로 감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신의 투항을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모든 허물을 덮고도 남았을 투명한 사람의 진정한 순수함과 용기다. 그의 투항은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로서,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건만 어째서 그는 이것을 끝까지 '상호 합의' 나 상호 거래가 이루어진듯한 인상을 주고자 했는지, 그의 지지자들은 왜 이 일을 거들며 매일 횡설수설 말이 바뀌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그와 지지자들은  ' 우리는 결코 백기투항하지 않았으나 그렇게 보이도록 허위사실을 유포한 기자와 매체의 대표들이 중재위에서 정정보도 결정을 받았다. ' 며 항변을 계속하고 있다. 글쎄다. 백기투항했다 한들 누가 비난하겠는가. 전 목사 사임 이후 지씨의 역할은 끝났다. 그리고 필자는 처음부터 사과하도록 권했다. 그런데 교회와 무슨 협상조건을 주고 받은 냥 허울좋게 포장된 글 뒤에 숨어 지내다가 아픈 곳을 건드리자 바로 총구를 겨누고 손해배상금 천만원을 요구한 지씨. 과연 진실하고 정직한 사과였을까?  용서받은 은혜가 용서해주는 은혜로 열매 맺기는 그렇게 어려웠을까?

용기인지 아집인지 반성할 새 없이 충동적으로 달려온 끝.  그리고 지금 그 점을 지적하는 필자의 붓을 꺾고 싶어하는 마음.  다 이해한다. 하지만 내면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모든 것이 환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스스로 매인 아집의 멍에를 끄를 기회가 되지만 반대의 경우, 하나님의 개입을 더욱 예리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중재위에 지씨가 또 제소했다는 전갈을 받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정 변호사와 삼일교회 목사들에게 사실 확인 요청을 했다.  처음 제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도 굳이 삼일교회측에 사실확인을 하려 들지는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확인 요청을 하고 난 다음날,  전날 전해온 소식은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다. 의도치 않았던 삼일교회와의 사실확인은 이루어지고.  이 무슨 우연같지 않은 우연인가. 이래서 나도 하나님이 두렵다.

출처 : † 은 혜 동 산 †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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