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의 삶과 사역
선교사의 일은 어린애 장난이 아니고, 그 일은 항상 힘든 것이다.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고, 특히 식민지 제도가 붕괴되고 있는 이후로는 더욱 그러하다. 식민지 제도는 그 자체의 모든 나쁜 점들에도 불구하고, 그 제도하에서 선교사가 비교적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우산을 제공해 준 것이기도 하다. 기독교 선교 사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며 그 일이 언제나 시도되어 왔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며, 그만한 성공이 수반된 것도 놀라운 것이다. 수많은 실수들이 행해졌다는 것은 전혀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마게도냐인의 부름"을 모든 사람이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가 있다. 이것은 보통 음성, 환상, 꿈, 그리고 다른 신비한 일들과 주장하는 무리가 있다. 이것은 보통 음성, 환상, 꿈, 그리고 다른 신비한 일들을 주장하는 무리가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확한 지식은 그러한 것들을 통해 추구하는 심령의 양심에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확한 지식은 그러한 것들을 통해 추구하는 심령의 양심에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내적 경험이 없이 선교사의 소명을 밭기란 불가능하고 인내를 기다려야만 한다. 또한 다른 극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이므로 어떤 종류의 소명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인데, 후자는 선교지에서 해를 더 많이 끼치고 실패와 좌절감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소명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이 늘 있어야 하리라 본다.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인정은 "주여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만약 주님께서 내가 사역하기를 원하신다면 내게는 순종하는 것외에 다른 도리란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과 성령 충만함과 현지 이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충실히 살아가길 바랜다. 의료 시설이 없는 가운데 선교사는 자신과 가족을 돌보기 위해 많은 것을 할 수가 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경험에 의해 생겨난 것이고, 다른 것들은 상식을 좇은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건강과 체력의 최고조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 선교사는 무기력해지면 안된다. 정신적인 감퇴를 막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있다. 좋은 독서 습관과 세상사에 뒤지지 않고 따라가며, 일간 신문을 구독하고, 창조적인 작문을 하며, 현지 대학에 등록하고 취미를 살리라. 어떻게 독서 자료를 얻는가? 친구들이 책을 주도록 격려하고 도서 클럽에 가입하며, 윤독제도를 조직하고 본국으로부터 책을 주문한다. 선교 기관은 도서 구입에 재정을 마련하고 도서를 대량 구입하고 안식년에 연구 프로그램을 제공하면 된다. 그것이 얼마나 성취되었건 간에 선교사의 지적 생활을 계발되어야만 하고, 선교사와 그의 선교 기관, 모교회조차 그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단호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해외에서 지속적으로 적응하는 사람들은 그들 속에 창조적인 생활을 위한 사원을 가지고 있을 뿐 만 아니라 계속 그들의 정신을 풍부하게 그리고 그들의 영을 새롭게 지켜 주는 데 필요한 것을 하는 사람들이다." 영적 관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해며, 영적 생활과 지적 생활을 둘 다 계발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옆의 사람들로 인해서 쉽게 교회 예배와 성경공부반, 기도회, 주말 수련회, 성가 연습, 세미나, 워크샆, 기독교 방송과 기독교 저널과 선교사 잡지 등을 자동차 안에는 설교와 성가 음악 테이프가 있으며, 모든 세대의 온갖 종류의 기독교 문서가 제한 없이 공급된다. 만약 그가 마음이나 정신이 위축되는 걸 허용한다면, 깊은 문제 속에 빠질 것이다. 영적 생활이 메말라 있느 자는 그곳을 떠나야 한다. 자신의 영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을 궁리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며, 선교지에서도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지식 가운데서 계속 자라야 한다. 영적인 어려움은 생활의 고달픔과 격렬한 영적 전쟁과 프라이버시와 여가의 부족과 그리스도인 교제의 부족이다. 아이들의 행복은 가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고 또한 하나님이 아이들이 99%가 바쁜 학교 생활에서 향수를 극복하고, 즐겁고 건강한 친구 관계에 들어간다는 점이며 부모의 사랑과 하나님께서는 가족을 분리시키지 않고 더 가까이 묶어 주신다. 또한 선교는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다.
선교사간에 마찰하는 문제들을 비판하는 마음인데, 남의 흠을 잡기는 너무나 쉬운 일이며, 상대방의 눈의 티를 보기는 쉽지만 내 눈의 들보는 그리 쉽게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비판하는 마음을 키우게 된다. 때로 비판은 특별한 악의 없이 환담하는 식으로 나타난다. 어떤 때는 시선을 높이고 헐뜬는 식으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든지 이것은 그리스도인 모임의 중요한 요소인 일체감에 치명상을 입힌다. 비방은 스스로 커진다. 그것은 몸 안의 암 같이 퍼져서 결국에는 전체의 조화를 파괴한다. 시기심 또한 비판보다는 파괴력이 더 크고, 시기심은 당사자에게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무서운 상처를 입힌다. 모세가 애굽 여인과 결혼했다고 아론과 미리암이 불평하게 된 것은 시기심 때문이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시지 아니하셨느냐?"고 말했다. 이런 심각성이 죄는 미리암에게서 볼 수 있으며 여호와의 노가 불붙듯이 그녀를 책망하셨다. 돈이 시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선교사는 개인이 후원자가 약속한 만큼만 지급하고, 지원 액수가 떨어지면 그 만큼 덜 받는다. 이런 제도하에 같은 선교 기관에 속하며, 같은 도시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미국인은 영국인보다 수입이 더 많은 경우도 생기게 된다. 이런 차별은 시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육신 적인 생각에서 좌우되지 않는다고 단정하지 말고, 그 사람의 지갑에 손대는 것은 그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이런 점에서 선교사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민감하여야 하고 그의 특이 체질을 알고 그도 당신의 특이 체질을 알게 하여야 하며, 사려 깊게 행동해야 하며, "각각 자가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라" 관심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동료 선교사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예의를 갖추라는 것은 좋은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데, 대인 관계에 유의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여성 해방운동 바람에 모든 조화를 내팽개쳐 버렸다. 약한 자를 동정하며, 여자를 존중하고 노인을 존경하는 옛날 생활방식에 일리가 있다. 예절은 대인 관계라는 복잡한 기계에 있어 기름과도 같아서 마찰을 최소로 줄여 준다. 사람들이 선교사들처럼 붙어 살 때는 그 무리에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예절을 잘 지켜 나가야 한다. 너그러워지리 이기심은 기독교 사역에 설자리가 없고 더군다나 선 교지에서는 더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더 빨리 관계를 악화시킨다.
너그러움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 하사 아들을 주셨다. 예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고 하셨다. 초대 교인들은 모든 물건을 통용하는데 까지 이르렀다. 스탠리 죤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형제에게 더 필요하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그에게 그것을 주어야 한다." 너그러움이란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돈을 연상하지만 그것은 돈 이상의 의미가 있다. 너그러움은 도량과, 자유로운 마음과 자비로운 정신과 관대한 성품을 포함하는 것이다. 함께 십리를 가며, 속옷까지도 주며, 도움의 손을 내밀며, 의무 이상을 행하는 것이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친구를 도우며, 원수를 사랑하며,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며, 바라지 않고 꾸어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러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고 말씀하셨다. 인내하라. 그리고 겸손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겸손히 자기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마음의 거짓된 것과 육신의 연약함을 생존하는 교만을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전심을 다하여 주님의 사랑을 구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기를 구해야 한다.
문화의 신학자로 알려진 폴 틸리히가 말했듯이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며,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면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 없이 종교라는 실체가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항상 언어와 예술, 문학 등 문화를 통해 땅끝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남북의 문화 교류와 복음의 전파가 상관성을 갖는다면, 우선적으로 지금까지의 남북 교류의 과정과 현실을 파악하고 그와 관련된 문제점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문화의 수수께끼의 책 내용처럼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하고, 또한 그들의 언어나 생활 풍습 관습 등이 우리들이 먼저 알아 가야 할 부분이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의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인도 사람들의 문화는 소를 우상 시하고,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더러운 고기로 알고 업신여겼고, 우리 나라는 돼지를 우상시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서로의 다른 부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을 먼저 친구처럼 이웃사촌처럼 사귀고 현지인들과 협력하여서 언어를 익혀야 하며, 그들의 사랑방 손님이 되어서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꼭 내 문화가 최고인 냥 그대로 답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고, 낙후된 나라일수록 천시하는 경향이 많은데,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제 정립하고 우리 스스로를 다시 정검해야 하리라 본다. 선교지에 나가 있는 선교사의 책임은 젊은이들은 행동의 자유가 제한될까 봐 선교회에 들어오기를 주저한다. 그들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일하기를 좋아한다. 소속이 자유를 속방당하는 유일한 길이라면 결혼과 자녀들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소속은 유익과 편리한 것으로 증명되었고, 사역 활동에도 방해가 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선교 사업에 아낌없이 지원 할 것을 약속해야 하고 스스럼없이 우리를 만나 주기 바란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언제나 상담하고, 격려하고, 훈련하고, 우리가 도움이 되는 사역에 동참 할 것이며, 중국의 서양 선교사의 협력 관계는 평등에 기초하고 솔직함과 사랑과 인내로 계획되어야 하며, 모든 단계, 모든 분야에서 그래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엄청나게 커서 "우리 중국인", "우리 서양인" 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복음 사역과 영광을 위하여서 힘써야 하리라 본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확신하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헌신자라면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선교사로 지망했건, 우리 나라에서 목회를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가 받은 소명과 사명을 위해 준비하며 계획해야 한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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