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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계20:1~6의 위치와 다양한 천년왕국설들

수호천사1 2012. 1. 24. 18:54

 

계20:1~6의 위치와 다양한 천년왕국설들

 
김세윤

 (총신대 신대원교수)



 

  I. 계시록 20장 1∼6절의 위치와 다양한 천년왕국설들

 

  계시록 20장 1 ∼6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완성 전에 그리스도께서 천년동안 사단을 묶어가두고 온 세상을 통치하시고, 성도들이 그의 통치에 참여하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을 보통 천년왕국설(millenialism)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천년왕국설은 성경에서 오로지 계시록 20장 1∼6절에만 나타난다. 계시록은 전체적으로, 그 풍부하고 복잡한 구약과 유대교적 배경, 초대교회의 신학적 배경, 그 첫 독자들의 절박한 삶의 정황(Sitz im Leben), 묵시문학의 복잡한 상징들 등 때문에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기에 다양한 해석들을 불러 일으켜왔다. 계시록 전체에서 어느 부분보다 더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곳이 본문 계시록 20장 1∼6절인데, 그것은 바로 그것이 담고 있는 독특한 천년왕국설 때문이었다.

 

  본문의 해석에는 크게 4가지 상이한 견해들이 있다. 그들은 각기 4가지 상이한 종말의 시나리오에 대한 견해들에 기본을 제공하고 있다. 이 4견해들을 보통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premillenialism),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ialism), 후천년설(postmillenialism), 무천년설 (amillenialign)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의 천년 간의 통치 이전에 있을 것으로 보는 "천년기 전 재림설"과 그 이후에 있을 것으로 보는 "천년기 후 재림설'로 대별되곤 전자는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로  분화되고, 후자는 후천년설과 무천년설로 분화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상이한 견해들을 초래하는 근본요인은 계시록의 구조에 대한 상이한 분석이다. "천년기 전 재림설"은 천년왕국설에 결정적인 본문 계시록 20장 1∼6절을 계시록 19장11절에서부터 시작되어 22장 5절에서 끝나는 그리스도의 나라와(19:11∼20:15)와 하나님나라(21:1∼22:5)의 실현에 대한 예언의 일부로 본다. 이와 같은 분석에 의하면 계시록 19장 11 ∼21절이 이미 그리스도의 재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그가 하나님께 적대하는 세력들의 괴수들-'짐승'과 '거짓선지자'-과 그들의 휘하에 있는 왕들을 제거할 것을, 그리고 20장 1 ∼6절은 그가 악의 궁극적 원천인 '용(마귀 /사단) '을 묶어 가두고 천년간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왕노릇 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장 7∼10절과 20장 11∼15절은 각각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 끝에 있을 해금된 사단의 궁극적 제거와 악인들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을, 그리고 22장 1절∼22장 5절은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천년기 후 재림설'은 계시록 전체를 7부분들(1∼3; 4∼7; 8∼11; 12∼14; 15∼16; 17∼19; 20∼22)로 구성된 것으로 분석하고, 이 7부분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초림에서부터 그의 재림 때까지의 교회와 세상을 근본적으로는 되풀이하여, 그러면서도 때로는 점진성을 보이며 그리고 있는 상호병행적인 것들로 본다. 이 분석에 의하면 22장 1절∼22장 5절은 그 7부분들 중 마지막 것으로서,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그의 재림때까지의 구원사를 그리되 사단에 대한 궁극적 극복과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최종적 언어로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분석을 따르면 계시록 20장 1∼6절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기술이고 20장 11절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재림이 기술되며 이어서 일반적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 기술되어 있으며(20:12∼15),하나님 나라의 완성과 그 축복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다(21:1∼22: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천년 간의 통치는 그의 초림 때부터 그의 재림전까지를 말하며, 그의 재림은 이 천년기 이후에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해석가들은 계시록의 구조와 본문 20장 1∼6절의 위치에 대한 근본적 결정에 의하여 위의 두 가지 해석들 중 하나를 자신들의 기본 입장으로 선택하게 되면, 자연히 그 입장에 맞추어 본문 20장 1∼6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위의 두 기본적 입장들 사이에는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본문 20장 1∼6절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 해석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며, '천년기 전 재림설'의 지지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설의 지지자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지지자들로 나뉘고,'천년기 후 재림설'의 지지자들은 후천년설의 지지자들과 무천년설의 지지자들로 나뉜다. 그들은 본문20장 1∼10절의 내용을 신약의 다른 본문들에서의 종말론적 가르침들과 상이하게 연결 시켜 자신들의 견해를 뒷받침하려 한다.

 

  특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지지자들은 신약뿐 아니라 성경을 통틀어 창조에서부터 종말의 하나님 나라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의 구원사에 대한 아주 정교한 시나리오를 구성해냄으로써 그들의 견해를 일반적으로 신학적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게 널리 유포 시켰다. 그러나 성경 해석에 대해 올바로 훈련되고 신학적 이해를 조금이라도 갖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성경해석에 있어서의 자의성과 그들의 견해의 많은 신학적 문제들이 현저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적절히 비판되었다. 그러므로 이 논문에서 우리는 그 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취급하지 않으려 한다.

 

  Ⅱ. 역사적  전천년설

 

   이 설의 한 대표자인 조지 래드(George E Ladd)는 계시록 19장 11절-22장 5절을 이렇게 해석한다. 그리스도가 천군 천사들을 대동하고 재림하여 (19:11∼16), 악의 통치자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유황불 못에 던지고 그들의 추종자들은 모두 죽여 버리고 (19:17∼21), 마지막으로 모든 악의 원천인 '용(마귀 /사단)'을 묶어 '무저갱 '에 1000년 간 감금시켜 무력하게 만든다(20:1∼3). 이렇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그 천년 동안 지상에 그리스도의 '시간내의 통치(temporal kingdom)'가 이루어지고 부활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 되며(20:4∼6), 이 '시간 내의 통치'는 새하늘과 새땅의 '영원한 통치(eternal kingdom)로 이어진다(21:1). 하나님 나라의 이 두 단계들은 각각 부활로 시작되는데, 그리스도의 지상의 천년 왕국 전에 있을 부활은 '첫 부활'(20:5)이고, 이 천년 왕국 끝, 즉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시작 전에 있을 부활은 둘째 부활이다(20:11∼15). '첫 부활'과 그리스도의 지상 천년 통치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세 집단들이다. 첫 집단은 20장 4절에 언급된 "보좌들에 앉아 심판할 권세를 받은 자들"로서 "이제 부활되어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게 되는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이고, 둘째 집단은 20장4절에 언급된 순교자들("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인자들의 영혼들")이다. 셋째 집단은 20장 4절이 언급하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로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살아 있으면서 우상숭배를 배격하며 핍박을 감내하는 자들이다. 이 세 집단들의 성도들이 모두 '살아나서'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한다는 것이다(20:4).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이 천년간의 통치 끝에 그 동안 감금되었던 사단이 해금되어 세상의 민족들( '곡과 마곡')을 동원하여 성도들에 대한 전쟁을 시작하나, 사단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던져진 유황불 못에 던져지고 그의 추종세력들은 하늘의 불로 소멸될 것이다(20:7∼10). 이와 함께 '그 나머지 죽은자들'이 '살아나'는데(2():5∼12), 그때 온 인류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 열리고, 사망과 음부도 궁극적으로 극복된다(20:11∼15). 이것은 곧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이어진다(21:1∼22:5).

 

  이 설의 가장 큰 강점은 20장 5절에 죽은자들의 '부활'이 언급되었다는 것이다(cf L. Morris). 신약성경의 일반적 가르침에 의하면. 죽은자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자들의 부활을 언급하는 본문 20장 1∼6절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그리는 19장 11절에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이 보인다. 이와 같은 구조적 이해가 전제되면 본문 20장 1 ∼6절은 근본적으로 전천년설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천년설의 이 최대 강점에 또 그설의 최대 문제가 있다. 20장 5절의 '부활'은 자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래드에 의하면 모든 죽은 성도들(20:4), 순교자들(20:4),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때 살아 있는 성도들(20:4)이 '살아나는 것'이라 해석하는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우선 그는 비즐리 머레이(G. Beaseley Murray)에 호소하며 20장 4절의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을 20장 4절의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인 자들"과 다른 집단으로 보는데, 정작 비즐리 머레이는 후에 그의 계시록 주석에서 그의 옛 견해를 바꿔 20장 4절을 둘 다 한 집단, 즉 순교자들에 대한 기술로 해석한다.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하는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함을 말하는 13장 15∼18절은 이 새해석이 옳음을 확인한다(Morris) (of also 6:9). 더구나 래드(Ladd )의 해석대로라면 본문 20장4절의 'εζησαν'은 그리스도의 재림 시 이미 죽을 성도들(20:4)과 살아있는 성도들(20:4)의 '살아남'을같이 표현하는 것인데, 살아 있는 성도들의'살아남'이 무슨 뜻일까? 그들이 더욱 영광스런 형상으로 변화 된다는 말인가(of. 고전15:51, 살전 4:16) ? 이런 해석은 바로 잇달아나오는 "그 나머지 죽은자들은 그 천년이 끝날때까지 못 살아났다('εζησαν')"(20:5)에 비추어 아무래도 어색한 해석이다. 20장 5절은 한편 'εζησαν'이 '죽은자들'과 함께 쓰임으로써 바로 앞선 말(20:4)에서도 죽은자들의 '살아남'을 뜻함을 시사하고, 다른 한편 "그 나머지 죽은자들" 이란 표현은 바로 앞선 절에서 저자가 일단의 죽은자들을 취급하였음을 분명히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20장 4절의 보좌들에 앉아 심판하는 자들은 또20장4절의 순교자들과 동일한 집단인가 아니면 다른 집단인가? 비즐리 머레이도 이들은 순교자들이외의 죽은 성도들이라 해석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해야 할 구체적 이유는 대지 못한다. 20장 4절은 분명히 다니엘 7장9∼28절의 성취를 말하는데, 요한이 다니엘 7장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죽은 성도들 전체로 일단 해석하고, 순교자들을 특별히 언급하고자하는지, 아니면 다니엘 7장의 예언의 성취로 보좌에 앉아 심판하게 될 자들이 다름 아닌 순교자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나타내고자 하는지 불분명하다. 다니엘 7장의 전체적 성격과 더 잘 조화를 이루는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령20장4절의 구절해석에서 각각 죽은 일반성도들과 순교자들을 따로 가리킨다고 해석해도, 본문 20장 1 ∼6절에서 전천년설을 읽어내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본문은 그리스도의 재림시 살아 있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래드는 20장 1 ∼6절에서 그리스도가 재림 후 지상에 세울 천년왕국을 그릴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왜 그 구조적으로 중요한 점을 간과해 버렸겠는가? 요한이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때 살아 있는 성도들에 대해서 바울과 같은 생각은 고사하고 다른 어떤 생각도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재림 후의 천년왕국을 그리고 있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그렇다면 본문 20장 1 ∼6절을 19장 11절부터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의 상황에 대한 기술로 보는 구조적 분석이 틀렸는가?

 

  Ⅲ. 천년기 후 재림설 (후천년설과 무천년설)

 

  전천년설의 지지자들의 본문 해석의 근본 문제와 그것이 제기하는 그들의 계시록의 구조에 대한 분석에 대한 위와 같은 회의는 자연히 우리로 하여금 '천년기 후 재림설'에 관심을 갖게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설의 지지자들은 본문 20장 1∼6절을 17장∼20장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그의 재림 때까지의 사건들을 그리는 20장 1∼22장 5절의 첫 부분으로 본다. 그러기에 그들은20장 1∼6절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루어지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20장 11절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때 있을 일반적 부활과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고 본다. 그들은20장 1 ∼3절의 사단의 묶음을 예수 그리스도의세례, 시험, 축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진 사건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이해를 마태복음 12장 28절과 누가복음 11장 20∼22절, 누가복음 10장 17절, 요한복음 12장31절,마태복음 28장 18절 등이 같은 것으로 뒷받침한다.


  1 . 후천년설

 

 그들 중 일부는 '후천년설 '의 지지자들인데, 이들 중 킥(J.M. Kik)이나 쉐퍼드(N.Shepherd) 같은 이들은 20장4절에 언급된 성도들을 지상의 교회로 이해하고, 20장 6절을 현재지상에서 신자들이 만유의 '주'로 군림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삶과 그의 통치에 참여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며, 20장 4절의'보좌들'이나 '심판', 그리고 '왕노릇 함'등을 모두 그림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뵈트너(L.Boettner,)나 워필드(B.B. Warfield)는20장4∼6절을 뒤에 기술할 무천년설의 지지자들과 같이 죽은 성도들의 영혼들이 현재(즉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그의 통치에 참여함을 뜻한다고 본다.

 

  후천년주의자들 가운데 이러한 이견이 있음은 후천년설의 근본 문제점을 잘 시사해 주는 것 같다. 앞서 본 바와 같이 20장4절은 분명히 순교자들, 즉 이미 죽은 자들을 가리키고, 그러기에 20장4절의 'εζησαν'은 그들의 '살아남'을 의미하며,20장5절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살아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킥이나 쉐퍼드의 20장4∼6절의 해석은 명백히 틀린 것이다. 그러나 후천년주의자들이 마태복음28장 18∼20절,16장 18절,13장 31 ∼33절(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 등과 일부 구약의 예언들(예 : 사2:2-4, 11:6-9)에 호소하며 공통으로 표방하는 역사 낙관주의, 즉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그 통치에의 참여로, 다시 말하면 계속 진전하는 복음화와 기독교적 문화변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상징적으로 이해되는) '천년간'의 황금기(즉 죄악과 고난은 점차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축복은 충만해지는 기간)가 지상에 펼쳐지리라는 기대에는 그들의 해석이 더 잘 부합하는 것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20장 4∼6절을 워필드나 뵈트너 식으로 해석하면, 회케마가 적절히 지적하듯이, 지상에서 펼쳐질 미래의'천년'간의 황금기에 대한 어떠한 시사도 본문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후천년설은 20장4∼6절의 그릇된 해석(Kik과 Shepherd)에 의해서는 뒷받침되고, 올바른 해석(Warfield와 Boetoer)에 의해서는 약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늘 것이다. 이것은 후천년설의 근본적 부당성을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2. 무천년설

 

   '무천년설'은 '천년기 후 재림설'의 또 한 종류로서, '후천년설'과 앞서 지적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근본적 차이점은 무천년설이 20장 4∼6절을 죽은 성도들의 영혼들이 하늘에서 현재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후천년설의 일방적 낙관론과는 달리, (상징적으로'천년'이라 지칭된) 이 세대의 끝에 있을 사단의 세력의 궁극적 척결 때(20:7∼10)까지는 한편 확대되는 복음화와 더불어 오는 그리스도의 통치의 축복과 다른 한편 '묶인'사단의 악과 고난이 병존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계시록의 구조 속에서의 본문에 대한 자리매김외에 무천년주의자들과 전천년주의자들을 가르는 본문의 해석상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20장4절의 'εζησαν'이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느냐(전천년설) 아니면 죽은 성도들의 육체는 죽었어도 그들의 '영혼들'이 생명을 얻음을 의미하느냐(무천년설)이다. 우선 20장 5절의 "그 나머지 죽은자들은 그 천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나지('εζησαν') 않았다"와 "이것이 첫 부활이었다"는 전자를 지지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함으로써 얻는 전천년설의 문제점을 우리는 위에서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20장 4절의 'εζησαν'과 20장5절의 '첫 부활'을 꼭 (육체적) 부활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전혀 없는가, 물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있어 회케마의 논증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진 것 같다. 여기 그의 논증을 일부 보완하여 제시한다.   

 

  1) 마가복음 12장 16절(마22:32;눅20:37.)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에게 하나님의 모세에 대한 말씀(출3:6;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다")을 인용하고, "하나님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다"고 대답하신 것으로 보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죽은 조상들의 현재 어떤 형태로든 삶을 누리고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ζαω동사가 죽은 자들에게 적용될 때 꼭(육체적)부활만을 뜻하지 않고, 육체적 부활 전에 성도들이 누리는 상태를 뜻할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2) 계시록 20장 11∼13절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그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그리고 있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자연히 여기의 부활을 20장5절과 연결하여 '그 나머지 죽은 자들', 곧 악인들의 부활로 해석한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에 의하면 천년기 전에 있을 성도들의 부활(2():4)과 천년기 후에 있을 악인들의 부활(20:11∼13)은 천년의 세월로 분리되어 있는데, 요한이 여기 이런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성도들과 악인들이 함께 부활하여 각각 생명과 사망에로 심판 받으리라고 하는 또 하나의 요한문서의 언명(요5:28)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어렵다. 계시록 20장 11∼13절이 악인들만의 부활을 그리고 있다고 보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다. 요한이 계시록 20장 12절에서 심판의 '책들'외에 '또 다른 책, 곧 생명의 책 '이 펼쳐지고 "죽은 자들이 그 책들에 기록된 것들과 자신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았다"고 할 때 여기 '죽은 자들'로 죽은 악인들만을 지칭하려 한다기 보다는, 일부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포함한 모든 '죽은 자들'을 지칭하려 한다고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악인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장 12절의'죽은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도 포함할 것인데, 요한이 그들은 이미 부활한 것으로 20장 4절에서 기술하였다면, 이제 20장 12절에 와서 그들도 계속 '죽은 자들'가운데 헤아린다고 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20장 11 ∼13절은 죽은 성도들과 악인들, 즉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 곧 일반적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장4절의 'εζησαν'은 육체적 부활이 아닌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고, 따라서 20장5절의 '첫 부활'은 문자적의미(즉 종말의 육체적 부활) 아닌 어떤 의미를 띠는 것임에 틀림 없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성도들이 종말의 육체적 부활 이전의 어떤 '삶'의 단계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언어 사용의 가능성도 앞서 인용한, '미래적 종말론'을 말하는 요한복음 5장 28절과 짝을 이루며 '실현된 종말론'을 말하는 유명한 요한복음 5장24절에 의해 뒷받침된다. "아멘, 아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 나의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있다. 그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동했다.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듣는 자들은 살게 될 때가 오고있는데 지금이 그때이다."

 

  3) 계시록 내에서도 6장 9∼11절이 도움이 된다. 20장4절의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인 자들의 영혼들"과 거의 동일하게 지칭된,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한 증거들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6:9)이 주께 세상에 대한 심판을 부르짖음에,"그들 각자에게 횐 옷이 입혀지고, 그들에게 아직도 잠시 동안, 그들 자신이 당한 대로 죽임을 당할 그들과 함께 종 된 자들, 그들의 형제들의 수가 찰 때까지, 쉬라고 말해졌다'는 것이다. 어떤주석가들(예 : R.H.Charles, E.Lohmeyeer, cf.L.Morris)은 여기 '횐옷'을 부활의 옷이라 해석하기도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6장9∼11절은 순교자들의 '영혼들'의 '부활'에 대해서 20장 4∼5절과 완전히 일치하고, 따라서20장4∼5절의 죽은 성도들의 '생명 얻음'과'부활'은 종말의 육체적 부활 이전의 '영혼들'의 '부활'을 의미함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지금 울부짖는 순교자들의'부활'(흰옷 입혀짐)이후에도, 종말에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계속 성도들이 순교하여 정해진 순교자들의 수가 차야 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7장 13절에 비추어 여기 '흰옷'을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로 의롭게 됨을 의미한다고 해석해도(예. G. Beaseley-Murray), 6장 9∼11절은 순교자들의 영혼이 종말의(육체적)부활이전에, 현재, 지상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단계의 삶의 상태( '쉼'의 상태)에 있으며 주님과 말을 주고 받는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6장 9∼11절은 20장 4∼5절이 죽은 성도들의 육체적 부활이 아닌 '부활', 즉 종말의 육체적 부활 이전에 성도들의 '영혼들'이 지상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단계의 '삶'을 얻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20장 4절과 6장 9∼11절이 죽은 성도들의'영혼들'의 생명 얻음을 말함으로써, 이런 '부활'을 전통적인 신학용어인 '영적 부활(spiritual resurrection)' 또는 '영혼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soul) '로 표현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 아님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이로써 우리는 20장 4-6절과 20장 7∼10절의 가장 정확하고 일관된 해석은 무천년설을 지지함을 알게 된다.

 

  Ⅳ. 계시록 20장 1∼3절과 무천년설 그리고 전천년설

 

  그러나 20장 1 ∼3절은 천사가 '무저갱 ', '열쇠 ', '쇠사슬'의 삼중 제어 수단들을 가지고, 사단을 '잡아', '결박하여', "그 천년의 기간이 끝날 때까지 민족들을 더 이상. 미혹하지 못하도록" 무저갱 속으로 '던지고', '열쇠로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는 등 3중 4중으로 감금하였다고 하는데, 후천년설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무천년설도 이 완료적 언어에 합당한가?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루어진 사단의 제어가 이런 완료적 언어로 그려질 만한 것이었다고 보았을 것인가? 물론 요한은 곳곳에 사단에 대해 그리스도가 그의 죽음과부활로 이미 승리를 거두고 하늘의 보좌에 만유의 주로 앉아 계심을 언급한다. 그러나 지금 요한은 온 세상이 사단과 그의 앞잡이들인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미혹아래 있으며 성도들은 그들에 의해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는 너무나도 절실하고 처절한 상황에서 이 글을 쓰고 있지 않는가?

 

  20장 1 ∼6절에서 요한이 지금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 위로하려 하는가? "사단의 세력들이 현재 난리를 피우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그리스도가 그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로 사단을(그림으로 말하면)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봉해버렸다'할 정도로 무력화시켰고, 성도들은 설령 죽임을 당해도 하늘에서 그들의 영혼들이 새로운 삶을 얻어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실현될(육체적) 부활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지복을 누릴 때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그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이다"(무천년설).

 

  아니면, 묵시문학이 가끔 그러듯이, 요한도 하늘에는 이미 실재하는, 그러나 땅위의 우리에게는 미래에 실현될 하나님의 구원을 그리고 있는 것인가? 20장 1∼3절에서 요한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와 사단의 완전한 무력화가 하늘에는 이미 실재하므로, 머지않은 장래에 성도들에게 그 효력을 발생하게 실현될 것임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20장4∼6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요한은 하늘에 벌써 실재하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 래에 실현될,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의 한 단계를 그리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리하여 요한은 지금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확신과 위로를 주려 하고 있지 않는가? (전천년설)

 

  후자가 더욱 타당한 해석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는 계시록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 '에 비추어 20장 1-3절을 보고 이어서 20장 4∼6절을 보면 20장 1∼6절이 전천년설을 더욱 지지하는 듯하고, 20장 4∼6절과 20장 11∼15절의 실제 내용에 대한 자세한 주석은 무천년설을 더욱 지지하는 듯하는 현상들 사이의 난경에 처한 것 같다.

  

  이 난경을 해소하는데 혹 구약과 유대교적배경이나 신약의 다른 부분이 도움을 줄 수 있는가?


   V. 구약과 유대교적 배경

 

  주석가들은 보통 계시록 20∼22장에 기술된 구원사의 드라마가 근본적으로 에스겔 36∼48장의 예언의 패턴을 따르는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의 '부활'(뼈들의 살아남)과 새 다윗의 통치 아래 성지에 회복된(36∼37), 마곡의 반란(38∼39), 새 예루살렘과 새 성전의 축복(40∼48). 그러나 그들 사이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계시록 20장은 메시야의 통치가1000년으로 한정되어 있고, 그 뒤 일반적 부활과 심판이 있을 것으로 말하는 반면, 에스겔 37장 15∼28절은 메시야의 통치가 영원하리라하고 일반적 부활이나 심판은 언급하지 않는다(겔37: 1∼14의 뼈의 '부활'은 계 20:4∼6의'첫 부활'에 해당).

 

  주석가들은 보통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완성될 하나님 나라 이전에 한시적 메시야 통치기간을 설정하는 계시록 20장의 사상은 구약에서부터 유래하는 두 종말론적 경향들의 절충으로 본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로 역사 속에서, 지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그러나 새하늘과 새땅의 사상이 이사야 65장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여 유대 묵시문학에서 점차 하나의 중심 사상이 된다. 이 두 경향들의 절충으로 새 다윗, 즉 메시야의 영광된 통치가 역사 내에서, 지상에 일정 기간 이루어지고, 그 이후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리라는 사상이 신약 전후의 일부 묵시문학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랍비 문서들에는 널리 퍼져있다(cf. Billerbeck, Ⅲ, 824).그래서, 예컨대, 계시록과 동시대에 쓰여진 제4에스라서를 보면, 400년간의 메시야 통치 후, 메시야와 모든 사람들이 죽었다가(7:28), '7일 후'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벌어져(7:30∼33), 악인은 게헨나에 떨어지고 의인은 낙원에서의 삶에 들어가고(7:34∼38), 결국 새 예루살렘이 영광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10:27, 넋∼55). 계시록과 거의 동시대의 작품인 제 2바룩서를 보면, 종말에 하나님의 온 세상에 걸친 심판이 있고(24∼28), 메시야가 와서 잠시 있다가 하늘로 돌아간다(29:3∼30.1). 이때 죽은 의인들의 영혼들은 부활하고, 죽은 악인들의 영혼들은 멸망한디(30:1 ∼5). 예루살렘은 재건되었다가 (32:2),'잠시 후'다시 파괴되고(32:3), 얼마 후 영광스럽게 그리고 영원하도록 재건된다(32:4). 완성의 시대가 오면 메시야가 나타나 온 세상에 걸친 심판을 하고, 세상의 통치자와 그의 세력들 죽이고, 메시야의 백성은 그의 영원한 나라에참여하여(39:7∼40:3) 구원을 얻는다(50:2∼,12:7).

 

  종말의 완성 전의 메시야 통치기간의 길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들이 나타난다. 이사야 63장 4절에 근거하여 365년이라 하기도 하고, 시편 90편 4절에 근거하여 1000년 또는 36,500년이라 하고, 세상 역사에 대한 7일 주간 추상들에 따라 7000년이라고 하거나, 일주간의 창조 사상에 따라 6일( =6000년)의 인류 역사 끝에 하루(=1000년)의 메시야 시대의 인식이 있고, 그 후 8일째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하기도 한다(마지막 사상-cf: 2En.32; Barnabas 15).

  

  물론 메시야의 통치 시대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묵시문서들도 있다. 그것을 언급하는 문서들도, 위의 몇 개의 예들이 보여 주듯이, 그것에 대해 다양한 사상들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일부 묵시문서들과 랍비문서들이 종말을 근본적으로 두 단계들(메시야의 통치와 하나님의 통치)로 나누어 생각하였다는 것이고. 대개 메시야의 통치가 역사 안에서, 지상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계시록 20∼22장이 이 유대교적 전승을 일부 반영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 그러면 계시록 20장1-6절을 볼때, 그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이 유대교적 전승보다 더 강하게 요한의 사상을·결정한 것은 그리스도가 이미 오셔서 사단에 대한 결정적 승리를 거두시고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지금 하늘의 보좌에서 만유의 주로 군림하신다는 신약 교회의 공통적 신앙고백이다. 요한은 이 확신에 의해 유대교적 전승을 교정하고 재해석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20장 1∼6절을 유대교적 전승에만 비추어 전천년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을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유대교적 배경에 대한 고려도 계시록 20장 1∼6절이 전천년설을 나타내느냐 아니면 무천년설을 나타내느냐의 문제 결정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함을 알게 된다. 유대교적 배경도 우리가 앞서 지적한 계시록 20장 1∼6절의 해석상의 불투명점들을 근본적으로 조명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Ⅳ. 신약의 다른 부분들

 

   전천년주의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계시록20장 1∼6절 외에, 가장자주 인용되는 신약의 구절은 고린도 전서 15장22∼26절이다. "22)…아담 안에서 모두가 죽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살려질 것이다. 23) 그러나 각자 자기 차례대로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첫 열매이고, 그 다음으로 그의 재림 때 그리스도에게 속한자들이다. 24) 그리고는 종말,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권력을 멸하셨을 때,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라(통치)를 넘겨드릴 때이다. 25)왜냐하면 그가 모든 원수를 그의 발아래 두었을 때까지 왕노릇해야만하기 때문이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이 본문에서 그리스도의통치가 3단계들로 그려져 있다고 본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 둘째, 그의 재림 때 신자들의 부활. 셋째,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넘겨드릴 때. 그리고 그들은 둘째 단계와 셋째 단계 사이에도, 첫째 단계와 둘째 단계 사이에와 마찬가지로, 상당 기간이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본문의 '그리고는'과 '종말'이 바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악의 세력들을 전멸시키는(24∼25절) 기간을 시사한다고 해석하며, 이 기간을 계시록 20장 1∼6절의 천년기와 동일시한다. 만약 이 해석이 옳다면, 고린도전서 15장 22∼26절은 계시록20장 1∼6절의 전천년주의적 해석을 확인하고, 따라서 전천년설의 타당성을 공고히 할 것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 22∼25절은 무천년주의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인하는 일부 고린도인들에게 부활의 확실성을 강조하면서, 그러나 부활이 두 단계들로 이루어지리라고 말한다. 첫째 '첫 열매'그리스도, '그 다음으로'신자들. 23절의 '각자 자기 차례대로'는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두 단계들로의 부활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지, '그리고는 종말'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왜냐하면 후자는 '자기 차례대로'의 '부활'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24절의 '그리고는'은 23절의 '그 다음으로'와는 달리 시간적 차순보다는 논리적 차순의 뜻을 더 강하게 띤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신자들이 부활한다. '그리고 나면' 또는 '그러면' '종말'이다. 바울은 이 '종말'을 두 οταν절로부연한다. 이 절 들은 시간적 순서를 함축한다. 그리스도가 모든 악의 세력들을 멸하였을 때(즉, 그 후),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통치를 넘겨 드릴때. 이때가 '종말'이다. 그때까지는 그리스도가 통치하게 되어 있는데, 그때를 다시 말하면 모든 원수들을 멸하였을 때(25절)이다. 그런데 멸절되어야 할 '마지막 원수'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신자들이 부활되면, 그리스도가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멸할 셈이고, '마지막 원수'를 멸했으므로 그것은 곧 모든 악의 세력들을 멸한 셈이다(24절).이 때 그리스도가 통치를 하나님께 넘겨드림으로써, 하나님의 통치가 만유 위에 완성되는 것이다(of esp. G. Fee, 1Cor ).

 

  고린도전서 15장 22∼26절까지의 위 두 해석들 가운데 후자가 더 정확한 해석이다. 그것은 23-24절의 구조 분석에서도 드러나지만, 특히 26절에서 바울이 죽음을 극복되어야 할 '마지막 원수'로 밝히는 것을 보면 확인된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 신자들이 부활되어, '마지막 원수' 죽음이 멸절되었는데, 그리스도가그후 천년동안 통치하며 성도들과 함께 심판할 어떤 적대 세력이 남아 있겠는가? 그가 '마지막 원수' 죽음 전에 이미 모든 원수들(24)을 다 멸해 버리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고린도전서 15장 22-26절은 그리스도가 그의 재림 때 '마지막 원수'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원수들(악의 세력들)을 멸해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사단을 무저갱에 감금시킴을 말하는 계시록 20장 1∼3절과는 동일시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사단의 궁극적 멸절과 죽음의 극복을 말하는 계시록20장7∼15절과 비교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24∼25절은 하나님나라의 완성 전의 그리스도의 통치기간이 그리스도의 재림 후 있을 것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재림 사이에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현재 '주'로 군림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of 빌2:9∼11,롬10:9등). 이렇게 고린도전서 15장 22∼26절은 '천년기 후 재림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분명히 죽은 신자들의 상태를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더 높은 단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고후5:8;빌 1:23). 이 사상을 고린도전서 15장22∼26절과 연결시키면, 바울은 무천년설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바울도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종말에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고 한다(고전 6:2). 예수께서는 '열둘'에게 그의 나라에서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들을 심판하게 하겠다고 약속한다(마 19:28, 눅22:29). 그런데 예수도(예:마25:31∼46, 16:27,7:23, 막8:38, 눅9:26, 13:27, 요5:29) 그리고 바울도(고전4:5, 고후5:10) 예수의 재림 때 온 세상에 걸친 심판이 있을 것으로 가르친다. 이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성도들의 세상에 대한심판 사상은 아마 이때 성도들 자신들도 심판을 받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의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에 참여하기도 하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가르침이 전천년설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겠는가?

 

(출처: 목회와 신학)


출처 : 알이랑 코리아 선교회 - 알이랑민족회복운동
글쓴이 : 셈의장막재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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