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간증

[스크랩] 손의정목사 자서전(23) 굿당이 변하여 천국이 되고, 일본에는 한국의 유일신 하나님이 없다

수호천사1 2011. 11. 16. 11:54

  나는 현재 장로교회 합동 측 목사이므로 칼빈주의 입장에서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수면위에 계셨다. 어떤 학자는 안개와 같은 물이라고도 말하고 어떤 학자는 구름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는 커다란 물 덩어리라고 본다. 그 때에는 태양도 없고 별들도 없고 지구도 물론 없었다. 온 세상이 혼돈한 상태로써 깜깜한 암흑 이지만, 세상에는 물이 큰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이 계셨다. 맨 처음 하나님께서는 “빛이 있으라.” 하셨다. 이 빛은 지금의 태양과 같은 유형의 빛이 아니라 무형의 빛이라고 한다. 그리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음(陰)과 양(陽)의 원리로 창조 되었는데,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하는 말씀을 보면 선은 빛이고 악은 어두움이다. 의로움은 빛이고 올바르지 못한 것은 어두움이고, 여기 의(義)롭다고 하는 것은 의(義)인(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이 믿는 사람을 의미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사람은 빛이고, 불신자는 어두움이다. 진실은 빛이고 거짓은 어두움처럼 이 모든 음양의 원리는 양은 빛이고 음은 어두움이다. 이러한 빛과 어두움은 기독교적 학문 용어로는 무형의 빛이라 말 한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영적으로 착하고 선한 영이기도 하는 빛과 같은 천사라고 한다면 어두움의 주관자는 악한 영인 마귀요 사단이다. 여기에서 천사도 두 가지 일을 하는 직분이 다른 천사들이 있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가브리엘을 대장으로 일을 하는 천사들은 그냥 천사들 이라고 하고, 미카엘을 대장으로 일을 하는 천사들은 천군 즉 천사들로 구성된 군병들처럼 싸움을 주로 하는 일을 하는데, 때로는 나쁜 나라의 군인들 성경에서는 앗수르 나라의 군병들 13만 오천 명을 하룻밤에 몰살 시키는 일도 하고, 마지막에는 마귀 사탄과 싸워 결박하여 무저갱에 감금한다고 하는 요한계시록의 천사로 구성된 군인들로 표현하고 있고, 때로는 우리 믿는 택한 성도들을 돕는 일을 하는데, 두 천군 천사가 종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원 얻을 후사들을 도우라고 지음을 받지 아니 하였느냐 이 천사들도 마귀 사단도 모두 다 영물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천사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창세기 18장)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 살고 있을 때 세 사람의 모습으로 길을 가는 나그네가 되어 나타났는데, 한 분은 하나님이셨고, 나머지 두 사람은 천사들 이었는데, 두 천사들은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시키고자 먼저 떠났고, 한 사람 하나님은 남으셔서 아브라함과 이야기를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계획인 소돔과 고모라성이 패괴하여 불로 멸망시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시 소돔성에는 자기 남동생의 아들인 하란의 아들 롯이 아버지가 죽고 큰아버지인 아브라함을 따라 가축을 기르는 일을 하다가 분가하여 소돔성에서 잘 살고 있었다. 처음에는 큰아버지인 아브라함을 따라 에굽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길목에서 서로 사이좋게 목축을 하였으나 가축들이 많아지므로 아브라함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자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 이야기 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니까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아름다운 푸른 초장을 바라보고 자기가 그 좋은 땅에 머물러 살겠다고 선택했고, 큰아버지 아브라함은 아직 가뭄이 많은 가나안땅 마므레로 올라와 살게 되었던 것이다. 소돔성은 지금의 사해바다로 불로 멸망하기 전 이기 때문에 요단강을 끼고 아주 살기 좋은 물이 풍부한 들판 중 하나였다.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이 소돔성에 살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이 되어 하나님께 여쭈었다. 만일 그 성에 의인 오십 명만 있으면 그 성을 멸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래 의인 오십 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은 그 중에 다섯을 감하고 사십 오인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습니까? 결국에는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의인 열 명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조카를 사랑하는 간곡한 질문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조카 롯만은 구원시켜 줄 것을 마음먹고 조카 롯이 소돔 성문 곁에서 천사들을 맞이하여 구원함을 받는데, 그날  밤에 그 소돔성을 떠날 준비를 하고, 동이 트기 전에 천사들은 떠나기를 머뭇거리는 롯의 손목을 이끌고 소돔성을 떠나 소알 성으로 두 딸과 부인을 데리고 떠나는데, 천사들은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고 간절히 말 했지만, 롯의 처는 뒤를 돌아다 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고, 두 딸과 소알성에 도착했을 때 동편에 있는 소돔성에서는 옹기점의 타오르는 연기처럼 연기가 자욱했다. 여기에서처럼 천사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는데, 하나님의 허락으로는 다 할 수 있지만, 마귀 사단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는 곳은 잘 모르겠고,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 하와를 범죄 하도록 만들었고, 믿지 않는 사람들의 죽은 영혼의 목소리나 아니면 다른 흉내는 끝내주게 잘 한다는 것이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생각을 조정할 수 있고, 예수님의 제자 중에 가롯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려는 마음을 주었는데, 그 때 가롯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기도 했다. 때로는 사단이 귀신이 되어 사람에게 들어와 미치게도 하고 귀가 먹기도 하고 벙어리가 되기도 하고 어눌하기도 한 병을 가져다주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할 수 있다. 예수께서 70인들의 전도자들에게 능력과 권능을 주어서 내 보냈는데, 70인이 돌아와 예수님께 고하기를 예수님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 하고 보고하니 그래 사단이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하늘에 너희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고 말씀 하셨다. 여기에서 귀신이 순종하고 나갔는데, 왜 하늘에서 사단이 번개같이 떨어졌을까! 사단은 공중권세를 받은 악령의 수령으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미가엘 천사장과 사단과 싸워 미가엘 천사장이 승리하니 사단은 그의 졸개인 사자들과 함께 결박당하여 무저갱의 지옥으로 감금된 것이다. 사단은 시험하는 자로 만들어 놓으셨다. 어떤 사람들은 왜 사단을 만들어 놓았는가? 사단은 천사장 셋 중에 하나인 가브리엘 문관천사와 미가엘 군대장 무관천사의 우두머리와 그 외에 루시엘 이라고 하는 찬양을 담당하는 천사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 찬양하는 루시엘이 교만하여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견주다가 땅에까지 떨어져 루시퍼라고 하는 빛나는 새벽별이 되었는가? 이러한 발상은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는 어리석은 이단들이나 하는 소리이다. 루시엘이라는 이름도 없고 루시퍼라는 사단도 물론 성경에는 없다. 루시퍼는 영어로 Lucifer=the morning star 아침에 밝게 빛나는 샛별인 새벽별 곧 금성이다. 두로왕을 비유하여 새벽별처럼 그 때 당시에 수많은 나라들과 무역을 하여 돈을 많이 벌어 온갖 빛나는 보석과 금으로 장식을 하고 교만하여 목이 곧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높아졌던 왕일뿐이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았다면 그러한 소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제 일로 먼저 둔다. 이 세상의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단 한 분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신다. 물론 수많은 천사들도 지음을 받았고, 사단도 하나의 악령으로 지음을 받았다. 왜 하필이면 악령으로 지음을 받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대로 악한 일에 쓰기 위해서 만들었다. 왜 사람이 전쟁을 하기 위해서 무기나 원자탄 같은 무서운 것들을 만들어 놓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쓰는가? 때로는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해 전력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데 쓰기위해 좋은 원소가 되기도 하지만, 화약이라든지 무기들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는 나쁜 무기일 수도 있고 그 전쟁을 막기 위해서 방어 차원에서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다. 지금은 방사선을 이용한 인체에 중요한 의학에 필요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악령을 왜 만들었는지는 하나님이 필요해서 만들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 하라는 말씀이 있는데, 창세기에 뱀은 짐승 중에 제일 간교하더라. 라고 하는 뱀에게 사단이 들어가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일을 하게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예정 속에 하나님의 역사 곧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아담이 범죄 하여 하나님께서 불어 넣어주신 생기 또는 바람이라고도 하는 히브리 음으로 루아흐가 영적인 생령이 된 것인데, 영적 존재는 죽고 인간으로 된 것이다. 생령으로는 영원히 죽지 않지만, 사람은 오래되면 죽는다. 마치 비유하자면 닭에서 나온 계란이 있는데, 하나는 생명이 있고 하나의 계란에는 생명이 없다. 겉으로 봐서는 똑 같이 날계란으로 잘 모르겠지만, 생명이 있는 계란은 수탉이 있어 수탉의 씨를 암탉에 넣어서 약 섭씨 3~40도로 21일간 품어주면 수탉이 있는 계란에서는 노란 병아리가 나오지만, 수탉이 없는 계란은 곧 썩어버리게 된 것처럼 사람도 영이 살아있을 때에는 영원히 살 수 있지만, 영이 죽고 없다면 곧 인간 수명 7~80 요즘은 120~130세까지 살수  있다.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은 무두셀라 인데, 969세를 살았고 아담도 930세를 살며 자녀를 낳았었다. 아담의 아들 셋도 910세를 살았고 그 후손들이 거의 900세에서 차츰 800세로 수명이 단축 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아 시대에도 노아가 950세를 살았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수명이 많이 단축되어 130세 전후가 되었고, 모세도 120세까지 살았다. 어디서부터 여기까지 왔는가!  아 사단이라는 정체를 왜 지었는가? 어두움의 주관자 거짓의 지아비 처음부터 범죄 하는 자 유혹하고 시험하고(마태복음 4장 예수님도 성령을 받으신 후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시험에서 말씀으로 승리를 하니까 천사들이 수종을 들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성령을 받게 되면 마귀에게 예수님처럼 시험을 받게 된다는 의미도 된다. 예수님도 세 번 시험을 받으셨는데, 사십일 금식을 하신 후 주려서 배고픈 중에 먹을 것으로 시험을 했고, 예수님은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기록 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승리 하셨다.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리라고 시험 했다. 기록되었으되 천사들을 명하여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도록 하신다는 말씀으로 승리 하셨다. 세 번째로는 높은 산에 세우고 천하만국을 보이며 마귀에게 절을 한다면 이 모든 영광을 준다고 했다.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제 일계명의 다른  신을 두지 말고 제 이 계명인 다른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거기 절하지 말며,섬기지 말라는 출애굽기 20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단아 물러가라 하고, 시험에서 이겼다. 마귀는 물러갔고 천사가 와서 수종을 들었다.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게 되면 물론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되는데, 온갖 시험들이 있다. 어떤 성도에게는 보이지 아니하는 환경적인 시험으로 교회를 못 가게도 하는데,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귀한 자녀들이 꼭 주일날 교회에 가려고 하면 아파서 병원엘 간다든지,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소식도 없이 올라와 전화가 걸려와 여기 터미널인데, 마중 좀 나와라 한다든지 아무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교회에 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서령 교회를 간다고 해도 잠으로 역사를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못 듣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신을 섬겼던 사람들은 다른 때에는 졸지 않던 사람이 교회에만 가면 졸음이 쏟아진다고 한다. 물론 신앙이 좋은 사람도 피곤하면 교회의 목사님 설교소리는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처럼 포근하여 세상 시름 다 잊어버리고 푹 잘 수도 있다. 그래서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도다. 이토록 하나님은 마귀 사단을 지으신 목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종으로 삼고 있지만, 때로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고 되도록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고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아니 하나님께서 공중권세를 마귀에게 주어 믿는 성도들을 시험하게 하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다. 만약에 마귀 사단을 창조하지 않고 어느 이단의 학설처럼 찬양하는 찬양대장 루시엘이 스스로 타락하여 교만하여 하나님과 비기려다 내어 쫓김을 받아 마귀 사단이 되었다면,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욥기서 1장처럼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천사가 범죄 하면 마귀가 된다. 모든 학자들은 이 성경 구절도 <유다서1:6절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한 천사들을 심판 때까지 옥에 가두셨으며,> 이 말씀도 천사의 타락성을 이야기 하는데, 범죄 한 천사는 그대로 천사가 죄를 범했으니 범죄 한 천사이다. 천사가 죄를 지었다고 마귀 사단으로 변형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도 똑 같이 믿는 영혼이나 믿지 않는 영혼이나 영원한 사람이지 귀신이나 천사가 될 수가 없다. 하나님과 사단과의 대화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가 있는가 보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여호와 앞에 섰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사단아! 네가 어디로 부터 왔느냐? 하고 물으니 사단은 네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니다 왔나이다.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네 그가 하나님을 잘 믿고 있더이다. 왜 그렇게 잘 믿는지 아느냐? 예 여호와께서 그의 집에 재물로 산을 두름처럼 많은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잘 믿지요. 했다. 여호와께서는 그렇지 않다. 그만한 순전한 믿음을 가진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고 사단에게 욥의 신앙을 자랑하게 된다. 그 욥에게 각종 시험을 하되 생명만큼은 해하지 말라. 허락이 떨어졌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단은 하늘에서 불도 내려 양떼를 사르기도 하고, 도둑놈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종들을 죽이고 소나 나귀들을 훔쳐 가기도 하고,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져 욥의 열 자녀들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사단의 개인적인 능력으로 본다면 놀라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러한 능력을 사단에게 주어 허락을 하였기 때문이지 사단 스스로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신약에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다. 사단과 하나님의 대화중에서 본다면 주인인 하나님과 종인 사단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천사도 하나님의 종이요 마귀 사단도 하나님의 종으로 천사는 정의로운 일 선한 일에 쓰기 위한 종으로, 마귀는 악한 일들과 나쁜 일을 도맡아 하게 하는 종으로 지음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다 만들었고 악한 사람은 악한 일에 쓰려고 만들어 놓으셨다. 누구를 보면 알 수 있느냐 하면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도 그렇게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기로 예정되었고 지음을 받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다고 하셨다. 히틀러도 600만 명의 유태인의 학살을 도모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태인의 죄 때문이다.(빌라도가 그 피의 죄 값을 누가 받겠느냐? 유태인들이 말하기를 그 피와 그 죄를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릴지어다. 마 27:25)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마귀 사단은 믿는 사람들의 종은 될 수 없지만, 예수 이름으로 명하여 나오라 들어가라 명령을 할 수는 있다. 그리고 믿음으로 싸울 수도 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더러는 마귀 사단이 좋아하는 말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말을 할 때에는 그 사람의 말이 사단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는 말을 했을 때 베드로가 간하여 그리 마옵소서! 하고 만류 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나라 고 하셨다. 그렇다면 진짜로 베드로가 사단인가? 그럴 수는 없다. 예수님의 수제자가 사단이 될 수 없고 사단을 예수님의 제자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단이 베드로에게 들어가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일까? 아니다 가롯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은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때로는 마귀가 틈을 타서 말을 하게도 만들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들어가 믿음을 가지지 못 하도록 할 수도 있다. 더러는 사람 생각 육신의 생각들이 마귀가 좋아하는 생각을 할 때 하나님의 원수가 될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세상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마귀의 종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믿지 않았을 때에는 마귀의 종이었다. 너희가 전에는 마귀의 종이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얻은 은혜라는 것이다.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고 선하고 착해서도 아니다 죄가 없어서도 아니고 죄인 되었던 우리들을 오직 믿음 하나만 보고 의인으로 인을 쳐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믿는 것도 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고 믿기로 작정 곧 예정된 사람만 믿게 된다. 믿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라고 기록 되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는 어쩌면 하나님은 독재자요 이기적인 자라고 말 할 수 있다.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하시고 이 세상에 다른 두 주인은 있을 수 없다. 다른 것은 다 좋으신데,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신즉 우상이나 다른 신을 있을 수도 없고, 심지어는 재물이나 명예나 자녀나 부모나 사람까지도 애인까지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질투를 느끼시고 곧 빼앗아 가거나 나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곧 하나님의 예정하신대로 모든 일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사단도 만드시고 천사도 만들었다. 사람도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를 먼저 만든 다음 홀로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배필로 여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하와라 이름 지었다. 하나님도 사람이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아담의 위에는 하나님이 족보에 오르셨다. 누가복음의 족보에는 아담 위에는 하나님이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첫 아담 한 사람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누가복음에는 예수그리스도를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이라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느냐? 고 물으신다면, 사람처럼 생겼다. 사람은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을 하면 된다. 그래 너 하나님 보았어? 라고 한다면 그래 사람처럼 생겼지? 어떤 사람? 남자 여자? 여기에서 어느 특정한 사람을 닮는 다기 보다. 바로 너 같이 생겼고, 바로 나처럼 생겼지! 어떤 때에는 나그네처럼 생겼고(창 18:) 어떤 때에는 친구처럼 생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거지로도 때로는 아버지처럼 탕자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누가복음 15장 탕자가 나이고 아버지가 곧 하나님이시다.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과 사람의 모양으로 땅으로 내려 오신분이 곧 예수님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죄인과 같이 사람으로 태어 나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립보서 2:) 하나님은 하늘에 계셨다. 우리는 하늘 하면 푸른 하늘 바라보이는 하늘 중에서도 여러 하늘이 있다. 공중하늘은 영어로 sky=푸른 하늘 곧 구름이 떠다니고 비행기가 떠다니는 공중, heaven= 어떤 사전에는 푸른 하늘 또는 천국, paradise=낙원천국 지상낙원 에덴동산, kingdom = 천년왕국의 천국이 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 계셨다고 한 그 천국은 어느 천국을 말 하는 것일까? 하나님이 계신 곳이 곧 천국이다. 라고 한다면 온 우주 공간이 다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시냐 하면 하늘을 보좌 삼고 땅을 발등상 삼고 계신다고 하셨다. 온 우주공간에 꽉 들어찬 분이 곧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대 하시고 광대하시다. 라고 표현 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는 하늘 세계를 먼저 만드셨는데, 영적인 존재들만 먼저 만드신 듯하다. 천사와 마귀들도 만들었지만, 우리 영혼도 함께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성경 욥기서 38장에 보면, 지구의 기초를 놓으실 때, 새벽별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노래를 하였는데,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래서 우리를 만세전에 택하셨다고 하는 말은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택하셨다. 는 말도 된다. 택하셨다고 하는 말은 있는 존재를 택하시고, 없는 존재 즉 앞으로 만들 계획적인 택함도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육신은 흙으로부터 와서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정한 이치이다. 우리가 생각하기를 육신이 참이고 영혼은 죽으면 보이지 아니하는 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 즉 허상으로 생각하는데, 영이 진짜이고 육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다시 말하자면, 내가 자동차를 타고 있다면 차 안에 있는 내가 진실로 귀한 생명이고 자동차는 있다가도 망가져 버리는 물체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자 그 하나님께서 첫째 날은 빛을 만드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였다. 두 번째 날은 하늘 궁창을 만드시는데, 윗물과 아랫물로 나뉘셨다. 여기에서 물과 물의 공간을 궁창이라고 했으니 속에 물과 겉의 물로 나뉘어서 그 사이의 공간을 궁창이라고 불렀다. 세 번째 날에는 그 물 중에 하나인 속에 있는 물에서 땅을 만드셨는데, 뭍이 드러나라 명하여 물속에서 뭍이 들어났다.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셨다. 땅에서는 각종 식물들과 채소들이 나오게 하셨고,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다. 지금도 학자들은 지구는 태양에서 떨어져 나온 하나의 별과 같은 행성이라고 말 하는데, 엄연히 창조의 원리부터가 다른 셋째와 넷째 날로 지구는 물에서 나오게 한 땅이고, 해 달 별들은 그냥 말씀으로 창조 한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낮과 밤이 생겨 난 것이다. 다섯 번째 날 새와 물고기를 만드시고, 여섯 번째 날 각종 짐승들을 만드셨고,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물속에서 올라오게 하여 만든 지구의 한 가운데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이 그 에덴동산에 살게 했다. 하와를 만들어 오시니 여자라 칭했다.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여 사단이 뱀을 통하여 하와를 꼬여서 에덴동산 중앙에 심어 놓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따먹게 했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는 말에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져버리고 불순종의 죄를 짓고 아담에게도 가져다가 먹게 하여 죄를 짓게 만들었다. 그들은 육체로 떨어져 눈이 밝아져서 자기가 벗고 있는 것을 보고 무화가 나무 잎으로 하체를 가리고 나무 뒤에 숨어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내려 오셔서 아담을 부르셨다.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셨다. 가죽옷은 양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양 한 마리가 희생의 제물이 되었는데, 그 양은 곧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고 한다. 그리고 죄 값으로는 아담은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고, 하와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 하셨다. 여기에서 우리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먼저 찾아와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택하여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택하여 믿음을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내가 세상의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죄인들을 믿음 하나 보시고 값없이 구원을 해 주신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아담은 가인과 아벨을 낳았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 가인은 농사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믿음이 없이 드렸고, 아벨은 양을 잡아서 믿음으로 드렸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믿음 없이 드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 형 가인은 시기하여 동생 아벨을 들판에서 돌로 쳐 죽였다. 그리고서 죄 값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돌로 쳐 죽일까봐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오시어서 표를 만들어 주어서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죽음을 면케 해 주셨다. 이 표는 죽음을 면케 하는 표로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구원의 표라고 한다. 노아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여자들과 결혼을 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적인 존재였었는데, 사람의 딸들과 결혼을 하게 됨으로 영이 떠나버리고 육체적인 사람으로 떨어졌고, 그들에게서 자녀들이 나왔는데, 그들은 고대의 유명한 장수들이었다.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 이었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여 다 쓸어버려 죽게 되었고, 하나님은 노아를 택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방주를 짓게 하여 그의 아내와 세 아들 셈 함 야벳과 그들의 아내들 셋 모두 여덟 명과 모든 짐승들을 한 쌍씩 들어가도록 불러 들였고, 정결한 짐승 소 양 비둘기들은 암 수 일곱 쌍씩 방주로 들어가게 했다. 방주로 들어간 여덟 명의 사람들과 짐승들은 모두 구원함을 받았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다 물에 빠져 죽었는데, 여기에서 방주는 몸 된 성전이 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사는 아브람을 택하시고 찾아가셨다. 아브람아 너는 네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고 명하셨을 때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 하지만, 정든 땅을 버리고 유프라테스 강 상류로 올라가 하란 땅에 머물렀다. 아브람은 두 남자 동생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하란이고 또 하나는 나홀 이었다. 아버지 데라는 거기 하란에서 죽고, 동생 하란도 하란 땅에서 롯이란 아들을 하나 낳고 죽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가나안 땅으로 가라 고 명하셨다. 아브람은 나홀 동생을 거기 두고 하란의 아들 롯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떠났다. 그의 나이 일흔 다섯 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밤에 아브람을 불러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며 너의 후손이 별들처럼 반짝거리며 많이 나올 것이라 약속했다.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 찌라 하시니 아브람이 그것을 믿으매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브람이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데, 소와 양은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제물이 되었는데, 비둘기는 배를 가르지 않고, 그냥 드려서 제물이 되지 않고 사체가 되어 하나님은 받지 않고 책망을 하신다. 네 후손이 사대 만에 이방의 나그네가 되어 사백년 동안 종이 되리라. 고 하신다. 그리고 쪼갠 고기 사이로 불길이 임하여 태워 받으시고 쪼개지 않는 새는 받지 않으셨다. 아브람의 아내의 이름은 사래였다. 둘은 아들을 바라고 바랐지만, 아들을 낳지 못해 아브람 나이 팔십 일곱 전 후반에 사래의 청으로 인하여 사래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 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았는데, 오늘날 중동지역의 이슬람권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그리고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이름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사래도 사라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 주셨다. 이윽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이름을 받았고, 사라는 열국의 어미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리고 아브라함 백세가 되던 해 사라가 구십 세가 되던 해에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 이름이 이삭이다. 이삭이 나이 사십 세가 되던 해에 하란에 사는 작은 아버지 나홀의 자녀들 중 오라버니는 라반이고 여동생인 리브가를 아내로 삼는다. 이삭은 리브가 로부터 쌍둥이를 낳았는데, 형은 붉고 털이 많은 에서이고, 동생은 야곱이다. 에서는 사냥을 잘하여 아버지가 좋아했고, 야곱은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잘 하였다. 결국 팥죽 한 그릇으로 사냥에서 돌아와 배가 몹시 고픈 형 에서의 장자 권을 샀다. 장자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친다. 밤에 벧엘 들판에서 돌로 베개를 삼고 잠을 자다가 사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들이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본다. 거기에서 베개를 삼았던 돌을 취하여 세우고 하나님께 약속을 한다. 만약에 자기가 살아서 많은 양떼를 몰고 오는 날이면 그곳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 경배하며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두 딸이 있었는데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었다. 야곱은 언니보다 아우인 라헬을 더 사랑하게 되어 외삼촌께 청을 한다. 내가 칠년 동안 일을 해 줄 터이니 라헬을 아내로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외삼촌은 그렇게 하라고 답을 내렸다. 야곱은 칠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일을 했고 마침내 칠년이 다 가고 아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밤에 신랑이 신부에게 들어가는 것으로 결혼식이 되는데, 깜깜한 밤이어서 누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자기가 사랑했던 라헬이 아니고 언니인 레아였다. 외삼촌께 항의를 했고, 다시 칠일을 수고하면 라헬도 줄 터이니 앞으로 칠년을 더 봉사 하라는 것이었다. 야곱은 아내 둘을 얻으면서 십 사년을 지나왔고 그 가운데서 사랑하는 라헬은 아기가 없자 자기의 여종을 야곱에게 들여보내 아기를 낳게 만들었다. 레아도 자기 여종을 들여보내 아들들을 낳게 만들었고, 오랜 후에 레아의 아들이 들판에서 합환채를 캐어 왔다. 라헬이 그것을 알고 남편을 들여보낼 터이니 합환채를 자기에게 줄 것을 요청하자 하룻밤 남편이 레아에게 들어가 아들 하나를 낳았고 라헬도 그 합환채를 먹고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요셉이었고, 두 번째 아들은 베냐민 이었다. 라반은 야곱에게 삭을 주겠다고 약속하고서는 열 번이나 주지 않았다. 하루는 하나님께서 축복받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양떼가 많이 있는 가운데 자기의 양이라고 하는 양은 모두 얼룩무늬 있는 양떼였다. 꿈을 꾸고서는 아 하나님께서 내게 얼룩무늬 있는 양으로 내게 축복을 주시려나 보다 하고 외삼촌께 청을 했다. “외삼촌! 앞으로는 내 새경으로는 외삼촌의 양 중에서 얼룩무늬 있는 양이 나오거든 모두 내 양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청을 드리니 외삼촌이 가만히 보니 얼룩얼룩한 양이 몇 마리 되지 않아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승낙을 했다. 야곱은 얼룩얼룩한 수양 가운데 약한 양들은 다 없애고 건실한 양들만 남기고 양이 새끼를 가질 시기가 되면 물가에 단풍나무 신풍나무의 껍질을 얼룩얼룩하게 벗겨 만들어 세워 두었다. 거기에서 새끼를 가진 양들은 모두 얼룩얼룩한 양이 많이 태어났다. 그로 인하여 야곱의 양은 날로 늘어나 떼를 이루고 많은 양무리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다. 야곱은 얼룩얼룩한 양을 아들들에게 맡겨 사흘 길쯤 멀리 옮겨서 기르도록 하였다. 야곱은 많은 양무리가 자기의 소유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 하면 외삼촌이나 그들의 아들들이 보면 너무 많아 아무리 얼룩무늬 있는 양으로 품삯을 한다고 약속은 하였지만, 빼앗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민을 하다가 이젠 외삼촌을 떠나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외삼촌은 품삯을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것이다. 야곱은 양떼를 이끌고 자기 고향으로 향했다. 벧엘에 내려가 하나님과 약속한데로 거기서 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마음먹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앞서가던 종들에게서 전달이 왔다. 야곱의 형 에서가 사백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야곱은 세 떼로 나누어 한 떼를 치면 다른 떼는 피할 수 있으리라 고 생각을 하고서 얍복강 가게서 철야기도를 하게 된다.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을 하는데, 새벽까지 천사의 바지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놓아라. 갈 때가 다 되었으니 놓아라. 하여도 야곱은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내가 놓지 않겠습니다. 천사는 야곱의 환도 뼈를 쳤는데도 야곱은 놓지 않았고, 결국에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앞으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 이라 하라. 이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겼다. 는 뜻이었다. 그래서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으로 내려와 어디에 나타 나셨는가에 대하여 성경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다음은 모세에게 호렙산에서 나무 떨기나무 불꽃가운데 나타 나셨다.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신 곳이다. 여기는 거룩한 땅이니 신발을 벗으라.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바로에게 가서 구원해 내라. 나는 갈 수 없습니다. 갈만 한 사람을 보내소서. 나는 입술이 둔 한 사람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너로 하여금 신이 되게 하고,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같이 가라.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 사막으로 향한다. 그 이듬해인 정월 초하룻날 성막을 세우게 하고 하나님은 성막에 계시면서 모세를 만나 백성에게 지시할 말을 전한다. 시내산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을 하며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서 가지고 내려오니 아론과 백성들과 장로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소리를 지르며 아우성을 쳤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와 어떻게 하면 죄인 되었던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였으면서도 믿지 않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여 살렸고, 말라버린 아론의 살구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아 싹이 나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서 그 두 돌판의 십계명과 만나의 항아리와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를 궤에 넣어 언약궤라 이름 하여 성막 맨 앞쪽에 두었고, 거기 계셨다. 다음은 다윗 시대에는 언약궤를 메고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다가 다윗 성으로 옮겨 다윗은 제사를 지낼 때 마다 288명의 찬양대원을 대동하여 각종 악기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했다. 그러나 성전을 지으려 했지만,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보았으므로 성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넷째 아들인 죄를 범하여 얻은 밧세바의 소생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모든 내부 장식은 금으로 꾸몄다. 열두지파 가운데 한 지파씩 매월 돌아가며 각종음식을 만들게 하여 날마다 잔치를 했다. 이 성전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에게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세우리라 하시니 곧 몸 된 성전인 예수를 죽이면 사흘 만에 부활 할 것을 말하는데, 사십 육년 동안 돌로 지은 성전을 말하는 줄 아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을 찾아 오셔서 우리와 가까이 있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의 모델로 율법을 주어 하나님을 알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아니하고 신령한 집 신령한 성전 신령한 교회 곧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람이 지은 건물은 세월이 가면 다 허물어 져 가는 것이지만, 마음속의 있는 신령한 교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들과 같이 있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땅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그것을 성자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시면서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그 말씀대로 성령하나님께서 오신 것이다. 그 성령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좌정하고 계신다. 성령하나님은 신약시대에만 계신분이 아니시고 구약 시대에도 계셨다. 물론 아담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영 성령 생기 바람 히브리어로 루아흐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었다. 죄로 말미암아 그 성령께서 떠나버리니 영이 죽고 육체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신정 정치를 하던 사사기에 하나님의 신이 사사들에게 크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셨고, 사울 왕을 세울 때 사울 왕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함께 했다. 다음 왕인 다윗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셨고, 모든 선지자들과 왕들과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함께 했다. 그리고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 외에도 하나님의신이 함께 한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성전 각종 기구들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지혜의 신 재능의 신이신 성령이 함께 하셨다. 그래서 신약시대에는 믿음을 가진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시는데 구약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 선지자의 직분 자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지혜로운 예술가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15세기 전 후로 그 시대를 르네상스 시대라 부르고 문학과 예술이 아주 많이 발달한 시대이었다. 미술 조각으로는 베드로성당 천정벽화 천지창조의 미켈란젤로를 들 수 있고, 음악가로서는 할렐루야를 작곡한 헨델을 들 수 있다. 그들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작품으로 참으로 놀랍다. 그들 모두가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지혜의 신 모략의 신 재능의 신이신 성령의 충만함으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삼양동 가난한 골짜기가 재개발이 되어 벽산아파트와 sk 아파트가 들어서고, 새로 이사 간 교회에는 최 집사님 전 집사님이 따라왔고, 장로님과 권사님도 다른 교회에서 오셨다. 집은 미아2동 빈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집 주인이 노름을 하여 집이 경매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집에서 350만원을 받지 못하고 나오게 되었다. 그 뒷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너무 오래된 집이라서 부엌이고 방이고 쥐들이 들끓었지만, 그래도 주인이 좋아서 한 오년을 살았다. 집주인이 건물을 새로 짓는다며 비워 달라고 하기에 방 값이 너무 비싸고 이사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 빌라 지하라도 한 칸 장만하여 이사를 가기로 하고 찾아보니 사일구 탑 근처에 빌라 반 지하 방이 오천 만원인데, 제법 살기에 좋을 것 같았다. 이천 만원을 더 주면 이층으로 살 수 있었지만, 빚을 지게 되면 집사람은 가끔 아프지 나는 돈을 못 벌지 교회는 늘 개척교회지 언제 우리의 생활은 빚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지 몰라 차라리 돈에 맞추어 사자고 하여 반 지하 방으로 샀다. 처음에는 앞집이 단층이어서 햇빛이 조금 들어왔는데, 건물을 허물고 새로 빌라를 짓느라 5층을 올려서 지으니 햇빛이 하루 종일 들어오지 않아 빨래를 널기 위해서는 늘 옥상으로 5층까지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그래도 쥐도 없고 너무 살기 편했다. 어느 날 도로를 포장공사하면서 우리 빌라의 앞에도 포장을 해 준다기에 허락을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반 지하의 벽면으로 물이 새어들었다. 비만 오면 물을 퍼내야만 했고, 집사람은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밤이고 낮이고 이런 집을 샀다며 온갖 스트레스를 나에게 화풀이 했다. 거기에서도 5년을 살고 아이들이 크니까 지하방을 탈출하고 싶어 했다. 마누라도 늘 햇볕이 그립다며 날마다 햇빛, 햇빛 좀 많이 비치는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아우성이었다. 그 집을 얼마 손해를 보고라도 팔았다. 그리고 집을 얻어야 하는데 좀 더 교통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원해서 오랜만에 전세를 얻으러 가서보니 전세 값이 너무 많이 올라 우리 집을 판돈으로는 그만한 방 하나 얻지 못하게 되었다. 부동산 아저씨와 이곳저곳 아무리 돌아 다녀도 맘에 드는 집이 없었다. 집을 얻으러 다니면 왜 그렇게 다리가 아픈지 너무 힘들었다. 물론 기도를 많이 했지만,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하루가 지나가면 방을 비워줘야 할 날짜도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부동산 아저씨와 마지막 집을 보고 실망에 찬 마음으로 돌아오는데, 집은 아니고 살 수 있는 건물이 하나 있긴 하는데,,, 하고 뒷말을 흐리고 말았다. 어떤 건물인데요? 하고 묻자 4층인데 한번 가서 보기나 합시다. 하고 데리고 간곳은 교통도 좋고 주차장도 넓은 4층 건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곳은 완전 절간도 아니고 온갖 울긋불긋 신당들로 꾸며진 안방과 커다란 거실에서는 향불을 피우는 냄새가 자욱하고 한 여인이 나오는데 무당이었다. 부동산 아저씨가 나를 보며 말한다. 이런 집에서 살 수 없잖아요? 나는 이곳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집이라 금방 생각이 들었다. 오케바리 내가 우상을 때려 부수고 귀신을 내어 쫓고 하는 데는 도사인데, 이렇게 넓고 싼 집을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전세 값이 너무 올라 그런 집은 최소 일억은 갈 것인데 벌써 집을 내어 놓은 지가 3년이 되었는데도 귀신 나온다고 아무도 그 집을 들어가려고 하지 않아서 나가지를 않았다는 집이었다. 그런데 전세 7 천만 원이었다. 나는 집사람을 데리고 가서 방을 계약을 하려고 하니 집사람은 돈이 6천 5백만 만원밖에 없다고 하면서 주인에게 전화를 해 보라는 것이었다. 부동산 아저씨가 전화를 해 보더니 그렇게라도 해 준다는 것이었다. 계약을 하고 이제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집이 있으니 어떻겠느냐고 물어봐야 했다. 아이들도 신앙이 내게서 배운 것이라 그러한 우상들은 모두 허탄한 것 들이라고 수없이 설교를 해 왔기 때문에 차를 타고 달려와서 핸드폰 카메라로 그 우상들을 찍으며 이것 오랫동안 보관 해 놓겠다고 하면서 주차장이 맘에 든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시일이 너무 짧아 일주일에는 비우지 못 할 것 같았다. 집 주인께서 돈이 좀 여유가 있어서 먼저 그 집을 이사 가도록 해서 나흘 만에 집을 비워줘서 이틀 동안 도배를 하고 장판도 새로 깔고 집 청소를 하고도 하루의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다른 목사님들도 아이고 그런 집은 꿈자리가 사나울 텐데 괜찮아요? 그러면 나는 아이구 주님이 예비하신 집인데 잠만 잘 자고 거기가 바로 천국이던데요. 하면서 이야기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그런 집에서 살까 하는 염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햇빛이 아침 동이 트자마자 들어오고 해가 지도록 방안에서 썬텐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 그렇게 햇볕 잘 드는 곳을 원했는데, 이젠 너무 햇볕이 많이 들어서 방에 앉아있어도 얼굴이 시커멓게 타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곳을 주셨는지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어느 날 둘째가 악몽을 꾸었다며, “ 아버지 나 나무로 십자가 하나 만들어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무 십자가 하나를 길이가60cm 옆으로 30cm로 만들어 주었더니 자기의 침대위에 걸어놓고 두 번 다시 악몽을 꾸지 않았다고 한다. 지하에서 5년을 있었는데, 좋은 분재와 여러 가지 나무들을 다 죽이고 밖에 내 놓아 가져가기도 하고 이곳은 햇빛이 잘 들어 난이며 여러 가지 화분들이 너무 잘 자란다. 장마철에는 옷에 곰팡이가 더러는 끼었는데, 이곳에서는 방에서도 아침저녁이면 방구석까지 햇볕이 들어 자연건조가 가능하고 날마다 이불까지도 자연채광을 받을 수 있다. 아침부터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밝은 미소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일을 하는데 여름날엔 조금 늦게 일어나면 아침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 잠을 이룰 수 없다. 햇빛이 이렇게 좋은 줄은 나는 미처 몰랐다. 옥상에는 수세미가 주렁주렁 조랑박도 주렁주렁 열렸고, 온갖 화초가 만발하여 조그마한 공원을 연상케 한다. 조랑박이 많이 열려 따다가 작품을 만들어 보았다.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박을 타던 것처럼 우선 잘 익어야 한다. 바늘로 찔러보아 깊이 들어가지 않아야 아주 잘 익은 박이 된 것이다. 박을 타는데 우선 어떻게 탈 것인지를 싸인펜으로 금을 그어야 한다. 그리고 가는 톱으로 잘 타야 한다.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제비가 박씨를 하나 물어다 주어 심었더니 커다란 박이 여러 개 열려 그 박을 갈랐더니 온갖 금은보화가 나왔던 그 기분으로 나도 박을 탔다. 예술적인 작품이기 때문에 되도록 줄기를 한 뼘 정도를 남겨 줄기까지 반으로 나뉘었다. 그 줄기로 고다리를 만들어 걸어놓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둥그렇게 들어있는 박속만 들어내고 솥에 넣고 삶는다. 잘 익은 박속은 하얀 부분이 없어지고 투명하게 된다. 그 박속의 연한 부분들을 수저로 긁어내어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 우리 어릴 때에는 생된장을 넣고 풋고추 썰어놓고 마늘과 깨소금 사카린을 넣었는데, 나도 똑 같이 만들어 먹었는데, 맛이 옛 맛이 아니다. 박속의 향기도 옛 그 향기를 맡을 수 없다. 다음은 그 박의 겉 표피를 수저로 긁어내야 한다. 칼로도 긁어 낼 수 있지만 겉 표면도 보기에 좋아야 하기 때문에 칼로 긁다가 더러는 표피에 상처를 주어 자국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단단 하지만 얇은 수저로 긁어내는 것이 좋다. 고다리는 마디가 하나 있으면 박 덤불손도 두어 개 있는 것도 그대로 두고 말린다. 잘 말린 박은 하얀 피부가 되어 나의 붓을 기다린다. 난을 친다든지 대나무도 그리고 소나무도 그리고 그 오른쪽 옆엔 붓펜으로 글씨를 써 넣는다. 主恩平康이라 좀 크게 쓰고, 그 옆으로 生命이 있는 限 希望이 있다!! 그리고 그림 왼쪽 하단에 내 호를 義正이라 적는다. 그림과 글을 다 써 넣었으면 이번에는 겉 표면에만 투명한 낙카칠을 해야 한다. 집에 오는 손들에게 맘에 드는 것으로 하나씩 가져가게 하는 것도 좋다. 나는 붓펜으로 글씨를 많이 써 왔다. 처음에는 큰 붓으로 큰 글씨를 쓰다가 작은 붓으로 여러 편지를 쓰면서 붓펜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후리펜이라고 좀 가늘게 나오는 펜도 있었는데, 붓펜이 나오니 너무 좋았다. 어느 누군가가 붓 만년필을 개발하여 먹물을 만년필처럼 넣어서 붓끝으로 나오게 하는 방식인데 이름도 없고 어느 발명가가 만들었는지 나는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대부분 큰 붓글씨를 연습하려면 신문지위에 쓰는데 먹을 갈지 않고 먹물을 사다가 썼다. 신문도 없어 쓴 위에 또 쓰고 마르면 그 위에 또 쓴다. 붓펜도 역시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붓펜글씨를 잘 쓰려면 붓펜을 가까이에 늘 놓아야 한다. 그리고 늘 낙서처럼 글씨를 써야 한다. 난 낙서를 잘 한다. 달력을 다 쓰면 떼어 버리지 않고, 그 앞에도 뒤에도 난을 치고 대나무를 그린다. 그리고 글을 쓴다. 글씨란 개성이다. 글씨도 예술이다. 글씨는 자기 자신이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다 글씨로 나타난다. 어떤 때에는 비틀 하게도 나타나고 어떤 때에는 가늘게도 나타나고 어떤 때에는 투박하게도 서투르게도 나타난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낙서도 아니고 연습도 아니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처럼 넘어지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안장이 닿는 밑이 아프기도 하지만 배우고 나면 편하게 타고 다니는 것처럼 글씨도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실망도 되고 좌절도 된다. 음악을 하는 사람도 악기 하나를 연주할 때 수천수만 번을 연습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연습했던 모든 기술들이 다 무뎌지는 것처럼 글씨도 그렇게 늘 쓰지 않으면 늘지도 않을뿐더러 무디어진다. 나는 어느 서예를 하는 여인을 보았는데, 너무 신경을 쓰며 몰두를 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더러는 입선도 하고 특선도 하였다. 몸은 쇠약해지고 병이 들 정도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정말 나도 놀랄 정도로 어떤 스승 밑에서 배우는 그 글씨들은 한석봉이인지 아니면 추사 김정희의 글씨인지 너무 많이 닮아 수제자처럼 글씨를 잘 그려 냈다. 그러나 아까 내가 글씨는 개성이다. 라고 했던 것처럼 그 수많은 제자들 중에 똑 같이 가르쳤는데 글씨체는 같을지 몰라도 글자의 모양은 조금씩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머리 부분은 너무 힘 있게 잘 썼는데, 다리 부분이 끝이 좀 부실하다고 할까 아니면 미인의 다리처럼 쭉 뻗어주지를 못 했다든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게 생각 되어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예술성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은 수많은 글씨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그 글씨들을 모아 특허까지 내어 돈벌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글에도 정자가 있고, 한문에도 정자가 있듯이 고딕체면 고딕체의 정자, 궁서체면 궁서체대로의 정자, 휘날리게 쓰는 물 흐르듯이 흘려 써내려가는 흘림체나, 초서도 또한 빨리 쓰는 글씨체로 예술성이 있는 것이다. 한문의 초서에서는 보통사람들은 알아보기도 힘든 아니 도저히 어떤 글씨인지 모르는 초서체들이 많다. 전문가들이나 그분의 제자들은 무슨 글씨다. 라고 배우고 익혀왔기 때문에 그렇게 쓰고 알아보는 것이다. 그보다 좀 더 빨리 쓸 수 있는 글씨체는 반자체가 있다. 너무 획수가 많고 반절만 써도 알아볼 수 있는 글씨다. 한문에도 정자나 반자를 쓰면서도 남들이 알아볼 수 있는 흘림체가 있다. 꼭 초서가 아니더라도 흘림체는 좀 더 빨리 쓰면서도 예술성이 있는 글씨가 될 수 있다. 나는 우리 아들 결혼을 하는데 함을 보내고 혼서지를 보내는데 내가 직접 써서 보냈다. 맨 뒤쪽에 대나무 그림도 하나 그려 넣었다. 한문과 한글을 섞어서 현대식으로 창호지가 아닌 일반 매끄러운 종이에 우리는 기독교집안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실 것을 넣고 성경책을 넣어 보낸다고 적고 혼인예물로는 성경책도 한권 사서 보석들처럼 금색 종이포장지에 쌓아 넣었다. 이것이 기독교식 혼서지요 예물인 것을 써 본 것이다. 그것을 본 처형이 우리도 그렇게 써 달라고 하여 거기도 기독교 집안이기 때문에 이름들만 다르게 썼지 형식은 다 똑같이 쓰고 역시 성경책도 예단 예물과 함께 금박 보자기에 쌓아 보냈다고 한다. 아이들 이름도 내가 작명을 한다. 우선 부르기 좋은 이름들을 여러 개 가족들이나 부모의 친구들에게 모집을 한다. 기독교집안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든지 성경적인 이름이라든지 복음적인 찬송가적인 이름들을 여러 개를 준비하여 아기의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로 하여금 고르도록 한다. 한문은 나중에 뜻도 좋고 쓰기도 좋고 늘 알기 쉬운 글씨면 더 좋고 동양철학에서는 공자의 유교의 경전인 사서삼경 중에 시경 서경 역경이 있는데, 그중에 역경은 사주라는 인간에 대한 철학이 있다. 그 사람이 태어나는 해(年) 월(月) 일(日) 시(時) 가 있고 음양오행 이라는 이름에 대한 여러 가지 좋고 나쁜 이름의 한자의 획을 중요시 하는데, 이것을 성명철학이라 말 한다. 성명 곧 이름에 대한 성경적 해석이라든지 외국의 영어권 이름이나 기타 한문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이름은 획수도 있는 것도 아닌데 좋은 이름이 있고 더러는 그렇지 않는 이름이 있다. 우선 성격적으로 이름 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본 이름은 아브람 이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원 이름은 사래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부르도록 해 주셨고, 사래도 사라라고 이름을 고쳐 주셨다. 아브람이나 사래라는 이름이 왜 좋지 않아서 아브라함이나 사라라고 고쳐 주셨는지는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이 있고, 사라도 열국의 어미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사래라고 하는 이름은 생산을 하지 못하는 이름이고 사라라고 하는 이름은 생산을 할 수 있는 이름이다. 우리 한글로도 보자면 사래는 이름이 막히는 것 같은 이름이고 사라는 뒤에 이 가 없어 터진 것 같은 이름이라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이름을 보자. 야곱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하나님을 믿지만 늘 속이고 사는 이름이었다. 어머니의 태중에서부터 형과 다투었다. 두 국민으로 나누어지리라는 말씀처럼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서로 싸우면서 서로 뭐라고 싸웠을까? 서로가 내가 형이라 먼저 나가겠다는 싸움이 아닐까! 어머니가 출산을 하려고 하는데 손이 하나가 맨 먼저 나왔다. 그런데 나중에 나와야 할 동생이 형 뒤에서 손을 먼저 내어 민 것이다. 마치 빙판위의 쑈트랙 경기에서 어느 외국선수와 한국여자선수가 똑 같이 들어오는데 결승선에서 한쪽 발을 앞으로 죽 내밀어 일등을 한 것처럼 내가 형이 될 거야 하면서 손을 먼저 내밀은 그 동생 야곱!! 결국에는 배가 몹시 고픈 형의 장자의 직분을 팥죽 한 그릇으로 사고 말았다. 아버지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하여 형의 모습으로 목과 손목에 털을 붙여 형 에서처럼 분장을 하고,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채 외삼촌 집으로 도망을 친 야곱! 하나님의 심는 데로 거두리라는 말씀처럼 그는 외삼촌에게 열 번이나 속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외삼촌도 속인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속이고 속고 야비하다. 라는 이름이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는 승리의 이름으로 하나님께서 지어준 이름이다. 신약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어준 이름이 있는데, 시몬이라는 이름을 게바 또는 베드로라 부르도록 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이름으로 주님께서 불러주셨고, 바울의 본명은 사울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인물에 대해서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세례요한도 엘리사벳 으로부터 낳기 전에 제사장 마누아로부터 요한이라는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아기를 낳으매 벙어리가 되어 말은 못하고 가문의 이름자로 하지 않고 서판에 요한이라 썼다. 예수님도 이름을 꼭 예수라 하라 고 하셨고, 히브리 음으로는 여호수아 여수아 호세아 여호와도 비슷한 이름이고, 헬라어로 예수이다. 여호와는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야외이신데 감히 부르지 못하고 여호와라 불렀다고 하는데 셋의 후손들이 그때서야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고 기록되어있다. 예수를 판 가롯 유다도 역시 그 이름은 예수를 팔기로 작정된 이름이었다. 성명철학은 동양의 한자 획수에 있기 이전 서양에서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이름이 좋고 나쁨을 말해주고 있다. 성경에 유다가 많이 나오는데, 예수를 판 유다는 가롯이라는 동네에 산다고 해서 가롯유다라 불렀다. 그렇다고 본다면 유다라는 이름은 다 나쁜 이름이 아닌 것 같다. 요즈음은 이름을 짓는데 부르기 쉽고 소리 나는 대로 한국말로 이름을 짓는 사람이 많다. 빛나 아름 슬기 새벽 한솔 이슬 맑음 등 많이 있고 더러는 긴 이름도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이름을 한번 보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이 이름들의 한자의 몇 획에 관계없이 이름 그 자체로 풀이를 한번 해 보자. 이승만 성은 빼고 승만 승리로 만족해라 더 이상은 않되, 정희 정치에는 빛나는데, 두환 우두머리가 되어 빛나나 두자가 김두환처럼 보인다. 태우 크게 될 우두머리, 영삼 영상으로 삼다. 대중 크게 대중적인 인물, 무현 현재는 없다. 명박 명철하고 박식하다. 박 태환 크게 빛날 사람,  박 주영 주님의 영광, 박 찬호 찬란한 환호의 이름, 자 그러면 좋은 이름은 어떤 것인가! 자기 자녀들의 이름을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해 보자. 이름이란 이미 하나님의 예정 안에 그 사람이 태어남과 동시에 아니 낳기도 전 만세전에 미리 다 정해 졌다고 하는 것이 예정론이다. 믿는 것도 다 예정되어있다. 이미 믿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죽기로 작정된 자도 역시 다 가롯유다  처럼 다 예정되어있는 것 같이 바울도 이미 이방과 왕들에게 복음을 전할 택한 주님의 그릇으로 예정되어있었고,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사울이라는 이름은 살기가 등등한 이름 이었다면, 바울은 모든 학문과 지식들을 다 배설물같이 버리고 겸손한 주님을 닮아 수많은 매를 맞으며 추위에 굶고 자지 못함과 핍박을 받아야 하는 가시밭길을 가는 주님의 사도중의 만삭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고 자신은 말하고 있다. 그가 또한 질병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병은 다 고쳐 주면서 자기 자신의 병은 주님께서 고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께 그 불편한 질병을 고쳐 달라고 세 번 기도했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은혜가 네게 족한 줄 알라. 교만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주신 사단의 가시라고 하셨다. 바울의 질병을 어떤 사람은 안질 곧 눈병이라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 안질을 잘못 듣고 간질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지 못하고 제 때에 먹지 못하여 위장병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바울이 되기 전에 사울이라 부를 때에는 그러한 질병도 고난도 없이 최고의 가문에 최고의 학문을 가지고 대접을 받고 살던 그가 바울이 되어서는 완전 바뀌었는가? 아무튼 하나님의 예정은 그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사실이다. 가령 바울이 아니더라도 그 사울이라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예정 안에 그렇게 될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역시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홍범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초등학교 때에는 아이들이 붉은 범이라 별명을 불렀고, 중학교 때에는 호양이라고 미술 지도교사였던 하 명준 선생님께서 호랑이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니고 호랑이 같이 생긴 고양이라 별명을 지어 주었다. 나의 이름은 많다. 할아버지께서 학자셨는데도 이름을 지어놓고 보니 사주팔자에 부모가 없이 자라나야할 이름이라고 하여 홍연이라고 불렀다. 그 시절 장화와 홍연이라는 소설이 나오면서 아이들이 홍연이 계집애야! 홍연 양 하고 부르기도 하여 어릴 때는 계집애 같다는 소리가 그렇게 싫어서 홍국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것도 얼마 부르지 못하고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후일에 어머니께서 내 사주에 맞는 이름을 하나 지어 오셨는데, 시양이라고 돈을 얼마를 주고 지어 오셨는지 모르지만, 내 맘에는 들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는 내가 좋은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부산에서 동양식품 건어물도매상 김을 파는 부서에서 아주머니 한분과 김민정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이 나와 형님 동생으로 하자고 하여 나는 형이 없어서 너무 좋아하고 형! 형! 그렇게 부르다가 내 이름도 아예 바꿔서 의정이라고 민정이 동생 의정이 너무 잘 어울린다면서 부르게 되었고, 군대에서도 내가 군종이면서 전령을 하였기에 많은 펜팔을 할 때에도 의정이라 한자로는 義正 영어로는 Eui jeong Son 이라 지금까지 종교계에서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우리 중학교동창 중에 남학생이면서도 여자 같은 이름을 가진 김 명순이와 손 향숙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명순양 향숙양하고 놀려주곤 하였다. 군대에 위문편지를 보내면 대부분 남학생들은 답이 없지만, 두 학생만큼은 군인들로부터 명순양에게, 향숙양에게 하고 답이 온다. 어릴 때에는 얼마나 놀림을 받았을까 생각도 해 보고 이름은 성씨와 함께 부르기도 쉽고 뜻이 좋아야 하고, 놀림거리나 상처를 남기는 이름이 되어서는 좋은 이름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어려서 놀림을 받고 자란 아이가 더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내 이름의 뜻은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의정인데, 그렇게 부르다보니 홍범은 부모가 없이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의정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할 운명으로 되어서 양어머니를 모셨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조카가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하나 지어주라 하여 경험도 없고 생각도 짧아서 내가 생각나는 대로 찬양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더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 부모 마음에 들어야 하고 부르기 쉬어야 하기 때문에 처형이 또다시 손자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여 여러 개의 성경적 이름으로 지어서 고르라고 하였더니 하영=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이름을 골라서 부모도 좋아하고 친척들도 좋아해서 한자를 쉬운 것으로 뜻도 좋은 것으로 보냈더니 모두 만족해했다.

  나는 운명철학에 대해서 연구를 해 봤다. 동양철학에서는 사주팔자에 그렇게 나서 그렇게 병들어 죽는다. 그래서 사주를 고치겠다고 이름을 새로 짓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주라는 것은 앞서 말했지만, 통계학에 불과 하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 그렇게 되어가더라 하는 숫자로 몇 퍼센트가 비슷한 운명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통계학문이다. 우리 기독교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예정 안에 언제 낳아서 언제 병들어 죽는다. 라는 그 개인의 생로병사가 다 들어 있지만, 미리 언급한 히스기아 왕은 병들어 죽을 것이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고 벽을 향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15년이라는 수명을 더 연장시켜 주셨던 사실을 알 수 있듯이 우리 기독교인의 특권은 예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물론 주님 안에 있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건강이라는 것을 연구해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라면서 능력을 주어서 전도하라고 내어 보내셨다. 제자들은 어떤 때에는 귀신도 쫓고 병도 고치고 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아무리 귀신아 예수이름으로 나가라 소리쳐도 나가지 않았다. 믿음이 없는 연고였다. 누가 믿음이 없어서 인가! 제자들이 믿음이 없어서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다. 믿음이 없는 연고니라. 더러는 다른 관주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러한 유가 나올 수 없느니라. 고 기록되어 있다. 나도 처음 믿음이 좋을 때에는 귀신도 쫓고 병자에게 손을 얹은즉 낫고 했지만, 다 귀신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다 병을 고치는 것도 아니다. 김익두 목사님도 처음 은혜를 받고 정말로 병든 사람이 나을까! 하고 앉은뱅이를 고치겠다고 저 누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야 일어나라 아무리 소리쳐도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나중에 영감으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왜 아무도 없는 곳에 데리고 가서 고치려고 하느냐? 만일 앉은뱅이가 일어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창피하지 않을 곳으로 데리고 가 일어나라 명령을 한들 그게 믿음이냐? 낫든지 아니 낫든지 많은 사람 앞에서 했더라면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믿지 않겠느냐? 라는 마음이 와서 나중에는 많은 대중들 앞에서 소리치며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베드로와 요한처럼 성전 미문에 앉아있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  같이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교회의 중고등부의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던 유정희라는 여학생 하나가 백혈병으로 죽어갔다. 돈도 없어 병원에도 한번 못 가보고 기도만 해 주었다. 남자 전도사님 딸 이었는데, 그 전도사님과 나는 금식을 하고 산기도도 많이 했지만, 고통은 날로 심각해졌다. 그 딸아이가 “아빠! 나 좀 살려줘!” “목사님! 나 좀 살려 주세요.” 했다. 정말 가슴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끼면서 “그래 알았다 조금만 더 참아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올께” 그날 밤 마지막 임종예배를 드리고, 삼각산에 올라가 밤새도록 하나님께 유정희를 살려 달라 애원을 하고 부르짖어 기도를 했지만, 새벽에 교회에 들어서자 유양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꽃봉오리처럼 아름다운 열일곱의 나이에 피어나보지도 못하고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신음소리가 지금도 내 귓전에서 들리는 듯 가슴이 뭉클해온다. 그때만 해도 백혈병을 고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때다. 영지버섯 상황버섯을 먹으면 암도 고친다고 하고 벌침으로도 암을 고친다고 말을 들었지만, 실지로 내가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더 좋은 약품이나 식품을 연구해 보고 마늘이 좋네, 복어 알 먹고도 암이 나았네. 외국에서는 코브라 독을 수거하고 전갈의 독을 수집하여 암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 한다고 들었지만, 얼마나 암을 치료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잠도 초월하여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난 후 예수를 믿으면서 새벽기도회를 거의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새벽 세시면 일어나는 습관으로 바뀌어 더 이상 잠을 잘 수도 없다. 아니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았다. 또한 힘자랑으로 쌀 80kg 한가마를 들다 허리가 삐꺽하더니만 아파왔고, 산에서 나무를 지게로 져 오는데, 옆으로 걸어 내려 왔더니 또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여 허리에 디스크가 생겨서 잠을 많이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잠을 자지 못한 것 같다. 대신 낮에는 졸기 명수였다. 한 시간을 자고도 나는 일반 사람들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강의 시간이나 설교시간에 졸기 바빴다. 주일 대예배 시간에도 대표기도 시켜놓고 금방 잠이 들어 흔들어 깨우는 일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나 교수님들도 나를 졸음뱅이라는 별명도 하나 더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호와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 도다.>이러한 성경말씀으로 답을 한다. 그러나 몇 시간이고 운전을 할 때에는 눈을 크게 떠 졸지 않고 잘 한다. 차가 막힐 때에는 한번 경미한 접촉사고로 들이 받아 학교 승합차만 앞이 찌그러져 아무리 졸아도 차는 들이받지 말아야지! 오랫동안 핀잔만 받아왔다. 잠을 못자면 오는 병이 하나 있는데, 혀가 아프고 입안이 아프기를 잘 한다. 나이가 들면 면역기능이 떨어져 옛날 다쳤던 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허리고 다리이고 온 몸이 다 아파온다. 젊었을 때 나이든 사람들이 말을 하기를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말 하면 왜 등이 따뜻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몰랐는데, 나이가 50세 넘어가면 등이 따뜻해야 좋다는 것을 그 때 느낀 것이다.


  총회장님과 몇 몇 목사님들이 일본에서 목회하고 계신 요꼬하마(橫濱)교회를 방문하여 교회 이전예배와 안수집사 안수식도 겸하여 갔다. 일본어 성경에는 하나님을 神樣=가미사마 라 부른다. 가미사마는 모든 신상들 뒤에 다 붙여진 이름이다. 어느 곳을 지나가다가 말 머리만 있는 신상을 가르치며 “말대가리 하나님” 이라고 말 했다. 조금 더 가다가 여우 신사에 들려 “여우 하나님” 이라고 말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아니 집사님! 말대가리 하나님이 뭐고 이제는 여우하나님이 뭡니까? 앞으로는 절대로 말대가리 하나님이라 말하지 말고 그냥 말대가리 신이라 말하고 여우 신이라고 말하세요.” 했다. 일본 목사님도 역시 저건 말대가리 하나님 여우 하나님 관우 하나님 뱀 하나님이라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불렀다. 그것은 영어성경 God =god 신 또는 기독교의 하나님 이라 사전에 씌어 있는 것처럼 대부분 신(神) 일어 가미 하나님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글의 우수성에 대하여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영어로 하나님을 첫 자를 대문자 God 로 쓰면 하나님이고, 소문자 god 로 쓰면 일반 잡신으로 구분한다고 저 유명하신 신사훈 교수님도 그렇게 설명을 해 주셨다. 그래서 일반 사전에도 다 그렇게 기록해 놓았다고 해서 영어사전을 다 찾아보았는데, 대문자나 소문자나 다 신 또는 기독교의 하나님 이라고 씌어 있었다. 더구나 글로 쓸 때에는 그렇다고 치지만, 말로 할 때에는 크게 깓 하면 하나님이 되고 갇 하면 잡신이 되는가! 반문을 하면 외국사람 미국이나 영국이나 영어권 사람들은 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산다고 했다. 그래서 영어성경을 일본어로 번역할 때 God=신(神)을 가미로 해석을 한 것인데, 똑 같이 한자를 쓰는 중국에서는 하나님을 여러 가지로 표기 해 놓았다.  그 첫 번째가 상제(上帝=쌍띠)이다. 한국에 옥황상제가 있는 것처럼 또 지옥의 가장 높은 신을 염라대왕이라고도 부른다. 두 번째가 천제(天帝)가 있고, 셋째가 천주(天主) 천부(天父) 천황(天皇) 등으로 부른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하늘 천(天)자가 들어가는 것을 넣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은 일본에는 이미 천황(天皇)이 인간 하나님이 되어 수상위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처음 일본에 가서 성경 번역을 할 때 감히 하늘 천자를 써 넣지 못하도록 제재를 받지 안했을까! 나만의 생각을 해 보았다. 아! 일본에는 진정한 하나님이 없구나! 그 언젠가 어느 일본에서 목회를 하신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일본사람들의 근성이 일반 잡신들이 다 가미(神 =God) 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국 사람들이 부르는 유일신 하나님도 일반 잡신들과 같이 불러지고 있기 때문에 다 같이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어 주일날 교회에 갔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도 일반 잡 신사에 들려 절을 하고 소원도 빌고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만 절을 하고 믿으라고 하면, 일본 신자들은 아니 왜 한 하나님만 섬기냐고 여러 하나님을 섬겨야 복을 더 많이 받지 않겠냐? 는 반문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오! 주여! 일본의 성경을 먼저 다시 번역을 하여 만들어야 하겠습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서 밤새도록 생각 했다. 天자만 하나 넣어서 천신(天神)으로 할까! 天樣(하늘님=하느님) 一樣(하나님=이찌사마) 有一神(하나신) 天主 天父로 할까! 한국의 성경을 새로 고치는 작업을 논의 중이었던 그 때 일본어 성경을 어서 속히 새롭게 번역을 하여 만들어야 하겠다고 열을 올리고 돌아왔는데, 그 작업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의 목사님들은 그런 느낌을 가지지 못 했는지 아니면 알고는 있지만 아직 하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집사 안수식 때 내가 권면을 맡았는데, 그 집사님을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는 다시는 말대가리하나님 여우하나님 관우하나님이란 말을 하지 말고 그냥 말대가리 신, 여우 신이라 말하고 하나님이란 말을 함부로 그런 잡신에게 쓰지 말도록 권면했다. 대부분 일본 사람들은 여러 신상을 섬긴다. 말 머리만 있다고 해서 말대가리 신인데, 말처럼 용감하고 달리기도 잘하는 사람이 되길 비는 신이고, 전쟁이나 싸움이나 경기대회나 대회시합을 앞두고 많이 찾는 곳이고, 여우신은 장사하는 상인들이 주로 찾는다고 한다. 관우장군 신사에는 규모도 크거니와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와 북적대기 때문에 사람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뭐 토끼신사라든지 한국의 홍살문처럼 생긴 신사도 있고 모두가 신사로 삼만 이천 신을 섬긴다고 하니 장수들도 죽으면 모두 신이 된다. 우리나라에도 일제시대  교회에서도 천황의 사진이나 홍살문 같은 일본 가미사마를 걸어놓고 먼저 일본 신을 섬기고 나중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강요를 하여 대한예수교장로교에서는 27회 총회에서 그것을 가결하고, 많은 교회가 일본 신을 섬기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총회장은 홍택기 총회장이었다. 장로교(합동 고신으로 나누워지기 전)총회신학대학교의 모체였던 평양신학교는 문을 닫았고, 교회도 유능한 교회들도 문을 닫았다. 목사들과 교회들도 서로가 너와 너희 교회는 신사참배를 했다 안했다 비판하기에 이르렀고, 유명하신 한 목사님은 그  신사참배로 말미암아 일생동한 죄책감을 가지고 겸손하게 목회를 잘 하시다가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아니 목회자로 여생을 마쳤다. 평양신학교가 신사참배 문제로 문을 닫고 있을 때 어느 한 장로가 신학교는 문을 닫아서는 아니 된다며, 서울에서 조선신학교라는 학교를 세우고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김재준 박사를 학장으로 신학교의 문을 열었다. 평양신학교 학생들도 수십 명 그 조선신학교로 들어갔고, 교수들도 그 학교로 가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조선신학교가 오늘날의 한국신학대학교 한신대학이 되었다. 해방 후 평양신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고, 총회신학이라 학교명을 바꾸고, 조선신학인 한신과 평양신학의 총신이 갈라지고, 부산과 경남지방으로 모인 고려신학대학 즉 고신 측으로 갈라진 다음으로 기독교장로교의 교단도 떨어져 나갔다. 이것이 장로교회의 분열이 되어 합동 측과 기장 측으로 갈라진 이유였다. 통합 측이 갈라진 이유는 6.25 전쟁이 끝나고 서울에 올라와 남산에 학교를 지으려고 학교부지 땅을 3천만 원 주고 산 것이 사기를 당하였고, 당시 학장이었던 박 형룡 박사가 변상을 하지 못하여 분열이 생기게 되어 몇몇 목사님들과 뜻이 맞는 분들이 모여 학교를 세우게 된 것이 광나루신학 오늘날의 장로교신학대학 통합측이 된 것이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손의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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