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회복과 한민족의 부르심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2~4)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을 예언한 계시록 7장 1~8절①
언제나 이단들은 해석이 어려운 요한계시록을 이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양무리들을 흑암의 처소로 미혹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이 계시록 7장의 인 맞은 자에 대한 예언이다. 실로 이 예언만큼 오해되고 왜곡되는 구절은 없을 것이다.
러셀의 추종자들(여호와의 증인)은 이 14만4천이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기네 교파의 교인들 중에서 “이기는 자”로 선택받게 될 자라고 가르친다. 제7일 안식일 재림교 역시 14만4천은 자기네 교인들 중 충성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통일교 또한 그들의 교주를 따르는 신도들이 14만4천이 된다고 미혹한다. 신천지(新天地) 집단도 그렇게 가르친다.
정통교회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들이 있어 성도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제 여기에서 이 예언이 실제로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자세히 살펴보고 오랜 혼돈에 종지부를 찍자. 앞서 지적하였듯이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말론적 구원에 관한 계시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계시록의 구조에 대한 기초상식이 필요하다. 계시록은 구조상 본 계시와 중간 계시가 번갈아 나오는 가운데 진행된다. 본 계시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내용을 말하는데, 이들 범주에 들지 않으면서 이들과 전후 관계를 가진 독자적인 계시가 ‘중간 계시’이다. 일명 ‘삽경(interlud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 계시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본 계시의 전후 순서에 지배되지 않는 독자적인 계시이다.
계시록 7장은 바로 이러한 ‘중간 계시’의 하나이다. 즉 6장에서 여섯째 인을 떼었으니 7장에서는 이어 일곱째 인을 떼어야 하겠으나 일곱째 인은 8장에 가서 떼고, 6장과 8장 사이에 일곱째 인의 순서와 관계없는 중간 계시가 나온 것이다. 여기에서는 연속해서 일어나던 사건들이 잠시 중단되면서 하느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시선이 돌아간다.
이 중간 계시의 계시록 7장 1~8절은 바울이 말한 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는 약속의 구체적 성취의 때와 방법에 관한 예언이다. 다시 말하면 유대민족이 마지막 때에 어떠한 과정을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계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계시는 이사야 46:10~13, 52:7~10, 41:25~27, 55:1~9과 짝으로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하느님께서 “해 돋는 곳”, 곧 동방에서 복음전도자들을 이스라엘로 보내심으로 이루신다는 예언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오래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마지막 기록의 선지자인 사도 요한을 통해 재확인해 주신 것이다.
하느님은 1세기에도 동방에서 일단의 현자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시어 유대인의 왕, 곧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복된 소식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게 하셨다(마 2:1~12). 실로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기이한 사건이었다. 바로 그 때와 동일한 양상의 사건이 마지막 세기에 “해 돋는 데”, 곧 동방의 한 나라에 의해 극적으로 재연될 것이다(전 1:9,10).
1세기의 이스라엘은 동방의 현자들이 시온으로 복음을 가지고 갔을 때 무감각했지만, 마지막 세기의 이스라엘은 동방의 사자들이 전하는 그들의 메시아를 영접하고 마침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에 관한 예언인 계시록 7장 1~8절 말씀을 자세히 상고해 보자.
1. 인치는 대상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계 7:4~8).
인침을 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의문의 여지없이 육체적 이스라엘 백성이다. 왜냐하면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의 12지파가 인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12지파가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본문의 ‘이스라엘’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인 맞은 사람들은 이른바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전 인류의 모든 신자들로 구성된 교회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 오직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만 적용된다고 볼 때 그것이 만일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어떤 신자가 어느 지파에 소속할 것인지 과연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본문의 ‘이스라엘’은 교회를 상징하는 말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단순히 혈통적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 민족인 역사적 이스라엘 백성인 것이다.
더욱이 7장 9절에서 ‘모든 나라’를 말하고 있음으로, 7장 4절에서 말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한 나라인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만일 계시록 2장 14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이 문자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면, 본문 7장 4절의 ‘이스라엘 자손’도 역시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5장 5절에 언급된 ‘유다 지파’란 말이 문자적으로 이해된 것처럼, 7장 5절에 언급된 ‘유다 지파’도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 살펴본 바처럼 여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결코 교회를 상징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침을 받은 자들은 역사적 이스라엘 백성들, 곧 혈통적 유대인이다.
키워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본문은 인 맞은 자들의 출신성분을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침을 받은 자들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교회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영적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일 수는 있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교회를 가리켜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말한 곳은 없다. 그러므로 인 맞은 사람들은 ‘혈통적 유대인’이 틀림없다.
인 맞은 사람들이 교회를 의미한다는 것은 본문의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용어에 대한 상징적 해석 자체가 이미 난센스다. 만약 본문이 열두 지파의 이름들은 열거하지 않은 채 단순히 인 맞은 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의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인 맞은 자들을 이른바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교회를 뜻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본문은 인 맞은 자들에 관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자손의 각 지파’라는 말과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이름만을 분리하여 인 맞은 자들을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의미한다고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애초에 접근방식부터 그릇된 것이다.
우리가 인 맞은 사람들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라는 문구 전체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스라엘’이라는 말과 ‘자손의 각 지파’라는 말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두 부분을 동시에 같이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문구를 따로 분리해 놓고 각각 별도의 해석을 시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가 이 점을 명백히 한다면 본문이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 열두 지파의 이름들은 무시해버려도 인 맞은 14만4천이 이른바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한다는 해석은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전혀 ‘자손의 각 지파’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라는 구절 가운데서 ‘자손의 각 지파’라는 문구를 도외시하고 앞부분인 ‘이스라엘’에만 주목한다면 본문의 ‘이스라엘’이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게 된다. 그들은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치한 새 이스라엘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자손의 각 지파’라는 부분과 본문이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 ‘열두 지파의 이름’은 거기에 맞추어 재해석해야 할 별도의 문제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에 부속된 ‘자손의 각 지파’라는 문구 및 본장이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심히 난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도 교회는 결코 열두 지파로 나뉘어져 있지 않다는 것과, 열두 지파의 이름들은 무엇보다도 혈통적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만 적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신학(Replacement Theology)의 교묘한 해석 방식
그리스도인들 중에 교회가 유대민족을 대신하는 새 이스라엘이라는 대체 신학의 추종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인 열두 지파의 이름들을 교회에 가져다 맞추기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인침을 받은 14만4천명이 소위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성경연구가들은 본장이 열거하고 있는 ‘열두 지파의 이름들’을 교회에다 적용시키기 위해 결국 베드로후서 3장 16절의 말씀처럼 예언을 ‘억지로’(원문은 '교묘하게'라는 뜻도 있음) 해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래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옛날 개인의 이름은 흔히 그 개인의 성격을 표시했다. 오직 그 품성만이 하나님의 인을 받는 데 결정적 요소가 된다. 우리도 우리의 성품 여하에 따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하나에 속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이다. 열두 지파의 이름에 나타난 뜻은 다음과 같다. 1)유다: 찬양(praise), 2)르우벤: 아들을 낳다(bear a son), 3)갓: 복됨(blessing), 4)아셀: 기쁨(rejoice), 5)납달리: 씨름(wrestlings), 6)므낫세: 내 모든 수고를 잊다(forget all my toil), 7)시므온: 주께서 들으시다(the Lord has heard), 8)레위: 연합하다(joined), 9)잇사갈: 값(price), 10)스블론: 나와 함께 거하다(dwell with me), 11)요셉: 주께서 내게 더하시리라(the son of right hand)."(일곱 우레의 비밀, 목회자료사, 1966, p. 87)
위와 같은 해석에 의하면 필자는 ‘찬양’을 좋아하므로 열두 지파 중에 ‘유다 지파’에 속하는 자로서 말세에 하나님의 인을 맞게 되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기쁨’이 충만한 신자라면 당신은 ‘아셀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 된다. 그런데 필자는 ‘찬양’을 좋아하지만 ‘기쁨’도 있으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자 날마다 ‘씨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는 ‘유다 지파’ 사람도 되고, ‘아셀 지파’의 사람도 되고, ‘납달리 지파’에 속하는 사람도 되는 셈이다. 아마도 필자는 하나님의 인을 적어도 세 개 이상 받을 것 같다. 이 무슨 괴이한 성경 해석인가? 도대체 왜 단순한 성경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가? 위와 같은 해석은 ‘해석을 위한 해석’이다. 그것은 본문이 실제로 의도하는 바가 아니며 예언을 억지로, 곧 ‘교묘하게’ 해석한 것이다(벧후 3:16).
교회가 ‘영적 이스라엘’이고 ‘참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넓게 퍼진 생각은 성경에 어떤 명확한 언급에 의해서 지지되어 있지 않다. 바울은 교회를 가리켜서 이른바 영적 이스라엘이라거나 참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이 전혀 없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이방인에 대해서는 결코 성경에 사용되어 있지 않으며, 인종적 이스라엘 혹은 야곱의 자손에 대해서만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적 이스라엘’ 또는 ‘참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예수 믿고 거듭난 유대인들’을 지칭할 때에만 사용되어야 옳다.
어떤 학자는 원형적인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벌써 지상에서 소멸된 지 오래임을 들어서 계시록 7장의 14만4천은 문자적 이스라엘 백성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명확하게 어느 지파도 잃어버리고 있지 않다. 계도는 잃어버렸지만 현대의 유대인들은 자기가 아브라함의 자손에 속한다고 확신할 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어느 지파에 속하여 있는가를 알고 계신다. 오늘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이 어느 지파에 속하고 있는가 보통의 경우 모르지만 하나님의 마음에서는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의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무렵,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존재한 것에 관한 언급이 있다(참조, 약 1:1; 벧전 1:1). 따라서 요한에게 주어진 환상은 하나님이 혈통적 이스라엘을 위하여 계속되는 계획을 갖고 계심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14만4천 인 맞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마지막 때에 회심하고 예수님께 돌아올 육체적 이스라엘 백성이다(롬 11:12; 25,26). 성경이 인 맞은 사람들에 관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라고 말하고 있고, 더욱이 열두 지파의 이름들까지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 이상,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혈통적 유대인’이다. 만일 인 맞은 사람들이 전 인류의 모든 신자로 구성된 이른바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교회라면, 그들을 지적하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라고 기술하고, 게다가 ‘열두 지파의 이름들’까지 상세히 열거했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침을 받은 자들은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에게로 회복될 육체적 이스라엘 백성이다.
종말에 구원받을 온 이스라엘 자손
유대인은 지금까지 그들의 메시아 예수를 거부하고 있다. 하느님의 택함 받은 민족인 이스라엘의 운명은 이렇게 멸망으로 끝날 것인가? 성경은 그와 같은 가능성을 부인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8장까지 구원의 도리를 설명한 후 9장부터 11장까지 세 장에 걸쳐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문제를 논하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아니하므로 하느님의 버림을 당하였는가 하면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롬 11:1). 그리고 종국적으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주= 집단적 의미에서 전체로서의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롬 11:25,26).
그리고 이 구원은 언약에 의한 것이며(롬 11:27), 이 언약은 조상들로 인하여 택함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즉 여호와 하느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주신 언약을 하느님 자신의 진실하심으로써 파기하지 아니하신다. 한 때는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인하여 구원이 이방인에게 옮겨졌으나 하느님의 정하신 이방인의 충족수가 그 정점에 이르게 되면 구원의 경륜은 또 다시 유대민족에게 옮겨오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비밀을 예언하는 계시록에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이 계시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것이 7장 1~8절 말씀이다. 계시록 7장 1~8절은 로마서 11장에 약속된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구원에 관한 예언으로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26절)는 약속의 성취인 것이다.
장차 유대민족 가운데 늦은 비 성령의 강력한 사역, 성령과 하느님 말씀의 강력한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이른 비는 사도행전 2장에서 풍성하게 내린 바 있고, 앞으로 늦은 비가 쏟아지게 될 것이다(욜 2:28,29). 때가 차면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는 전혀 목도할 수 없었던 규모로 회개하고 메시아 예수 앞으로 돌아올 것이며, 예수 안에서 하느님께 열납되기 위하여 분투하게 될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 계 속
알이랑민족회복운동
유석근 목사
cafe.daum.net/ALI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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