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의미(意味)
이슬람의 어원은 아랍어 어근 “싸리마” 인데, 이 말은 특히 평화, 청결, 순종, 복종을 뜻한다. 종교적 의미에서의 이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법에 복종을 뜻한다. 이 말의 원래 의미와 종교적 의미 사이의 관계는 깊고 명백하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법에 복종하므로써만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고 청결을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외자들은 우리의 종교를 “마호멧주의자(마호멧교도)”라고 부른다. 무슬림들은 이런 말의 사용을 거부하며 이에 항의한다. 우리의 신앙이 마호멧주의로 유별(類別)되고, 우리가 마호멧주의자로 불리울 경우, 심히 그릇된 의미가 내포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명칭은 이 종교가 일개 인간, 곧 무함맏의 이름을 따서 명명(命名)되고, 이슬람 역시 유태주의(유태교), 힌두주의(힌두교), 마르크스주의 등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주의”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 잘못된 명칭이 내포하는 또 하나의 오류는 국외자들이 자기네가 마호멧주의자라고 부르는 무슬림들이 실례로 마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함맏을 숭배하거나 믿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하나 더 보면, 마호멧주의자라는 말이 국외자들을 오도하여 그로 하여금 이 종교가 무함맏에 의해 창시되었고, 그 때문에 이 창시자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틀린 명칭에 내포된 의미는 모두 심히 잘못된 것이다. 고작해야 오해를 일으킬 뿐인 것이다. 이슬람은 또 하나의 주의(ism)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무슬림들은 무함맏을 숭배하지도, 기독교인, 유태인, 힌두인, 마르크스주의자 등이 각자 자기네 지도자를 생각하듯 그를 생각하지도 아니다. 무슬림들은 하나님만을 숭배한다. 무함맏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모범적으로 생활할 임무를 하나님께 부여받은 일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인간에 대한 경건성과 완전성의 가장 훌륭한 본보기로서 역사 속에 서 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능한 사람됨 그리고 미점과 미덕의 면에서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경지의 산 증거다. 또한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종교적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무함맏에 의해 회복되기는 하였지만, 그가 창시했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슬람의 원 창시자는 다름 아닌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슬람의 창시 년대는 아담시대까지 소급한다. 이슬람은 어떤 형태로든 태초부터 존재해 왔으며, 마지막 때까지 존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종교의 올바른 명칭은 이슬람이며, 이를 신봉하는 자들이 무슬림인 것이다. 일반의 오해와는 달리 이슬람, 혹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그분의 법에 복종하는 것과 더불어, 결코 개인의 자유의 상실이나 운명론에의 굴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거나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슬람의 올바른 의미와 이슬람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음이 확실하다. 이슬람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그분을 가장 자비롭고 자애로우시며, 가장 사랑이 많고 인간의 안녕에 가장 관심이 많으신 분, 지혜로 충만하고 당신의 피조물을 보살펴 주는 분으로 평한다. 따라서 그분의 뜻은 자비롭고 선한 뜻이며, 그분이 규정하는 법은 무엇이나 인류의 최선의 이익을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문화인들은 자기네 나라 법을 준수할 때, 건전한 시민으로, 그들이 속한 각 사회의 정직한 성원으로 간주된다.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들이 법에 복종함으로써 자유를 잃게 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운명론자들이요, 무력한 자들이라고 단 한시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한 뜻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최선의 법인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사람은 건전하고 정직한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는 한편, 타인의 권리를 진심으로 존중하며, 책임을 다하는 창조적인 고차원의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의에 순종한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가 줄어들거나, 박탈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차원의 자유가 풍부하게 주어진다. 이러한 순종은 정신을 미신으로부터 해방시켜 그것을 진리로 가득 채운다. 영혼을 죄와 악에서 해방시켜 선과 청결로 그것을 자극한다. 자아를 허용과 탐욕에서, 질투와 긴장에서,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시킨다. 사이비신들과 저급한 욕망에서 해방시켜, 선과 미덕의 아름다운 지평을 인간 앞에 펼쳐 놓는다.
하나님의 선의에 순종하고 그분의 유익한 법에 복종하는 것은 평화와 조화를 보존하는 최선의 수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한편으로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 다른 한편으로 인간 사회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연의 제 구성요소들 간에 조화를 창출해 낸다. 이슬람에 의하면, 세상만물, 혹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현상은 하나님께서 정한 법칙에 지배된다. 그러므로 전 물질계가 이슬람의 상태에 있다는 것, 혹은 그것이 무슬림임을 뜻한다. 물질계는 스스로 선택할 여지를 갖지 않는다. 자의적으로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 즉 복종의 법인 창조주의 법에 복종하는 것이다. 유독 인간에게만 지성과 선택 능력이 부여되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지능과 선택의 자질이 있기에, 하나님의 선의에 복종하고, 그분의 법에 순종하라고 권유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길을 택해야만,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에게 필연적으로 복종하는 기타 자연의 모든 구성요소 사이에 조화를 구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의 길을 걷는다면, 정로(正路)에서 이탈하여 일관성을 잃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입법자의 노여움과 처벌을 받게 된다.
이슬람이 하나님의 선의에 순종하고, 그분의 유익한 법에 복종하는 것을 뜻하고, 이것이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사도들의 메시지의 정수를 이루는 것이므로, 무슬림이라면 무함맏 이전의 모든 예언자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인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예언자들과 이들의 추종자들 모두가 무슬림이었으며, 그들이 믿는 종교는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의 세계 종교인 이슬람이었다는 것을 믿는다.(꾸란, 2:128-140, 3:78-85, 17:42-44, 31:22, 42:13)
1972년 12월 4일자 Observer Dispatch(O.D)지에 실린 나의 성명을 여기에 전재하는 것이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성명은 이제까지 논의된 문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왜곡과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지를 지적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중복되고, 되풀이되는 점도 없지 않지만 쟁점이 극히 미묘하고 이슬람의 관점을 재론할 필요가 있어서인 만큼, 양해해 주기 바란다.
특종 뉴스 하나(O.D.11월 25일자)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미처 모르고 있던 대중에게 동정을, 많은 학교 교사와 종교계 인사에게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고, 선의와 양식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자신의 도의적 책임을 외면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커스 일리아슨(Marcus Eliason)이 요르단의 이스라엘 점령지역에서 “모슬렘들”이 하필이면 “아브라함을 이브라힘으로 숭배하고 있다 ”고 보고해 왔다.
요즘 세상에, 우리가 사는 이 조그만 세계에서 무슬림들이 이브라힘을 숭배하고 있다는, 생생한 보도에 접하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더욱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 뉴스가 짐작하건대 정통한 소식통에서 흘러나와 알 권리가 있는 대중에게 보고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수세기에 걸쳐 많은 서양인들은 무슬림들이 무함맏을 숭배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생각을 널리 퍼뜨렸다. 무함맏의 종교가 마호멧교로 통하고 그 추종자들이 서양에서 마호멧교도들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경위야 어떻든 무슬림들이 “일종의 신”인 알라를 숭배한다는 것이 서양인들에게 분명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들이 아브라함을 이브라힘으로 숭배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무슬림들은 무함맏이나 그 외 어떤 인간도 숭배한 사실이 없다. 이들이 항상 믿어 오고 있는 바는, 무함맏은 그 보다 앞서왔던 수많은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인간이며, 한 인간으로써 예언자 지위라고 하는 최고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인류에게는 최대의 찬사가 된다고 하는 사실이다.
무슬림들은 무함맏이 마지막 예언자이긴 하지만 유일한 예언자는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보낸 영원한 메시지를 보강하여 영원히 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메시지를 시대와 민족에 따라서 많은 예언자들에게 계시하였으니, 이들 예언자 가운데 아브라함, 이스마엘, 이삭, 다윗,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맏(이분들께, 평화가 깃들기를)이 포함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슬림들이 이들을 믿되, 그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우주적 소망과 세계주의적 정향(定向) 때문에 자기들을 마호멧교도라 부르고 자기들의 신앙을 마호멧교라 부르는 것을 불행한 오칭(誤稱)이라고 보아 이를 유감스러워 한다. 거기에 내포된 의미가 불쾌함에서다. 까닭 없이 그런 게 아니다. 무슬림들은 자기들이 배타적인 독점권을 가진 이름을 따서 명명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초월적이고 영원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 종교의 올바른 명칭은 이슬람이며, 그 신봉자는 무슬림이라고 불러야 타당하다. 종교적인 맥락에서 본 이슬람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법에 복종함을 뜻한다. 꾸란은 하나님의 뜻을 선하고 자비로운 것으로, 그분의 법을 가장 이롭고 공정한 것을 규정한다. 따라서 이렇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슬람의 윤리적 상태에 있는 한 사람의 무슬림인 것이다. 꾸란이 아브라함을 비롯한 모든 믿을 만한 예언자들을 무슬림이라 칭하고, 이들의 종교를 오직 하나의 동일한 명칭 즉 이슬람으로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의미로서이다. 따라서 무슬림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무함맏의 추종자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아브라함, 모세, 예수 그리고 나머지 사도들도 마찬가지로 추종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슬람에서 알라라는 말은 간단하나 지극히 단호하게, 온 세계의 창조자, 주중의 주, 왕 중의 왕이신 유일무이하고 영원한 하나님을 가리킨다. 이슬람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믿는 것이다. 무슬림들이 일상예배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을 다음에 들어둔다:
“참으로 자비로우시고 참으로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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