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 봉서방 카페 영적 예배와 찬양 |
교회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예배일 것
이다. 예배란 말의 뜻은 '존경과 존귀를 받을 가치가 있다' 혹은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린다'라고 풀이한다. 그러므로 예배가 참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진정한 복종과 하나님의 주되심을 찬미하는 행위가 포함되어야 한다.
예배에는 좁은 의미의 예배가 있고 또한 넓은 의미의 예배가 있다. 좁은 의미
의 예배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에서의 예배, 혹은 가정에서의 구역예배등 예배의
형식과 격식을 차려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듣는 예배를 말한다.넓은 의미의 예배란 찬
송하고 기도하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의, 삶으로 드리는 영적예배를 의미한
다.
예배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
현하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다.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하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모든 행위는 다 넓은 의미의 예배라 말할 수
있다.
'예배 보러 간다'라는 말이 있다. 형식적이고 내용이 없는 예배를 보는 습관
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것을 한정된 장소나 시간을
그저 지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뜻과 그의 중심을 간파
해 내는 것, 섬기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인
것이다. 가식적인 예배와 일방통행적인 예배는 흔히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예배로
자신의 뜻만을 관철하려는 예배가 되고 있다. 이러한 예배는 예수님 시대에는 율법주의
자들이, 요즘에는 교파주의자들이 빠지기 쉬운 예배이다. 이러한 예배는 미신적인 예
배로 변한다. 미신적인 예배의 한예는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재앙이 닥친다. 그러니
할 수 없이 예배를 보러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나의 모든 생활을
주 앞에내어 놓고 드리는 예배이어야 한다. 바로 나의 생동하는 - 살아있는 - 모든 것
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예배는 그래서, 나의 몸으로 제사를 드린 후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예배는 '보는 예배'가 아니라 '드리는 예배'인 것이다.
바로 예수님을 닮은 섬기는 예배이다.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생활 속에
서 달라져야 한다.
신약성서에 예배를 표현한 말은 '라트레이아'이다. 이말은 명사인데 동사는 라트
레이오이다. 라토레이오라는 말은 영어의 섬긴다(To serve)라는 뜻이다.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드리는 것만이 예배라는 것이다.
1. 참된 찬양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찬양을 음악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관심을 갖는 계층과 이와는 반대
로 영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계층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뗄래
야 뗄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찬양이란 진정한 예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는 찬양 그 자체가 예배이어
야 한다. 본래 '찬양하다'라는 말은 '칭찬하다' '찬미하다' '존경하다' '믿는다' 등
의 것이다. 그래서 찬양이란 인간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응답하고 기꺼이 나아
가는 여러 방법 중 특출한 일면을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은 바로 우리의 생활
이요 삶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의 삶이 주를 인정하고 그를 존경하고 순간순간의
생활이 주님께 갈채를 보내며 신뢰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노래는 진정한 삶의
찬양으로 드려지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릴 인간의 첫째 임무이기 때문에 히브리 성서에 찬양을 뜻하
는 여러가지 단어가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찬양을 나타내는 대표적 단어는 할랄, 야
다, 자마르, 샤바흐 등이며, 바락(축복하다), 아나(번갈아 노래하다), 라난(외치다), 쉬르
(노래하다), 길(기뻐하다) 등과 같은 단어도 있다.
1. 할랄 : 강조형으로서 이 말은 찬양을 표현하는 말 중 가장 최고의 표현인 할렐
루야(Halleujah), 즉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에서 나타난다. 몇가지 설명적인 예로
사 16:14('영화') ; 렘 48:2('칭송'), 51:41 ; 합 3:3등이 있다.
2. 야다 : 그 뜻은 `감사하다, 찬양하다'이며 본래 이 단어는 예배와 연관성이 있
었지만, 그 연관성이 없어지면서 감사의 한 요소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되어서
할랄처럼 순수하진 못하다. 명사 토다는 '감사절', '찬송', '감사하여 바치는 물건'을
의미한다.
3. 자마르 : 처음엔 가지치기 노래였으나 후에 일반적으로 감사의 노래가 되었다
고 보는 형태이다. 보통 악기를 갖고 하는 찬양을 말한다.
4. 샤바흐 : 시편과 전도서에 4번 나오고, 그 아람어형이 다니엘서에도 나온다.
Ⅱ. 누구에게 찬양할 것인가?
창14:20, 삼하22:50, 대하7:6, 시7:17, 9:2, 69:30, 히13:15, 계5:12
Ⅲ. 찬양해야 할 이유
① 하나님의 명령이다(시81:4).
② 찬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시84:5).
③ 노예 상태에서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이다(시84:6-7).
④ 하나님의 시험의 과정이다(시81:7)
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안에서 기쁨을 얻으시기 때문이다(시149:4).
⑥ 찬양은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으로 이끌어간다(시149:1,6).
⑦ 찬양이야말로 사탄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기 때문이다(시149:7).
Ⅳ. 찬양을 방해하는 요소들
① 사탄의 방훼
② 죄
③ 그리스도인의 삶에 강하게 남아있는 죄의식
④ 두려움
⑤ 자아, 인간의 자기 이미지
⑥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
⑦ 사61:3
Ⅴ. 어떻게 찬양할 것인가? - 찬양대원의 영성
대상16:25, 시35:28, 65:1, 100:4, 108:1, 고전14:15, 약5:13
구약에서는 찬양과 희생제사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신26:10,11)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산제사가 찬양의 한 부분임을 말하고 있
고(롬12:1,참고 히13:15), 기도도 항상 찬양에 속하는 부분임을 강조한다(빌4:6).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올바른 찬양을 드릴 수 없다. 찬양을 한
다고 하면서 자신을 높이려 하고,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서 천국의 것보다 땅의
것을 사모하는 자, 이러한 사람은 이미 찬양하는 자로서의 기본 자세부터가 틀린 사람
이다.
또한 교회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2중 생활을 하며 자
기만을 사랑하고 스스로 자랑하며, 찬양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은사라도 되는 것처럼
우쭐거리는 사람들은 이미 천국행 티켓을 발로 차버린 사람들이다. 찬양팀이 되었다는
것이 은사가 아니다. 물론 목소리가 좋아서 찬양팀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그러한
사람들이 없다고 찬양 예배가 진행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서
찬양팀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앞에 나오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과 그들을 보고 있는 회중의 사이를 훼방
하는, 그야말로 큰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다.
남을 헐뜯고 자신이 올라서기 위해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찬양할 자
격을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사랑 가운데 으뜸이라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목숨걸고' 뛰어드는 것은 죄 가운데에서 으뜸
가는 죄이다.
또, 찬양하는 자들은 부모를 거역해서는 안된다. 육신의 부모이기때문에, 자신의
창조주인 하나님만을 잘 섬기면된다는 생각을 갖고, 교회의 생활과 가정 생활의 차이
가 거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될 정도로 판이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은 먼저 자신에게 부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직
접 기록하신 십계명에도 하나님을 위한 계명 다음의 인간을 위한 계명으로 "네 부모
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이 처음으로 나오고 있지 않은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천박하다. 거룩하지 못하다. 감사를 드릴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자이다.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할 우리들이 인간적
으로 보아도 감사한 일에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
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부족하다고 불평을 한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더하실까? 찬양은
감사하는 사람들의 것이어야 한다.
찬양을 유행가 부르듯이 노래로 '부르는' 자들이 있다. 찬양은 자신의 감정 표출
이나 원통함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드리는 찬양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 자로 낙인찍혀 나중에 계산할 것이 많
게 된다. 이들은 먼저 이러한 태도를 버리고 회개한 뒤에 찬양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신이 아무리 주님을 부르고 감사한다고 찬양을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가식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의 찬양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을 드려야 한다. 말뿐이 아닌, 마음
자세부터 부족한 자를 앞에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리고, 만에 하나라도 앞에서실수를
하여 찬양을 은혜스럽지 못하게 만들지 않도록 기도하는 자세이여야 한다. 언제나 자
신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이어야 한다.
찬양하는 사람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우리가 `날라리'라고 부르는 사
람들이 있다. 크리스챤은 이러한 삶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그들과 같이 있으면서 주님
을 전해야 한다는 말도 물론 타당하다. 그러나, 자신의 믿음이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는 그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 범죄, 악은 병균과 같은 것이라 전염성이 아주 심하
다. 예를 들어 약물 중독에 걸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가 약물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마시면 약이 질려서 그만 하게 될까? 절대 아니다. 오
히려 몸을 망치고 더 깊이 빠지게 될 뿐이다.
또, 자신이 아무리 은혜스럽더라도 앞에 선 자들은 언제나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찬양을 드리는 자의 모습이 웃지 않고, 잔뜩 찌뿌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청중들에게 은혜가 되지 않는다. 아까도 언급했듯이 하나님과 인
간 사이를 갈라놓는 것 만큼 큰 죄는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면서 하나님께 죄를 짓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이다. 선하지 못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경건하지 못한 모습은 우리가 버려
야 하며, 돌아서야 할 모습들이다. 선을 행한다고 하며 위선하며, 하나님보다는 이 세
상의 쾌락이 더 좋고, 경건하지 못하고 영적교만에 빠져 있는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지
는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금 얘기한 경건하지 못한 모습은 영적으로 자신
이 성숙했다고 믿을 때 오기 쉬운데, 언제나 교만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남이 보기에 경건해 보이더라도, 하나님께서 날 보시면 어떻게 보일는지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겹겹히 싸고 있는 죄의 형상, 위선을 벗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서 올바르게 생활할 때,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Ⅵ. 찬양하는 자의 결과
욥1:21, 시22:26, 40:3, 56:4, 욜2:26, 행2:47, 16: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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