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스크랩] 이슬람의 신학적 주제들

수호천사1 2011. 8. 9. 13:04

이슬람의 신학적 주제들

서론
    기독교이후의 유일한 major 종교인 이슬람은 중요한 기독교의 교리들에 대한 “defence mechanism"(방어 기제)을 가지고 있다 (Sperber 2000: 99).  이것은 무슬림과의 신학적인 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되며, 때로는 실망스런 마음만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WCC의 대화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던 John B. Taylor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이 두 종교간의 신학적 차이에 대해 대화하기를 즐겨하는 반면, 무슬림들은 이러한 신학적 주제를 가지고 기독교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그리 달가와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두 종교인들간의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상황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에 의해 얼마나 핍박을 받고, 왜곡되어 왔으며 현재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할뿐, 신학적 토론을 벌이는 일에는 별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Taylor의 관찰이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신학적 주제들을 살펴 보는 것은 무슬림들을 향한 선교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선교를 복음의 communication 이라고 정의할때,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어떠한 가르침을 받아왔고, 어떠한 가치관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별히 그 사람들이 복음에 적대적이고, 나름대로의 교리적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1.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공유하고 있는 신앙의 내용
  1)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2) 천사들의 존재에 대한 믿음
  3) 죽음 후에 이어지는 영생과 부활에 대한 믿음
  4)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인간들에게 계시하셨다는 믿음

2. 기독교 신학과 이슬람 신학의 중요한 차이점들
  1)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
  2) 예수에 대한 이해
  3) 죄, 구원에 대한 이해


■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는 방법: Tawhid vs Trinity and Incarnation
: 무슬림들이 하나님의 unity를 강조하고 기독교인들이 Trinity를 강조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두 종교인들의 하나님 이해는 기본적으로 유사해서, 하나님은 유일하신 궁극적인 실재라고 하는 점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1. Tawhid: 하나님의 유일성에 대한 중심적인 교리;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로 인간을 만드셨다.  그는 영원하시고, 통치하시며, 권능이 있고, 지혜로우며, 거룩하고, 공의롭다.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나니 그분은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도 알고 계시는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분이라.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으며 그 분은 왕이시오 성스러운 분이시며 평화를 주시고 안전을 수여하시는 분이며 모든 것을 지켜주시는 분이시며 가장 위대하시고 권세와 모든 위대함의 소유자이시라 그들이 비유하는 것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있으소서 (Surah 59:22-24).

  *이슬람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은 “99가지 아름다운 이름” (asma' al-husna. surah 7:180; 17:110; 20:7; 59:24 etc.)을 가지고 계시다.  Hadith에 따르면 “하나님은 100에서 한 개가 모자라는 99가지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계시며 이것을 외우는 자는 paradise에 들어가게될 것”이다. 
  Allah: 모든 아랍인들은 유대인이건, 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간에 하나님을 Allah로 부른다.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Allah라는 단어는 정관사 al과 하나님을 지칭하는 아랍어 ilah의 합성어라는 것이다.  ilah는 숭배와, 보호, 영원성과 권능, 창조를 의미하는 말의 어근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 단어는 다른 셈족어의 하나님에 해당하는 Elah(아람어), Alaha(시리아어), El, Eloah, Elohim(히브리어)등과 유사하다.
    유대교의 하나님, 기독교의 하나님, 이슬람의 하나님: 세 종교의 하나님 개념이 언뜻 보기에는 유사한 듯하나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해 각기 다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그 신학적 차이를 나타내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인가하는 것이 고려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유대교인, 기독교인, 무슬림은 동일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Islimicist인 William Montgomery Watt는 우리는 개념이 아니라 존재를 예배하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Worship and service is a relation to a Being, not to a conception; and Jews, Christians, and Muslims, though their conceptions differ, worship the same Being" (Watt 1983: 46).
    Watt의 이 말은 곧 오늘날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영어인 God 와 아랍어 Allah가 갖는 의미는 그것의 원뜻이 갖는 의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는 두 종교 공동체가 수세기에 걸쳐 경험했던 신앙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론적으로는 동일한 하나님이나 신학적으로, 실제적으로는 다른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다.”


2. Trinity에 대한 이해: 무슬림들은 기독교의 삼위일체론을 비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히 말하면 그렇치 않다

하나님이 셋 중에 하나라 말하는 그들은 불신자이라.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한 것을 단념치 않는다면 그들 불신자들에게는 고통스러운 벌이 가해지리라(Surah 5:76)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들은 삼위일체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삼신론(Tritheism; 하나님, 예수, 마리아)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단으로 비판받아 마땅한 주장인 것이다. 

    William M. Watt: 삼위일체론을 잘못 이해하고 단순하게 삼신론으로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이 무하마드 시대의 아라비아에 있었고, 무하마드 주변에는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수정해줄 만한 신학적 지식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없었다(Watt 1983: 50).


3. Quran 이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

1) 하나님의 초월성
    창조주 알라와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차이를 강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의 개념은 꾸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분은 대지를 창조하시고 너희를 위해 자웅을 두었고 가축에도 자웅을 두사 이로하여 너희를 번식케하시니 그 분에 비유할 것 아무것도 없도다.  실로 그 분은 모든 것을 들으시고 지켜보시는 분이시라 (surah 42:11).

2)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들 가운데 언제나 자비로우신 분(al-rahman)과 “가장 자비로우신 분” (al-rahim)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계산한다 해도 너희는 그것을 헤아릴 수 없으리니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surah 16:18)

  cf) 꾸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꾸란의 중심적인 메시지는 아니다.  사랑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평범한 아랍어는 al-muhibb인데 이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이름들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꾸란에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나 이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느냐에 달려있는 조건적인 사랑이다: 죄악을 멀리하고 정의를 사랑하며(3:76; 9:4); 신뢰하고(3:159); 인내하고(3:146); 모범이 되며(5:42); 하나님을 위해 전투에 임하는 자들(61:4)을 사랑하신다.


■ Images of Jesus in Qur'an 쿠란의 예수 이해
이슬람의 예수 이해는 기독교와 유대교의 예수이해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 기독교: Christ 이슬람: prophet  유대교: imposter

  아랍 기독교인인 Chawkat Moucarry에 의하면 예수는 이슬람에서 매우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예수는 쿠란의 15개의 surah에서 94개의 절에 걸쳐 언급되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이 보낸 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위대한 선지자로 존경받으며 어떤 무슬림들은 예수의 이름을 따라 자녀의 이름을 짓기도 한다.  부카리가 수집한 하디스에 의하면 무하마드는 자신과 예수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슬람의 신비주의인 수피즘에서는 예수가 특별히 추앙을 받고 있는데, 이븐 아라비는 무하마드가 “선지자들의 봉인“이라면 예수는 ”성자들의 봉인“이라고 하여 존경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반면에 이슬람 신학자인 'Ata ur-Rahim에 의하면 “쿠란은 예수의 생애에 대해 그다지 자세히 보도하고 있지 않으며 그가 행한 기적과 그의 능력에 대해서도 그저 평범하게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입장의 차이는 기독론에 대한 무슬림-기독교인 간의 대화의 어려움(predicament)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두 종교간의 만남과 대화의 오랜 역사에 있어서 기독론 논쟁은 가장 중요한 이유이며, 동시에 두 종교간의 화해와 조화에 가장 비생산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Smail Balic: “두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기독론 논쟁은 배제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무슬림들이 이해하는 예수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에수에 대한 신학적 고백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발릭에 따르면 쿠란은 물론 인류사에 있어 가장 뛰어난 인물로 예수를 부각시키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선지자들의 긴 역사가운데 한 인물로 그를 간주할 뿐이다.  예수를 포함한 모든 과거의 선지자들은 윤리적 가치만을 가질 뿐이며 그들은 무슬림들의 신앙에는 직접적인 기능을 갖지 못한다.
  쿠란에 나타난 예수의 위치를 높이 평가한 것은 기독교 선교사들이나 Orientalists들이었으며 그들의 예수이해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들이 갖는 전이해에 의해 잘못 이해되었고 따라서 잘못된 평가와 결론에 도달하게된 것이다.

1. 명칭
  꾸란에서 예수의 명칭은 ‘Isa로서 25번 쿠란에서 언급되어지며 이 중 16번은 ’Isa bin Maryam(마리아의 아들 예수)로 나타난다.  이것은 성경에서 예수가 마리아의 아들로 단 한 번 언급되는 것과 아주 대조를 이룬다. 

Parrinder에 의하면 무슬림 주석가들은 이 호칭이 예수가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인 인간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기독교 학자인 파린더는 무슬림 주석가들의 이러한 해석은 지나친 것으로 간주하는데, 그에 의하면 셈계 문화에서 보통 아이들의 아버지를 따라 이름을 짓는 것이 관례였으나 어머니를 따라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었으므로(예: 무하마드의 반대자였던 Abu Jahl이나 유명한 시인이었던 Ibn A'isha 나 Ibn Mayyada등)  이러한 예수의 호칭은 이사의 경우에서처럼 그저 별 뜻없는 예수의 호칭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아랍인 그 누구도 이러한 예수의 호칭이 그를 낮추어보는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너무 유명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것으로 추측한다. 

2. 생애

1)동정녀 탄생: 쿠란에서는 예수의 생애 중 그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가브리엘이 영, 또는 숨을 불어 넣어 마리아가 수태케 되었다고 설명.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짐: “그가 단순히 있으라 하니 그렇게 된 것이다”(surah3: 47--- Surah 3; Al 'Imran;The Household of Imran(마리아의 아버지)).
---동정녀 탄생이 예수의 특별한 지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cf. 아담: 부모없이 태어난 아담의 탄생이 더 위대하다.)
 
2) 예수의 이적:
surah3:49 (5:113): 태어나면서 이야기를 함; 진흙으로 새를 만듬; 눈먼자와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림.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기적을 행한 것을 강조.

3. 예수의 신성: 하나님의 아들, 성육신, 삼위일체--모두 부정
  이것은 무슬림-기독교간의 논쟁에 있어서 가장 예민한 쟁점이 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정점을 이룬다고 믿는다. 즉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유일성에 도전하는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꾸란에는 하나님이 자녀를 갖는다는 것을 부정하는 많은 구절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다 surah 112이다.
"일러 가로되 하나님은 한 분 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낳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아니했나니 그 분과 대등한 자 세상에 없도다."

이 짧은 수라는 가장 유명한 수라 가운데 하나로서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매일 반복해서 암송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자녀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에 대적할 만한 아무 존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수라는 메카시대의, 초기 수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아라비아지역에 있던 다신 숭배의 관습을 겨냥한 구절이었으나 후에 기독교의 삼위일체론과 성육신론을 비판하는 것으로 바뀌어 인용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Watt: 특별히 예수에 대한 언급이 없는 한 쿠란에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구절은 모두 아랍의 다신 숭배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특별히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일컫는 것을 문제삼아 언급한 구절이 쿠란에는 세 곳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마리아의 예수에 대한 이야기로 이것은 그들이 논쟁하는 것에 대한 진리의 말이라.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가질 필요가 없느니라..."(surah 19:34-35).

현대의 대표적인 꾸란 번역가이며 주석가인 Yusuf Ali는 다음과 같이 이 구절을 해설한다: 아들을 낳는 것은 인간의 동물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위한 육체적인 행위이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욕구로부터 자유로우시며, 따라서 그러한 행위와 하나님을 관련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손상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단지 이교도적인 유물에 불과한 것이다.

4. 십자가 수난을 부정:
  예수의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이슬람의 해석은 꾸란 4:157-158에 근거한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살해하였도다라고 그들이 말하도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고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었느니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이며 그들에게 지식이 없음이며 단지 추측을 따르는 것이어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그를 오르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 

sura 4:157 "셔비하 라훔(shubbiha lahum)“에 대한 해석--- ”그렇게 보이다“, ”유사하게 보이다“, ”가장되어지다“

대체된 수난설 (He seems that...)
  Al-Baidawi;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몰려왔을 때 하나니께서는 예수에게, 그가 예수를 하늘로 들어올릴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예수는 제자들 중에 누가 자신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고 천국에 함께 들어갈 것인가를 물었고 그들 중 하나가 자원하여 예수 대신에 죽임을 당했다.  바이다위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개입이, 즉 다른 사람에게 예수의 형상을 입혀서 수난을 받게한 것이 꾸란에서도 언급된 하나님의 뛰어난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음모를 하나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방책을 세우셨으니 하나님은 가장 영특한 계획자이시도다" (surah 3:54).

아흐마드파의 해석(It seems that...)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는 했으나 십자가상에서 죽지는 않았다.  그는 무덤 속에서 회복되었고 마침내는 인도의 카시미를 지방으로 가서 교훈을 전파하다 자현사했다.. 

Sayyid Ahmad Khan: 십자가형 자체가 사람을 죽게할 수는 없다. 단지 손바닥이나 발바닥이 찢어질 따름이다... 서너시간 후에 예수는 내려졌고, 그 때까지도 그가 살아있엇음은 분명한 일이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은 그가 다시 유대인들에게 체포될 것은 두려워하여 그를 은밀한 장소에 숨겼다.

Maulana Muhammad Ali: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당 지 몇시간 동안만 있었을 따름이며, 십자가에서 내려졌을 때 다른 두명의 강도와 함께 살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친지들이 예수를 데려갔고, 후에 예수는 가장을 하고 나타나거나 혹은 숨어 있었다고 여겨진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무슬림들의 해석의 배경:
1)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 십자가 처형이라는 부끄러운 방법으로 죽는 것을 허락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Al-Nowaihi: 이슬람은 하나님이 예수를 살해하도록 허락했다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죽음은 하나님의 정의를 침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충실한 종이 이유없이 고통당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통해 적들이 최후의 승리를 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하나님의 종인 선지지의 반대자들의 승리와 하나님의 영광은 공존할 수 없으며 따라서 수난 이야기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씌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이슬람은 대속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의 가르침에 의하면 죄지은 자 자신이 회개와 참회를 통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함으로써만 구원에 이를 수 있고 그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중보자, 혹은 타인에 의한 속죄는 불가능하다.  이슬람은 신앙문제에 관한한 하나님과 인간과의 직선적인 관계를 강조하며,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제직을 두는 것도 거부한다.
      인간은 자유로운 주체적 존재로서 자기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청원된 용서와 구원에 관한 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달려 있다는 것이다.
      Cragg에 의하면 십자가 사건에 대한 무슬림들의 뿌리깊은 부정은 비록 예수가 십자가 상에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가 우리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러므로써 우리의 용서를 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음에 기인한다.  그와 같은 믿음은 부도덕한 것이기 때문이다.

Kenneth Cragg: 무슬림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구원론적으로 일어날 필요가 없었으며, 신론이나 기독론의입장에서 볼때 일어나지 말아야 했으며, 따라서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 꾸란에 나타난 죄와 구원의 문제

죄: 꾸란에서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이해되며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이슬람에서 가장 무서운 죄는 Shirk이다 (surah 4:48; 116).
꾸란의 관점에서 죄는 죄를 짓는 자에게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이유로 무슬림들은 원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은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비록 원죄의 개념을 인정치는 않으나 이슬람의 인간이해 역시 인간은 “무엇보다도 죄악에 물들기 쉬운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수 많은 선지자가 인간역사에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구원:기독교와 이슬람은 모두 하나님이 선하시고, 인류의 선을 원하시며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신다고 증거한다.  즉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인간이해에 따르면 인간이 죄악에 물들기 쉬운 존재이기는 하나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기력하거나 수동적이지 않다. 

(1) 믿음과 복종: 꾸란에 의하면, 구원은 무엇보다도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실천, 또는 행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무슬림의 구원은 꾸란에 계시된 진리를 믿고 그에 따르는 종교적 의무와 도덕적 이상을 실천하는 것에 달려 있다.

(2) 회개: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면 진실된 회개를 해야 한다.

(3) 무하마드의 중재: 꾸란에는 나타나지 않고 하디스에 근거한 믿음 (cf. 무하마드의 간구와 예수의 간구).

(4)용서와 형벌: 꾸란에 의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자 가운데 으뜸이시나 피조물의 행위에 속박되지는 않는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제이다(2:284; 3:129; 5:18; 40; 48:14).  꾸란에서 약속하는 구원은 종말론 적이다.  마지막 심판 때에 선행이 악행보다 무거우면 천국에 갈 것이고, 그 반대일 경우는 지옥에 가게될 것이다.

무슬림: 악행이 선행보다 무거워도 지옥에서 그 값을 치른 후에는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게된다.
비무슬림: 영원한 형벌을 면할 길이 없다.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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