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나쁜신앙)

[스크랩] 뉴에이지 운동의 뿌리 (김호)

수호천사1 2011. 5. 4. 08:43

뉴에이지 운동의 뿌리

 

 

1. 사탄의 기만과 바벨론 종교

뉴에이지 사상의 대부분의 개념은 고대 종교 체계들에서 나온 것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주요 사상들은 창세기에 나타난 인간 타락 사건 속에 그 본질적인 정신이 내포되어 있다.

사탄은 아담과 이브를 불복종의 달콤함으로 유혹하여 복종 외에 다른 선택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사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함으로써 이브에게 또 다른 세계에 대해 유혹하였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창 3:4-5)

이 성경 본문에 포함된 네 가지 기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달콤한 유혹이었고, 뉴에이지 운동의 근본 뿌리가 되었다. 사탄의 방법은 상황에 따라 변할지 모르지만.,그 메시지의 본질적 요소는 시대가 변하여도 불변하여, 시대마다 다른 문화적인 옷을 입고 계속해서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러면 네 가지 기만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자만, 즉 모든 것이 인간의 정신 속에 잠재해 있다는 믿음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탄의 기만 속에 나타난 의도와 전략은 뉴에이지 운동에 숨겨진 많은 동양의 종교들과 신비주의, 세속적 휴머니즘 현상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다. 노아 홍수 이후 고대 바벨론의 절대 군주였던 니므롯은 처음으로 시날(Shinar) 땅에 강력한 왕국을 세우고 영걸인 자신이 숭배받기 위해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로 언어가 혼잡해지면서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결국 니므롯(Nimrod)을 섬기는 우상 숭배 행위가 전 세계로 전파됨으로써 태양신 숭배를 비롯한 신비 종교를 탄생시켰으며, 고대 이방 종교들의 시조가 되었다. 특히 바벨론의 신비 종교는 모든 종교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본질적으로 뉴에이지의 운동과 종교 의식, 예배, 교리 등 많은 점에서 매우 흡사하다. 결국 이 운동을 면밀히 살펴보면 하나의 체계임을 알 수 있다.

2. 힌두교

힌두교는 B.C. 1500년 경에 생겼는데, 매우 복잡하며 수세기에 걸쳐서 발전했다. 중요한 개념은 살아 있는 존재들 속에 영원한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트만(Atman)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주에 생명을 주는 우주적 정신(cosmic spirit)을 뜻하고, 개인의 마음 중심에 존재한다고 보며, 힌두교의 유일한 궁극적 실체 즉 신(神)이라고 보는 브라만 개념과 연결된다. 또 운명주의는 인간이 브라만의 일부라는 힌두교의 신앙이기도 하고, 카스트 제도는 섬기는 자가 있고 섬김을 받는 자가 있는 계급 조직이다. 그들의 중심교리인 업(業), 즉 카르마(karma)는 인과율(因果律)이다. 악한 행위들은 악한 결과들을 낳고, 선한 행위들은 선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힌두교의 목표는 생전에 보다 높은 차원을 추구하면서 선한 업을 쌓는 일이다. 그들은 인간 존재의 최후 단계인 니르바나(Nirbana)로 영혼을 데려감으로써 완성되는 윤회의 사슬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요가를 통해서 윤회의 사슬에서 육신과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힌두교의 구원관은 극기와 명상을 통하여 얻은 지식으로 인해 업의 수레바퀴로부터 해방되어 브라만으로서 환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사랑과 인간 관계 속에서 베푼 사랑의 결과 등으로 평가된다.

힌두교의 경전인 베다(Veda)는 힌두교의 예배 의식 때 사용되는 태양이나 다른 신성한 존재들에게 하는 기도 주문을 포함하고 있다. 우파니샤드(Upanisads)는 후대의 경전들로서, 보다 불가사의하고 신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가장 신성한 책으로서 바가바드기타는 B.C. 1세기 동안 기록된 것으로 크리슈나와 아르주나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졌으며, 이 책은 신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 인도하는 경전 중의 경전으로 평가받는데, 카르마를 비롯한 많은 교리가 뉴에이지 사상에 흡수되어서 뉴에이지의 사상적 뿌리가 되고 있다.

3. 불교

불교의 현실관은 불심(佛心)을 가지고 인간의 의식을 초입하여 참 자아(自我)를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내면과 외면의 구별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자기 내부에 있는 참 자아 밖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무(無)인 것이다. 표면적으로 시야에 비치는 모든 사물들은 단지 불심을 동요케 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불심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교리는 2500년 전 인도를 방랑하며 부처, 즉 도를 깨우는 사람으로 추앙되는 수도자 싯다르타(Siddhartha, Gautama)의 생애와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다. 오늘날 부처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자들은 전 세계에 걸쳐 5억이 넘는다. 그들 대부분이 아시아에 편중되어 있기는 하나 상당수가 유럽과 북미주 지역에도 거주하고 있다.

불교는 세계적인 주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믿음과 실행이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뉴에이지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불교가 뉴에이지 사상에 미친 영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불교보다 적어도 천년은 앞서 발달한 불교의 모체인 힌두교도 뉴에이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양대 종교는 특히 윤회(rebirthing)와 업(karma)을 강조한다.

이들은 인간이 오직 선을 충분히 쌓음으로 인해서 반복되는 탄생과 죽음, 환생의 숙명적인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선(善)을 쌓는 것만이 인간을 물질세계로부터 해방시켜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해방된 상태를 열반(涅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고통이 끝나고 영원한 기쁨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특히 선종(禪宗)은 부처 사후 1000년 후에 발전된 새로운 종파로서 서양에서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으며, 뉴에이지 사상들을 제공한다. 명상을 뜻하는 일본어(Zen), 즉 선(禪)도 역시 뉴에이지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데 중국의 타오(Tao), 즉 도교와 많은 연관성이 있다. 도교의 기본 사상은 현상 세계를 움직이는 이면에는 도(道)라는 것이 있으며, 이 도를 현상 세계의 본질로 보는 것이다. 이 도는 영원 불변하는 원리이며 우주 만물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수동적인 힘인 음(陰)과 능동적인 힘인 양(陽)의 상반되고 조화로운 세력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우주 만물이 생성된다고 믿는다. 선은 존재 중심의 상실되었던 상태를 회복하는 사상을 포함한다.

이것은 명상에 의존함으로 “너는 부처이다. 너 자신의 내면을 살펴라”는 것인데 뉴에이지의 맥락에서 보면 이 가르침은 “너 자신 안에서 신(神)을 발견하라”, “인간은 모두 신(神)이다”라는 뉴에이지의 가르침 그 자체이다.

4. 영지주의

이 주의는 유대주의, 동방 신비주의,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를 혼합한 일종의 혼합주의(syncretism)이다. 이 주의의 기원은 기독교와 때를 같이 하며 사도시대 말기의 케린더스(Cerinthus), 2세기 초엽의 바실리데스(Basilides)와 2세기 중엽의 발렌티누스(Valentinus)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케린더스는 이집트의 지혜를 공부하였고, 그의 그리스도관은 에비온주의를 따른 것으로서, 예수님이 신성을 가진 것은 침례 받을 때 성령이 그에게 내려옴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이 운명하시기 전에 성령은 예수님을 떠났고,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예수님은 신성을 가진 예수님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 예수라고 한다. 그의 신관은 그리스 철학적인 이원론이다. 예수님의 처녀 탄생을 부인하며,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지혜롭고 매우 도덕적인 위인이며, 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존재로서, 예수에게 깃들어 계셨다가 십자가형 직전에 떠나갔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수난은 가현이라는 것이다.

케린더스주의는 그 후 점차로 가감 증보되어 영지주의의 체계가 형성되었다. 영지주의는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이원적 신관을 가진다. 많은 에온(Aeon)들의 집성체인 선신(善神)은 유출하여 물질계에 이르고, 또 그것은 악신(惡神)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에온의 하나로서 그의 육체는 가현적이었고, 십자가에서 떠났다. 구원관은 높은 지식을 통해서 얻는다는 것이며, 이로써 이 주의의 이름이 생겼다. 이 지식은 사색적인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것으로 이를 달성한 사람은 극소수였다. 영지주의 용어의 어원은 지식이란 뜻의 그노시스(gnosis)에서 왔다. 이 지식은 비교적 신비적인 것으로서 특수 계층에 속하는 영적인(pneumatic) 사람만이 소유할 수가 있다. 신앙 이상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는 정신적(psychic) 계급의 사람들이 있는데, 선지자들이나 선량한 유대인들이 이 계급에 속한다. 이들은 참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 한 등급이 낮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인간은 물질적(hylic) 계층에 속하며, 따라서 그들은 사탄과 자신들의 육욕에 사로잡혀 희망 없이 살아간다.

영지주의자들의 가르침은 물질은 회복이 불가능하게 악하며, 구원은 이 물질을 극복하고 없이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이 일은 참 지식(gnosis)을 가지고 금욕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가능하고, 참 지식은 영적인 계층의 사람들에게만 온다. 물질을 멀리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물질적 향락을 삼간다. 처음에 이들은 위험의 근원을 발견하고 물질적인 것의 감염을 두려워한 나머지 순수한 쾌락마저도 거절했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생활을 할 때에 발생하는 육욕적이고 방종한 생활이 이들에게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영지주의는 인간은 신(神)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영지가 뜻하는 것처럼 인간이 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 능력은 무한하다고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죽음 자체를 환생이라고 보고 영지주의를 비밀스러운 계시의 신화로 보며, 특정한 소수에게만 전수되는 밀교적인 지혜는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힘과 싸워서 이기게 하고 또 우주의 비밀을 해독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 지혜로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논리에서 이 사상은 뉴에이지의 근본적인 뿌리가 된다.

5. 요가

요가는 일반적으로 의(意)를 다스려 마음의 통일을 기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요가(Yoga)는 결부시킨다는 의미의 Yuj, 즉 영어의 Yoke에서 나온 말로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 한 목적을 위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요가의 목적은 명상에 의해서 절대자와의 합일을 실현함에 있다. 이 요가는 육체적인 훈련과 수양 때문에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 있으며 차원 높은 목적을 이루는 기초가 되고 있다. 요가의 8단계는 보편적 도덕률 - 자기 정화 - 자세 - 호흡 조절 - 정신을 살핌 - 집중 - 명상 - 초의식 상태 도달이다.

이 요가는 명상 훈련에서 시작하여 자아를 해방시켜서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끌어 가려는 힌두교에서 발전되어 나온 힌두교의 구성 요소이다.

뉴에이지 요가의 대부분인 마하리쉬(Maharishi)는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지에서, 요가는 자연법에 근본을 둔 진화론에 근거한 과학으로 접근하기에, 우리 삶에서 직면하는 문제들과 범죄에 대하여 적극성과 조화를 이루어 범죄의 근절을 가져온다고 주장했으며, 이렇게 시작한 신문 지면의 1/5에 해당하는 장문의 글로 자기의 요가 학교를 소개했다.

요가의 대스승이라 불리는 스리 육테스바(Sri Yukteswarh)는 어느 날 아침 햇빛을 받으면서 발코니에서 요한복음 11:1-4의 나사로의 병을 두고 예수님께서 “죽을 병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신 것에 착안해서, 요가를 통해서 죽지 않은 삶을 실천해 보이고 제자들에게 전수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가에서는 물질적 우주와 형이상학적 우주의 합일을 말하고 천국과 지옥은 오직 마음의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강신술, 마법, 신비 종교 등의 사상적 배후에는 요가의 원리가 있음이 어디서나 쉽게 발견된다.

요가의 사상은 뉴에이지 운동의 교리와 일치하는 것들로서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자신의 육체와 의식을 다스리며 나아가서는 의식 확장과 고등 의식 개발을 위해 요가의 정신 훈련과 신체 훈련을 하는데, 정신 훈련으로는 명상, 자율신경 훈련, 정신 통일과 ‘만트라’(Mantra)를 반복하는 코안(Koan, 48가지의 요가 자세)을 하며, 신체 훈련은 호흡 훈련과 연화좌, 코브라좌, 물구나무서기 등의 여러 가지 몸의 자세를 포함하고 있다. 가끔 사람들은 이러한 요가의 초보 단계인 신체 요법적 요가는 신체 이완 운동이기 때문에 아무 해악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이완 기법과 자신을 텅 비우는 수련은 다른 영의 유입을 초래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지나친다. 그리고 요가는 해방시켜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속박하며, 성령이 아닌 악령을 영접하게 하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대속의 진리를 전혀 감지하지 못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사탄의 세력 아래 붙잡히게 하며, 악령 숭배로 귀결하게 한다.

그러므로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고 요가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매지 말라”는 말씀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갈 5:1)

- 김 호 지음『성경의 입장에서 본 뉴에이지 운동』(생명의 말씀사)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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