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생명력
생각은 있는 것을 파악하는 능력이지만 기도는 임할 것을 향하는 생명력입니다. 그러니 기도하는 마음은 있는 것으로 결정되어버린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기도에서 있는 것에 속박되지 않는 생명력의 피어남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기도의 생명력에 담은 것입니다. 있는 것은 생각에 담겨지고, 행위는 법에 담겨집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에 담겨진다고 예수님은 가르치신 것입니다.
기도는 마음이 피어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으로 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행위를 세운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기도하는 마음을 세운다고 하게 됩니다. 기도로 표현되는 궁극적인 마음의 내용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행위를 규제하듯이 일일이 그 내용을 정하여 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그때 기도 가운데 임하여 지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는데서 하나님의 나라는 임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란 욕망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은 있는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기도는 임할 것을 향하여 표현되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향하여 마음이 바라는 것은 욕망이지만 임할 것을 향하여 마음이 바라는 것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임할 것이라고 하는데는 구원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삶에 신기한 것이 더하여지는 것으로 임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구원의 내용으로 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구원의 내용을 지니며 피어난다고 하게 됩니다.
구원이란 임하는 것이 있는 삶에 주는 뜻입니다. 임할 것이란 있는 삶에 무언가 추가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삶에 구원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있는 삶에 추가의 뜻이 아니라 구원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란 구원을 향하여 피어나는 생명력이라고 하게 됩니다. 구원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기도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로 가장한 욕망은 있어도 기도는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삶의 만족이나 행복이 구원이 아닙니다.
임하는 내용으로의 구원에 대한 감각이 없을 때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그런 삶에는 기도가 없습니다. 기도로 위장된 욕망의 표현이 있을 뿐입니다. 구원에 대한 감각은 삶에 기도를 피어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애굽으로 입은 구원의 내용을 민족과 땅의 근거로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민족으로 드러나는 삶으로 보이려고 하였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럴 때 예언의 시각으로 구원의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원이란 기도 가운데 임하는 것임을 눈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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