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가?
오늘날 세상은 지독한 성공지상주의(成功至上主義)에 빠져 있다. 성공이 삶의 목적이며 가치라는 생각이나 이념을 가장 중요하고 여기며, 제일의 것으로 삼는 견해나 주장이 최우선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성공하지 못하면 무조건 실패(失敗)로 여겨 낙담하거나 좌절에 빠져 삶을 포기하기까지 하는 상황에 이르는 이들이 적지 않은 살벌(殺伐)한 세상을 살고 있다.
사람의 삶을 살벌하게 하는 성공과 실패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 두 낱말을 서로 대비(對比)시켜 반의(反義)관계로 이해하려 한다. 즉, 반댓말로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국어사전은 이 두 낱말을 서로 반의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이 오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성공'이란 '뜻하던 바나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요, '실패'란 '일이 잘못되어 뜻한 대로 되지 않는 것. 일을 그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즉, 성공이란 '뜻을 이루는 것'이요, 실패란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성공과 실패를 설명할 때 똑같이 언급된 '뜻'이란 무엇인가? 성공과 실패를 이해하려면 '뜻'에 대한 이해를 정립(正立)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뜻'을 이해하지 않고는 사전에서 설명되고 있는 성공과 실패를 가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서는 '뜻'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설명한다. 첫 째, '말이나 글, 또는 행동이 나타내는 내용'이라는 설명이다. 다음은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의견이나 의사'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려고 속으로 정하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일이나 행동이 지니는 가치나 중요성'이라는 설명도 있다.
웬지 사전은 '뜻'을 설명하면서 너무 추상적(抽象的)인 것아 석연(釋然)치 않고 그저 막연(漠然)하게 여겨진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그래서 지극히 특정한 개인에게 만 적용시킬 수 있는 설명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 없게 한다. 결국 '뜻'의 정확한 설명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판단으로 결정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뜻'에 대한 이해라고 여겨진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가? 어떻게 이 두가지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에게 성공이라고 여길 수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실패로 여길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이 실패로 여길 수 있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성공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를 개인적인 이해로 확정 짓는 것은 결코 타당한 일이라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무조건 자기가 바라는 일이 뜻대로 되면 성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실패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자기주관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거나 단정짓는 일은 결코 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성공한 듯 싶지만 모두의 실패를 가져오게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실패한 듯이 여겨지지만 모두를 위해 진정한 승리를 가져오게 되는 일들이 이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로 성공이란 자기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성공으로 여긴다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스스로 '나는 성공했다'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랴.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어찌 사람의 욕심이 다 채워져 '나는 성공했다'라고 자족할 수 있으랴. 어쩌면 이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가 자기가 뜻하던 바나 목적하는 바를 이루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자기가 성공했다고 여긴다 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이 모두 성공했다고 여긴다 할지라도 당사자는 그것을 도저히 성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이루어야 할 뜻에 대한 욕망으로 계속 불만족스럽게 여긴다. 마치 노아의 후손들이 시날평야에서 하늘까지 닿게 할 높은 탑을 세우려 했던 불가능한 욕심과 흡사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성공이라고 여기지만, 본인은 아직도 뜻을 완전히 이루지 못한 실패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에 안주(安住)하면 이루어야 할 더 큰 뜻과 목표를 상실하여 정체된 것으로 진정한 성공이라고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뜻을 이룬 사람은 계속적으로 더 큰 뜻을 추구하며 더 많은 성공의 목마른 삶을 일생동안 반복하게 된다. 이런 삶을 어찌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으랴.
참으로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성공이란 없다. 이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란 삶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실패도 마찬가지다. 성공이라는 것이 삶의 지나가는 한 순간의 과정이라면, 실패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상을 사노라면 때로는 자기의 일이 뜻대로 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은 수없이 반복되는 것이 삶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성공이라, 무엇을 실패라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성공과 실패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자기의 뜻한 바가 이루어졌다고 하여 그것을 성공이라 여겨 자부할 것이 아니며, 자기의 뜻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그것을 실패로 여겨야 할 이유는 없다. 세상을 살아가며 자기의 뜻은 이루어질 수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자기의 뜻은 살아가며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변경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한 순간적인 뜻의 이룸을 성공으로 여겨 희희낙락(喜嬉樂樂)할 것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그것을 실패로 여겨 좌절하거나 낙망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하물며 그런 일로 자만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그만한 일로 자포자기(自暴自棄)하여 스스로를 비관하며 삶을 포기하는 위험한 결단(?)으로 자기 목숨을 희생시켜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런 사람은 모두가 성공자도, 실패자도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은 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최근에 수재들이 다니는 명문대학 카이스트에서 재학생 몇 명과 유능하고 실력이 인정되는 우수한 교수 한 명이 자살했다는 소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자살한 학생들은 한 때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당시의 성공은 물론, 미래의 성공이 보장된 듯이 여겨져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자살한 교수도 우수한 교수로 칭찬과 표창을 받던 당시에는 분명 성공한 교수로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들은 진정한 성공자가 아니었다. 저들은 자기들이 이루고자 하는 뜻을 더 이상 이룰 수 없다는 자괴감이 빠져 스스로의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삶의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해한 이들을 어찌 '지혜로운 성공자'라고 할 수 있으랴.
분명히 기억하라. 성공과 실패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얼마든지 반복되는 삶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성공과 실패가 삶의 최종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이것에 집착한다면 이는 분명 어리석은 일이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공연히 이런저런 일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살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채 세월만 낭비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성공이나 실패가 무슨 상관이랴.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항상 어떤 미완성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어떤 뜻이나 목적을 이루고 싶어하는 욕심의 끝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항상 오늘보다 더 높은 만족을 위하여 또 다른 뜻과 목적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살아간다. 성경도 사람의 욕심은 채울 수 없다고 증거한다. 채울 수 없는 욕심의 과정에서 어찌 성공과 실패가 존재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성공했다고 지나치게 자만할 이유도, 실패했다고 지나치게 절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 어느 때에도 그 처해진 상황과 때에 합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대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새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되기도 한다. 미래가 준비된 사람에게는 현재의 성공과 실패에 결코 집착하지 않는다. 그것을 초월하여 삶의 과정을 더 충실히 하여 저의 삶이 더욱 독실(篤實)해진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야 말로 진실로 현명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인 논리로 이해하지 말라. 그것은 결코 서로 반의적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님을 잊지 말라. 오직 성공과 실패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단히 경험하는 과정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일은 얼마든지 순조로울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일의 방향을 온전히 바꿔야 할 때, 지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부단히 참고 견디며 더 경주해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시시비비(是是非非)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지 말라. 노력이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더 노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라. 모든 일에 신중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이제는 더 신중하기 위해 힘쓰라. 지극히 작은 일 하나를 소홀히 여겨 대강대강 처리하는 실수를 인정하고, 더 면밀한 검토와 검증을 거쳐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는 변화의 기회로 삼으라.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성공이라고 스스로 단정해버리는 어리석음을 피하라. 진정한 성공은 자신이 죽은 후에 살아 남은 자들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나 자신이 얼마나 즐거워하며, 그 일로 인하여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일이 이기적인 것인지 이타적인 것인지를 가름하여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일로 비교우월감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불행하게 한다. 이런 사람은 개체의 존재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기 삶의 한 과정을 전부로 착각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결코 현실을 바르게 인정하는 태도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지 않는 자는 불행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를 포기하게 된다. 깊은 절망에 빠져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폐인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사람이 폐인으로 살기를 결코 바라지 않으신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 부단히 자신이 하는 일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말라.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만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와 목적을 두고 살기 원하신다. 이런 자들을 도우시는 분이 곧 인생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결코 자기가 원하던 바대로 현재의 뜻을 이루었다고 그것을 성공했다 여겨 자만하지 말라. 또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실패로 여겨 좌절하지도 말라. 성공과 실패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출발점에 서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과정일 뿐이다. 잘 준비된 자만이 성공과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바르게 다스리는 삶을 살 수 있다. 이런 자만이 과정과정마다 성공이라는 짜릿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확율이 높아지고, 오늘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내일의 도약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것을 변명하거나 핑계하지 말라. 실패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인정하라. 실패를 시인하고 인정하는 것은 회생의 기회로 발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변명하거나 핑계는 회생의 기회가 영영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는 좌절이 기다릴 뿐, 절대로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절대로 변명하거나 핑계하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여라. 그래야 비로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이 의미있고 행복을 가꾸는 보람찬 것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이들은 처음부터 자기의 모든 뜻을 이루는 이들이 아니었다. 모두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패의 쓴잔을 경험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였기에 그로 인해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끝내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공했다고 비쳐질 정도로 자신의 삶을 회복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자기의 성공에 연연하지 않는다.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여 다시 도약할 모두와 더불어 함께 하는 뜻을 세워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이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성공이란 항상 모래성을 쌓음과 같다. 실패와 동반되지 않은 성공이란 자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사막에서 경험하는 신기루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실패를 함정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당황하거나 겁내지도 말라. 그것은 결코 자기 삶에서 최종적으로 이루어야 할 뜻이거나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들이 결코 자신을 좌절시킬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실패를 딛고 일어서면 오히려 더 큰 뜻을 이룰 수 있는 기회에 도달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라.
이제부터는 삶의 과정을 즐겨라.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상관하지 말라. 우리가 가져야 할 진정한 뜻과 목표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 있어질 하나님의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원대한 기대감으로 세워져야 한다. 그런 기대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작은 일들로 성공과 실패를 운운하며 희희낙락할 이유가 없다. 세상에서의 어떤 삶의 과정들도 모두 삶의 한 과정으로 여겨 최선을 다할 뿐이다. 어떤 뜻을 이루었다고 하여 그것을 성공으로 자족하여 자만하거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여 그것을 실패로 여겨 실족하여 좌절하는 일에 빠지지 않는더. 오직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즐길 뿐이다.
기억하라. 오늘을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만 내일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내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에 비로소 종결된다는 사실을!
2011. 4. 12 (화)
글/ 불꽃 石一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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