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숭배인 제사(祭祀)를 성도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1. 들어가는 말
한국교회는 명절 때 차례나, 조상 기일이 되면 제사(祭祀)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어왔습니다. 제사는 한국의 전통문화 중 가장 비중이 큰 예절(제례)문화입니다. 유교는 부모에 대한 존경을 사람됨의 기초로 생각하고 제사는 효(孝)의 연장선에서 파악합니다. 그러므로 동양적인 문화에서는 제사(祭祀)를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니라, 효도(孝道)의 행위이고, 미풍양속(美風良俗)이므로 기독교인들 중에도 제사를 드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목회자 분은 제사(祭祀)는 조상님들을 섬기는 효도행위지 우상숭배(偶像崇拜)가 아니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 중에도 혼돈하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바울을 비롯한 성경의 가르침은 제사(祭祀)가 무익할 뿐 아니라, 귀신(鬼神)에게 드려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고전10:20). 이에 한국교회는 제사를 거부했고 그로 인해 많은 박해를 받았으며 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시련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굳건한 신앙을 견지한 선배들 덕분에 오늘의 기독교는 그 순수함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꽤 오래 전부터 제사(祭祀)가 우상 숭배가 아니라, 하나의 미풍양속(美風良俗)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천주교는 이미 오래 전에 제사(祭祀)가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교황의 교서를 내렸습니다. 과연 제사는 우상 숭배인가, 미풍양속인가? 그것이 우상숭배라면 우리는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고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면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는 효도도 아니고 조상숭배인 우상숭배(偶像崇拜)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2. 제사(祭祀)의 의미
조상숭배제사 제례(祭禮)는 신(神)의 뜻을 받아 복(福)을 비는 의례입니다. 조상숭배인 제사에 대한 제례가 가장 발달한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통치 이념이었기 때문에 조상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습니다. 따라서 조상 제사 숭배 의례도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치국이념으로 성리학을 채택하였고, 성리학의 중요 내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禮)”입니다. 특히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조상숭배의례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제사(祭祀)의 의미는 조상숭배에 대한 의례 행위라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조상은 누구이며 자손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먼저 알아보는 일입니다. 한국인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서는 조상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즉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 잊혀지고, 산 사람과는 단절되는 문화가 아니라. 즉 조상들은 죽었지만 자손들과 관계가 단절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조상에 대한 인식은 통과의례에서 여실이 보여줍니다.
첫째로 제사의 의미로서는 한 사람이 조상이 되는 시작이 환갑의례입니다. 곧 환갑부터 죽음까지는 “살아 있지만 죽은 조상”의 대접을 받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제사의 의미로서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노인” 대접을 받는 상청(喪廳)의 단계입니다. 죽은 뒤부터 탈상 때까지 3년 동안은 장남 집의 마루에 혼백을 모신 상청을 마련해 놓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산 자손은 죽은 조상을 위해 상식(上食)을 올리고 생신도 지내 드립니다. 또 그 집에 찾아온 손님은 제일 먼저 상청에 인사를 드린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인사해야 합니다. 이 밖에도 평소에 담배를 좋아했다면 담배도 피워 놓는 등 마치 집안에 살아 계신 어른처럼 대접합니다. 3년 탈상 전까지는 죽었지만 산 사람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로 제사의 의미로서는 제사기간입니다. 탈상이 끝나면 상청에 있던 혼백은 장남 집의 사당에 모시게 됩니다. 제사 기간 동안 그 조상은 적어도 1년에 4번 이상 자손으로부터 대접을 받습니다. 곧 본인의 기제사 날, 배우자의 기제사 날 그리고 설날과 추석의 차례입니다. 이 제사 기간은 약 1백 년 동안 계속 됩니다. 그것은 1대를 25년으로 잡아 4대(고조)가 될 때까지 제사를 받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제사의 의미는 시제입니다. 종손으로부터 4대조 이상이 되면 사당의 위패는 장손의 집을 떠나 묘에 묻히면서 먼 조상이 됩니다. 시제대상이 된 조상에게는 1년에 한 번씩 대개 음력 10월이나 3월에 문중 자손들이 묘에 찾아와 차례를 올립니다. 이 묘제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제사의 의미를 정리해 보면 우리 조상들은 크게 네 단계로 나뉘어서 후손으로부터 대접을 받습니다. 곧 첫 단계는 환갑에서 사망까지로서, 살아 있지만 죽은 것으로서 산 조상의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사망에서 탈상까지 죽었지만 “살아 있는 노인” 대접을 받는 상청 시기의 단계입니다. 당음은 상청 기간이 끝나고 자손집의 사당에 조상으로 모셔져서 1년에 4번 대접을 받는 제사 기간입니다. 마지막은 1년에 한 번씩 묘지에서 자손들과 만나는 시제 기간입니다. 따라서 제사의 의미는 조상은 죽었지만 자손의 기억과 생활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1) 역사로 본 제사(祭祀)
중국의 공자이전 하(夏)나라와 상(商)나라 때에 제사(祭祀)를 지낸 기록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드린 것이 아니고, 뛰어난 황제에게 지냈습니다. 제사(祭祀)의 이론적인 뒷받침은 송나라 주희(주자)가 유, 불, 도교의 영향을 받은 유교철학(성리학)을 만들어 처음으로 조상에게 반드시 제사를 지내야한다고 강조한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서(禮書)에 의하면 “제왕은 하늘에 제사지내고, 제후는 산천에 제사지내며, 사대부(士大夫)는 조상에게 제사지낸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에게는 천지가 절대자이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에게는 산천이 절대자이며, 그렇지 않은 사인(私人)에게 있어서의 절대자는 조상이라는 데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세시(歲時)풍습(風習)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까닭은 효(孝)를 계속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조상을 섬기는 제사(祭祀)를 일러 “효를 계속하는 곳” 이라고 합니다.
2) 한국의 제사(祭祀)의 역사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는 특수한 왕만 제사(祭祀)를 지냈습니다. 불교(佛敎)가 성행했던 때에는 조상에게 제사(祭祀)지내지 않고, 13세기말 고려 말에 유교의 성리학 영향으로 사람들이 사당(위패나 신주를 모시고 제사 드리는 곳)을 짓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종교를 성리학으로 결정하고 조상(祖上)의 제사를 태조(太祖)가 장려하였으나 평민들은 처음에는 제사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제사(祭祀)를 장려한 교육적 목적은 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 제사를 받도록 노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점점 제사가 평민들까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제사(祭祀)는 한국의 것이 아니라 중국의 풍속(風俗)입니다. 13세기 억지로 왕가에서 강요해서 생긴 풍속입니다. 유교에서 온 풍속이 한국에 정착된 것입니다.
제사(祭祀)는 중국의 계급사회를 반영합니다. 원래는 왕, 제후, 충신과 같은 상류층에서만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제사(祭祀)를 지내야만 궁중의 위대한 신하가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주나라 때는 홍제는 7개, 큰 제후는 5개, 작은 제후는 3개, 제상들은 2개, 관원과 스승은 1개의 사당을 갖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평민들은 무덤에 가서 제사(祭祀)지내게 했습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와서 이 질서가 깨지고, 제사(祭祀)가 일반화되었습니다.
고려 말엽 공민왕 2년에 정몽주가 제정한 제사(祭祀)규정을 보면 3품관 이상은 증조부모까지 3대를 제사지내고, 6품관 이상은 조부모까지 2대, 7품관이하 서인들은 부모까지만 제사(祭祀)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제사도 신분에 의한 차별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칠품 이상의 관원은 불과 20% 미만으로 일반국민의 80% 상당의 인원이 칠품이하의 관이나 서인이었기 때문에 전 국민 중 대부분은 부모제사만 지냈습니다.
조선조의 경국대전에서도 이런 신분에 따른 제사 제도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다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모두가 앞을 다투어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지내게 되었습니다. 신분제도(身分制度)가 철폐되면서 상위자가(관원) 조부모까지 하향하지 않고, 서민들까지도 고조부모까지 상향해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69년에 제정된 가정의례준칙(家庭儀禮準則)을 통해 조부모까지의 제사를 권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것이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글자 그대로 제사는 조상섬기는 우상숭배(偶像崇拜)입니다. 분명하게 제사란 종교적인 우상숭배이며, 그것은 제사 의식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우선 지방의 내용을 보면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씁니다. 여기 신위(神位)라는 말은 신(귀신)이 앉았다는 뜻입니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신(祖上神)이 나타나 굽어 살펴 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제사는 하나님께 죄(罪)가 됩니다. 죽은 자를 기념하지 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사는 분명히 조상신(祖上神)을 묘사하고 있고, 참신(參神), 강신(降神), 초헌(初獻), 축문(祝文)등은 모두가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조상을 신으로 여기는 말에 해당합니다. 제사(祭祀)가 진정 효도(孝道)라면 중국으로부터 제사가 들어오기 전에는 제대로 효도(孝道)를 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될 것이며, 제사를 지내지 않는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불효자(不孝子)인 셈입니다.
3. 제사(祭祀)의 종류
한국의 미풍양속(美風良俗)에서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祭祀)는 효(孝)를 지속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제사에는 기제(忌祭), 시제(時祭), 차례(茶禮), 묘제(墓祭)가 있습니다.
1) 기제(忌祭)
기제(忌祭)는 해마다 고인이 돌아가신 날(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로써 세인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제사이며, 기독교인들은 이날 추모예배로 대신하곤 합니다. 과거 기제의 봉사대상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4대조까지 지냈으나 현대에는 대개 2대조까지, 그리고 후손이 없는 3촌 이내의 친족에 한해서 기제를 지냅니다. 죽은 친족을 굶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이는 곧 제사(祭祀)란 죽은 조상도 음식을 잡수셔야 살 수 있다는 신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흔히 “제사 잡수신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이것은 생활이 어렵거나 부양할 자손이 없는 근친을 돌보는 것 같이 죽은 조상도 친척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필자의 가정에서 동학 혁명의 주인공인 전봉준 누나가 후손이 없어서 필자의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조상이 굶게 되면 그 동티(재앙)가 친족 자손에게 내린다는 신앙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상이 굶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 굶주림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속 집안에다 재앙을 내린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문중에서는 양자를 들려서라도 제사를 지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이러한 전통적인 기제사를 이해 속에서 제사문제로 예수님을 믿기를 망설이는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2) 시제(時祭)
시제(時祭)제사는 돌아가신 날에 관계없이 적절한 날을 택하여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즉, 시제는 어떤 지역에 문중을 형성하고 있는 씨족(氏族) 마을 구성원들이 5대조 이상의 조상을 위해 지내는 제사를 말합니다. 전통 사회에서 시제의 양산은 훌륭한 조상의 자손임을 증명함으로써 향촌 사회의 지배 계층으로 인정받는 측면과 더불어 한곳에 대대로 뿌리 내리고 살고 있는 집단이라는 과시적인 면도 있습니다.
전통 사회에서 개개인은 “서 아무개” 개인으로서의 행세보다는 그 지역의 “서씨 문중”의 일원으로서 대접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 지역 여러 성씨의 문중간의 위세 경쟁은 바로 각 개인의 그 지역에서의 이해관계와 직결되었습니다. 시제는 바로 이 문중의 위세를 위한 행위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문중 씨족 문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시제는 1년에 4번 즉 춘하추동(春夏秋冬)의 계절마다 고조(高祖)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 제사입니다. 조선 시대 이후 기제가 중시되면서 점차 퇴색하여 사계절의 시제(時祭)를 모두 행하는 가문(家門)은 드물고, 보통 봄은 삼짇날, 가을은 중양절(重陽節)에 지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1년에 한 번만 행하는데 조상을 모신 사당이나 사당이 협소할 경우 대청에서 시제를 지냅니다.
3) 차례(茶禮)
차례(茶禮)제사는 간소한 약식 제사(祭祀)로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그리고 명절이나 조상의 생신일 아침이나 낮에 지내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민족명절에 조상에게 올립니다. 차례도 기제사처럼 4대 고조(高祖)까지 지내며 명절날 아침에 각 가정에서 조상의 신주(神主, 지방 또는 사진)를 모시고 지냅니다. 차례는 가문에 따라서 사당이나 벽감(壁龕)이 있는 집에서는 대보름날, 한식, 단오, 중양절(음력9월9일) 동지 등에 차례를 지냅니다.
그러나 지금은 차례(茶禮)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설에 지내는 연시제(年始祭)와 추석(秋夕)에 성묘를 겸한 제사를 말합니다. 차례의 제수와 절차 여시 기제(忌祭)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무축단작(無祝單酌)이라 하여 축문을 읽지 않고, 술 역시 한 잔만 올리는 것이 원칙이나, 근래에는 핵가족 시대이므로 제사를 올리는 형식처럼 술 역시 여러 잔을 올리기도 합니다. 원래 이 차례는 차를 올리는 절차를 내포한 중국식 제례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관행의 차례에서는 차를 올리는 절차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차례이지만 보통 제사처럼 제수를 장만하고 술을 올리며 제사 지내는 것이 관례입니다. 세인들이 기제사 및 묘사와 더불어 중요한 조상숭배의 의례로 꼽고 있습니다. 차례에 제수를 차리는 것은 다른 제사와 다를 바 없으나, 설에는 떡국을 올릴 수 있고, 추석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어 햇과일과 함께 올립니다.
4) 묘제(墓祭)
산소로 찾아가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5대조 이상의 조상들에게 늦가을에 묘소(墓所)에서 직접 제사를 지냅니다. 고례(古禮)에 의하면 제주를 비롯한 여러 참사(參祀)자들이 검은 갓과 흰옷을 갖추고, 일찍 산소에 찾아가 절하고, 산소를 둘러보면서 세 번 이상 잘 살피며 잡초가 무성하면 정성껏 벌초하고, 산소 앞을 깨끗하게 쓸고 난 후, 산소의 왼쪽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토지신(土地神)에게 먼저 제사를 지낸 뒤 산소 앞에 정한 자리를 깔고 제사상을 차립니다.
조상(祖上)에 대한 제례의식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하나의 전통인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하나의 세습이고 문화이며 역사이기 때문에,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해도 여전히 생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상숭배(祖上崇拜) 의식은 조상신에 대한 종교적 숭배로 발전하여서 후손이 조상들을 섬기고 제사를 드리면 복을 받는다는 신앙심을 낳았습니다.
4, 기타 제사의 여러 상식과 시대의 변천
1) 제사상(祭祀床)에서 금기시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복숭아는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과일로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면 조상의 혼이 올수 없으므로 복숭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둘째로는 끝 자가 치자로 끝나는 고기(멸치, 꽁치, 갈치)는 하급어종으로 분류되어 조상에 대한 예로써 최상의 음식을 대접한다는 예의에서 제상에 금기하는 음식입니다. 셋째로는 마늘이나 고춧가루는 귀신(鬼神)을 쫓는 음식으로, 동짇날 팥죽을 쑤어서 잡신을 예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붉은색은 귀신이 싫어하는 색으로서 제사 음식에 금기하는 식품입니다. 넷째로는 비늘이 없는 생선(뱀장어, 메기)등은 부정한 생선으로 제상에 올리지 않는 금기 음식입니다.
2), 제주(祭主)는 누가 되는가
제사(祭祀)에서 제주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주가 누구냐에 따라 지방(紙榜)에 쓰는 친족관계가 틀려집니다. 즉 부모님의 제사에 있어서는 아들이 제주가 되는 것이 원clr입니다. 아들이 없으면 손자를 제주로 합니다. 아들이 있다 해도 다른 집에 양자로 입적된 상태라고 하면 역시 제주가 되지 못합니다. 아들이 없다면 딸도 제주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 사위는 제주가 되지 못합니다. 또한 남편의 제사는 아내가 있어도 자식이 제주가 됩니다. 아내의 제사는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제주가 됩니다. 자식의 제사는 손자가 있어도 부친이 제주가 됩니다. 부친과 자식이 없는 형제의 제사는 동생이 제수가 됩니다. 부친, 자식, 형제가 없는 사람의 제사는 조카가 제수가 됩니다.
3) 죽은 사람에게는 왜 절을 두 번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전통문화(傳統文化)인 절하는 예절에는 설날 같은 명절 때 할아버지나 부모님께 드리는 세배는 한번 절을 합니다. 그러나 제사를 지낼 때는 절을 두 번 합니다. 이처럼 산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횟수가 다른 이유는 음양(陰陽)사상에 따른 것입니다. 여기서 1번 절은 양을 뜻하고, 2번 절은 음을 뜻합니다. 즉 살아있는 사람은 양(陽)이고, 죽은 사람은 음(陰)을 뜻 합니다. 그래서 절의 횟수도 음양으로 구분하여 산사람에게는 1번 절을 하고, 죽은 사람에게는 2 번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상(장례)을 당한 초상집에 가서도 이런 경우를 쉽게 접하게 됩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정 앞에서는 2 번 절을 하고 상주 분들에게는 1번 절을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절 할 때는 산사람과 죽음 사람에게 하는 손 모습이 반대로 합니다. 즉, 산사람에게 절을 할 때는 남자는 왼손을 오른손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절을 하고 , 여자는 그와 반대로 오른손을 왼손 위에 올려놓고 절을 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 절을 할 때는 위 경우와 남녀 각각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4), 콘도제사와 호텔제사, 해외제사 어떻게 이해할까요?
매년 명절 연휴에 조상의 후손들은 여행을 떠나서 숙박지에 간단히 제물을 마련하고 조촐하게 차례를 올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과연 돌아가신 조상들의 혼(귀신)이 후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국내라면 모르지만 해외여행지에서 제사(祭祀)나 차례(茶禮)를 지낼 경우에 외국어 모르는 조상의 혼(귀신)이 혹시 이국땅에서 길 잃고 헤매지는 않을 까하는 생각을 필자는 하게 됩니다. 올해는 동남아에서 다음에는 유럽에서 다음에는 미국에서 지내고 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5) 병원에서 운명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집 밖에서 객사(죽음)한 시신을 집으로 들여오지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임종(숨이 끊어지기 이전의 상태) 할려고 하면 산소 통을 끼고 집에 와서 임종을 준비 했습니다. 즉, 운명(殞命)이란 사람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선조들은 집에서 운명해야 조상이 있는 선영에 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 반대로 임종이 가까워지면 집에서 임종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으로 가서 운명 하는 시대로 변하는 참 재미있는 현상들입니다. 그 이유는 가정에서 치르던 장례가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 변화로 병원 장례식장의 편리함에서 온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 운명한 경우 장례식장으로 가기 전에 바로 사망진단서를 발급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외부에서 사망한 경우 병원 응급실를 경유 해서 사망진단서나 사체검안서를 반드시 발급받아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운구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례문화가 현대 교육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5. 제사(祭祀)에 대한 성경적 견해
제사(祭祀) 행위를 조상에 대한 전통 문화적 인륜의 예절로 볼 것인가, 아니면 우상숭배(偶像崇拜) 또는 샤머니즘과 연결된 행위로 볼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선 제사는 우상숭배이자 미신이며, 십계명의 1~3계명에 대한 위반으로 용납될 수 없습니다. “신위(神位)”라는 글을 써 붙이고, 절을 하는 것은 분명 조상(祖上)을 신으로 여기고, 숭배하는 종교적 성격을 강하게 내포한 것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사가 우상숭배나 무속행위가 아니라고 합니다. 제사는 먼저 가신 조상이나 가족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인륜의식, 전통문화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제사는 조상숭배 행위이므로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면 왜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하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1) 제사(祭祀)는 조상숭배 의례입니다.
제사(祭祀)는 조상숭배 의례이므로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제사의 행위는 특정한 기간 동안 제한된 조상들에게만 행해지고 있습니다. 만일 증조부(曾祖父)까지만 제사를 드린다면, 그 이상의 조상들은 구천을 떠돌며 배고파 고생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후손이 제사(祭祀)지내면 조상의 혼백이 나무로 된 신주를 하나의 거처로 삼아 사후(死後)에도 얼마간 안정된 삶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사(祭祀)란 죽은 이를 계속 공양함으로써 효(孝)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추양계효(追養繼孝)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죽은 조상의 영혼(귀신)을 섬기는 조상숭배행위가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효도(孝道)는 십계명에 명시되어 있으며 그 뜻의 신학적 의미가 큽니다. 먼저는 죽은 조상의 혼이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혼도 종교적(宗敎的)대상이 될 수 없다는 확실한 신앙 위에서 효도(孝道)를 이해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성서적 신앙(信仰)입니다.
어떤 성자나 위인도 물론 자신의 조상도 숭배의 대상이 되지 못하며 하물며 죽은 자의 영혼을 예배함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효도(孝道)와 예배가 다르며 추모(追慕)와 제사(祭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죽은 자의 혼백이 배회하다가 다시 찾아와서 제사의 공양을 받는다는 생각은 무속신앙입니다. 영혼(靈魂)의 주인은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이시며 죽는 순간 그 영혼은 그 시체에서 떠나며 자의로 다시 찾아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제사 때 음식에 수저를 꽂아 놓거나 술을 부어 드리는 일 등은 그 자체가 미신적(迷信的) 의식이라고 보여 집니다. 성서적 효도의 개념으로 돌아가서 살아 계신 부모님을 주안에서 공경하는 신앙적(信仰的)인 효도가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성경은 사후(死後)에 영혼(靈魂)은 산자와 두절됨을 말합니다.
제사(祭祀)는 사실 부모를 공경하는 의식이 아니며, 그것은 단지 유교의 도덕률과 기복사상이 혼합된 것입니다. 죽은 자의 영혼(靈魂)은 결코 세상에 떠돌아다니거나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천국으로 예수를 영접지 않은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누구나 죽으면 심판이 있고 예수를 믿은자는 상급의 안믿은자는 영벌의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귀신의 영혼이라고 믿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지적대로 제사는 귀신을 불러 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아닌 13세기부터 중국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족 안에서 제사(祭祀) 문제로 갈등하는 이들은 지혜롭게 행동하되 타협하지 말고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제사와 관련하여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은 죽은 자와 산 자간 대화나 교통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6:19-31).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천사는 천사고 귀신은 귀신이고 사람은 사람이지 사람이 죽는다고 귀신이 되는게 아닙니다. 성경은 사후(死後)에 영과 육이 분리되었을 때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의로운 자의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빛과 영광 가운데서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성경은 죽은 자에 대한 교훈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살아 있는 자에 한하여 인격적 예우를 하게 되어있습니다. 동양적 효의 개념은 살아생전에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제사를 잘 지내는 것이 효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후의 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가거나 영원히 지옥에서 버림받습니다. 죽은자를 인격체로 볼 수 없고, 죽은자에 대한 제사를 효도로 적용할 수 없습니다.
3) 제사(祭祀)에 대한 성경적 의미
성경에는 가인과 아벨의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시작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믿음의 조상들이 모두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하나님께” 제사 드렸다는 점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제사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거룩한 만남을 뜻합니다. 여러 가지 제사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속죄제사 입니다. 그 제사는 피를 흘려서 뿌려 드렸고 제물(祭物)을 온전히 불살라 드렸습니다. 따라서 제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의 제사는 마음과 뜻을 회개와 함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예식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가 곧 제사로 나타난 것입니다.
4) 기독교 제사(祭祀)는 추도(追悼)인가? 추모(追慕)인가?
기독교(基督敎)는 제사(祭祀)를 지내지 않고 예배로 대신 하는데 이 때 드리는 예배의 명칭에 두 가지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추도(追悼)예배이고, 다른 하나는 추모(追慕)예배라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추도(追悼)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추도예배라고 하는 것보다는 추모(追慕)예배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1) 추도(追悼)의 의미
추도(追悼)라는 말은 좇을 추(追) 슬퍼할 도(悼)자를 써서 추도(追悼)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追悼)라는 용어는 죽은 조상을 슬퍼한다는 뜻으로 이 말속에는 죽음이 모든 것이 끝이 나서 살아있는 이들이 애통하며 슬퍼하고 있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소망 없는 자와 같이 죽음 자체를 슬퍼하지 않습니다(살전 4;13). 필자도 추도예배를 인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당사자의 신앙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목회 하는 중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조상을 추모하는 예배가 되어야지 조상의 기일이나 생일에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이 잘못은 아니나, 성경적 원리는 아닙니다. 원래는 추도예배란 것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도 전통적인 제사의식에서 약간은 마음이 편하려고 나온, 우리 한국의 타협책으로 봅니다.
(2) 추모(追慕)의 의미
추모(追慕)라는 말은 좇을 추(追) 그리워할 모(慕)를 써서 추모식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추모(追慕)라는 용어의 뜻은 죽은 사람을 기억하고 그리워함이라는 뜻입니다. 이 뜻을 상고해 보면 죽음 후에 믿는 우리 부모나 조상(祖上)이 천국에 가계시지만 살아생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부모나 조상의 신앙을 받들어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우리가 한 가족임을 느끼며 더욱 사랑해야 함을 다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추도(追悼)보다는 추모(追慕)가 좋습니다.
(3) 추모(追慕)예배의 의의
첫째로 추모(追慕)예배는 전통문화적인 조상을 제사하는 의식이 아니라, 추모(追慕)는 조상의 은덕을 감사하고 기리는 의미의 예배입니다. 여기에는 조상(祖上)의 귀신(鬼神)과 결부되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둘째로 추모(追慕)예배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주는데 있습니다. 죽음은 정해진 것인데 죽음 후에는 심판과 부활이 있어 천국과 지옥으로 바로 감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다시 돌아오거나,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니며, 모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갔다가 나중에 사망의 부활을 통하여 지옥에 있는 영혼과 만나던지, 생명의 부활(復活)을 통하여 천국(天國)에 있는 영혼과 만나 영생에 들어감을 상기하는 예배입니다.
셋째로 추모예배는 조상과 부모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이 날은 한 핏줄의 고마움을 나누며 형제, 자매간, 일가 친척간에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로 추모예배는 우리의 모습을 깨닫고, 현실 생활에 급급했던 모습을 재정리하고, 다시 한 번 살아 있을 때에 은혜와 구원의 감격에 겨워 더욱 하나님께 충성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고, 이 땅에서 우리가 잡았던 것은 다 놓고 가는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임을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가치 있게 살다가 가는 결심을 나누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로는 추모예배는 전도의 기회로 사용해야 합니다. 서로 떨어져서 바쁘다는 현실 인식 앞에서 만남과 대화의 시간이 없었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 신자가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여서 불신 가족들에게 빛이 되고, 향기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4) 추모(追慕)예배 준비
첫째로는 고인이 쓰시던 성경이나 찬송 등을 예배상위에 올려놓고, 또는 사진도 좋습니다. “이분이 너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이런 분이었다” 하고 자식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자녀교육상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향이나 촛불은 켜지 말고, 지방도 쓰지 말고, 음식상은 할 수 있으면 미리 차려놓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 가정에서도 제사음식을 똑같이 장만하고 절만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제사상을 차리지 않는 것입니다. 음식은 추모 예배를 드리기 위해 가족들이 모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준비할 뿐입니다. 조상의 귀신(鬼神)이 찾아와서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제사음식으로 장만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사상에 음식 놓는 형태를 취하지 말고 예배드릴 준비를 합니다.
둘째로는 식사나 교제는 추모예배를 온전히 드린 후 가져야 하며, 고인의 육성 녹음된 테이프나 비디오테이프가 있으면 예배 후에 식사 때나 다과시간에 보는 것도 추모의 의미가 있습니다.
(5) 기독교(基督敎) 추모의 의미
기독교인이 신앙 중심을 가지고 행하는 조상에 대한 추모예배는 우상숭배나 조상의 혼령과 만나는 일이 아니며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배려 앞에 그 모든 것을 위탁하고 믿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또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의 약속 안에서 진실히 살 것을 다짐하고 앞선 조상들의 생명을 역사적 인격체인 후손들의 삶을 통해 더 풍성하게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어버이께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축복의 근거라고 가르칩니다(레19:3, 출20:12, 엡6:1~3). 그러므로 살아 계신 동안 효도하면, 장수하고 땅에서 잘되는 복을 받고, 돌아가신 후에는 그 분의 업적을 기념하고 추모하는 것입니다.
5. 기독교인이 제사(祭祀)음식을 먹는 문제
기독교(基督敎)인들이 제사(祭祀)음식을 먹을 것이냐 먹지 말 것이냐의 문제를 놓고 역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한국교회의 입장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상(偶像)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되는 성경 구절은 두 곳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바울이 고린도서에 기록한 것입니다.
첫째는 우상의 제물(祭物)을 먹어도 된다는 분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고전8:4) 와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전10:25-27) 입니다.
둘째, 제물(祭物)을 먹으면 절대 안 된다는 분들이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우리가 축복(祝福)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10:16~21) 입니다.
이 두 성경구절에는 확실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먹어도 된다는 곳에는 시장에서 파는 제물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상에 바쳐졌던 것이라고 해도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이라고 해도 먹어도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상의 제례(祭禮)행위가 끝난 후에 제물은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단 먹어서 덕이 안 될 때는 먹지 말라했습니다. 그러나 먹어서는 절대 안 되는 곳은 우상의 제단에 제례행위를 하는 곳입니다. 여기에서 같이 먹고 뛰놀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상의 제례행위를 같이 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우상에 제사행위는 제례의식 중의 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같이 뛰노는 것이 제례절차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제례(祭禮)행위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절대로 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의 제례를 행하는 곳에서 같이 그 의식에 동참해서 그들의 의식에 따라 제사음식을 먹는 것은 그들의 제례의식을 같이 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례행위가 끝나고 난 후에 제사 음식은 제례(祭禮)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순한 식물일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제물이라고 해도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묻지 말고 사서 먹으라고 했고 초대를 받아서 제물을 주었다고 해도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우상의 제례(祭禮)행위를 하는 의식에 따라 제물을 먹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러나 제례(祭禮)의식이 끝나고 난 후에 제물은 먹든지 안 먹든지 자유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믿음이 좋은 집사님이 친정집에서 제사(祭祀)를 드린다고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기독교(基督敎)인이라고 해서 절이나 제사(祭祀)행위에는 참례하지 않는 것까지는 가족들이 이해했는데 제사음식을 먹지 않는다며 집사님이 밥도 굶고 집으로 그냥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딸이 굶고 가는 것을 보고 예수가 무엇인데 하며 가슴아파했습니다. 그 자리에 모였던 많은 친척들도 도대체 예수가 무엇인데 그놈의 예수는 형제(兄弟)간의 천륜도 끊느냐고 하면서 앞으로 우리 가족들은 절대로 교회에 가지 말라고 울분을 터트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우상의 제물과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사 음식을 먹는 것이 우상숭배(偶像崇拜)행위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해서 전도의 문을 막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제사(祭祀)음식을 먹음으로 가족들과 불화하는 일을 없애야 할 것입니다(고전10:3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제사(祭祀)음식 먹는 것이 하나님의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제사음식 먹어서 가정의 전도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남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는 말도 유대교 신자들이 시장에서 파는 우상(偶像)의 제물을 꺼리기 때문에 남의 양심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6, 제사(祭祀)문제와 기독교적 이해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생명이 없는 것을 기념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추도, 추모예배는 기독교적이라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추도, 추모예배는 죽은 사람을 그리면서 드리는 예배이기 때문에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제사(祭祀)는 원래 한국 고유의 풍속이 아니고 중국에서 온 중국 풍속입니다. 제사는 조상을 귀신으로 보는 신앙에서 온 것이고 제사를 드려야 조상들이 복(福)을 주고 드리지 않으면 재앙이 온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과 너무도 거리가 멀어, 그동안 한국교회는 제사대신 추모예배를 드리면서 부모를 기리며 부모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추모, 추도예배도 기독교신앙에 일치하지 않다고 봅니다..” 김삼환목사(명성교회)는 서울나들목교회(박원영목사) 설립예배에서 ‘새로운 출발’이란 제목으로 “교회 안의 모든 것은 생명을 갖게 된다”며 “추모, 추도예배에 대한 바른 성경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삼환목사는 “기독교는 죽은 사람을 기념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생명만을 기념 합니다. 기독교의 최대 절기인 부활절과 성탄절은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굳이 추모예배를 드리려고 한다면 ‘부모님 탄생 몇 주년 기념예배’로 드리는 것이 성경에 가깝다”고 설명했습니다.
7. 나오는 말
목회일선의 경험에서 “예수는 믿고 싶으나 조상제사 때문에 곤란하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장손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라는 핑계가 단순한 핑계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미신을 버리며 조상에 대한 제사(祭祀)를 버리고 나서야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참으로 “위대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탈하는 혁명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식이든 그 의식이 가지는 뜻이 본질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의식 속에는 조상의 혼의 가호를 받고자 하는 자기중심적 욕망(慾望)이 우선되고 심지어는 이 자손들의 액운(厄運)과 재해를 막아 주고 또 큰 복을 내려 줌을 바라는 기복 사상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살아있는 늙은 부모는 자손을 돕지 못하고 죽은 부모의 혼백은 자손에게 복을 줄 수 있다는 엉뚱한 말도 나오게 되고 살아 계신 부모에게 등한히하고 죽은 후에 극진한 제사를 드리는 크나큰 불효인 제사의식도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조선(古朝鮮)의 원시 종교였던 무속신앙(巫俗信仰)에는 제사풍속이 없었습니다. 무속신앙에서는 오히려 천신(天神)을 숭배하는 제천의 풍속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조상제사는 한국의 전통도 아니며 한국의 문화도 아닙니다. 제사(祭祀)는 중국의 풍속이요 문화입니다. 고려 때는 불교가 성행했지만 제사는 지내지 않았으며 오늘날 불교 국가에서도 조상제사를 행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제사는 고려말기 중국에서 성리학(性理學)을 받아들이면서 고려왕조의 정권을 잡은 이성계에 의하여 조선조의 정치이념으로 시작된 것으로 조상숭배(祖上崇拜)신앙인 제사(祭祀)의례도 이때 시행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조 500년 동안에 우리 고유의 민족의례가 유교의 조상숭배 형식의 틀에 갇혀서 지나온 셈입니다.
한국인의 조상숭배(祖上崇拜) 사상은 조상의 신이 자손들을 돌봐주고 평강과 축복을 주는 신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생존시에는 불효(不孝)막심하던 사람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제사는 빚을 내서라도 잘 드립니다. 이런 분들은 효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들의 부귀와 평강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분묘를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조상숭배인 제사문제를 어떻게 이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제사는 조상(祖上)의 신을 섬기는 것으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게 아니라는 사실의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으로는 조상제사(祖上祭祀)가 우상숭배(偶像崇拜)라는 명확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神)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희를 위하여 새긴 우상(偶像)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罪)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4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2~5)
서울대현교회/ 서재생목사/ 승려생활에서 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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