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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카톨릭의 기발한 발명품>
1.300년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과 십자가를 그리는 것을 발명하였다. 2.375년 천사들과 죽은 성도들에 대한 숭배가 시작되었다. 3.378년 로마 교회 감독이 이교도 승원장(법황;法皇)을 겸한다고 발표하였다. 4.394년 매일 거행하는 미사가 채용되었다. 5.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마리아에 대한 예배와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를 제정하였다. 6.528년 수도원 제도 이태리 몬테 카지노에 있는 최초의 수도원을 세운 카지노의 베네딕트에 의하여 서방에 시작되었다.(마10:5-9, 28:9-10, 막16:15-20) 7.590년 그레고리 1세가 교회 황제로 취임하였다. 8.593년 연옥 교리는 그레고리 1세가 발명하였다. 9.600년 교황 그레고리 1세는 기도와 예배에 라틴어만 사용하도록 규정하였다.(고전14:9) 10.800년에 마리아와 죽은 성도에게 기도하게 가르치게 되었다. (마11:28, 눅1:46, 행10:25-26, 14:14-18) 11.709년 교황의 발에 키스하는 이교도들의 행사가 시작되었다. (행10:25-26, 계19:10, 22:9) 12.750년 교황의 세속적인 권력을 주장하게 되었다. (마4:8-9, 마9:20-25, 요18:38) 13.788년 십자가와 초상과 유골 숭배가 시작되었다. 14.850년 소금물을 뿌리는 성수 의식이 발명되었다. 15.890년 성 요셉에 대한 숭배가 시작되었다. 16.965년 교회에 종을 울리는 것은 요한 14세에 의하여 라테란 회의에서 제정되었다. 17.995년 성도들의 서품(敍品)은 교황 요한 15세에의하여 시작되었다. 18.998년 금요일과 사순절 금식이 시작되었다. 19.1079년 교황 그레고리 7세가 성직자의 독신을 규정하였다.
(딤전 3:2-5, 마8:14절-15) 20.1090년 은둔자 베드로가 시작하였고 카톨릭이 이를 따르고 있다. 기도를 세는 것은 이교도들이 하는 것이요 악한 것이다(마6:5-13) 브라만교와 불교와 이슬람에서 하고 있는 행위이다. 21.1184년 그 악명 높은 종교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는 그 후 1223년 그레고리 9세에 위하여 정식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22.850년부터 교황 레오 4세가 산타 스칼라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죄를 사하는 의식이 시작되었다. 이는 종교 개혁시까지 계속되었으며 지금도 계속되어 있다. 그런 의식 보다는 차라리 거리에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23.1215년에 화체설이 교황 인노센트 3세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24.1215년에 고해성사가 교황 인노센트 3세에 의하여 제정되었다. 25.1220년 떡을 숭배하는 의식이 교황 호노리우스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26.1229년 톨로사 회의에서 성경과 여러 책들을 구독하지 못하게 하는 금령이 선포되었다.(요5:39,딤전3:15-17) 27.1287년 교황의나 주교들이 입는 법복이 영국출신의 수도승 시몬 스톡에 의히여 발명되었다. 28.1414년에 콘스탄틴회의에서 성도들에게는 성례식에서 떡만 주고 포도주를 금하게 하였다.(마26:7, 고전11:26-29) 29.1439년 피렌체에서 연옥에 대한 교리가 선포되었다. 30.1439년 일곱가지 성례가 피렌체 회의에서 비준되었다.(마28:19-20, 20-28) 31.1196년 마리아 송의 전반이 파리의 감독 오토가 완성하였고 후반부는 1568년 교황 피우스 5세가 완성하였다. 32.1445년 트렌트 회의에서 유전이 성경과 같은 권위가 있다고 선언하였다.(막7:7-13, 골2:8, 계22:18) 33.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외경을 성경에 포함시기는 오류를 범하였다. 34.1854년 교황 피우스 9세가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을 발명하였다. (롬 3:29, 시51:5, 눅1:30,46-47) 35.1870년 교황 피우스 9세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였다. 36.1907년 교황 피우스 10세는 현대 과학이 발표한 모든 것을 다 이단적인 학설로 정죄하였다. 최근에 요한 바오로 2세는 피우스 10세가 정죄한 것은 카톨릭의 실수였다고 시인하였다. 37.1917년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라고 확정 발표하였다. 38.1930년 교황 피우스 11세는 모든 공립학교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하였다. 39.1931년 교황 피우스 11세는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교리를 재확인하였다. 이것은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제정했던 것을 다시 1500년만에 재확인한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 안에 존재한 인성의 어머니이지 신성의 어머니라는 말은 큰 착각이라 할 수 있다. 40.1950년 피우스 12세는 마리아가 부활 승천하였다고 선포하였다. 41.1962년 교황 요한 23세는 마리아가 종신처녀로 지냈다고 선포하였다. 42.1996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선포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 동안 마리아에 관한 교리만 9가지나 발명하였다. 우리는 마리아가 한 여인으로서 참으로 복된 여인이었고 믿음이 아름다운 분임을 믿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한 여인에 불과하다.
<바벨론의 종교>
바벨로니아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 중에 최고신은 마르둑(Marduk)이었다. 마르둑을 히브리어로 기록하면 므로닥이라고 한다. 폭풍과 창조의 신 엔릴(Ennlil)의 기능과 공적을 물려받았다는 마르둑 신은 바벨로니아의 민족신이었다.
바벨로니아의 신들 중에는 벨로스(Belos)라는 신이 있었는데 이는 벨(Bel)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리스식으로는 제우스(Zeus)라 불려지는 신이었다. 일반적으로 신화가 발달한 나라는 그리스와 로마이지만 그 기원은 거의가 다 바벨론에서 출발한 것들이다. 바벨론이나 그리스의 신화들은 사실 신화(神話)라기 보다는 인화(人話)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신들 중 상당수가 사람을 신격화 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벨로니아 사람들의 신들 중에는 여신(女神)도 있었다. 그중에서 유명한 여신(女神)은 밀릿타(Milita)라는 여신인데 이 여신을 앗수르 사람들은 이쉬타르(Ishtar)라고 했고 페니키아 사람들은 아스다롯(Ashtaroth)이라고 불렀으며 로마 사람들은 비너스(Venus)라고 불렀다. 이 여신은 온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아프로디테( Aphrodite)라고 불렀다. 에베소에서는 이 여신을 아르테미스(Atremis)즉 아데미 여신이라 불렀다.
바벨로니아 여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반드시 밀릿타(Milita)여신의 신전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져야만 되는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바벨로니아의 모든 여인들이 일생에 단 한 번이지만 이러한 망칙한 종교 행위를 가지게 했는데 그 기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인들은 신전에 앉아 자기를 지명하는 남자가 나타나 자신의 무릎에 은화를 던지며 "밀릿타(Milita)여신의 이름으로 !"라고 하는 음성이 들릴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게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에게는 금방 남자가 나타나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들 중에는 이렇게 앉아서 4년간이나 기다린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아름다운 여자는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외모가 아름답지 못한 경우는 그야말로 혹독한 형벌이었다. 이러한 풍속을 소개하는 헤로도토스(Herodotus)도 바벨론의 풍속들 중에 아주 고약한 풍속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밀릿타(Milita)신을 아프로디테(Aphrodite)라는 이름으로 그리스에서 섬길 때는 그런 풍속은 없어지고 대신 신전에 바쳐진 여자 사제(司祭)들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인 역사에서 다루는 밀릿타(Milita)여신의 기원을 유대인 백과사전(The Jewish Encyclopedia)에서는 니므롯(NImrod)의 아내는 세미라미스(Semiramis)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세프스도 니므롯을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는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창10:8-9)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9:7)
사람들이 온 세계로 편만하게 흩어져서 땅을 관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니므롯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흩어 보내시는 목적은 세력을 꺾어 통치하기 쉽게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년들을 선동하여 흩어지지 말자고 주장했다. 니므롯은 백성들을 선동하여 하나님을 거역하게 했고 바벨탑을 쌓았다.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에 건설된 바벨탑과 함께 바벨론은 하나님을 반역하게 된 기원이 되는 곳이었다. 그 이후로 성경에서 악령을 숭배하는 도시의 대명사가 되었다.(창11:2) 니므롯의 아내는 세미라미스(Semiramis)였다. 그녀는 남편 니므롯이 죽고 나자 남편의 시체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가 지방으로 보내었다. (삿19:29 ,삼상 11:7 참조)
세미라미스는 그 후 사생자를 낳았는데 그녀는 이를 자기 남편 니므롯의 환생(還生)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이름을 담무즈(Tammuz)라 하였고 그를 태양신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 담무즈가 바로 여인의 후손 곧 구세주(창 3:15)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자기의 몸에서 난 자기 아들 담무즈와 결혼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신의 아내요 신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담무즈를 신(神)으로 섬기게 되었고 세미라미스를 신의 어머니 곧 여신(女神)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이 여인은 음녀(淫女)요 여신의 기원이며 어머니 신 아들 신, 남신 여신의 기원이 된 것이다.
바벨탑을 쌓다가 흩어지면서도 어머니 신과 아들 신을 섬기는 것에는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온 세상에 어머니 신과 아들 신 곧 여신과 남신의 사상이 일반화된 것이다.
1,바벨론에서는 여신을 세미라미스(Semiramis)라 하였고 남신을 담무즈(Tammuz)라 하였던 것이다. 2,중국에서는 어머니 신 곧 여신을 성모(聖母)를 싱무라 하였다. 3,독일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처녀 신을 헤르타(Hertha)라 하였다. 4,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을 디사(Disa)라 하였다. 5,에투리아 지방에서는 아기를 안고 있는 여신을 누트리아(Nutria)라고 했다. 6,드루이드 교에서는 여신을 비르가 파티튜라(Virga-Patitura)라고 했다. 7,인도 지방에서는 어머니 신을 인드라니(Indrani)라고 했다. 8,인도의 다른 지방에서는 여신을 데바키(Devaki) ,아들을 크리쉬나(Chrishina)라고 불렀다. 9,슈메르인들은 여신을 나나(Nana)라고 불렀다. 9,로마에서는 여신을 비너스(Venus)라 하였고 아들 신을 쥬피터(Jupeter)라 한다. 10,소아시아 지방에서는 여신을 키벨레(Cybele)라 하고 아들은 데이오스(Deoius)라고 했다. 11,가나안 지방에서는 여신 아스다롯(Ashtharot)을 섬겼다. 12,에베소 지방에서는 여신을 아데미(Ardemis)라고 하였다. 혹은 다이아나(Diana)라고 했다. 13,고린도 지방에서는 여신을 아프로디테(Aphrodite)라고 하였다. 14,애굽에서는 여신을 아이시스(Isis)라 하였고 그 여신의 아들은 호루스(Horus)라고 불렀다.
이렇게 여신 혹은 어머니 신과 아들 신을 섬기는 것이 익숙한 세상에서 성모 마리아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것이 카톨릭의 착상이다. 처음에는 마리아에 대한 교리가 없었다. 그러나 AD. 431 년 에베소 회의(The Council of Ephesus)에서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냐 그리스도의 어머니냐 하는 논쟁이 있었지만 확정을 지우지 못하고 지나오다가 최근에 와서 완전히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확정을 지웠다. (1931년 데오토코스 논쟁 종결 확정) 1854년에는 교황 비오 9세가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Immaculate Conception)을 발표하였다. 그 기념 축제일이 12월 8일이다.
그 이후로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라고 확정지었다. (1917)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은총의 중재자는 한 분 곧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딤전 2:5)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하고도 기발한 것이었다. 유명한 카톨릭 저술가 알폰수스 리큐오리(Alphonsus Riquuori)는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 보다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더 효과적인가 하는 이론을 써서 교황 그레고리 14세로부터 성인으로 시성(諡聖)되었고 교황비오 9세는 리큐오리를 카톨릭 교회의 박사로 선언하였다.
1950년에는 마리아 부활 승천설을 발표하였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의 몸이 썩지 않고 하늘로 올리어졌다고 발표하였다. 1962마리아 종신 처녀설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이미 십계명 중 제 2계명을 없앴다. 반면에 열 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신자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카톨릭은 성경을 절대적인 권위로 믿는 기독교회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아는 성도들은 잘 분별하여 양의 옷을 입고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상기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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