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성경에서 말하는 음부는 어디인가요?

수호천사1 2010. 8. 25. 07:37

성경에서 말하는 음부는 어디인가요?

글/扈一麥 

 

누가복음 16장 19-24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이 자료는 강의를 한 자료이기에 양(量)이 많습니다. 끝까지 보시지 않으려면 여기에서 중단하시길 바랍니다.

 

 음부(陰府)를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스올(sheol)이라고 하고, 신약에서는 헬라어로 하데스(Άδης)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부자가 죽어서 음부에 갔다고 말씀합니다. 지옥(地獄)에 갔다고 하지 않고 음부(蔭府)에 갔다고 말씀합니다. 오늘은 음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음부하면 무조건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음부하면 지옥 대기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습니까? 지옥 가기 전에 대기소일까요? 아니면 지옥일까요? 이 문제가 교회 안에서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낙원은 어디입니까?  천국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입니까? 지옥 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를 음부, 천국 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를 낙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음부가 지옥 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인지 지옥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곳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성경을 보기 전에 답을 드린다면 음부는 지옥도 아니요 지옥 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음부하면 지옥 가기 전에 있는 대기소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이 성경을 찾아보면 음부가 어떤 곳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을 보니까 음부에서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고 말씀하는데 틀림없이 누가복음16장에 나오는 음부는 지옥 같이 보입니다. 만약 이것이 지옥이라면 지금 지옥에 있는 사람하고 천국에 있는 사람하고 같이 보면서 말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이 지옥에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나에게 보내 달라고 말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연을 이용하여 여러가지 비유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스올이나 음부가 어떤 곳일까요? 유대지역은 사막입니다. 사막에 가면 사람이 건널 수 없는 땅이 갈라진 장소를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그 예를 들면서 천국과 지옥 차이를 설명하셨습니다. 당시는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는 것을 이해 못하던 시대이며 오직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만 아브라함이 있는 장소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자만 미워하셨을까?

예수님이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미워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죄는 아니지만 당시의 부자들은 지주가 대부분이며 왕같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비싼 옷을 입고, 매일 잔치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신명기에 명한 율법을 어기며 준행하지 않는 악덕한 사람들이며, 소작인들의 혈세를 짜던 사람들이었기에 예수님은 특히 부자들을 미워한 것을 보게됩니다. 아브라함 품에 있는 나사로를 부자가 보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어디 갔습니까? 낙원이든 천국이든 좋은 곳에 가 있습니다. 천국이라고는 말씀 안했지만 아브라함 품에 있다는 것은 천국 하나님 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혈통으로 아브라함이 조상입니다. 부자나 가나한 자나 유대인은 아브라함이 혈통적인 조상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천국을 소개를 하여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천국을 소개하여도 유대인들의 머리로는 이해를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옥이라면 지옥에 있는 부자가 나사로를 볼 수 있다면 나사로도 지옥에 있는 부자를 볼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만약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 품에 가 있고 여러분의 부모나 자녀가 이렇게 지옥에서 고통 하는 것을 여러분이 보고 있다면 그 장소가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자녀가 고통 받으면서 죽어가고 있다면 여러분이 천국에 앉아서 그것을 보고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까요?

 

 차라리 나도 그곳에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천국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든지 천국에 있는 사람이 지옥에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다면 이런 곳은 천국도 될 수 없고 지옥도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기 형제 자녀가 고통 중에 있다면 평생을 고민 가운데 지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서 매일 고민할 것 아닙니까?  내 자녀를 천국에 데려와야 할텐데... 만약 자기 자녀가 그런 곳에 있다면 천국에서 매일 울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매일 울고 있는 곳이 천국입니까?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1:3-4절을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사망도 없고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만약 누가복음16장과 같이 부자가 나사로를 부를 수 있는 장소가 천국과 지옥이라면 눈물이 없을 수가 있나요? 고통이 없을 수가 있나요? 평생 고민하고 있을 것입니다 . 그러므로 이곳은 천국도 아니요 지옥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 예수님께서 천국은 이렇게 좋은 곳이며 지옥은 이렇게 나쁜 곳이라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유입니다. 실제가 아니고 비유입니다. 만약 실제라면 어떤 사람도 그런 천국에 가려하지 않을찌도 모릅니다. 이 세상보다 더 고통이 많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야 끝이 나면 다 안보이지만 매일 보고 있다면 그곳은 세상 보다 더 고통스러운 곳이 될텐데 그곳이 어떻게 천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를 사람들이 듣고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비유로 가르치시고 있습니다.

 

누가복음16:14-15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왜 지금 비유로 말씀 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바리세인들이 듣고 비웃었습니다. 왜 비웃었습니까? 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비웃었습니다. 지금 돈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니까 바리세인이 비웃는 것입니다. 그들은 돈이 많으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은 거지가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 위에 있고 아래 있지 않고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복을 받고,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복 받은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는 누가 도와줍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저주 받아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이 안도와 주는 사람입니다. 그때 당시에 사람들의 사상은 그랬습니다.

 

 성경에 나온대로 저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버림 받은 사람들이고, 부자로 잘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자들이 생각하기를 '우리는 천국 갈 수 있으나 저 가난한 거지들은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지들은 못 간다는 그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 하시고, 이 세상에서는 거지였지만 부자라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다고 못 가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천국 갈 수 있고 부자도 지옥 갈 수 있다는 것을 바리세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리세인들은 다 부자입니다. 세상적으로 잘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은 축복 받아서 이렇게 잘 살지만 거지들은 다 지옥 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지옥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나사로와 같이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만 먹는 사람도 천국 간다'고 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비유이며 실제가 아닙니다. 만약 실제라면 나사로는 천국이 아닙니다. 비록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살 때에는 거지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었을찌라도 나사로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얻어먹은 부자가 불꽃 속에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거지라도 편하지가 않습니다. 나사로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는 것 입니다.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 때문에 음부는 지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인가를 찾아보겠습니다.


 전도서9:10절을 보면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우리말 성경]무엇이든지 네 손으로 할 만한 일을 찾으면 온 힘을 다해 하여라. 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킹제임스 성경]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 네가 가게 될 무덤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

 

 음부(무덤)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음부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음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음부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음부는 하나의 비유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음부가 어떤 곳인가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개역 성경과 현대인의 성경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네가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다. 네가 들어갈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시편6:5절을 보면 “사망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음부에서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망 중에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죽음 가운데서는 주님을 기억함이 없습니다. 들어갈 음부에는 하나님 앞에 찬송할 사람도 없습니다.

 

시편89:48절을 보면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는것도 음부입니다. 이 음부를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영원히 살자가 어디 있으며 무덤에 들어가지 아니할 자가 어디 있으리이까 영원히 살자가 어디 있으며 죽지 아니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라는 말씀입니다.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하는 말씀은 누가 죽지 않을 수 있습니까 라는 말씀입니다.

 

시편55:15절을 보면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며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산채로 음부에 내려간다고 말씀합니다. 지옥도 산채로 갈 수 있습니까? 지옥을 산채로 갑니까? 아닙니까? 산채로 가는 지옥은 없습니다. 지옥은 죽은 후에 가는 곳입니다. 산채로 음부에 내려간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것을 음부라고 말씀합니까?

 

현대인의 성경에는 산채로 무덤 속에 넣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덤 속에는 산채로 들어갈 수 있겠지요? 산채로 집어넣으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땅을 파서 산채로 집어넣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산채로 들어가는 음부는 무덤을 가리켜서 음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30:3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죽음 무덤을 음부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주께서는 나를 죽음 직전에서 구출하시고 나를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음부에서 건져냈다는 말씀을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이 무덤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성경 가운데는 여러 곳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음부가 무덤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88:3-4절을 보면 “대저 나의 영혼에 곤란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왔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내 영혼이 곤란이 가득하여... 어려운 일이 많아서 나의 생명은 음부에 가까웠나이다... 아주 죽음 직전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의 표현입니다. 죽겠다는 말입니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음부에 내려간다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것도 역시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나는 곧 무덤에 내려갈 사람과 같이 되어 힘이 하나도 없나이다... 참 표현이 쉽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곧 무덤에 내려갈 사람과 같이 되어 힘이 하나도 없나이다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음부와 성경에서 그때 사람들이 생각했던 음부와는 전혀 다릅니다.

 

 열왕기상2:6절을 보면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다윗이 솔로몬에게 한 말입니다. 다윗의 원수를 솔로몬에게 부탁했습니다. 음부에 내려가는 것도 평안히 내려갑니까? 지금 솔로몬에게 평안히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제 명대로 죽지 못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평안히 죽는것은 평안하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피 흘리는 것 보다 음부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하는 말입니다. 고통당하는 것 보다 음부에 내려가는 것이 더 좋다 여러분은 고통당하는 것보다 지옥 가는 것이 더 좋습니까?

 

지옥 가는 것이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여기 음부는 지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것보다 지옥 가는 것이 더 편할 수가 없습니다. 더 괴롭지요... 평안히 지옥가게 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평안히 죽지 않게 하라 고통당하면서 죽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피를 흘리며 죽도록 잘 알아서 하라 피를 흘리고 죽게 하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다윗의 원수를 이 사람 그냥 평안히 죽게 하지 말고 피를 흘려서 죽게 하라고 합니다. 자기 아들 보고 이사람 제 명대로 살게 하지 말고 네가 죽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이 참 지독한 사람입니다. 죽어 가면서도 자기 원수를 꼭 죽이도록 자기 아들에게까지 부탁합니다. 솔로몬은 그 부탁을 듣고 또 죽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윗이 아닙니다. 다윗하면 믿음의 사람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윗이 솔로몬에게 자기 원수를 죽이라고 부탁합니다. 나는 죽지만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자기가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자기는 약속했으니까 못 죽이고 아들보고 죽이라고 합니다. 난 못 죽이니까 네가 죽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믿음의 사람인가 의심이 될 정도입니다. 

 

열왕기상2:9절을 보면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피 흘려서 죽도록 하란 말입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솔로몬이 이 사람을 지옥 보낼 수 있습니까? 다윗이 음부에 보내라고 합니다. 솔로몬 마음대로 지옥에 보낼 수 있을까요? 만약 이 사람이 믿음이 있다면 솔로몬이 죽인다 할지라도 지옥에 안 갈것 아닙니까? 솔로몬이 그를 죽인다 할지라도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솔로몬이 사람을 죽여 지옥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음부는 지옥이 아닙니다. 본문은 솔로몬에게 음부에 보내라고 합니다. 피 흘려서 죽도록 하란 말입니다.


민수기16:30절을 보면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 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것은 고라에게 모세가 한 말입니다. 어떻게 산채로 음부에 빠집니까? 산채로 음부에 빠진다는 말은 땅속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땅속이 어디입니까? 음부입니다. 땅속이 음부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땅속에 빠지도록 하라 하나님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말은 산채로 땅속에 빠지게 하시면 그 말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겠습니다.  산채로 깊은 구덩이에 빠져 죽게 하시면... 구덩이는 땅 속입니다. 그 땅속을 가르켜서 음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민수기16:33절을 보면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모세의 말대로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고 땅이 그 위에 합하여 졌습니다. 땅이 벌어져서 빠진 그곳이 음부입니다. 그것이 지옥이라면 고라 자손이 빠진 그곳으로 지옥 갈 사람은 가는 것입니다. 음부라는 것은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땅속이나 죽음을 표현한 말로 사용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산채로 깊은 구덩이에 빠지자 그들은 생매장이 되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고 번역 되었습니다. 그들은 깊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그 깊은 구덩이를 음부라고 했습니다. 더 실감나게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없는 사람입니까? 믿음이 있어 천국 갈 사람입니다. 음부에 들어갈 사람이 아닙니다. 지옥 갈 사람이 아닙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야곱의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37:35절을 보면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형제들이 요셉을 팔아 버리고 그 옷에 피를 묻혀서 야곱에게 가져다주었을 때 야곱이 한 말입니다. 요셉의 옷이라고 형들이 가져오니까 야곱이 한 말입니다. 지옥 가겠다는 말입니까?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셉이 죽었다면 어디 갔을까요?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니 죽었다면 천국에 갑니다. 야곱도 죽으면 천국에 가야 하는데 요셉이 간 곳에 가리라고 말합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요셉이 지옥 갔으니까 나도 지옥 가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요셉이 죽었으니까 나도 같이 죽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합니다. 누가 죽으면 나도 같이 죽겠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런 표현입니다. 그런 표현을 음부에 내려가겠다고 말합니다. 음부는 절대로 지옥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음부는 죽음 그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나 무덤 같은 말입니다. 음자가 무슨 음자 입니까? 그늘 음(陰) 자입니다. 양(陽)지 음지 할 때 씁니다. 빛이 들어오고 빛이 없는데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깜깜합니다. 음지입니다.

 

창세기42:38절을 보면 “야곱이 가로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 행하는 길에서 재난이 그 몸에 미치면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야곱의 아들들이 애굽에 갔다 와서 베냐민을 데려가려 합니다. 요셉이 동생을 데려오라 하니까 그 형제들이 야곱 앞에 와서 베냐민을 데려가겠다고 하니까 "요셉도 죽었는데 작은 아들 베냐민도 데려가서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려느냐"고 말 한 것입니다. 만약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데려가다가 죽으면 야곱은 음부에 내려간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작은 아들 하나를 보고 사는데 이 아들마저 죽으면 나를 죽게 만드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죽음 자체를 음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욥기에는 음부가 나쁜 곳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표현을 합니다. 욥은 고난 중에 음부를 좋은 곳으로 말합니다.

 

욥기14:12-13절을 보면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음부에다 숨겨 달라고 말합니다. 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나를 죽은 자들과 함께 감추어 주시고 주의 분노가 그칠 때까지 나를 숨겨 주시며... 욥은 지금 고통 중에 있습니다. 죽고 싶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고통당할 바에는 잠깐 죽었다가 주의 진노가 끝난 후에 다시 살아나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음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우니까 병이 들면 사람이 그렇습니다. "죽고 싶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정말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그런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모스9:2-3절을 보면  “저희가 파고 음부로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갈멜산 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서 뱀을 명하여 물게 할 것이요”  저희가 파고 음부에 들어갈찌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음부를 어떤 곳으로 말씀 하고 있습니까? 땅을 파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땅을 파고 들어가도 하나님은 거기서 찾으시고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서 찾아내고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도 거기서 찾아내고 바다 속에 숨을지라도 거기서 찾아내고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찾아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땅을 파고 음부에 들어갈지라도 어느 사람이 거기가 지옥이라면 파고 들어갈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음부는 땅 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땅을 파고 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서 찾을 것이요 하늘 위로 올라간다 할지라도 어디든지 찾아내신다는 말씀입니다.  저희가 파고 음부에 들어갈지라도 하는 말씀은 땅을 파고 들어갈지라도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음부는 지옥을 표현한 말이 아닙니다. 땅속이나 무덤 죽음을 표현한 것이지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굉장히 큰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지옥에 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예수님은 지옥에 안 가셨습니다.

사도행전2:25-32절을 보면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예수님이 죽었다 살아나실 것을 시편에 예언했습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예수님이 살아날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예수님이 어디에 갔다 나왔습니까? 음부에 갔다 나왔습니다. 음부에 갔는데 그냥 버림이 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간 음부가 어디입니까? 무덤 속 입니다. 그 무덤 속을 음부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음부에 그냥 버림이 되지 않았습니다.버림이 되지 않고 거기서 살려 내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 자체를 땅속을 음부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음부가 지옥이라면 예수님은 지옥에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안 갔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안 가셨기 때문에 음부는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 되었습니다. 그분은 무덤에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고... 음부에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고 하는 말씀을 그분은 무덤에 버림을 당하지 아니하고 로 번역 되었습니다. 육체로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로 번역 되었습니다. 

 

음부는 어떤 곳입니까? 음부는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지옥을 음부라고 말할 수 없느냐는 것 입니다. 지옥을 음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영원히 사는 것은 천국이지만 영원히 죽는 것은 지옥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살지 못하고 버림이 되었다면 그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지옥입니다. 그런 뜻으로 표현 한다면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 자체를 말한다면 음부가 지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옥 가는 사람이 어디에 가는가를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 후에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양과 염소를 나누는 그와 같은 심판입니다. 이 심판 앞에서 어떻게 하는가를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0:11-15절을 보면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최후의 심판은 불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최후의 심판은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이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불못이 어디입니까?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육체로 한번 죽습니다. 그 다음에는 영혼까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런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심판의 부활을 받으면 불못에 들어갑니다. 불못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켜서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말씀합니다.

 

 지옥을 무엇으로 표현했습니까? 불못으로 표현했습니다. 죽음 그 자체가 음부고 지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지옥을 음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이나 죽음 자체를 음부라고 했으며 성경 전체를 보면 죽음이나 무덤 그 자체를 음부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살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죽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문제와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이다 라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성경에는 지옥을 음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무덤을 죽음을 음부라고 했지 지옥을 음부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20:13절을 보면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음부에서 죽은 자들이 나왔습니다. 그럼 지옥에서 나왔다는 말이 됩니까? 아닙니다. 무덤 속에서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사망과 음부가 무덤 속에서 나왔다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20:14절을 보면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운다고 말씀합니다. 불못은 어디입니까? 지옥입니다. 볼못은 지옥인데 음부도 그곳에 던지운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음부는 지옥이 아니죠? 분명히 음부도 불못에 던지운다고 말씀합니다. 음부도 지옥으로 던지운다는 말씀은 음부는 무덤 땅 속을 가르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는 땅도 심판을 받습니다. 불속으로 던져집니다. 그래서 음부도 불못에 던지운다고 말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3:10절을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체질이 무엇입니까? 땅 자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땅 그 자체가 녹아진다는 것입니다.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3:12절을 보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진다는 말씀은 땅이 녹아진다는 말씀입니다. 땅도 불못에 던지 운다는 말씀입니다. 지옥은 최후에 불살라지는 곳입니다. 그 지옥에는 지금 있는 땅도 던져지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땅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는 음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음부에 들어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육신이 무덤에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음부에 버려지지 않고 음부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건져낸 후에 이 음부도 불못에 던지 우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설명으로 음부가 어떤 곳이라는 것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결론으로 볼 때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가 죽어 음부에 들어갔다는 말씀은 하나의 비유지 그것이 실제 지옥을 말씀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의 비유입니다. 죽음 자체는 지옥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하는 이 말씀은 영원히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는 것입니다. 그 죽음 자체가 음부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옥으로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는 죽음 자체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 서로 보이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말씀 하신 것처럼 나사로가 있는 천국하고 부자가 있는 지옥하고 같이 보이고 서로 말을 주고 받는다면 천국 간 어머니에게 지옥 간 자식이 아우성을 칠 것 아닙니까?

 

물 조금 주세요!  어머니 그렇게 냉정합니까? 하고 울부짖을 것 아닙니까?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서로 보이는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모든 눈물을 씻기시며,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니라 다 지나가고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은 죽음이나 눈물이나 애통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통이 없는 곳이 되어야만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만약 그것이 있는 곳이라면 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서 어려운 일 당하고 고민을 많이 하면 무엇하러 갑니까? 생지옥이라고 말합니다. 고통 당하는 것이 지옥입니다. 그런 곳이 지옥이라면 천국과 지옥은 같이 보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곳이 천국이라면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영화 같은 곳에서 보면 취조를 할 때 부모 앞에서 아들을 때리면서 취조할 때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합니다. 진짜 세상에서 잠깐 고통당하는 것도 차라리 나를 죽이라고 하는데 천국에서 지옥을 볼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에서 말씀 하는 음부가 지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것은 땅속에 있는 것과 하늘에 있는 그런 큰 차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죽어 하늘에 있고 부자는 죽어 땅속에 있습니다 땅과 하늘만큼 그렇게 큰 차이를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늘은 이렇게 좋은 곳이고 땅속은 이렇게 나쁜 곳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좋은 곳이고 지옥은 이렇게 나쁜 곳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리세인들은 이 비유를 듣고 비웃었습니다. 돈이 많으므로 웃었습니다. 돈이 많으므로 웃었다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니들 돈이 많으면 천국 가냐 못 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갈 줄 알았습니다. 부자는 하나님께로 축복을 받아서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하게 살면 '하나님께 저주 받아서 믿음이 없어서 저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지옥 갈 것 같이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고통을 당하고 고난 중에 처하더라도 또 가난하게 살지라도 그것이 천국 가는 것과 지옥 가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지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대문에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는 거지도 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요 이방인들은 개 같이 취급했습니다.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이스라엘은 버림을 당한다 할지라도 개같이 취급하는 거지같이 취급하는 이방인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을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은 듣지 아니하므로 도리어 창기들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본 자손은 버림을 당하지만 창기와 세리들은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받은 축복이 천국 가는 기준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도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음부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음부 지옥 가는 대기소와 같이 생각했던 음부 그런 곳이 아니라 지옥 자체도 아니고 하나의 죽음이나 무덤 자체를 말씀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그것을 지옥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음부도 결국 불못에 빠뜨리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찌라도 실제적으로 음부 그 자체가 지옥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낙원이 천국가는 대기소다 음부가 지옥 가는 대기소라고 한다면 천주교의 연옥설과 틀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주교의 연옥은 천국가기 전에 있는 곳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연옥설을 부정합니다.  연옥설을 부정하면서 낙원을 천국가는 대기소 음부를 지옥 가는 대기소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모순된 것입니다. 차라리 천주교처럼 연옥이 있다고 하든지 없다고 하려면 대기소라는 말은 없애 버려야 합니다.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대기소는 없습니다. 만약 대기소가 있으면 천주교와 교리와 같습니다.  사도행전 7장 55-56절에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바로 육신을 벗으면 예수님이 계신 천국인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 속에서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앎으로 평안을 누리고 말씀 속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말씀, 말씀하다가 도리어 잘못된 곳으로 빠지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시는 예수의 날까지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먼저 말씀으로 바로서서 그런 곳에 가는 사람을 건져내고 여러분 자신도 든든히 서서 믿음으로 승리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扈ⓗ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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