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스크랩] 성경통독의 강점과 효과

수호천사1 2010. 6. 14. 09:28
 
"내용 해석을 먼저 적용에 두면 안 됩니다. 우선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통째로' 읽는다는 것은 일단 전체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과 균형을 잃지 않고 읽기를 지속할 수 있다. 소설 한 권을 들고 읽기 시작한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밤을 새워서라도 다 읽어버릴 때 감동의 도는 훨씬 더 강하고 깊다. 성경 역시 한 저자에 의해 쓰여진 1754페이지 분량의 '한 책'이라고 본다면 '앉은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다 읽어보는 것이 저자의 마음을 가장 선명하게 잘 포착하고 이해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성경통독이 '만병통치'는 아니더라도 소문 이상의 대단한 성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이들이 차츰 늘어가고 있다. 일단 통독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엄청난 은혜가 있더라"고 말한다. 참여해본 사람만이 아는 뭐가 있다고 한다. 평소의 짬짬한 성경 읽기가 가랑비나 이슬비에 젖는 정도라면, 통독은 장대비나 '집중폭우'에 흠뻑 잠기는 것과도 같다는 재밌는 비유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집중폭우로 저장된 그 말씀은 저수지의 역할을 해 언제든 가뭄이 들 때 물을 대어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관개 대책'도 곁들여진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로 끝나는 인류 전체 역사의 대장정을 불과 50여 시간에 샅샅이 둘러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기적의 반열에 든다. 기적의 책을 기적 같은 방법으로 읽어내는 셈이다. 아담에게 입혀진 창세기의 가죽옷이 요셉의 채색옷으로, 광야의 구리뱀이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로 전이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리고 빠르게 지나간다. 거기에 눈과 마음을 고정시켜 집중하고 있는 동안 갖가지 기적들이 '통째로' 일어난다.

성경 '속독'은 불경스러운 것?

성경은 그 내면적인 전체 구성이 '연속성' 위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단 한 군데를 보더라도 그것을 전체 흐름 위에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 말씀의 본질이 한 묶음으로서의 진행적인 체계나 질서를 지닌 연속성에 있다고 보는 이들은 부분적으로만 읽고 적용하게 되면 연속성을 파악하는 긴장을 잃어버리게 되어 이론적이거나 지엽적인 이해에 그치기 쉽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성경 전체를 샅샅이 한 번 읽고 난 뒤 성경을 읽고 공부하거나 설교를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채 신앙생활하는 것은 질적으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경통독의 효과가 '성지순례'의 효과와 비슷한 것으로 비유되는 이유도 이런 데 있다.

성경통독 훈련의 뛰어난 '효력'은 무엇보다 그 치열한 '집중성'에 있다. 통독 과정에서의 빠른 속도의 성경읽기는 이 집중성을 지속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즉 성경에도 '속독' 적용이 가능하며, 이 방법으로 성경의 내용 전체를 빠른 시간 내에 훑어나갈 때 오히려 더 이해의 폭이 긴밀해짐을 뜻한다. 속독법을 제대로 터득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신구약 전체를 3시간 만에 모두 읽어 '성경 1일 1독'을 그대로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속독에 대한 오해로 성경 말씀에 대한 속독을 '불경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단 글자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알맹이는 그 글자와 글자를 잇는 내면의 문맥이다. 속독은 글자 하나하나의 음가에 얽매이지 않고 곧바로 글자들이 모여 구성하는 내용만을 건져올리는 데 의식을 집중할 때 이뤄진다. 그래서 진정한 속독은 '빠른 정독'과 같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묵상을 목적으로 할 때는 천천히, 전체 내용의 흐름 파악이 목적일 때는 빨리 여러 번 읽는 게 좋다. 속독의 원리는 문자로 표시된 모든 기호물에 동일하게 적용되며 일단 성경도 이 점에선 예외가 아니라는 것.

성경통독은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결실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성경공부 방식은 아니다. 당장 분위기를 잡아 특별한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비해 성경읽기는 타 사역의 영적 기초가 될 뿐, 겉으로 곧 드러나는 결과가 없어 '탐탁지 않게' 여기는 목회자들도 많다. 설교에서도 "성경대로 살자"는 말은 많이 해도 "성경을 읽자"는 말은 잘 안 한다. 의도적으로 목사가 성경읽기에 대해 말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실제 교인들에게는 큰 반응 차이가 있다.

80년대 이후 한국교회 내에 활발해진 제자훈련이나 프리셉트·베델 성서연구 등의 주제별·책별 성경공부는 주로 특정한 신학적 관점에 의하거나 '나누어서' 하는 공부였다. 근래 들어 통독에 대한 관심이 차츰 더해지고 있는 것은 기존 방식의 성경공부는 이제 웬만큼 일정 수준에 도달했고, 부분 연구에 대한 호기심이 거의 다 충족되어가면서 이제는 전체를 조망하고픈 바램이 높아가기 때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성경 읽기 쉽게 하는 게 신학자들의 사역"

"서양의 사고가 분석적 사고인 반면 동양의 사고는 통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성경과 신학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어요. 신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인 말씀을 살펴 믿음의 집을 지켜나가는 것이 신학의 목적이라면, 우선 성경을 다 읽어봐서 이해되지 않을 때 연구가 필요한데, 안 읽어보고 연구부터 하는 게 문젭니다. 읽어도 연구를 목적으로 읽는 것 역시 마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자만 더듬어 읽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전체를 통독하고 되풀이해서 읽지 않고는 설명이나 분석은 해도 하나님의 마음은 안 보입니다."

1977년부터 매년 두 차례씩 정기적으로 성경통독 사경회를 실시, 한국에서는 성경통독의 '원조'로 불리우기도 하는 지리산 무안교회 노우호 목사의 말이다. 노 목사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류가 있는 가운데서도 중생의 역사는 일어나지만, 성경을 올바로 읽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왜곡없이 전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교회가 나아가게 되지는 않는다"는 말로 한국교회 신앙의 허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지목'한다.

"내용 해석을 먼저 적용에 두면 안 됩니다. 우선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레고리칼한 해석이나 영해, 심지어 임의적인 적용이 되기 쉬운 큐티도 이런 점에서는 위험합니다. 먼저 성경의 모든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서, 연속으로서의 사건들의 실재를 파악하며 그 상황에서 전개된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통독이 해석이나 분석 이전에 성경 말씀 자체가 가진 힘을 체험케 해주는 이유는 그 과정 자체에 자연스레 이런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노 목사는 전도 방식 역시 통독의 체계를 응용해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무안교회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전도지에는 칼라사진에 성경 말씀과 설명이 캡션으로 곁들여져 있다. 여기에는 창조의 사실에서부터 인간의 타락, 죄의 결과, 성경의 구성, 인류의 역사, 구속과 심판 등의 내용이 파노라마식으로 요약되어 실려 있다. 각종 과학 잡지나 대백과사전에서 전도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나 사진들을 뽑아 만든 것으로, 이 모든 내용들이 B4 크기의 용지 앞뒷면에 다 들어 있었다.

노 목사는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복음을 제시하는 식의 사영리 체계는 기독교가 보편화되어 있는 서구에서나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전도 방식"이라고 말하고, 창조에서부터 타락과 죄의 심판까지의 성경 내용 전체를 개괄하는 식으로 설득력 있게 전하는 데 필요한 사진들과 예증들이 풍부하게 담긴 '칼라풀'한 '우리 식' 전도지들이 기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약의 역사서에 따라 예언서들을, 신약의 사도행전에 따라 서신서들을 시간적 순서대로 재배열해 성경통독을 실시해오고 있는 노 목사는 성경 각 책의 개요 설명을 매우 쉽고 독특한 이야기 방식으로 제시, 무엇보다 성경을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두고 통독을 인도하고 있다. 지리산에서만 20년 넘게 매년 1월과 8월 두 차례씩 5박 6일 일정의 성경통독 사경회를 실시해오고 있는 그는 매년 여름 장신대선교연구원에서 실시하는 파송 선교사 대상의 성경통독 과정을 직접 인도하고 있기도 하다.

"성경읽기나 연구가 너무 부분적인 것에 얽매여 있고,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 인간 중심으로 성경을 보는 데 익숙해 있다. 성경을 읽기 쉽고 알기 쉽게 하는 게 목사와 신학자들의 1차적인 책임이자 사역"이라고 환기시키는 노 목사는 큰 교회의 목회자들이 먼저 성경통독에 적극 관심을 보이고 나서면, 한국교회 안에 성경읽기와 순수히 말씀 자체만을 통한 새로운 교회 개혁의 기운이 좀더 공감대 넓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생명·영성·경건 훈련의 모델

물론 성경통독이 장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무엇이든 한꺼번에, 그리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이 성취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다. 성경통독도 일면 그러한 경향에 편승해서 붐이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뿐 아니라 "성경을 몇 번 통독했다"는 이력에 만족하고 말씀을 삶 속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데는 소홀히하여 자칫 성경 내용의 단순한 '인지'나 지식화에만 안주하는 성경의 '고등범법자'로 머물게 될 위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다고 해서 성경통독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특히 성경통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들은 그 '우월성'을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 '필요성'에 더 액센트를 두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3박 4일이나 4박 5일 동안의 기간을 오직 성경을 읽는 데 보내기 위해 투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전폭적인 헌신이며 신앙적 결단이자 자기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말씀을 향해 자신을 열어두고 그 앞으로 전심을 다해 나아갈 때,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축복된 약속이 자기 것으로 주어지는 일은 극히 당연한 결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집중학습'에 속하는 성경통독과 함께 매일 조금씩 깊이 읽고 묵상하는 '분산학습'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들도 잊지 않고 강조한다.

"영성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측면으로 기도와 예배, 헌신, 감사 등이 이에 속하고,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측면으로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성령충만을 주시는 것이며, 받는 바 은혜와 능력을 삶 속에 실천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을 세 번째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영성의 중심은 성경이며, 말씀에 집중하는 가운데 자기 중심성이 하나님 중심성으로 변하게 되는 성경통독은 영성의 두 번째 측면이 강하게 개입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영성훈련에 특별히 깊은 관심을 보여온 장신대 오성춘 교수는 요즘은 영성이 근거 없이 왜곡되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영성의 기반은 오직 성경 말씀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말씀에 대한 접근법을 크게 생명 훈련과 지식 훈련으로 나누고, 성경통독은 말씀 자체를 통해 능력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생명 훈련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 교회에서는 특히 함께하는 공동체로서의 유대관계가 점점 약해져가고 있다고 진단하는 오 교수는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지도를 받으며 말씀으로 하나되게 하는 성경통독 과정은 공동체 속의 경건훈련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교육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찾는 것, 교회갱신의 기초

한국 기독교의 선교 초기에는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주로 '쪽복음' 형태로 말씀이 전달되었다. 말하자면 처음 성경이 이 땅에 들어올 당시에는 성경이 전체로 번역되지 못해 통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성경은 쪽복음의 형태로 대중을 만나야 했고 선교사들의 메시지 역시 개인의 특성이나 신학적 입장에 따라 통전적이기보다는 단편적이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성경은 이제 '통째로' 주어져 있다. 창세기는 언제든 요한계시록과 동일한 시공간에서 펼쳐질 수 있다. 물론 각기 다른 신학적 입장에서마저도 적절한 분석이나 나뉨 없이 성경의 내용이 통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통독과의 관련에서 '한 덩어리'로서의 성경읽기가 특별히 강조될 수 있다는 의미다. 모든 신학적 해석을 떠나 일단 말씀은 그 자체로서 골고루 존중되는 가운데 '통독'되어지기를 기다리며 각자의 위치에 빈틈없이 자리해 있다.

요한복음 3:16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3장 15절이나 17절에 정확히 무슨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지를 기억해내는 사람은 또 그리 많지 않다. "항상 기뻐하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16의 말씀은 즐겨 암송하지만, 바로 전절의 "항상 선을 좇으라"는 말씀은 흘려 듣는다. 말씀을 전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기복·이기적인 안목으로 선별해서 받아들이는 성향의 첨예한 일면이다.

구약의 오바댜서는 평생을 가도 설교 본문으로 못 들어질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듯하지만 이러한 성향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마음은 의외로 무관심하게 외면되고 가리워질 수 있다. 기독교 교리는 어떤 특정 기호에 따라 취사선택되거나 '안면'있는 익숙한 몇 구절들의 연결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에 대해 인간의 생각에 의한 '선택권'이 행사되면 신앙생활 가운데 그 말씀이 굴절 없이 적용되거나 온전히 드러나 실천되기는 어렵다.

성경대로만 하면 쉽게 되는 일들이 교파나 교단의 교리에 의해 복잡해지고 이권의 향방에 따라 변형되고 묵인되어 결국 하나님의 뜻과는 동떨어진 결과로 나타나는 예는 주위에서 흔히 찾아진다. 향후 한국교회의 진정한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대전제는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짚어낸 전망이다.

"성경통독은 무조건 일단 한번 해봐야 안다"고 한다. 이는 일반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결국 "교회는 목회자만큼 큰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교회의 영적 갱신을 위해 목회자 스스로가 직접 성경통독에 한번 참석해보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목회자가 어떤 집회나 부흥회에 참석해서 웬만한 강연을 듣고 감동받거나 변화받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아가는 데서만은 그것도 예외다.

"그동안 주로 설교 준비를 위해, 또는 어디엔가 '써먹기' 위해 성경을 읽었지 진정 나 자신을 위해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존중하여 무릎꿇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말하는 목회자들도 실제로 있다. 그만큼 성경통독은 영적으로도 큰 순기능을 가진다. 모든 것 접어두고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통독 훈련에 참석한다면 미처 예기치 못한 귀한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성경통독에 거의 평생을 바쳐온 노우호 목사를 초청하여 2월 10일부터 17일까지, 여드레 동안 주일은 오후 2시-10시, 평일은 새벽 5시-7시, 저녁 5시-10시에 남가주사랑의교회에서 열리는 이번 성경통독사경회는 총 58시간에 걸친 연대기적 성경통독과 열띤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허락해주신 큰 말씀의 잔치로 오래도록 기념될 것 같다.

안환균/ 남가주사랑의교회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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