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독교

[스크랩] 선교현장보고 : 중국의 기독교 역사

수호천사1 2008. 12. 17. 18:13

중국의 기독교 역사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17세기초를 정설로 보고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한국에 수용된 것은 천주교로서, 일부 양반과 중인계층의 지식인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을 통하여 마테오릿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의 『천주실의』와 그의 '중국화(본토화)' 선교전략을 계승한 '예수회'의 교리를 수용하게 되었다. 신교는 19세기말에 이르러서야 서양선교사들에 의해 직접 한국에 전해졌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기독교역사는 천주교(구교)와 기독교(신교)를 모두 합쳐서 겨우 400년의 역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하여 중국의 기독교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온 것은 635년(당태종 9년)으로, 약 136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당대에 처음 중국에 전래된 이래 몇 차례의 수용과 소멸을 거듭하는데, 통설에 의하면 기독교는 4차례에 걸친 전래가 있었다.

기독교의 여러 교파 중에 가장 먼저 중국에 들어온 것은 네스토리우스파(635-845, 斯托利派)로서, 페르시아에 의해 전래되었다. '경교(景敎)'라고도 불리는 기독교는 635년부터 210년간 당조의 수도인 장안, 낙양, 섬서성, 사천성과 양주이남을 중심으로 전파되다가 845년에 당무종에 의해 금교 되었다.

제2차 전래(1280-1353)는

원대인 13세기로서 400여 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네스토리우스파의 기독교가 다시 중국에 들어오고, 한편으로 로마천주교인 프란체스코회(方濟各會 혹은 法蘭西斯會)가 몬테코르비노(J. Montecorvino, 約翰?孟高維諾, 1247-1328) 선교사에 의해 원의 수도인 캄발럭(지금의 북경, 汗八里)에 전래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기독교는 주로 몽고인에게 수용되고 한인에게는 거의 전파되지 않았으므로, 그 뿌리를 내리지 못하다가 1368년 원조의 멸망을 따라 자연히 소멸되었다.

세번째 전래는 명말청초(1552-1724)에 이루어졌는데,

예수회 소속의 신부인 사비어(Xavier, 方濟各, 1506-1552)가 1552년에 광동성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어서 마테오릿치, 아담 샬(Adam von Schall, 湯若望), 회르비스트(F. Verbiest, 南懷仁)를 대표로 하는 예수회 신부들이 북경에 도착하여 그들이 지닌 우수한 과학지식으로 황제의 우대와 총애를 받으며 교세를 확장하게 된다. 이때 마테오릿치는 선교전략으로써 기독교의 '중국화'를 시도하여 정기적으로 공묘에 가서 제사하고, 입교한 중국인들에게도 예법에 따라 계속 공자와 조상에게 제사지낼 것을 허락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중국 경전 중의 '天'과 '上帝'로서 기독교의 '하나님'을 억지로 비유하였는데, 마테오릿치와 예수회의 이러한 선교방법은 후에 우상숭배 문제로 '전례논쟁'을 일으켜 급기야 중국황제와 교황 사이의 권위의 충돌로까지 발전하였다. 이 충돌은 강희황제로 하여금 1720년에 금교를 결정하게 하고, 옹정제와 건륭제도 그의 뜻을 이어 서양선교사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취하게 하였는데, 1724년에는 황제의 칙령이 공포되어 천문학자를 제외한 모든 서양선교사들이 추방되었다.

현재 '하나님'을 중국어에서는 '上帝'와 '神' 두 가지로 다 사용하고 있는데, 대륙에서는 '神'을 대만, 홍콩과 동남아국가의 화교들은 '上帝'를 사용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上帝'는 중국의 우상문화 속에서 생겨난 단어로서, '유일신 하나님'을 뜻하는 영어의 'God'과는 내포하는 문화적 의미가 다르다. 따라서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神'이 'God(하나님)'에 대한 바른 번역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중국대륙에서 만든 성경에서는 '神'자 앞에 반드시 한 칸을 비워둠으로써 유일신 하나님을 강조한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공간적인 의미가 강한 하늘에 계신 '하느님' 혹은 하늘을 다스리는 '옥황상제'와 변별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아닌 '하나님'으로 번역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나님'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본질인 창조주이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유일신의 의미를 잘 나타내주는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네 번 째(1807-현재)로

기독교(특히 신교)가 대규모로 북경, 상해, 광주 등지로 전래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1807년 영국런던기독교의 신교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羅伯特?馬禮遜)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성경번역자로서, 중국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중국어사전을 편찬하고 성경을 완역해내었다. 런던선교회 소속의 다른 선교사들도 그의 뒤를 이어 언어연구와 문서보급에 주력하였다. 이로부터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 성립까지 영국, 미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각국 교파의 선교사들이 계속 중국으로 들어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웠다. 이들은 문화교육사업, 의료사업과 출판사업을 복음전하는 주요수단으로 삼아서 선교사역에 훌륭한 효과를 거두었으며, 중국의 전통우상문화를 기독교문화로 바꾸는데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서구제국주의 열강의 사주를 받은 일부 거짓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와 반기독교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의화단에 의해 수많은 선교사와 중국의 성도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하였고, 중국정부와 일부 중국인들이 기독교를 배척하고 비판하는 데 빌미를 제공하였다.

신문화운동 기간에는 과학과 민주만을 신봉하는 청년들에게 미신으로 간주되어 1922년 3월에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났으며, 국민당과 공산당사이의 국공합작 기간인 1924-1927년 동안에는 기독교와 교회가 서구제국주의의 문화적 침략의 도구라는 이름으로 혹독한 공격을 받았다. 중국의 교회들은 자구책으로써 외국선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독립적인 교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래 80년대의 경제개방 이전까지 중국교회는 문화대혁명이라는 대 환난 속에서 삼자교회와 가정교회의 형태로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다가, 개방 후 지금까지 꾸준히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있다. 중국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중국을 향한 복음화의 계획을 볼 수가 있다.


<중국 젊은이들의 성(性) 윤리 현장>

20세기 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공산주의도 국가생존의 문제 앞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고, 이제는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데올로기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려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인의 관심은 오직 자본주의의 본질인 돈에만 쏠려 있다. 현대인은 바로 돈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자본주의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20세기 80년대부터 경제개방을 통한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데, 이미 곳곳에서 자본주의의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성(性) 윤리는 가장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캠퍼스나 공원 같은 공공장소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낯 뜨겁게 진행되는 진한 애정표현 같은 것들이야 이미 중국에 사는 이들에게 익숙한 장면들이 되었고, 이제는 이러한 일들이 중?????고등학교 교실 안에서도 발생한다니, 중국인에게 원래 이러한 정열이 숨겨져 있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도 주요한 원인으로는 사회주의체제하에 억눌려 있던 본성이 자유분방한 성을 추구하는 서양문화,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 젊은이들에게 무분별하게 수용되고 있는 미국영화라는 대중문화의 영향 하에 자신의 의지로 선택이 가장 쉬운 성개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이것은 억눌린 본성의 자유로운 표현과 함께 막연한 미국문화에 대한 동경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금 중국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으며, 돈에 의해 인성이 마비된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중국인들은 돈이 생긴다면 무슨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돈을 위해 자신의 몸 같은 것이야 얼마든지 팔아버릴 수 있다. 개방이후, 중국인들의 성에 대한 유교적 윤리 관념은 무너진 지 이미 오래이다.

한국어로 ‘영계’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연계(軟鷄)’에서 온 말로, 어리고 연한 닭을 가리키는데, 곧 아주 젊은 여자를 뜻한다. 예전에는 20대 초반의 아가씨를 가리키다가 이제는 여고생 정도의 10대를 가리키고 있다. 그 영계의 나이가 날이 갈수록 어려지고 있으니, 배 불룩한 중년아저씨들이 젊은 아가씨로도 만족을 못하여 이제는 성숙되지 않은 중?고등학교 학생을 그 성희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20대 후반의 나이가 든 아가씨에 대해서는 ‘老鷄’라는 한자어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여자를 왜 닭으로 비유하여 쓰는 것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기생을 ‘妓女’(지뉘)라고 불렀는데, 닭을 뜻하는 ‘鷄’(지)의 발음이 기녀를 뜻하는 ‘妓’(지)의 발음과 같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몸 파는 여자를 가리켜 ‘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鷄’는 원래 중국대륙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바로 개방과 홍콩의 중국반환과 함께 홍콩의 대중문화가 대륙으로 들어오면서 함께 수입된 것이다. 지금 대륙에서 통용되는 많은 신조어들이 있는데, 홍콩이나 대만으로부터 수입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요즈음 중국에 유행하는 속어에 ‘做鷄’(쭈어지)라는 말이 있다. ‘닭이 되다 혹은 닭 노릇을 하다’는 말로, ‘기녀가 되다’는 뜻인데, 즉 돈을 벌기 위하여 돈 많은 중년남자의 정부노릇을 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젊은 여자들뿐만이 아니라 근래에는 돈 많은 중년여자의 섹스파트너를 하는 젊고 잘생긴 남자들도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 ‘做鴨子’(쭈어야즈)라고 한다. 그 뜻은 바로 ‘거위가 되다’는 뜻인데, ‘鷄’에 대해 상대적으로 쓰기 위하여 생겨난 말이다. 이렇게 돈을 위하여 몸을 파는 젊은이들 중에 상당수의 대학생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외국으로 유학가려는 목적을 띠고서 유학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몸 파는 역할을 하는데, 북경영화대학이나 외국어대학에 그 수가 가장 많고 간혹 북경대학이나 청화대학 같은 최고수준의 대학에도 이러한 대학생이 있다고 한다.

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같은 때면 각 대학문 앞에 최고급의 외제승용차들이 줄을 대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중에 상당수가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젊은 정부들은 돈 많은 중년인들을 가리켜 ‘乾?’(깐띠에-수양아버지) 혹은 ‘乾娘’(깐냥-수양어머니)라고 부르는데, 나이 든 돈 많은 남자와 젊고 아름다운 여자, 나이 든 돈 많은 중년여자와 젊고 잘생긴 남자들 사이에 이런 호칭이 오고간다면, 이런 유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들 젊은이들은 또 ‘무녀(舞女)’와 ‘무남(舞男)’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대부분 댄스파트너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중에서도 특히 북경 제2외국어대학(二外)과 광주외국어대학(廣外)은 이 방면에서 악명(?)이 높은데, 중국인들 사이에는 ‘好女不進二外,好男不進廣外’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 뜻은 훌륭한 여자는 북경 제2외국어대학에 들어가지 않고, 훌륭한 남자는 광주외국어대학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로, 그만큼 이 두 대학의 대학생들이 이런 방법으로 돈을 벌고 유학을 간다는 것일 게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미래가 보장된 일류대학 학생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대체적으로 학력수준은 높지 않고 미모만을 갖춘 젊은이들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인데 반해, 중국은 날이 갈수록 이러한 현상이 상층화 되고 지식인들 사이로 급속도로 파고든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두뇌마저 받쳐주기 때문에 돈 많은 이들에게 잠시 잠깐 섹스를 제공하고 끝나버리는 숨겨지고 어두운 인생이 아니라 이 기회를 적절히 이용하여 자신의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의 많은 여류명사들 중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이 원하는 성공을 거머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돈이 모든 가치에 우선되고 있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앞으로 나가게 될 방향은 어디인지? 하나님께서는 중국복음화를 가슴에 품고 중국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일꾼을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세우신 절대가치, 절대도덕, 절대윤리가 없이 흑암에 이끌려 유리방황하는 이 중국의 젊은이들을 향하여 가서 복음전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중국의 "삼자교회"

중국의 교회 하면 떠오르는 것이 '삼자교회(三自敎會)'이다. 그리고 삼자교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성도들일지라도 "삼자교회는 정부의 엄격한 통제하에 운영되기 때문에 복음이 없다"라고 서슴없이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삼자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정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란 거의 없다. 심지어 '삼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국교회는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나고 중국대륙이 공산화된 후, 애국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는 종교조직인 '삼자애국운동위원회(三自愛國運動委員會)'가 1954년 조직되면서 중국정부의 완전한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중국정부는 기독교와 교회가 서구자본주의의 침략도구로 사용되었음을 이유로 들어 중국내의 교회들을 외국 기독교 선교단체 혹은 외국 교회조직들과 분리시키는 종교정책을 단행하였다. 이를 위하여 중국정부는 중국의 자유주의적 기독교지도자들을 앞세워 '삼자개혁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삼자(三自)'는 바로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을 의미하고 있다.

당시 중국내의 모든 교회들은 공산당에 대한 지지와 애국심의 증거로써 삼자애국운동위원회에 가입할 것을 강요받았으며,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반혁명분자로 분리되어 심한 핍박을 받아야 했다. 1958년에 이르러 거의 모든 중국교회가 정부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삼자애국운동에 대해 지지를 선언한 교회지도자들조차도 자신들이 착취계급에 속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6개월간의 정치학습과 노동을 통하여 정신개조를 받아야 했다.

'삼자교회'는 삼자애국운동위원회에 소속된 정부가 공인한 '공인교회(Open Church)'이며, 종교사무국과 삼자애국운동위원회를 통해 중국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또 '삼자교회'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에 해당하는 '가정교회'가 있는데, 가정교회는 정부에 의해 공인 받지 못한 그야말로 정부의 감시를 피하여 불법으로 개인가정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는 '지하교회'인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10년(1966-1976)기간은 이렇게 정부의 통제를 받는 삼자교회 조차도 미쳐 날뛰는 어린 홍위병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였는데, 삼자애국운동위원회 지도자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체포되어 구타를 당했고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으며, 심지어 맞아죽기도 하였다. 이 기간동안 중국에는 사실상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1979년 중국공산당은 경제원조를 서구로부터 얻어내기 위한 일종의 유화정책으로 종교를 부분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삼자교회들이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이로부터 삼자애국운동위원회는 1986년까지 2년 과정의 지방신학교 9개와 4년 과정의 남경신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매년 약 각25,000권의 성경책과 찬송가를 배포하였다. 지방정부도 이전의 교회건물들을 지역의 삼자교회 지도자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삼자교회'에 소속된 지도자들과 그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들은 다양한 성격을 띄고 있는데, 대략 여섯 가지로 분류해 볼 수가 있다.

첫째, 삼자애국운동위원회 관리들이다.

이들은 당에서 임명된 간부들로서 교회업무를 통제하고 정부의 종교정책과 반대되는 이들을 색출하며 당국에서 필요로 하는 종교정보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거의 철저하게 당에 충성하는 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복음보다 당의 이익을 우선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기독교의 옷을 입고 당에 충성하고 봉사하는 가짜 목회자들이라고 볼 수가 있다.

셋째, 복음주의적 목회자들이다.

이들은 가슴속에는 복음을 품고 있고 복음전파를 갈망하면서 주님의 때를 기다리며 양떼를 돌보는 목회자들이다. 이들은 가정교회의 형태로 신앙의 양심을 지키려는 교회지도자들과는 달리 정부와 직접 대립하지 않고 그들의 통제를 받는 척 하면서 교회를 지키고 기도로 양들을 돌보는 신앙인들이다.

넷째, 믿음 없이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사람들로서 대부분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기복신앙'의 형태를 띄고 있다.

다섯째, 호기심으로 혹은 구경 삼아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로서,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에 삼자교회를 가보면 예배에도 참석하지 않고 밖에서 돌아다니거나 둘이서 혹은 셋이서 앉아 잡담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거의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섯째,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참 신앙인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시대 시대마다 이 땅에 언약의 백성인 그루터기를 남기실 것을 약속하셨다. 천년이 넘는 긴 세월의 중세교회 암흑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숨겨놓으셨던 그루터기들을 통하여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셨다. 지금 이 중국 땅에도, 말씀이 메말라 있는 '삼자교회'에도 그루터기는 남아있고 또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중국복음화를 이루어나가실 것이다. <예은>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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