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속 고구려 왕국,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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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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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와 그의 후손이 세운 고구려 왕국, ‘제(齊)나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국 대륙에 제나라를 세워 4대 60년 동안 다스렸던 제왕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은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주몽의 정신을 이어받아 마지막까지 고구려인으로 살다간 인물들이다. 그들은 청주를 중심으로 주변 15개 주, 신라보다 더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하며 당과 맞서 싸웠다. 강한 군사력과 깨끗한 통치, 그리고 막강한 경제력으로 당나라와 대항하며 당시 중국에서 활동한 어떤 민족, 어떤 세력보다도 우수한 면모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제나라 60여 년의 역사는 바로 고구려 역사의 연장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구려인으로 살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그 많던 고구려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구려의 정신을 잊지 않고 당나라 군사와 맞서 싸우기도 했고, 옛 고구려 땅을 찾아 떠나기도 했다. 그 중에는 서역을 정복한 고선지 장군도 있었고, 당의 최전성기를 열었던 현종의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책사 왕모중도 있었으며, 당나라에 항복하고 신라와 손잡아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장본인 연남생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뿌리만 고구려일 뿐, 죽는 날까지 당나라에 충성하며 일생을 영화롭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 또한 이들처럼 당나라의 신하로 남을 수 있었다. ≪신·구당서≫ ≪자치통감≫ 등 중국 역사책에는 “당나라는 제나라를 회유하기 위해 수시로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에게 관직을 내렸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당나라의 유혹에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제나라 안에 고구려 왕국을 세우고, 고구려 유민들과 함께 제나라가 최후를 맞는 날(819)까지 당과 맞서 싸우고 또 싸웠다. 단 한시도 고구려인임을 잊지 않은 채….
‘해상왕’ 장보고, 제나라 땅에서 무역의 기반을 닦다! 이정기와 함께 나라를 이끌었던 고구려 유민들의 활동은 제나라가 끝난 뒤에도 중국에 사는 한반도 출신 유민들에게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다. 제나라 땅 안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던 신라인들에게 서로 힘을 모았을 때 얼마나 강력한 세력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한 것이다. 신라인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밀주와 신라관과 발해관이 있는 등주 땅은 제나라의 땅이었다. 해상왕 장보고의 동아시아 국제 무역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다.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이 세운 제나라는 고구려가 멸망하고도 그 이름을 수년 동안이나 잇게 한 마지막 고구려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고구려 역사의 마침표로 발해가 아닌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를 꼽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역사책에는 있고, 우리 역사책에는 없는 제(齊) 이정기와 그의 후손들은 우리의 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들이다. 유일하게 육당 최남선의 ≪국민조선역사≫에 “중국 안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고구려 유민”이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중국 역사책에도 있는 기록이 왜 우리 역사책에는 없는 걸까? 저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든다. “당의 제후국임을 자처했던 신라와 유교사상이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은 조선에서, 감히 당과 패권을 두고 다퉜던 고구려 국가 제나라에 관해 함부로 붓을 놀릴 수 없었다”고. 안타까운 마음은 둘째치고라도, 이대로 역사의 진실을 외면할 것인가? 이 책은 제나라와 제왕 이정기에 대해 중화사관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역사를 한국 역사 속으로 생생히 복원한다.
더 이상의 역사왜곡은 ‘NO’, 역사는 지킬 때 우리 것이 된다!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0여 년이 넘고 있다. 고조선, 고구려 그리고 발해의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의 세밀하고도 지독한 이 작업은 한국이 통일된 뒤, 한반도에 대한 자신들의 종주권 주장의 역사적 정당성을 위함이다. 저자 지배선은 동북공정이 이슈가 되기 전부터 중국 대륙에 남아 있는 우리 역사의 다양한 흔적들을 찾는 데 노력해 왔다. 그리고 1998년부터 이정기 4대와 제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중국 역사책에서 정리하여, 동북공정의 허구를 밝히는 데 앞장서 왔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은 ‘역사의 진실을 찾아 복원하는 일’에 느슨한 생각을 품었던 우리에게 긴장감을 갖게 한다. 최근 고구려 역사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외면되고 있던 역사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그 관심이 보다 활발한 연구로 이어져 제나라와 같이 왜곡되고 묻혀 있는 역사를 살려내는 성과로 나타났으면 싶다. 역사는 지킬 때 우리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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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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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정기 시대: 당(唐)에 독립 왕국을 세우다 고구려 유민, 이정기 이정기의 힘으로 절도사가 된 후희일 청년 이정기, 두각을 나타내다 병사들이 추대한 최초의 절도사 신라, 발해와의 독점무역권을 얻다 독립 왕국의 기초를 쌓다 영토 확장이 말해 주는 세 가지 천하를 얻고자 수도를 옮기다 때 이른 죽음, 스러진 야망
02 이납 시대: 제(齊)를 세우고 제왕(齊王)이 되다 치밀하게 준비된 후계자, 이납 지키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다 이납, 스스로 제나라의 왕이 되다 당과 화해하다 요절하다
03 이사고 시대: 막강한 경제력으로 황금 시대를 맞이하다 이사고, 이납의 뒤를 잇다 제나라의 질주에 제동을 건 주변 절도사들 제나라의 내부 통치 덕종이 죽은 뒤 군사를 일으키다 3대가 모두 같은 관직을 받다 이사고의 죽음
04 이사도 시대: 천하 패권을 놓고 당과 다투다 이사도, 서자의 신분으로 대를 잇다 세습을 인정받기 위한 이사도의 노력 당과 제, 그리고 신라 당과 제, 그리고 발해 폭풍전야의 평화 이사도의 낙양 함락 작전 천하 제패를 위한 계획 제와 당의 두 얼굴
05 제나라의 최후: 중원 정복의 꿈은 사라지고 당의 총공세 측근 유오의 반란 운주성 최후의 날 참혹했던 멸망의 순간 제나라의 멸망 이후 당 심리전에 휘말리다 셋으로 나뉜 제의 영토 당의 입장에서 지은 최군의 비문 사실을 무시한 지나친 역사가들의 악평들 제나라의 역사적 의미 장보고와 제나라의 관계
부록 중국의 역사왜곡 정책, ‘동북공정’ -“손으로 가린다고 하늘이 없어지는가?” 제·당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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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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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선
연세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86년 〈모용연의 중국화정책과 대외관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성대학교 사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1992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세대학교 문리대학 역사문화학과 교수로 있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동경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교수(1990~1991년)와 인디애나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객원교수(1999~2000년)를 지냈다. 저서로는 ≪중세 동북아사연구-모용왕국사≫ ≪중세 중국사 연구-모용연과 북연사≫ ≪유럽문명의 아버지 고선지 평전≫ ≪고구려․백제 유민 이야기≫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고구려인 이정기의 발자취> <고구려인 고선지(1)-대 토번 정벌을 중심으로> <고구려인 고선지(2)-대 아랍전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 |
출처 : CMP KOREA ♡ 차이나미션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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