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지

[스크랩] [화보] 北韓文化財 (기타 지역)

수호천사1 2008. 11. 19. 17:19

[화보] 北韓文化財 (기타 지역)

 

황해도

 

해주 석빙고 - 황해남도 해주시 옥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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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 석빙고는 황해남도 해주시 옥계동에 위치한 고려 초기의

내부길이 28.3m, 내부 높이 4.5m인 석조 건축물이다.

우리 선조들은 오랜 옛날부터 얼음을 저장하기 위한

창고를 만들어 이용하였다

 

咸鏡道

 

鏡城邑城 南門 - 함경북도 鏡城邑勝岩

南門正面

 .

동쪽 성벽

경성읍성은 1107년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축조한 토성이다.

1437년에 토성의 일부 구간을 석성벽으로 고쳤고,

현재의 성은 1616년부터 1822년까지 6년 6개월에 걸쳐 요고형 성벽으로 쌓은 것이다.

이때 성문, 성가퀴, 해자, 못, 우물 등이 갖추어졌다.

남문은 1756년에 무지개문(홍예문)으로 개축하였고,

1838년에는 남문루를 고치고, 그후 수성문 현판을 달았다.

성벽의 높이는 9m에 이르는 곳도 있다.

성 사방에 각각 한 개씩의 성문을 내어, 정문인 남문은 수성문이라 하고,

동문은 용성문, 서문은 호위문, 북문은 현무문이라 불렸으나

일제시대에 파괴되고 현재 남문 만 남아 있다.

또한 성가퀴 510개를 4m에 1개씩 배치하여 새로운 공성무기에 대처토록 하였고,

이 성가퀴에 멀리 쏘는 구멍과 가까이 쏘는 구멍을 내었다.

성 안에서는 54개의 우물자리와 12개의 못자리, 수구문자리 등이 확인되었다

성 둘레에는 너비 34m, 깊이 4.5m의 해자가 돌려져 있었다.

경성읍성은 우리나라 동북방어의 중진으로, 이 성을 중심으로 위성방어체계,

중간방어 체계, 전연방어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 성의 독특한 축성형식은 수원성 등 후세의 성들에 계승된다.

 

鏡城邑 정북사 - 함경북도 鏡城邑 勝岩

 

윤관의 화상

비각 (元帥臺에서 이곳에 옮겨옴)

정북사는 조선시대 건물로, 1437년에 건립하였으나 현재의 모습은 1901년에 중수된 것이다.

정북사는 12세기 초 여진족의 침입으로부터 고려의 동북국경지대를 지키는데 공로를 세운 윤관을

추모하는 사묘로 세종 19년(1437년)에 세웠다.

윤관은 당시 우리나라 동북 국경지대에 침입한 여진족을 정벌하고 그들의 촌락 135개를 평정하였으며,

납치되어 갔던 백성들을 찾아옴으로써 북방방위에 공을 세운 무관이었다

정북사에는 그 내력을 자세히 새긴 비가 있어 도움이 된다.

 

鏡城 鄕校 - 함경북도 鏡城邑勝岩

바깥문

바깥문 2층내부

대성전

서문

경성향교는 19세기 후반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勝岩山의 동쪽 기슭에 동해 쪽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남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북사가 있고, 남동쪽 약 1km되는 곳에는 옛 邑城이 있다.

다른 향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건물들이 갖추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적지 않게 파괴되어 지금은 바깥문, 대성전, 서무만이 남아 있다.

이 세 건물도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에 본래의 모습대로 복구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會文里24개돌유적 - 함경북도 鏡城郡會文里

 

함경북도 鏡城郡 會門里에 위치한 발해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회문리 소재지에서 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밭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돈화시 소재지 교외나 관지, 해청방, 요전자 등에서

알려진 24개 돌유적들과 같은 성격의 특수한 기념건축물터이다.

유적의 기단은 남북 19.2m, 동서 13.5m의 장방형으로 생겼으며,

높이는 1m 정도이다. 기단 위에는 한 줄에 8개씩, 세 줄의 주춧돌이 놓였다.

주춧돌이 놓인 부분은 남북 10m, 동서 7.8m이며, 주춧돌 열 사이의 거리는 3.9m이다.

현무암을 대충 다듬어 만든 주춧돌은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70-90cm 정도이며, 땅 속에 30cm 가량 묻혀 있다

 

근대군복 - 함경북도 화대군

이 군장복은 조선시대(19세기 말)의 유물로, 구한말의 정치가

이용익 (李容翊, 1854~1907) (普成學院 設立者)이 입었던 군복이다.

 

종성읍성 -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

이 읍성은 두만강 연안의 방비를 한창 강화하던 시기인 15세기 중엽에 처음 쌓고,

17세기 초엽(1608년)에 줄여 중성을 쌓았으면서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

수항루는 종성읍성을 개축하던 시기에 두만강 건너에서

우리나라를 노리는 외부 침략자들에게 대비하기 위하여 지은 3층 누정이다.

기둥은 흘림형으로 부정형의 주춧돌에 받들려 있고, 두공은 없이 지은 집이다.

누정에서는 우리나라에 침입한 적장을 잡아다가 항복을 받아낸 일이 있다.

그리하여 누정을 '수항루'라 부르게 되었다.

 

화성쌍계사 - 함경북도 화성군 부암리

 

애월루

대웅전 두공렬과 처마

화성 쌍계사는 함경북도 화성군 부암리 백록산에 있는 1684년의 조선시기 사찰이다.

쌍계사는 '동국여지승람'이나 '북관지'에도 그 이름이 나오며,

대웅전 마루도리에서 나온 글에 1395년에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조선 초기의 절임이 확실하다. 현존 건물은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1684년에 지은 것이다.

 

개심사 -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개심사는 826년에 창건하고 1784년에 재건한 조선시대 사찰로,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칠보산에 자리하고 있다.

개심사는 "함북금강"으로 불리는 칠보산의 내칠보에서도 경치 좋기로 이름난 개심대에 위치하고 있다.

기록에 의해 이 사찰이 826년 대원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그후 1853년에 또한 대대적으로 재보수되었다.

 

함흥성 -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함흥성은 고려시기 북관을 개척하고 설치한 9개 성의 하나로서

1108년에 축성한 것이다

 

함흥 선화당 -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함흥 선화당은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에 있는 1416년의 조선시기 건물로

1764년에 재건한 함경도 관찰사(감사)가 행정사무를 보던 지방관청(감영)의 기본건물이다.

조선정부에서는 지방에 대한 통치를 실현하기 위한 거점으로서 매 도에 관찰사의 행정기관인 감영을,

그 아래 단위에는 원(부윤, 목사, 군수, 현령)들의 행정기관인 아사를 설치하였다.
함흥은 국방상 중요한 고장이었던 까닭에 역대 왕조에서 중요시하였다.

고려에서는 1108년 여기에 함주대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그 후 도호부를 폐지하였다가 1369년에 함주목으로 급을 높였다.

조선에서는 1416년에 종전의 영길도를 함길도로 고치면서

소재지를 영흥(금야)으로부터 함흥으로 옮기였으며,

그 때 관찰사 본영인 감영 건물들을 지었다.

 

平安道

 

보현사 -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대웅전

만세루

 

기묘하고 수려하기로 이름 높은 묘향산에는 우리나라 5대 절의 하나인 보현사가 자리 잡고 있다.

묘향산 보현사는 조선시대 중기에서 후기의 사찰로, 1042년에 창건한 것을 재건한 것이다.

보현사는 빼어난 주변경관과 함께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서산대사의 사적이 있어 이름이 높은 곳이다.

1216년, 1634년, 1761년의 큰 화재를 맞는 등 여러 차례의 재난으로

보수와 중건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보현사에서 가장 뛰어난 건물은 대웅전(원래는 보광전)으로 1765년에 중창되었고,

묘향산 보현사 8만대장경의 보존고있어 불교도서관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만세루는 지난 6.25전쟁시기 폭격에 의하여 대웅전과 함께 불타 버렸으나,

1979년 대웅전과 함께 만세루는 옛 모습을 다시 갖췄다

 

안국사 - 평안남도 평성시 봉학동

 

안국사는 평안남도 평성시 봉학동 봉린산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에 재건한 사찰이다

이 건물은 1419년에 다시 지었고, 1594년과 1654년,

그리고 1785년에 각각 고쳐 지었다

 

백상루 - 평안북도 안주읍

 

백상루는 안주읍성 서북쪽에 서있는 장대이다.

안주는 고구려 때의 석성이다. 고려때 처음 세워진 백상루는

조선시기 1753년 읍성의 면모가 완성되면서 고쳐 지어지고,

관서8경의 하나로 "관서제일루"라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내려왔다.

백상루란 여기서 백 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다 볼 수 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충사 - 평안북도 피현군 성하리

 

현충사는 평안북도 피현군 성하리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건물로서

1708년에 건립하였다. 현충사는 백마산성을 거점으로 하여

외적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공을 세운 고려시기의 강감찬 장군과

조선시기의 임경업 장군을 비롯한 여러 명의 애국명장들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출처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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