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New birth
히[그]ajnagennhvsa"[動]ajnagennavw(anagennao 벧전 1:3,23),
gennavn a[nwqen(gennan anothen 요 3:3,7)[영] New birth(born anew)신생(新生).
요한복음3장3절부터~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는니라 "라고 하셨을 때 니고데모가 "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가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정말 어이 없는 말이지요 유대인의 관원이면서... 그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 이었고 또 관원 이었지만 정말 하나님에 대해서는 너무도 모르는 자었어요 3절의 '거듭나지'에 대한 난하주를 보면 '위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육신을 입어 한번 땅에서 났으면 위에 것으로 한번 더 나야 됩니다. '위에서' 라는 것은 인간의 어떤 노력도 각오도 결심도 어떤 것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으로 오는 것이죠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물과 성령, 말씀과 성령 곧 예수님, 하나님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거듭남이란?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음을 고쳐먹고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악한 생활을 중단하고 교회에 나가야 돼! 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행실을 고칩니다. 새 출발을 합니다. 죄된 옛생활에서 떠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본위의 목적을 위해서 행동으로 옮긴 것이지 거듭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서 조금 열심만 있으면 거듭났다고 합니다. 열심을 내지않는사람들을 보고 거듭니지않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거듭남은 떠들어대는 고백이 아닙니다. 오늘날 큰 소리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거듭남은 교회의 출석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교회에 출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출석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를 거듭나게 한다거나 구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구세주가 아닙니다, 다만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교제를 이루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경을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아야 영생을 얻게 되며, 영생을 얻어야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길을 성경에서 말씀해 주셨고,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다, 거듭난다, 영생을 얻는다 또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모두 같은 뜻입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라는 것은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자세히 상고(상고의 원래 뜻은 사냥꾼이 사냥감을 추적할 때 쓰는 용어임)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을 상고하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함이며 이는 곧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우리에게 나타내고자 함이 가장 큰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 얻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많은 말씀을 배워서 안다고 할지라도,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성경을 상고하는 목적은 상실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거듭났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것은 성경의 핵심이 되는 가르침과 진리를 배우지 못한 까닭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성경이 깨달아지지도 않습니다. 말씀을 ‘영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양식은 산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성경은 윤리나 도덕책도 아니고 또한 육신의 양식이 아닌 영혼의 양식인 까닭에,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성경 말씀이 양식이 됩니다.
구원은 말씀을 통해 받습니다. 골로새서 1장 6절의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는 말씀대로, 복음(福音)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구원받는 것이며, 그것을 깨달은 날이 구원받은 날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성경의 많은 말씀 가운데 우리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말씀이 따로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내용에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집에 가서 구원 얻을 말씀을 증거했고 고넬료와 그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얻을 말씀’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구원받을 말씀을 깨달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으; 말씀을 받을 때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구원에 이루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 그 날이 한 번 있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주의 말씀 처음 받은 날. 참 기쁜 날이 아닌가”라는 찬송도 같은 의미입니다. ‘주의 말씀 처음 받은 날’, 그것은 교회당에 가서 처음으로 성경 듣는 때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생활한 지 몇 십년 만에 그 복음을 깨달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운 좋게 교회당에 가자마자 구원받을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평생 교회당에 다니는데도 그 구원받을 복음은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참 기쁘고 복 되도다 이 기쁜 맘 못 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찬송가). 그 복음을 듣고 깨달은 날, 참 중생(重生)한 날이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있습니다. 영어로는 Born again, 즉 거듭난 날이 구원받은 날 입니다.
“그(하나님)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서 1:18)라는 말씀과 같이,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를 낳으십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그 영혼이 구원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베드로전서 1:23, 25)라는 말씀처럼, 거듭난 사람에게 생명이 된 ‘썩지 아니할 씨’는 바로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즉 복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린도전서 4:15). 누가복음 8장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씨 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누가 8:11),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라고 이 비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 채 잠깐 기억하다가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씨가 심기우지 못하고 있을 때 새가 날아와 쪼아먹어 버리듯이, 말씀을 듣긴 들어도 그 말씀을 마음에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 마귀가 그 말씀을 빼앗아간다고 하셨습니다.
길가, 돌짝밭, 그리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이 심기어지지 않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모두 구원이 아닙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말씀은 듣고 깨닫는 자니”(마태 13:23)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구원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심기워주는 씨입니다.
씨는 특별한 모양도 없고, 흙 묻은 씨앗 하나가 굴러다닐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옥토에 심기어지면 움이 트고 큰 나무가 되기도 합니다. 씨는 한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심으면 자라서 꽃도 피고 열매도 맺습니다.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 전파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우리 귓전을 울리고 지나가는 그 말씀이 준비된 사람의 마음속에 깨달아집니다. 좋은 땅은 준비된 사람의 마음입니다.
처음부터 좋은 땅은 없습니다. 전부 길바닥처럼 단단하고 완고하며, 돌짝밭처럼 그 속에 죄가 숨어 있고, 가시떨기처럼 세상의 욕심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런 불모의 땅을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흙을 파헤쳐 돌맹이를 주워내고 부드러운 땅을 만드는 것처럼, 성경을 배울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만듭니다. 말씀을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구원받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바꾸십니다.
그 준비된 마음속에 구원받을 수 있는 말씀이 전해지면, 그 말씀은 생명이 움트기 시작합니다. 씨가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되면 싹이 나듯이, 준비된 마음에 생명의 말씀은 뿌리가 박히고 자랍니다. 복음의 말씀이 준비된 사람의 마음 속에 전해지면, 신비하게도 그는 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이 그 마음 속에 심기어진다는 것은 정말 신비한 일입니다.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전파(電波)가 지금도 우리의 귓전을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파수를 맞춰 라디오를 켜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것을 녹음하면 그대로 녹음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방향이 간절히 하나님을 향해 있고 또 구원받을 수 있는 말씀을 깨달으면, 그때 그 말씀이 그 영혼 속에 기록(記錄)됩니다.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브리서 10:16).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기록된 말씀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며, 그 때부터 하나님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방법이고, 참 신비한 일입니다.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구원받은 것을 어떻게 압니까 그것은 죽어 봐야 알지요’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않은 것으로 보면 틀림없습니다. 구원, 즉 거듭나는 것은 영적 출생이라는 하나의 사건(事件)이요 확실한 경험입니다. 모든 일(사건)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난 때도 없고 발생한 곳도 없는 사건이 있습니까? 그런 것이 있다면, 그 일은 원래부터 없었던 사건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받았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물어물 대강 넘어가버립니다. 또는 ‘예수님을 믿으니까 구원받았고, 구원받았으니까 믿지요’라고 대답합니다. ‘언제부터 믿었습니까’라고 물으면 ‘저는 모태 교인입니다’라거나, ‘세례 받았으니까 구원받았지요’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하다가 십자가 환상을 봤습니다. 기도하는데 온 몸이 화끈했고 뜨거웠습니다’ 라든지 ‘이상한 기적이 있었습니다. 병이 낳았습니다’ 라는 등의 별별 이야기를 다 합니다. 그런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일 수도 있고, 마귀의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나았다 할지라도, 그 병 치유 자체는 구원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반드시 성경 말씀을 통해 그 진리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 구원받았다는 실체가 성경 말씀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 구원은 착각이고 거짓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그 믿음도 말씀에 비춰 점검해 보면 구원이 아닌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구원받지도 않았는데도 구원받은 줄 아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요 3:5)
물과 성령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두 가지 요소를 설명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3)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즉 요한복음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말씀으로 거듭났다’, ‘예수님의 죽고 부활하심으로 거듭났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은 곧 ‘말씀’ 또는 ‘죽음과 부활’과 같은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공의를 상징합니다. 홍수로 죄인들을 심판하신 일이나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전멸시킨 사건을 통해 물이 심판을 가리킴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용서가 없이 냉정한 것입니다.
물은 구원자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나시고 십자기에 죽으시고 죽은자 가운데 살아나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여기서 혼돈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지만 구세주로오신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것이 물입니다. 물과 성령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합니다. 이로써 우리에게 속죄와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셨는데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과 장사를 가리키며 물 속에서 올라오신 것은 부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시는 순간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음성이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장사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물과 성령)이 두 가지가 항상 수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9)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거듭난 사람은 자기가 거듭난지를 확실하게 알지요.그런자는 행동도 열심도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자 입니다.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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