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이해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뜻
참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기가 어렵습니다—어떨 때는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입니다. 성경공부에 성경공부를 거듭해서 언약신학, 세대주의신학, 성서신학, 쥬다이즘, 등의 신학도 공부해 보고, 계시를 받는(다는) 사람들로부터 듣기도 하고, 직접 계시를 받고자 기도도 하지만 결국 내리게 되는 결론은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려고 해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차라리 남들 하듯이 신앙생활을 했더라면—그래서 그렇게까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수고하지 않았더라면—맥이 그렇게까지 빠지지 않았을 터인데, 정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노력했던 터라,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부닥치며 한동안 허탈감으로 멍하게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깨닭은 사실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데 초점을 맞추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십니다. 율법을 주셔서 순종하라고 하셨고, 율법의 중심인 사랑을 간과하고 순종에만 초점을 맞춘 양들에게 사랑하라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초점을 맞추라고 요구하셨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동기(Motif; 모티브)가 된 순종을 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입니다. 언약신학, 세대주의신학, 성서신학, 쥬다이즘, 등을 모르고 계시를 남들처럼 받지 못해도 괞챦습니다; 신학을 많이 알고 계시를 잘 받는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결국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입니다 (마 25:31 – 46). 그래서,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을 실천하고자—사랑의 동기로 순종하고자—노력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행여나 하나님의 뜻이 더욱 알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여전히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는 가운데 발견하게 되는 사실이 조금 있었습니다—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었고—즉,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되었고—그렇게 노력하는 가운데 순수한 사랑의 동기로 그 사랑을 실천하신—순종하신—예수님을 더욱 닮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해지고 (인격에서) 예수님을 닮는 것이—즉, (인격적 성숙으로 나타나는)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것이—신앙생활의 결국입니다.
그래서 깨닭습니다—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인격에서)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과 친밀해 집니다.
그러므로
그저 사랑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일수록
(인격에서)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과 친밀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 출처: Daum Café, ‘Dean’s Study (딘스 스터디)’ http://cafe.daum.net/deanjestory/9B08/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