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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구약성도

수호천사1 2016. 11. 17. 22:47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구약성도


 

86:

구속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후가 될 때까지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역으로

인한 능력, 효력, 그리고 유익은 창세로부터 계속해서 모든 시대에서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로 전달이 되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계시되었던 약속들, 모형들 그리고 희생제물들에 의해서 전달이 되었으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인의 씨로, 그리고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표지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

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기 이전에 살았던 구약시대의 옛 성도들은 세상을 떠난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으로 인하여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으며, 세상을 떠날 때 바로 낙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여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 살았던 구약시대의 성도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처럼 낙원에 가지 못한 채 다른 어떤 상태나 장소에 가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신앙고백서의 답은 본 항에서 구속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후가 될 때까지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역으로 인한 능력, 효력 그리고 유익은 창세로부터 계속해서 모든 시대에서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로 전달이 되었다고 교훈한 것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효력이 구약시대의 성도들에게도 미리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도 신약시대 이후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사후에 바로 낙원에 갔음이 확인이 됩니다. 이러한 교훈은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견해들 중의 하나를 바르게 교정하여 줍니다. 그것은 소위 선조림보(Limnud patrum)라는 교리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구약교회의 의인인 선조들이 선조림보라 일컫는 곳에 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림보란 음부의 가장 윗자리에 있는 곳입니다. 음부는 가장 아랫자리에 악인들이 죽어서 가는 지옥이 있으며, 그 다음에 그것의 가장자리에 이웃하여 있는 연옥이 있고, 그리고 그것들 위에 소위 구약교회의 선조들이 가는 선조림보와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죽은 유아들이 가는 유아림보(Limbus infantium)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믿기를 구약교회의 선조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기까지 선조림보에 갇혀 있다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에 육체가 무덤에 계시는 동안 그의 영혼으로 지옥에 내려가셔서, 선조림보에 있는 구약성도들의 영혼을 구하실 때에라야 비로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인 하늘로 가게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그가 실제로 성육신 하신 이후가 될 때까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구약교회의 선조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유익들을 아직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 가톨릭의 주장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품”(16:22)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천국에서 누리는 잔치(8:11), 그리고 기름을 등과 함께 준비한 지혜로운 처녀들에게 허락이 된 혼인잔치(25:10) 등이 모두 선조림보를 가리킨다고 해석을 합니다.


이들의 주장과 달리,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들어간 아브라함의 품이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함께 앉은 천국과 신랑을 맞이하는 혼인잔치는 모두 다름 아닌 영광스러운 하늘을 뜻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의 품이 로마 가톨릭이 믿는 바대로 단지 림보일 뿐이라면, 나사로는 결코 아브라함의 품에서 좋은 것과 위로를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16:25).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천국에서 누리는 잔치에는 구약 성도들뿐만 아니라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이들과 함께 천국에 앉아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을 성취한 다음에 부름을 받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이미 구속사역이 완성된 이후이므로 선조림보에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게 되는 천국도 또한 결코 림보일 수가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림보를 오히려 낙원이라 말하며 궁극적인 복락은 미루어져 있지만 그래도 복된 상태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바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림보에는 고통은 없지만 죽음이라는 상태로 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떠한 좋은 것과 위로가 있을 수가 없는 곳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고 말씀하신 낙원은 결코 하늘의 영광스러운 복락이 유보된 일시적이며 잠정적인 상태가 그들은 이것도 행복의 한 종류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낙원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강도에게 자신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낙원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지극한 복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도 또한 복락의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죽어서 간 곳은 거짓된 림보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11:10), 곧 성도가 죽어서 가는 영광의 낙원입니다. 그러한 낙원을 바라며 야곱은 주의 구원을 기다린다고 말하였고(49:18), 시편 73편은 이것을 바라보며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24)라고 노래한 것이며, 또한 다윗은 자신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한 것입니다(31:5).


여기서 주의 손이란 심판주의 무서운 손이 아니며, 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 죽음의 상태가 아니며, 다만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의 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돌아가시기 이전에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의탁하셨던 바대로, 하늘의 영광 가운데로 영접을 받을 것을 소망하고 확신하는 가운데 부탁한 것입니다.


구약교회의 성도들은 모두가 죽은 후에 누릴 영광을 바라보았으며, 그들의 소망대로 낙원에 가 있습니다. 그들은 결코 림보라는 곳에 가 있지 않습니다. 림보 교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거짓된 교리일 뿐입니다.

 

아직 그리스도께서 구속사역을 실제로 행하지 않으신 때에 살았던 구약시대의 경건한 자들은 어떻게 죽은 후에 낙원에 이르는 기쁨과 영광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일까요?


이와 관련하여 신앙고백서는 본 항목에서 구속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이후가 될 때까지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사역으로 인한 능력, 효력, 그리고 유익은 창세로부터 계속해서 모든 시대에서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로 전달이 되었다고 교훈합니다.


신앙고백서에 따르면 구약 시대의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효력을 미리 전달을 받기 때문에 그들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며, 거룩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서는 낙원에 이르게 됩니다. 신앙고백서가 이렇게 교훈을 하는 데에는 언약신학에 관한 이해가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서는 앞선 7, “인간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서 구약교회의 언약이나 신약교회의 언약이나 모두 하나의 은혜언약이라는 사실을 확증하였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중보자는 오직 유일하신 그리스도이셨으며, 그리스도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받고 영생의 유익들을 누립니다.


75항의 진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언약은 율법의 시대와 복음의 시대에서 각각 다르게 실행이 되었다. 율법 아래에서 그것은 약속들, 예언들, 희생제사들, 할례, 유월절 어린 양, 그리고 유대 백성들에게 전달된 여러 모형들과 규례들에 의해 실행이 되었으며, 이 모든 것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성령의 활동으로 인하여 그 당시에 약속된 메시야에 대한 신앙으로 선택받은 자들을 가르치고 자라게 하기에 충분하며 유효적이었다. 그 약속된 메시야로 말미암아 그들은 완전한 죄 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 이를 구약이라고 일컫는다.”


은혜 언약은 실체적으로 하나뿐이며, 율법의 구약 시대와 은혜의 복음 시대라는 두 세대들의 구별은 은혜 언약의 본질에 관한 구별이 아니라 동일한 은혜 언약의 실행 방식의 구별임을 주의 깊게 기억할 것을 교훈합니다.


하지만 구약성도들이 아직 오시지 않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것에 대하여 두 가지 사실을 제시합니다.


1) 하나는 구약시대의 율법 아래에서도 그리스도를 미리 나타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들은 약속들, 예언들, 희생제사들, 할례, 유월절 어린 양, 그리고 유대 백성들에게 전달된 여러 모형들과 규례들입니다.


이것은 지금 살피는 신앙고백서 86항이 그것들은 그리스도가 계시되었던 약속들, 모형들 그리고 희생제물들에 의해서 전달이 되었으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인의 씨로, 그리고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표지가 되었다고 정리하고 있는 것과 바로 동일한 교훈을 전달하는 진술입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는 여인이 아니라 여인의 씨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인인 마리아가 아니라 여인의 씨인 그리스도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과거에 불가타 라틴 역본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자를 여성 대명사(ipsa)로 제시한 까닭에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원수의 정복자를 마리아로 해석하는 잘못을 범하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 영향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를 미리 나타내신 약속, 예언, 모형들을 설명하는 맥락 가운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복음의 원천적인 약속이 바로 여인의 후손인 그리스도이심을 바르게 교훈합니다.


2) 구약 성도들이 아직 오시지 않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신앙고백서 86항의 끝 부분에 진술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동일성입니다.


6항은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13:8)는 말씀을 들어 구약의 성도들도 동일한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받으며, 그들도 이미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효력을 미리 취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말씀은 단지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교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 그의 구속의 효력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구적으로 지속적으로 적용이 되며 나타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리아나 사가랴가 모두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는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1:55)고 찬송을 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그리스도 구속사역의 효력의 선취에 관한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잘 드러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의 때에도 성령 하나님의 활동으로 인하여 그에게 미리 보이신 그리스도의 약속과 모형들의 계시를 믿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에 관해 신앙고백서 75항에서 그것들은 성령의 활동으로 인하여 그 당시에 약속된 메시야에 대한 신앙으로 선택받은 자들을 가르치고 자라게 하기에 충분하며 유효적이었다. 그 약속된 메시야로 말미암아 그들은 완전한 죄 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 이를 구약이라고 일컫는다고 적절하게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서 86항은 구약의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효력을 미리 전달을 받았음을 명확하게 밝혀 줍니다.


구약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계시를 약속으로 받아 믿었으며, 영생의 소망을 바라며 살다가, 믿음을 따라 죽었을 때, 마침내 그들은 하늘의 본향, 곧 죽음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른 것입니다.


신약 교회에 속한 우리들도 구약성도들의 믿음의 자취를 따라 믿음으로 살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복된 낙원에 이르는 기쁨을 누리고, 마침내 이루실 종말의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가운데 오늘의 신앙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김병훈 목사/합신 조직신학 교수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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