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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방법
'하늘의 것들' 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땅의 것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성경도
독자들에게 영원한 것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의 언어를 사용한다.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새, 왕(王), 양(羊), 군인 등을 동원하여 자신의 사상을 표현한다.
우리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놓여 있는 깊은 심연을 뛰어넘도록 돕기 위해서
성령님은
포도와 백합, 금(金)과 그루터기, 옥수수와 소떼, 비(?)와 별들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 세상의 것들을 비유로 사용하여
종교적 사상을 표현하는 일이 자꾸 반복된다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는가?
그럴 경우
우리의 신학이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신학 이해에 미묘한 변화가 조금씩 생길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자연적인 것들과 비교하여 이야기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것들의 본래 의미가 크게 오해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독교 교사들은
신앙적 이해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교회 사람들이
영적인 진리를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
그러나 언제까지나
비유와 풍유를 사용하여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 교사의 과업들 중 하나는
비유와 풍유를 사용하지 않고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비유는 보석을 담고 있는 상자와 같다.
언제까지나 비유만 사용하면
사람들은 상자를 보석으로 착각하여
상자로 만족하고 더 이상 보석을 찾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이다.
기독교는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인간을 본다.
복음은
인간의 내면으로 깊숙히 파고들어서
인간의 보편적 본질을 찾아 낸다.
인간의 피부가
희든 검든 붉든 간에 상관하지 않는다.
풀로 만든 오두막에 사는 석기 시대의 인간이든,
에어컨 장치가 되어 있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문명사회의 인간이든, 인간의 내면은 동일하다.
성령님은
바로 이 인간을 계속 찾으신다.
영적인 진리를
자연적인 것들에 비유하여 이해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하나님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본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되는 삽화도
너무 자주 사용되고 화가의 붓에 의해서 객관화되면
오히려 독자의 이해를 한정하거나 방해할 수 있다.
- A.W 토저/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