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절기들, 어떻게 볼 것인가?
서론: 종교개혁의 유산
이것들은 한국교회의 독특한 현상이다. 좋게 보면 이것들이 한국교회의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보면 분파성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절기들이 깊이 있는 신학적인 충분한 검토 없이 관습적으로 도입이 되어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우리 고신교회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생활원리를 지향해 왔다. 기념주일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성경과 교회의 관계이다.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유산을 받은 우리 교회는 성경만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였다.
이것을 절기에 적용시킨다면, 교회의 절기는 성경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은 재세례파와 같이 모든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는 구호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오직 성경을 그들의 방식으로 이해한다면 성경에 없다는 이유로 유아세례를 거부했던 재세례파들과 같이 성경에 없는 모든 절기는 전부 다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성경’은 교회의 전통을 무조건 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따라 그것을 개혁하는 원리였다.
종교개혁은 교회 절기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당시 교회는 수많은 절기들로 오염되어 있었다. 물론 부활절과 같이 순전한 절기도 있었지만 인간이 고안한 비성경적인 절기들도 많았다.
특별히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인들을 많이 숭상하였기 때문에 그 성인들을 기리는 절기들이 많았다. 이것들이 각 지역의 여러 전설들과 결합되면서 미신적 신앙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오게 되었다. 심지어 이런 절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전통적 절기들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 맞서서 개혁파 신앙을 물려받은 청교도들은 성경이 보증하지 않는 모든 절기들을 폐지하려고 하였다. 심지어 이들은 성경에 의해서 보증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성탄절도 폐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거의 대부분의 개혁교회 안에서 성탄절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회 안에 하나의 절기로 정착되었다. 절기에 관한 교회의 실제적인 역사는 성경 중심의 교회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몇 가지 문제점
교회 안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성경에 없는 절기들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잘 알 수 없다. 정착하게 된 경위가 절기들마다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 중에 하나는 어떤 절기가 교회 안에 자리를 잡은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그것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그 도입을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필요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교회 안에 절기로 정착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린이주일’을 생각해 보자. 이 기념주일이 한국교회 안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가장 큰 이유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한국에 어린이날이 있다 보니 교회도 어린이주일을 도입하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교회적 관심을 증진시키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교회가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여러 절기들이 충분한 신학적 검토 없이 들어오게 되면 교회의 예배가 어떻게 될까? 물론 어떤 교회는 그런 절기들을 잘 활용해서 부흥하는 교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주의에 빠지고 만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교회의 절기들은 큰 짐이 되고 있다. 심지어 교회의 가장 큰 절기라고 할 수 있는 성탄절도 예외가 아니다.
이전의 왕성했던 활력을 많이 상실했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성탄절 이브 행사는 동네 잔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발표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만 겨우 참석하는 재롱잔치로 변하고 말았다.
어린이들이 교회에서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성탄절 행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경우도 많다. 성탄절 행사가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감에서 겨우 지탱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에 없는 절기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교회가 정한 절기가 보다 권위 있는 성경적 절기를 밀어내는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스승의주일’이라고 할 것이다.
스승의주일은 종종 성령강림절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령강림절을 지키는 교회는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교회는 맥추절로 지키고 있다. 정말로 지켜야 할 성령강림절은 생략하면서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 ‘스승의주일’은 예외 없이 지키는 현상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신학교수인 필자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에는 민망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의 교사’는 개혁교회에서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이들이 아니라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원 교수를 가리킨다.
교회의 행사인 스승의 주일을 지킨다고 하면서 신대원 교수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여기에 대해서 답변이 부정적이라는 사실은 교회의 절기가 순전히 개 교회 중심적인 행사로 전락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어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주일’이라는 표현을 차근차근 짚어 보자. ‘어린이주일’이 어린이를 경배하는 주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이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는 주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은연중에 많은 것 같다. 어린이주일이 그 교회에 어린이를 허락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날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주님의 날인 주일에 대한 심각한 왜곡을 가져 올 수 있다. 이런 신학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 점차 적어지는 상황 속에서 어린이주일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이런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어린이’와 ‘주일’은 호응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버이주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의 절기를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 절기와 관련된 가장 큰 과제이다.
총회가 정한 기념주일 역시 오늘날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예전에 비해서 총회가 정한 기념주일의 숫자가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성경적인 절기가 난무했던 종교개혁 이전 당시와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교회들이 아예 총회가 정한 기념주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기념주일에 관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해당되는 기관을 위해 헌금을 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념주일을 지키더라도 전 교회의 공감대 없이 몇몇 관심 있는 교회만이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절기는 공교회적 성격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기념주일은 그 성격상 경직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기념주일이 정해지면 그것을 없애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해당되는 기관들의 엄청난 반발이 눈에 보듯 선명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기념주일을 비롯한 교회의 모든 절기는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것이 형식화 될 때 교회의 절기는 교회를 세우기보다는 교회의 짐이 되고 교회의 힘을 서서히 약화시킨다는 점을 교회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몇 가지 제언들: 올바른 자리매김과 우선순위의 설정
한국적 교회 절기가 교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자리매김이 필요하다. 그와 같은 절기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신학적 정리가 없다면 성도들은 절기를 지키면서도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절기는 하나의 지나가는 형식이 될 뿐이다.
성경 중심의 교회를 지향하는 우리 고신교단은 무엇보다 성경에서 분명하고 확실하게 명한 절기부터 지키는 전통을 확립해야 한다. 주일이야 말로 가장 권위 있는 절기이다.
이 신적 권위를 가진 절기가 인간이 제정한 한국적 절기에 의해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아쉽게도 예전과 달리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이 많이 약화되었다.
텔레비전을 주일에 시청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 되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더라도 성도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주일에 예배 출석만 잘 하면 다른 것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주일성수가 주일출석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수준이다. 다른 절기에 대한 강조는 주일성수가 충분히 교회 안에 정착되고 나서 이루어져도 충분하다.
주일성수 다음에 교회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절기는 세례와 성찬이다. 이것들은 구약의 유월절과 할례의 모형이 오늘날 주님의 교회에 실현된 절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엄하게 명하신 절기이다.
그렇다면 이 절기 혹은 예식을 오늘날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 1년에 한 두 차례만 시행할 것이 아니라 매주 혹은 자주 시행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늘 구속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서는 성찬과 세례에 대한 교육과 말씀의 선포가 현재 보다 훨씬 철저하게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성령강림절은 교회의 3대 절기라고 불린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교회적 성격을 가진다. 비록 이 절기들에 관한 성경의 명시적인 규례들은 없지만 특정한 날을 정하여 그리스도와 성령의 특별한 사역을 기념하여 그분들을 경배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절기 전체를 배격하는 것은 ‘오직 성경’의 원리를 잘못 적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이상하게 성령님 예배하는 전통이 약한 데 참된 성령론을 고백하는 우리 고신교회부터 성령강림절을 지켜서 한국교회의 빛과 소금이 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절기들을 지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키는 방식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성탄절과 크리스마스트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트리를 세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현란하고 화려하게 그 나무를 장식하는 것이 과연 성탄절 정신에 어울리는가?
우리 주님은 오히려 낮고 천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지 않으셨는가? 주님과 전혀 상관없이 산타클로스를 노래하는 캐롤송은 성탄절의 의미를 완전히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신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 외의 절기들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선택적으로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앞에서 말한 절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으며 부수적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그 절기들이 유일하시고 참된 삼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시행하지 않는 것이 교회를 위해서 훨씬 유익이 될 것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절기에 대한 이해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기가 많다고 예배가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이 시기에, 절기행사를 많이 만들어서 교인들에게 짐을 지우기보다 정말로 필요한 성경적 절기에 먼저 모든 힘을 기울이는 것이 지금 현재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성호 교수 / 고려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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