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회와 교회의 성장
Ⅰ. 어원적 고찰과 성경적 이해
1. 어원적 고찰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용어는 그리스어 ՅՊՊՋՇՓՉՁ의 번역이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부를 때 주로 ՅՊՊՋՇՓՉՁ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 동사 ՊՋՇՓՉՁ(부르다)와 전치사 ՅՊ와의 복합동사인 ՅՊՊՁՋՅՙ에서 파생된 것으로 "---로부터 불러내다"라는 어원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ՅՊՊՋՇՓՉՁ 라는 이 말은 에베소 사람들이 사도 바울에게 난동을 부린 이야기에서 나오듯이 세속 희랍어에서도 사용된 말이다. ՅՊՊՋՇՓՉՁ 는 "불려 나온 사람들"이고 이 불려 나온 사람드르이 모임이며 백성들의 집회이다. 따라서 ՅՊՊՋՇՓՉՁ 가 직접의미하는 것은 -아무리 종교적 의미를 가미한다하더라도- 정치적 집회이지 신성한 종교의식의 집회는 아니다.
원래 ՅՊՊՋՇՓՉՁ는 고대 도시에서 시민들 전체의 회합을 지칭하거나 혹은 법률로 지정된 업무를 실행하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구성된 시민들의 회합을 지칭하는 말이었다.이 단어는 그리스도교가 처음으로 사용한 다어가 아니라 이미 헬라 세계와 70인 역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로버트슨은 '본래 ՅՊՊՋՇՓՉՁ는 고향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고 했으며 트랜취는 이 단어에 구별의 개념을 추가시켰다. ՅՊՊՋՇՓՉՁ가 처음에는 구별의 개념을 가진 단어였지만 후대의 사용에서는 그러한 구별의 개념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ՅՊՊՋՇՓՉՁ는 회중 또는 부름을 받은 회중이란 뜻이었는데 후대로 가면서 단순한 회중이나 집회를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2. 구약에 나타난 교회의 이해
구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카할'과 '에다'이다. '카할'이란 말의 본 뜻은 '부르다'라는 말에서 만들어진 말로서 '의논하기 위하여 소집된 공동체'라는 뜻이다. 래드마허는 이 단어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데 첫째로 잘못된 증언에 의해 공적인 일에 의해, 전쟁이나 침략에 의해, 귀환하는 포로들의 무리에 의해, 또는 종교적 목적에 의해, 예루살렘에 있는 회복된 공동체,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려 모인 무리들로 구성된 조직체로서 회중을 의미한다고 한다. 구약성서에서 대체로 '회중'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다.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그를 예배하기 위하여 모이며, 거기에서 그들은 야훼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요, 자기들은 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계약관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에다'는 처음에는 '카할'과 함께 하나님의 율법을 듣고 그를 위하여 부름을 받아 모인 모임을 의미했다. 언어학적으로 '카할'보다 더 오래된 말로서 '택한다'라는 뜻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택함을 받아 모인 집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되었다. 그러나 70인역에서 이 말은 더 제한 된 의미로 사용되었다.
3. 신약에 나타난 교회의 이해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나타내는 두 단어에 'ՅՊՊՋՇՓՉՁ'와 '쉬나고게'라는 단어로 언급된다. 앞에서 ՅՊՊՋՇՓՉՁ에 대하여는 알아보았고, '쉬나고게'는 '오다' 또는 '함께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다. 쉬나고게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회합 또는 공족 예배를 위하여 모인 건물을 지칭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사용되는 의미를 극히 한정되어있고, 반면에 ՅՊՊՋՇՓՉՁ가 사용된다. 이것은 종종 '백성들의 집단으로부터'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이 접두어가 ՅՊՊ-
ՋՇՓՉՁ의 성경적 용법과 관련하여 사용될때에는 교회가 인류로부터 부름을 받은 택함받은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Ⅱ. 20세기 신학자들의 이해
1. 칼바르트의 이해
오직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아래 있다고 강조하며 오직 성서만이 하나님 자신이 자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오직 이 책만이 교회 안에서 정치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 책만이 교회를 지배할 수 있다. 교횐 안에서는 교회를 지배하는 어떤 교직 계급이나 교회의 조직체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권주의는 교회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교회안의 지도적 인물이나 교직자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자이며 하나님 말씀의 봉사자에 불과하다. 바르트는 교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연관시키고 있다. 교회의 본체론을 이해하기 위한 바르트의 기본적 신학개념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한 언약 내용의 부르심과 응답이 전 공동체를 형성시켰다고 본다. 결국 바르트의 교회 존재에 대한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그 근거를 찾는다.
바르트는 교회의 통일성에 있어서 '나는 하나의 교회를 믿는다'고 말하고 네가지 속성으로 분류한다. 첫째는 가시적 교회와 비가시적 교회이다. 가시적인 것은 비 가시적인것에서 생명을 얻으며 비가시적인 것은 가시적인 것에서만 모여지고 나타나기에 하나라는 것이다. 둘째, 전투하는 교회와 승리하는 교회이다. 곧 과거교회와 현재교회는 하나가 되고 또한 미래의 교회로 하나가 될 것이다. 셋째로, 그리스도 인전의 역사 속의 이스라엘과 성령 강림 속의 그리스도 교회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역사를 중심으로 언약에 대한 성취, 완성으로서의 구약과 하나님의 이스라엘로서 통일이다. 넷째, 교회와 교회들이다. 곧 수많은 지역적, 교파적 교회가 근본적 사명이 일치된다면 통일 될 수 있으며 그것은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가 될 때 가능하다. 바르트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근거로 교회를 성경에 속했다든가 성경에서 떠난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는 비연속적이다. 그리스도가 교회는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자신도 아니요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해석하는 것은 교회가 오직 응답하는 행위에서만 그러하다. 바르트에 있어서 교회와 그리스도의 몸의 개념은 종말론적인 신앙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교회가 교회로서 해야할 봉사와 복종의 조건을 인식하는 한 교회는 계속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이 되며 이 점에서 비연속적인 연속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2. 한스 큉의 이해
그는 성서와 전통에 대한 개념은 대립 모순되거나 어느 한쪽이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한 가지 사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과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역사적 표현이라고 한다. 그는 교회 본질에 있어서 양명선이 있다고 말하며 영속적 본질과 가변적 본질로 나눈다. 그는 이 영속적인 본질은 변하는데 형태 속에서 식별해 낼 수 있을 때 비로서 인간의 역사 안에 잇는 참 교회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의 형성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고 있는데 곧 교회의 근원은 단순히 부활한 예수의 의도와 사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건 전체, 즉 예수의 탄생, 활동, 제자선택에서부터 예수의 죽음과 부활 및 그 부활의 증인들에 대한 성령의 부여에 이르기까지 예수 사건 전체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떤 외적인 특수집단을 만드시지는 않았다 는 것이다. 예수를 따르도록 부름을 받은 제자들도 그들이 벌써 "예수의 교회"가 되어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옛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의 구별은 사도들의 설교에서 비롯된 것 뿐이라는 것이다. 교회와 성령과의 관계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영을 통하여 교회 안에 현존, 활동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을 겨회에 가득채운다고 말하며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며 성령은 신구교 어느 곳에나 활동하며, 교회의 성령 카리스마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일반적인 것이라고 한다. 교회의 단일성에 있어서 이것은 순전히 영적인 형상이며 교회의 싸움과 분열은 이러한 다양성 때문이 아니라 배태적인 상이성에서 온다고 말한다. 교회의 보편성에 대하여 진정한 카톨릭 교회란 그리스도와의 동일성에 그 기초가 있다. 예수의 메시지 자체가 실로 보편적이었으며 이 메시지를 바탕으로 초대 교회는 어렵게나마 세계적 보편주의 사상에 이르게 된 다는 것이다.결론적으로 교회의 단일성과 보편성에 대한 근시안적이며 프로테스탄트 사상 대신에 그리고 혼란하고 산만한 카톨릭 사상 대신에 복음 중심적 카톨릭성을 주장하고 있다. 교회의 사도성에 있어서 사도직은 일회적이며 반복이 불가능하며 사도직을 계승할 수 없어도 사도의 사명은 남아 존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승은 내적인 것이요 영적인 계승이며 교회가 그 모든 구성원들을 통해서 사도들의 증언과의 계속적인 일치를 보존한다는 점에 있어서라고 말한다. 교회의 봉사 없이 사도들의 증언인 성서의 증언에 충실할수없다고 하면서 사도적 봉사의 계승을 말한다. 교회의 거룩성에 있어서 신약성경에 어느곳에도 거룩한 교회라는 것은 없다, 본래의 의미는 '성도들의 공동체'이며 성도들의 교회라는 의미에서 교회는 거룩하다고 할 뿐이다. 즉 교회가 거룩한 것은 세상과 구별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의 보호와 지탱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Ⅲ. 교회성장의 종류와 원리들.
1. 교회 성장의 종류
1) 내적성장-질적성장
내적성장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은혜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뜻하는데 그리스도인의 영적성장을 말한다. 이것은 회중들이 신앙적인 면에서의 깊이와 질적인 성장을 뜻한다. 교인들이 더욱 열정적을 기도할 수 있게 되고 성서와 성례전에 몰두하여 성도간에 사랑의 교제를 힘스고 정의,평화,일치,해방,복음화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더욱 민감해져서 이에 복종하게 될 때에 교회는 내적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2) 팽창성장-양적성장
외적으로 나타나는 개체교회의 교인들의 숫적 증가를 말한다.
생물학적 성장은 자연성장이라고 말한다. 전도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교인들의 자녀를 자꾸 낳고 그들이 자라는 동안에 교회의 숫적인 성장을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이동성장은 현대교회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성장이다. 오늘의 사회는 이동이심한 것이 특징이다. 이농이직을 통한 이동이 증가됨으로서 도시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고, 이와함께 교회의 개척설립,교회의 확장은 사회적인 환경과 비례하게 되었고 도시교회는 급격하 템포로 성장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동성장이다. 회심성장이 있다. 이것은 전도성장이라고도 한다. 복음전도를 통하여 회개하고 주를 믿어 돌아온 교인들에 의하여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회심성장이야말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 세계방방곡곡에가지 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종류의 성장이다.
3)확장성장
동일문화권안의 동일한 집단과 지리적 지역에서 지교회들을 설립함으로서 이루어지는 성장으로 역시 비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데서 오는 성장이지만 이 경우에 있어서는 전도받은 사람들을 자기가 속한 본 교회로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회를 개척함으로서 교회의 수가 늘어나는 성장을 말한다.
2. 교회성장의 원리들
1) Donald A. McGavran의 성장원리
(1) 교회성장의 원리를 발견하라.
(2) 성서적 원리를 존중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3) 하나님의 확고 불변한 섭리에 몰두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4) 효율적인 선교에 우선권을 둘 때 교회는 성장한다.
(5) 주의 몸된 교회를 올바로 분별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6) 지역사회를 분별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7) 제자로 만들 새로운 그룹들과 그에 따른 방법들을 발견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8) 계획된 친자관계를 통하여 스스로를 재창조해 나갈 때 교회는 성장한다.
(9) 성장을 위해 조직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10) 성장을 위하여 모험을 감행할 때 교회는 성장한다.
2) Peter Wagner의 성장원리
(1)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목회자와 전체 교회의 성장을 위활용하도록 촉매작용을 하는데 이용되는 목회자의 영적 지도력이 있어야한다.
(2) 기동성 있는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모든 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고 또 그 성령의 은사들을 발전시켜서 성장을 위해 유효하게 사용하여야한다.
(3) 한 교회는 교인들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넉넉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4) '대예배'와 '모임'과 '세포조직' 이 세 가지 사이의 능동적인 관계가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야한다.
(5) 교인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동질 구성 단위에서 형성되어야한다.
(6) 우선 순위들은 성경적인 순서대로 정렬되어야 한다..
3) R. Stedman의 성장원리
(1) 공동의 지체적 삶의 원리
⸁ 공중예배에 초점을 둔다.
⸂ 아카데믹한 지역사회와 조화
⸃ 탈형식성
⸄ 집회는 즉석에서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준다.
⸅ 짐을 같이 나누어 지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2) 행정과 지도자적 원리
⸁ 통계치의 사용은 극소화하라.
⸂ 행정목사와 교육목사를 둔다.
⸃ 목회의 지도자적 책임을 다분화한다
⸄ 선전적인 광고의 사용을 회피하라.
⸅ 성공은 높은 출석률 이상의 것이다.
⸆ 지도자직은 주권을 위임하지 않는다.
(3) 재정적 원리:재무관리의 초점은 건물보다 교역에 둔다.
(4) 시설설비의 원리: 건축과 건물관리에 많은 에산을 사용하지 않고 성령의 교통을 중요시하므로 소박한일면을 보여준다.
(5) 사역의 원리
⸁ 은사의 발견과 사용에 우선권 부여
⸂ 목회는 기능상 전 신자에게 속한 것이다.
⸃ 새 목회는 교인들에 의하여 발기되어진다.
(6) 기독교 교육의 원리
⸁ 가정은 하나님의 신학교이다.
⸂ 어린이들보다 가족에게 접근하라.
⸃ 교회학교는 신자를 위한 신병 훈련소이다.
⸄ 지체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보다 더욱 가시적이다.
(7) 에큐메니즘의 원리: 연합운동에 있어 가시적인 합동 이전에 영적 일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8) 전도의 원리
⸁ 강단을 통한 전도보다 지체를 통한 전도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 가정 성경공부는 복음 전도의 모델이다.
Ⅳ. 결 론
오늘날 교회가 주위와 세계를 품어야 하는 막중한 사명에도 불구하고 사회봉사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명령하시고 성서가 증거하며 교회에 있어 선교의 핵심인 사랑 즉 이웃사랑을 교회는 어떻게 실천하며 구체화시킬 것인가? 지극히 작은 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라면 하나님 사랑의 종교적 차원과 이웃사랑이라는 윤리적 차원이 하나의 통일된 차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교회는 어떻게 임해야 할까? 먼저 로마 카톨릭 신학자인 델레스는 현대교회의 다섯가지 모델을 제시하는데, 첫째, 지도자로서의 교회, 둘째, 신비적 단체로서의 교회, 셋째, 성례전으로서의 교회, 넷째, 보도자로서의 교회,다섯째, 종으로서의 교회이다. 이 중 마지막의 내용이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비교적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은혜의 중재자로 또는 권위있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자로서의 교회를 강조하는 대신에 교회를 섬김의 도구로 이해하고 있는 점이다. 델레스의 이러한 신학의 전망에서 교회의 사명은 그들이 어디서 있든지 모든 사람을 도와야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화해하고 여러방법을 통해 그들을 하늘나라에 초대하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첫째는 종으로서의 교회의 모델로 바꾸어져야 하며, 둘째로 이제 교회는 어떤 상황하에서도 그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시기가 왔으며 어떤 특정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뒷받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특히 교회에서 채택하는 봉사나 각종 활동의 과정이 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추진될수있도록 확실한 대안이 세워져야한다. 셋째로 지난날의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취하기만 하였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 줄 아는 교회가 되어야겠다. 성결하고 진실할뿐 아니라 사랑과 봉사의 뜨거운 손길이 세상 곳곳에 미치는 교회, 그것이 오늘날 요구하는 교회의 모습이어야 한다. 이 위대한 사랑과 과제 앞에 교회는 떨리는 마음으로 서서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인류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며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해 매진해야한다. 넷째로, 교회의 방향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교인 전체가 그 부르심의 분량대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신학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교회체제를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즉 평신도들과 목회자와 함께 목회자를 위해서 목회자들과 더불어 하나님과 세계를 향해서 선교에 동참할 수 있다는 체계로 신앙적 전통을 거쳐서 선교의 문제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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