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론(A THEORY OF CHURCH GROWTH)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그에게 충실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성장은 두 가지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가 수직적인 차원(vertical dimension)이요, 둘째가 수평적 차원(horizontal dimension)이다. 수직적 차원이라 함은 교회성장에 있어서 신적 차원(divine dimension)을 말함이요, 수평적 차원은 인간적 차원(human dimension)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신적 차원이라 함은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있어서 그 성장요소의 원천(source)을 하나님에게서 찾는 것이고, 인간적 차원이라 함은 교회의 성장요소를 인간에게서 찾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성장 요소의 양면성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성장에 있어서 주도적인(initiative) 역할을 하시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교회를 주관하시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교회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신성한 기관이기 때문이다(마 16:18). 마이클 하밀톤(Michael Hamilton)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있는 파사데나에서 열렸던 교회성장 세미나에서,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박사가 언급한 말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는 것이 교회성장을 위한 그의 뜻이다" 라고 했다.
교회성장의 수직적 차원은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관계로, 구속사역에 관련되어 있는 중요한 신학적인 이슈(issue)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는데, 이점에 있어서 조직신학자인 헨리 티센(Henry C. Thiesse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구속계획을 예정하셨다. 이 계획 속에는 구원이 준비되는 방법들과, 실현되어야 할 목적들, 이 은혜에 참여할 사람들, 이용할 수 있는 조건들, 그리고 적용될 수 있는 중재와 수단들이 포함되어 있다." 성부 하나님께서 구속을 계획하셨고, 성자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성취하셨으며, 성령께서 그 구속을 인간에게 적용시키시고 계신다. 물론, 구속의 계획이나 구속의 성취, 그리고 구속의 적용 등이 전혀 독립적인 사역에 속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구속사역도 역시 창조사역(works of Creation)과 마찬가지로 삼위께서 함께 의논하시고, 성취하시고, 적용하시는 것이다. 단지 신학적인 논리로 설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본체론적(本體論的, ontological) 측면에서 볼 때 일체이시며, 경륜론적(經倫論的, economical) 측면에서 볼 때 삼위라는 원리에 적용하여 설명하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은 구속계획을, 성자 하나님은 구속의 성취를,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구속의 적용을 주도하신다는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절대적으로 교회가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경륜론적(經倫論的) 삼위일체(economical Trinity)의 논리로 볼 때, 교회성장은 절대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시는 데는 언제나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점에 있어서 씨세모어(John T. Sisemore)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하나님께서 교회성장을 위하여 항상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는 인간이 홀로 자력에 의하여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순한 인간으로서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능력이 없다. 교회성장은 하나의 독특한 공동 작업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능력의 공동 사역으로 창출되는 결과이다."(God seems to always use human instrumentality in producing church growth. This observation does not mean that man alone can produce authentic church growth. Mere man lacks both the potential and the power to grow a church. Church growth is the product of a unique synergy-a coalescence of human effort and divine empowerment) 물론, 이 공동 사역이라는 것은 주도적 역할과 종속적, 의존적 역할로 구분해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신다는 것은 교회의 성장의지(the will toward church growth) 뿐만 아니라, 성장능력(energy of growth)까지도 하나님께서 부어주셔서 그의 원하시는 교회성장에로 주도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면 인간이 교회성장에 있어서 하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의미는 과연 무슨 뜻인가? 기계나 동물과 같이 사용하신다는 뜻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기계적이나 동물적으로, 다시 말하면 맹종의 도구로 사용하시지 않는다.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을 기계와 같이 맹종으로 사용하신다면, 자신을 맹종의 기계와 같이 만드는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둘째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와 결단력을 동시에 주셨고,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그 지혜와 용기로 결단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기계적인 인간으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며 영적인 인간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을 기계적으로 다루지 아니하시고 인격적으로 다루신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행사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경에 보면, 바울 사도도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으니"(고전 3:6) 라고 말해서 인간은 교회성장에 보조적 역할, 즉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되, 성장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역설했다. 이 구절에서 "나"(I) 라고 하는 이는 물론 바울 사도로서 인간이다. "아볼로"(Apollos) 역시 인간이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교회의 성장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요, 교회의 성장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성장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서, 인간은 이 사역에 참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즐거움에도 참여하게 된다(마 25:21). 그러므로 이 사역을 위하여 불리움을 받은 사람은 교회성장을 위하여 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 사명이란 종이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seeding)과, 물을 주는 것(watering)과 관리하는 것(management)등을 의미한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면 선교(mission)와 목회(ministry)라고 한다. 그러므로 전자는 교회개척(planting)을 위한 전도와 선교이요, 후자는 설교(preaching)와 돌봄(pastoral care)을 통한 목회사역을 의미한다.
교회 성장에의 접근
(APPROACHES TO CHURCH GROWTH)
교회성장의 원리와 전략분석에 따라 교회성장을 위한 계획(a plan for the church growth)이 수립되는 것이 합리적이며 효과적이다. 우선 교회성장을 위한 계획은 성서적, 신학적 원리에 기초하여, 그 개념과 운동들을 탐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목회자는 성서적, 신학적 방법에 기초하여 교회성장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테일러(Richard S. Taylor)는 "신학적인 기초가 없는 '교회성장'이란 교회성장이 아니요 다른 어떤 것에 불과하다는 것은 거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건전한 교회성장에 관하여 언급하는 뜻이라 하겠다.
교회성장의 개념(Concept of Church Growth)
"교회"(church)라는 용어는 본래 고어의 어근인 "qal" 또는 "kal"에서 유래된 "qahal" 또는 "kahal"이라고 하는데, 의미는 "부르다"(to call)는 뜻이다. 구약 성경에, "ya'adh"에서 유래된 "'edhah"로서 "지정하다"(to appoint) 또는 "지정된 장소에서 만나다 혹은 함께 가다"(to meet or come together at an appointed place)의 뜻이고, 신약에, " "(out)와 " "(to call)의 합성인 "불러내다"(to call out)의 뜻인 " "와, " "(with)과 그리고 " "(to gather)의 합성어인 "와서 함께 모이다"(to come and bring together)의 뜻인 " " 즉 congregation라는 뜻의 말이 있다. 박형룡 박사 역시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아서 함께 모인 공회 혹은 회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교회"의 개념은 이와 같은 어원학적인 근거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교회"란 하나님께 소속된 집합체(company)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敎會)란 바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company who belong to God)의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성회(Assembly of God)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에 함축된 의미(connotation)는 영적인 모임, 즉 신령교회(神靈敎會) 또는 무형교회(無形敎會)의 뉴앙스(nuance)가 있다. 또 하나는 회중(congregation)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교회 공동체(church community)로 유형교회(有形敎會), 혹은 조직교회(組織敎會)의 뉴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해석들에 비추어 볼 때, "교회"라는 용어는 "성장"(growth of church)이라는 말과 밀접하게 연계되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교회라는 말이 "불러서 함께 모인다"(to call and come together)는 의미로 "성장" 즉 전도해서 교회라는 한 장소에 많이 모이게 한다는 뜻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이란 첫째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의 나라로서의 한 대리기관(an agency)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로 불러모으는 것으로부터 이루워지는 것이다. 주류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 전통(Christian tradition)에서는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그 관계성에 있어서 여러가지로 표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가현적 기관으로서의 교회(church)와 동일시하고 있다.
물론, 교회성장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신다. 교회의 양적 성장(quantitative growth)은 단순한 전도사역(evangelism)들을 통하여 이룰 수도 있지만, 교회의 질적 성장(qualitative growth) 혹은 교인들의 영적 성장(spiritual maturity)은 교회 활동에 참여함(involvement in church activities)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숫적 증가(increase in number), 혹은 양적 성장은 전도활동(evangelism)을 통하여 달성할 수 있지만, 교인들의 질적 성장 혹은 영적 성숙은 계속적인 목회사역(continuing ministry)을 통해서 달성하게 된다. 티페트(A. R. Tippett)는, 교회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계속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성장이란 사람의 육체성장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나무의 성장에도 비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이란 어떠한 사건(event)나 영적인 부가물(spiritual addition)을 취급하는 것도 아니요, 세상에서 기독교의 결신자들과 교회들을 창출해 내는 영적인 재창조(spiritual reproduction)와 그 과정을 의미한다. 교회성장은 인간의 개선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반대로 죄인을 새로운 피조물(new creature)인 속죄받은 인간(redeemed man)으로 중생시키고(born again), 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거룩한 모임(assembly of God)인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를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도(evangelism) 뿐만 아니라 결신자들(converts)을 위한 목회관리(pastoral care)까지 계획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교회는 양적(quantitatively)으로나 질적(qualitatively)으로 달성(達成)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성장 운동의 역사 (The History of the Church Growth Movement)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교회성장"이라는 용어(用語)는 1955년에 교회성장운동(The Church Growth Movement) 기관을 설립했던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의 교회성장 이론(McGavranism)에서 유래되었다. 그때부터 교회성장의 원리가 전세계에 있는 교회들에게 적극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교회성장 학파는 훌러신학교를 본거지로 하고 있는 도날드 에이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랠프 윈터 (Ralph Winter), 아더 그라슬러(Arthur Glassler), 촬스 크래프트 (Charles Kraft), 알렌 티페트(Allen Tippett), 그리고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와 윈안(Win Arn), 죤 윔버(John Wimber)로 형성되어 온 파사데나 학파(Pasadena gang)와 켄트 헌터(Kent R. Hunter), 엘머 타운즈(Elmer Towns), 촬스 채니(Charles Chaney), 론 류이스(Ron Lewis)등과 같은 아웃사이드 학파들(outside school)이 있다. 특히 맥가브란의 명맥을 이어 현재 피터 와그너 (Peter C. Wagner)가 주도하고 있는 파사데나 학파(Pasadena gang)가 현대 교회성장학을 주도하고 있다.
교회성장운동 초기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의 내용으로 된 전도요소들이 강조되었지만, 그것은 제자훈련을 포함하여 전적인 교회참여에 기초한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교회성장학의 권위자이며 맥가브란의 제자이기도한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성장은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교회 멤버가 되게 하기 위하여 데려오는 일에 포함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를 성장시킨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신자가 교회 멤버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전도해서 교회 멤버가 되도록 만들었을 때에, 이것을 양적 성장(quantitative growth)이라고 하고, 교회로 인도해서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영적으로 성숙하도록 자라게 하는 것을 질적 성장(qualitative growth)이라고 한다. 성경에 보면,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엡 4:13-14)
성서역사나 교회역사로 볼 때에, 교회성장은 많은 경우에 제자훈련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기초를 놓으신 후에, 사도들과 그 후속 교회들이 부단히 이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몇몇 목사들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도입, 실행되어 한국 교회 성장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이미 1900년대 초에서부터 교회성장을 위하여 제자훈련의 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했다.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성장은 신적인 면과 인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주요한 성경적 개념들(key biblical concepts: 마 18:19-20; 행 6:1,7; 엡 4:15)과 비유적 표현들(imageries: 마 13:33; 5:16; 고후 4:6; 행 26:18; 요 4:35; 마 13:31-48; 요 15:5, 8; 엡 2:21, 22 etc.), 그리고 씨세모어(John T. Sisemore)의 주장과 같이 지속적인 교회성장을 도출해내는 제자훈련의 원동력등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교회성장에 있어서 신적인 면(divine aspect)은, "가서 복음을 전하여(evangelizing: preaching the Gospel)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discipling: making disciples)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해당하는 것이고, 인적인 면(human aspect)은 전도, 교회교육, 제자훈련 등과 같은 교회성장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라는데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이 교회성장의 요소는 인적인 면과 신적인 면이 있다.
기독교안에서 교회성장을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일어났는데, 크게 나누어 교회운동(church movement)과 파라쳐치 운동(para-church movement)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교회 안의 운동이라면, 후자는 교회 밖의 운동을 말한다. 교회 안의 운동으로서는 구역회 활동(home cell group activity), 부흥회(revival meeting)와 특히 한국에서 사경회라고 불리우는 성경강론회 (sa-kyung-hoe)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교회밖의 운동으로는 주로 전도대회와 선교운동으로 외국의 빌리그래함전도회를 비롯하여 대학생 선교회(CCC), 기독대학생 친교회(IVCF), 네비게토(Nevigators), 대학생 성경연구회(UBF), 학생 성경연구회(SBH), 죠이 선교회(Joy Mission), 기독청년회(YFC)등이 이에 속한다. 그 외에도 기도원 운동이나, 요즈음에 카톨릭 교회에서 도입된 뜨레스 디아스(Tres Dias), 잘못되긴 했지만 레마선교회등도 파라쳐치 운동에 속한다.
근래에 와서, 새로운 종류의 평신도운동이 한국의 지역 교회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역 교회 목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제자훈련이다. 물론 이 운동은 한국에서 교회성장에 상당히 기여하는 바가 있어서 몇몇의 개척교회들이 대형교회로 성장한 사례가 있다.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제자훈련을 일찍 도입하여 시도해서 제자훈련을 통한 교회성장의 모델 케이스가 된 서울 사랑의교회 당회장 옥한흠 목사는 평신도를 재 발견하여 제자훈련을 시키는 일은 어떤 선교단체나 국제기구에 떠맡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역교회의 목회자들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소명이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그의 저서 {평신도를 깨운다}에서 역설했다. 사실, 교회성장을 위하여 전세계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제자훈련 사역은 교회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사역이다. 피터 와그너는 교회성장은 목사가 교회의 평신도들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느냐에 많이 달려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들은, 그들의 교회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평신도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해주고(motivate), 그들로 하여금 활동적(active)이고 생산적(productive)인 사람들이 되도록 하는 구조(構造)들을 어떻게 창출(創出)하며, 그들로 하여금 의미있는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길로 어떻게 인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성장의 중요성(Importance of Church Growth)
교회성장이란 하나님에게나 인간에게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이란 어떠한 의미에서, 인간 구원의 방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지상에 있는 교회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확장은 교회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궁극적인 의미로 볼 때, 지상 교회(earthly church)의 확장이란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의 확장을 의미하기 때문에 교회성장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위 하나님의 지상명령(Supreme Order of the Triune God)
하나님은 잃은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계신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겔 34:16; 눅 15:4;).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교회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또한 교회성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려 주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다(마 28:19-20; 행 1:8-9). 더욱이 교회성장은 성령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성장은 성령과 더불어, 그리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피터 와그너는 그의 저서 영적인 능력과 교회성장(Spiritual Power and Church Growth)이라는 저서에서 "제일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오순절 교회성장의 근본 요인은 성령의 능력이다"(행 2:37-47)라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취로 완성된 구속을 인간에게 적용시키시는 성령께서 실제로 인간에게 교회성장을 위하여 동기를 부여해주시고 실행할 능력까지 주신다. 교회성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다.
교회성장의 중요 문제(Vital Issues of Church Growth)
교회성장에 있어서 중대한 이슈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가 성장하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문제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가든 그로브에 있는, 교회성장의 모델 케이스로 이름있는 수정교회(The Crystal Cathedral)의 로버트 슐러(Robert H. Schuller) 목사는 교회성장에 대하여 "성장이 없는 곳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다"(where there is no growing, there is dying)라고 말했다. 교회란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와 같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면 죽게 된다. 성장은 생명의 고유속성이다. 생명체가 성장을 중단하면, 이미 쇠퇴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의 성장이 중단되면 쇠퇴하게 된다. 벨리우(Wendel M. Belew)는 왜 어떤 교회는 성장하고 다른 교회는 쇠퇴하는지 기이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병든 상태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젠슨(Ron Jenson)과 스티븐스(Jim Stevens)는 건강한 교회의 비결은 평신도들을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사역에 참여시키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교회가 건강하려면 평신도들을 목회사역에 직접적으로 참여시켜야 한다. 평신도들을 참여시키지 않는 것이 심각한 병폐이다. 그것은 교회의 중요한 기관을 마비시키는 무서운 병폐가 된다." 사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방대한 목회사역에 있어서 교회의 무거운 짐을 목회자 혼자서 진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바르나(George Barna)는 "교회들이 문제에 대응하여 기회를 따라 행해야 할 때에, 왜 마비상태가 되는지에 대한 두 가지 중대한 이유 즉 첫째 목사와 둘째 평신도 사역의 실패 가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하면, 첫째로, 목사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 목회사역에 있어서 지도적 위치에 서도록 허용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는 전근대적 목회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렇게 할때에, 교인들을 증가시키고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쉽을 개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평신도들이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방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평신도들이 목회사역에 감동되지 못하고 교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래트니(Pratney, Winkie)는 "당신은 주 예수께 중요한 존재임을 알라!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곧 당신이 군중들 가운데 결코 잃어 버린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라고 외쳤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목회사역에 증인과 사역자로 불리움을 받은 것이다. 평신도들도 그들이 이미 그들이 처해 있는 지역사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교사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벤네트(Thomas R. Bennett)는 그의 "평신도 프로젝트"(Project Laity)에서 평신도 목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피터 와그너는 성장하는 교회의 첫째로 중요한 표지(the first vital sign)는 교회를 성장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자기의 은사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목사요, 둘째의 표지는 잘 동원되는 평신도(well-mobilized laity)들이라고 말했다. 교회성장은 첫째로 목사의 훌륭한 리더쉽과, 둘째로 잘 훈련된 평신도들의 활동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목사의 리더쉽과 잘 훈련된 평신도들의 활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교회를 이끌어 나갈 때에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다. 손봉호 박사는, 교회성장은 그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평신도들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아가르(Frederick A. Agar)는 유능한 교회는 훌륭한 목사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절하게 개발되고 잘 훈련된 평신도의 리더쉽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하여 로빈손(Darrell W. Robinson)은 "목사와 평신도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한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을 지었다. 사실, 교회의 성장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의 절묘한 조화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달성된다.
그러면 다음으로 문제는 무엇인가? 강겔(Kenneth Gangel)은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봉사하는데 있어서, 평신도를 이용하는데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봉사하는데 있어서, 평신도를 이용하는데 세 가지 근본적인 문제: 오용(misuse)과 불용(disuse) 그리고 남용(abuse)에 직면하게 된다. 오용이란 자격을 갖추지 못한 교사들나 일군들을 고용하는데 대한 언급이요, 불용이란 교회 좌석을 메운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 많은 교인들에 대한 언급이며, 남용이란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사람에게 짐을 지워 고용하는데서 오는 문제에 대한 언급이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교회의 또 다른 문제는 평신도 개인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다. 화물열차로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목사는 견인역할을 하는 기관차(engine)요 평신도는 화물을 운송하는 화차(freight train)이며, 프로그램은 이 화물열차가 진행하는 궤도(rail road)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분명한 비젼(clear-cut vision)을 가지고, 정해진 목표(the goal set)를 향해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하고, 평신도는 목사의 목회 사역에 적극 참여해야 하며, 이러한 사역(activity)에는 반드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그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교회성장의 근본문제는 (1) 아무것도 하지않는 목사(do-nothing pastor), (2)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 평신도(uninvolved laity), (3) 프로그램의 결여(no programs)등 세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반대로 이 세가지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여 교회를 활성화시킨다면 교회는 되살아나며 틀림없이 성장하게 될 것이다.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자의 임무(PASTOR'S TASKS FOR THE GROWTH OF CHURCH)
그러면 교회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이가? 이 문제는 목회자들에게 어느 다른 문제들 보다도 중요하며, 마치 금광에서 금을 찾아 헤메듯 애타게 찾고 연구하며 바라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vital issue)이다. 목회자라면, 다른 무엇에서 보다도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문제가 바로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데서 오는 걱정과 그 책임감에서 오는 죄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교회성장을 위하여 기본적으로 어떠한 순서를 밟아가야 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하기로 한다.
비젼을 먼저 받아야 한다 (Receiving a Vision)
교회성장을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 교회성장의 역사는 지혜의 영이요 계시의 영인 성령을 통하여 비젼(vision)을 받는 것으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행 10:9-16; 16:6-10; 엡 1:17; 요 14:26). 비젼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는 의미심장한 뜻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비젼에 대하여 신앙적인 개념을 비젼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 비젼이란 자기 자신에게서 창출해내는, 실존주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인본주의적 발상으로 기독교적인, 즉 성서적인 개념과 분명히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챤의 비젼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제단으로 부터 나오는 비젼이라야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비젼이 없는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 인도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죽는다(삼상 1:1-2; 계 3:1). 성경은 "비젼 없는 백성은 망한다"(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라고 말한다(잠 29:18 KJV). 비젼이나 뚜렷한 목적이 없을 때에, 사람들은 고충을 당한다. 로버트 슐러가 말한대로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where there is no growing, there is dying). 목사가 교회성장에 대한 비젼을 가지는 것이 성장의 열쇠가 된다. 죽어가는 교회들의 문제는 능력(ability)이 없어서가 아니라 비젼이 없다는 것이다.
비젼(vision)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비젼을 어떤 이상(ideal)이나 미래의 독특한 영상(unique image)이라 한다. 사실 비젼이란 하나님의 비상한 접촉에 대한 개인적 체험의 결과로서, 정신적 혹은 영적 영상(mental or spiritual picture) 이상의 것이다. 비젼은 동기를 부여받은 지도자나 사람들의 그룹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추진력(driving force)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비젼은 어떠한 가능성(possibility)까지 포함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본래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gift)이다. 목사는 이러한 비젼을 가져야 하고,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교회성장의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로이 포인터(Roy Pointer)는 이러한 통찰력을 가리켜 "교회성장의 안목"(church growth eyes)라고 불렀다. 로버트 슐러는, 목사는 교회성장에 대한 "가능성의 사고"(possibility thinking)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가능성의 사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가능성의 사고는 의도하는 바 하나님께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서의 꿈을 실현시키는 영상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가능성의 사고는 또한 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하신 그러한 종류의 믿음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로버트 슐러는 자기 자신의 목회철학적인 가능성(可能性)의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불가능이란 없다"(nothing is impossible!)고 담대하게 말한다. 이 가능성의 사고방식이 심령과학적이며 인위적인 방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슐러는 교회성장에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교회성장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의 말은, 성령은 우리의 생각과 인격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생각을 비워 성령께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성의 사고방식(possibility thinking)이라고 설명한다.
비젼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Confidence in the Vision)
목사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젼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비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비젼이란 말씀에 근거하여 주어지고, 믿음으로만 받고, 믿음으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 믿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해서 비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 뿐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비젼이란 크게 두 가지 신령한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불가시성(invisibility)이다. 육안이나 이성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신령한 눈이 열려야만 볼 수 있는 불가시성이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를 믿음으로 포착하게 된다. '증거'라는 말은 개역성경(RV)에서 '증명'(proving)으로 번역되었고, 그 성경의 각주에서는 '시험'(test)이라고 주석되어 있어, "보여줌으로 확신(conviction; convince)시켜 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더 핑그(Arthur W. Pink)는 보지 못하는 것, 즉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을 현재 영혼의 눈으로 보고, 영혼의 손으로 붙잡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믿음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을 확신(convince)하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교회성장을 위한, 아직 달성을 보지 못한 목표를 믿음의 눈으로 미리 바라보는 것이 비젼이다(visualization). 그러므로 비젼을 통하여 불가시적인 성장의 모습(image)을 바라보고 이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비젼(vision)은 미래성(futurity)을 가지고 있다. 역시 히브리서 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고 했다. 여기에서 '실상'은 헬라어로 ' '로서, '확신'(confidence)이라는 뜻이다. 아메리칸 표준성경(ASV)에는 'ground'(근거)라는 뜻이며, 개역성경 (RV)에는 'assurance'(확신)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었다. '실상'이란 영어로 'substance'라고 번역되었는데, 이 말은 라틴어 'sub'(under)라는 말과 'stans'(stand)라는 합성어에서 온 것으로, 그 뜻은 '아래에 서 있다'는 뜻이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비젼이 실현되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회성장에 대한 비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로버트 슐러는 "하나님은 결코 당신이 당신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것에 당신 자신을 맡기지 아니하는한, 기적을 일으키지 아니하신다"고 말했다. 물론, 가능성의 사고방식(possibility thinking)이 인본주의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가능성의 사고여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다시 말하면 비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비젼을 보아야(받아야) 하지만, 만약에 그 비젼에 대하여 지도자 자신 마져 확신이 없다면, 교회 성장에 대한 방향(direction)과 목표(target)가 없기 때문에, 의욕과 추진력(driving power)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비젼을 보이고, 확신시켜야 한다 (Showing and Carring the Conviction of the Vision)
목사가 비젼을 받아서 확신을 가진 후에, 그 비젼을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발전(develop)시켜야 한다. 교회성장에 대한 분명한 비젼을 제시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교인들은 소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에 교회를 떠난다. 교회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안겨주어서 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교회성장에 대한 비젼은 강단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보여져야 하며, 여러가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주입시켜서 교인들의 머리속에 확실하게 새겨져야 하며(oriented),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리되고(proved), 성령의 역사(役事)를 통하여 교인들에게 인식되며(recognized), 그 비젼에 대한 동일화(identification)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함께, 목사는 진정으로 교회성장에 대한 불타는 욕망을 가진 의욕적인 태도(attitude)와 액숀(action)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인들에게 보여줌으로 그들을 설복시키고 확신시켜야 한다. 아무리 좋고 분명한 비젼이라 하더라도 교인들에게 보여주어 저들에게 온전히 인식시키고(recognized) 동일화시키지(identified) 않는 한, 저희들을 교회성장 운동에로 끌어들일(involve)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인들을 교회성장운동에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다.
교회성장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Planning for Church Growth)
교회성장에 대한 비젼을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인식시켜서 강력한 지지를 얻은 다음에는, 비젼을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계획수립(planning)은 교회성장을 위한 성공의 열쇠이다. 계획이 없으면, 목사는 교회성장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인들이 바라볼 수 있는 분명한 목표(clear-cut target)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로서 목사는 우선 교인들 중에 주요 멤버들에게 교회성장에 대한 원대한 청사진(big picture)을 보여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당회(consistory)나 운영위원회(steering committee)와 같은 교회의 중추기관들의 핵심 멤버들(key members)에게 목회자의 비젼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교회성장에 관한 개략적인 청사진(big picture)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교회 당회의 동의를 얻어서 각 분과위원(executive committee)에 위임한다. 각 분과위원에서는 전년도 사업성과를 면밀히 분석 평가하고, 신년도 예산에 최대한 활용하여 사업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목사의 분명하고 확신있는 비젼과 강력한 리더쉽(leadership)에 근거해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추진력이 없다.
교회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Motivating their Congregation)
목사는 분명하고 효과적인 계획을 가지고, 교회성장을 위하여 끌어들인 교인들에게 동기(motivating)를 부여하고, 고취시키고(enhancing), 동원시켜야(mobilizing) 한다. 목사 혼자서는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많은 일과 무거운 짐들을 질 수가 없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그 일들을 나누어 질수 있도록 그들에게 동기를 줄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드(Jethro)가 모세(Moses) 혼자서 그의 일을 처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출 18:18). 그러므로 모세는 그의 주요한 일만을 하고 남은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서 하였다. 열 사람의 평신도들이 일을 나누어서 하게 되면, 한 사람의 목사가 열번에 걸쳐서 해야 할 일의 분량을 한 번에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미국 캘리포니아 쌘디에고(Sandiego)에 있는 스카이라인 감리교회(Skyline Wesleyan Church)의 담임목사인 죤 맥스웰(John Maxwell)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우리들 대부분이 남에게 손을 뻗기 전에 동기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손을 뻗으며, 어떻게 동기를 부여받아야 하는지를 배울 필요가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지를 알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잠재능력을 일깨울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하밀톤(Michael Hamilton)은 말하기를 "우리는 지역교회에 있어서 동기부여가 계속적인 성공의 열쇠이므로, 교인들이 예배와 목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부연하여, 설리반(Sullivan, Bill M.)은 "교회성장을 위한 동기부여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부터 나와야지, 개인적인 만족이나 야심을 채우기 위함이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다. 목사는 교인들이 움직이도록 고취시키고, 교회성장에 대한 열망의 파장(desire waives)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조용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설교자의 생각속에서 넘쳐나온 성장의 파장은 전교회의 당회, 제직회, 평신도들의 가슴에 메아리쳐 동조하는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전교회가 하나의 거대한 성장운동으로 변화되어 모든 불가능의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놀라운 능력으로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무슨 일이든지 동기가 없으면, 일의 추진력은 물론, 이슈가 없으므로 그 일에 대한 의욕 부터가 없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동기가 없다는 것은 일에 대한 명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아니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비젼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계획을 담당해서 추진해 나가야 할 사람들에게 그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지 않으면, 그 계획은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에 대한 비젼과 훌륭한 프로젝트(project)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에 동원될 평신도들에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지 못하면, 그 프로젝트는 사장되고(hoarding) 만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관리(people management)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교인들을 끌어들여 참여시켜야 한다 (Involving & Participating the People)
목사는 교회성장 운동(church growth movement)을 추진하기 위하여 동기를 부여받고(motivated), 고취된(enhanced) 교인들을 끌어들여(involving) 참여시켜야(participating) 한다. 여기에서 "끌어들인다"(involve)는 말과 "참여한다"(participate)는 이 말은 약간의 다른 뉴앙스를 가지고 있다. "끌어들인다"(involve)는 말은 교인들을 관심을 갖도록 하여 활동에 관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성장 운동에 관심을 갖도록 하여 교회성장을 위한 활동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아직 적극적으로 활동에 뛰어드는 상태 가 아니지만, "참여한다"(participate)는 말은 끌려온 교인들을 교회성장을 위한 활동에 적극 개입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뉴앙스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연속된 하나의 과정으로 취급된다. 교인들을 교회성장 운동에 참여시키지 않고는, 그 운동 자체가 쓸모없게 된다. 목사는 교회성장을 위하여 이러한 열망(desire)의 파장(waves)을 전교회에 파급되도록 계속적으로 고취시키고 촉구해야 한다.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여 여의도 순복음중앙교회의 조용기 목사는 수십만의 교인으로 교회를 성장시켰다. 교회성장을 위하여 중요한 것은 교회성장에 대한 열망을 갖는 것이다.
교인들의 동원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Mobilizing the People)
사실, 교회성장의 성패는 목사와 평신도, 그리고 프로그램등 세 가지 요소에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무엇 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사의 리더쉽(pastor's leadership)과 평신도 동원화(laypeople-mobilization), 그리고 프로그램 운용(programming)등 이 세 가지 요소가 교회성장의 열쇠가 된다. 이 중에서 두번째에 해당되는 평신도의 동원화는 앞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이에 대하여 정진황 박사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목사가 교인들에게 아무리 능력있는 설교를 할찌라도, 설교만으로는 배가적인 방법으로 달성되는 교회의 급성장을 결코 기대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교회성장의 열쇠는 평신도의 동원화에 있다." 평신도가 동원될 때에, 목사는 동원된 교인들을 통하여 전도활동, 교육 프로그램, 제자훈련, 선교활동, 그리고 사회 봉사활동 등 교회성장을 위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동원화된 교인들은 한 사람의 강력한 목사 보다, 교회성장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는 목사가 여러 번, 혹은 긴 시간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평신도를 동원한다면, 한 번에, 혹은 짧은 시간내에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목사의 목회사역에 있어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시간절약, 에너지절약, 비용절약 외에도 목사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중의 하나인, 지쳐서 번아웃(burn out)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교회성장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에, 크게 두 종류의 운동, 즉 목회를 위한 부흥회 또는 사경회와 같은 교회운동과, 선교나 전도대회와 같은 범교회운동이 병행해서 전개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 와서는 범교회운동의 기관들은 제자훈련을 발전시켜서 교류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범교회운동이 약간의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성장에 기여해온 것이 사실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여러 교회들이 제자훈련을 도입하여 교회성장을 위한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 방법은 역시 한국에서도 성공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평신도 동원화 방법은 분담목회(sharing ministry)를 위한 것이다. 성경에 비추어 볼 때,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사역은 분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모든 신자들이 거룩한 제사장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벧전 2:5). 그리고 교회 멤버들은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고전 6:15; 12:12-27; 롬 12:4,5; 엡 4:25; 5:30; 1:22; 골 1:18). 특히 바울 사도는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KJV).
평신도들의 교회참여를 통하여 초대 교회는 번영하고 왕성하였다. 피터 와그너는 목사들이 그들의 사역을 교회성장을 위하여 평신도들에게 분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에 목사들이 교회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그들이 지불해야할 제3의 대가는 그들의 사역을 분담하는 것이다. 이것은 평신도는 물론 다른 프로그램의 스탭과 함께 수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분담목회에 있어서 또 다른 면은 다른 사람들과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즉 사랑의 교제를 말한다. 사랑은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죄인들에게 까지 나누어져야 한다. 사실, 가장 순수한 목회의 형태는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접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목회란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평신도 목회사역을 통하여 모든 교회가 성장할 수 있다. 물론, 교회는 다른 방법으로도 성장할 수 있지만, 교회의 양적성장은 물론, 질적 성장은 평신도 훈련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교회성장은 성서적인 기초(foundation)와, 신학적인 견지(perspective)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과연 교회성장이 건전하게 잘 이루어 졌는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만족할만한 성장인가? 아무리 교회성장이 좋은 것 같다 할지라도, 그것이 성서적, 신학적인 기초에 근거하지 아니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피터 와그너는 타협할 수 없는(unnegotiable) 일곱 가지 신학적 바탕을 말하고 있다: (1) 하나님의 영광, (2) 주 예수 그리스도, (3) 복음적 설교, (4) 성경의 권위, (5) 종말론적인 것으로서 죄, 구원, 그리고 영원한 사망, (6)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기뻐하시는 일, (7)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대한 책임과, 그들의 사역을 위한 성령의 역사 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회성장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영광을 전제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만이 건전한 교회성장이라 할 수 있다.
교회성장의 원리 (PRINCIPLES OF CHURCH GROWTH)
교회성장에 관하여 연구한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의 교회성장 원리들을 제시해왔다. 어떤 사람은 성서적인 기초에, 혹은 신학적인 견지에 초점을 맞추는가 하면, 다른 이들은 특수한 교회성장의 환경(situation)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 모두가 교회성장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 간의 관련성 혹은 적응성(relevancy)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성장을 위하여 어떻게 이용되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 사이에는 상관관계(co-relationship)가 있다. 최우선적으로 성서적 신학적 기초가 중요한 것이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교회 현장의 배경(context)이다. 성서적 신학적 기초가 중요하지마는 목회 현장을 무시한 성서적 신학적 원리들만으로는 효과적인 교회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성장의 선교적 원리를 씨뿌리는 것으로, 그리고 목회현장(ministry fields)을 밭으로 비유하셨다.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에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 떨기에, 더러는 좋은 땅에 뿌렸다고 한다(마 13:3-9). 그 중에서 마지막의 좋은 땅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종류의 밭들(길가 밭, 돌밭, 가시떨기 밭)은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 아무리 좋은 씨를 뿌리더라도 밭의 토양(soil)이 좋지 않으면 결실을 맺지 못한다는 원리이다. 아무리 좋은 복음, 능력있는 말씀의 원리라도 그 원리가 적용되는 여건(conditions)이 조성되지 아니하면 소정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아무리 훌륭한 교회성장 원리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원리가 적용될 교회 현장의 여건이 조성되지 아니하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성장의 성서적 원리도 중요하지만 교회성장을 위한 목회 현장의 배경(context)도 중요하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보내시면서 여러가지 유의사항들을 말씀하셨다. 그 중에서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서 전도할 때의 전도전략(strategy)을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전진과 후퇴의 전략, 전술들(strategies and tactics)을 말씀하신 것이다. "아무 성에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의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 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 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마 10:11-14).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우선 "합당한 자를 찾아내라"(마 10:11)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무지로 합당치 않은 자를 찾아가서 빈 축복이면, 그 들이 받을 수 없고 수고한 전도자에게 돌아 온다고 하셨다. 여기에 전도자의 특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해서 합당한 자를 찾아내지 못했을 때에, 그 전도는 일단 실패로 돌아가고 시간과 노력만 낭비한 결과가 된다. 이는 예수님의 전도전략의 원리를 받아 가지고 나갔지만 전도 현장의 여건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로 효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성장의 원리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파악하고 적용하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아니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앞에서 말한대로 교회성장의 수직적 차원(vertical dimension)과 수평적 차원(horizontal dimension)이다. 이 두가지 경우에 있어서, 이들은 교회성장을 위하여 그들이 운용될 수 있는 영적인 능력(spiritual power)에 의하여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교회성장은 원리(principle)는 물론 능력(power)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 원리들은 교회성장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설명하는 것이다. 이 관계성에 대하여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성장의 매 단계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하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리들은 능력을 대신할 수 없고, 그 능력의 역사 역시 그 원리들을 불필요하게 만들지 못한다." 이 말은 교회성장의 원리와 능력은 별개의 것으로, 교회성장의 절대적 요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교회성장의 원리는 교회성장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교회성장의 능력은 교회성장의 추진력이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특히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 교회성장에 관한 많은 원리들이 나타나 있다. 교회성장 원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의 원리들로 나타나 있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원리를 비유(parables)로 들어 말씀하셨다. 우선 복음서에서 비유를 통한 많은 교회성장의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빛과 소금의 비유(마 5:13), 밭에 씨뿌리는 비유(마 13:3-30), 겨자씨의 비유(마13:31-32), 누룩의 비유(마 13:33),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마 13:44), 진주장사의 비유(마 13:45-46), 그물의 비유(마 13:47-50), 잃은 양의 비유(마 18:10-14), 혼인잔치의 비유(마 25:1-13), 달란트의 비유(마 25:14-30), 추수의 비유(마 9:37; 막 4:29; 눅 10:2; 요 4:35)등, 수없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는 오순절 교회성장의 원리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행 2:1; 2:41; 2:47; 16:5). 즉 초대 교회의 성장의 특수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비유들에서 교회성장의 원리들을 유추(類推)한 의미심장한 의미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비유의 대상들에는 무엇보다도 생명성(生命性)과 고귀성(高貴性)이 있어서 천하보다도 귀하고 주님의 몸(Body of Christ)인 교회의 비유로 유추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의 원리는 생명의 성장의 원리서 유추되는 것이다.
교회성장의 신적 국면 (Divine Aspect)
신적인 면에서 볼때에, 교회성장의 동기는 하나님과 그의 주권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벧후 3:8). 하나님의 뜻은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 오기를 바라신다. 디모데 전서 2장 4절에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주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원하신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지상에 있어서의 교회의 성장을 의미한다. 물론, 교회가 완전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시 된다는 뜻은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나라 현현의 일부(part of the manifestation of the kingdom God in the world)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종말까지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그의 대리자(代理者, agent)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종말에 가서야 완성될 종말론적(終末論的) 하나님의 나라(the eschatological kingdom of God)의 완성을 전제로한 미완료 상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열망하신다.
교회성장의 신적인 면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주권에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성장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다. 성경에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 잘 나타나 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이의 뜻은 내게 주신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요6:39). 이 말씀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그의 의지와 주권적인 결단을 볼 수 있다. 야고보서에 보면,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약 4:12)고 하여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또 바울은 그의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롬 9:18)고 말하고, 바로 전에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다름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고 하여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성장의 인적 국면 (Human Aspect)
인적인 국면에서 볼 때, 토양의 선택(choice of soil)과, 기경(tilling), 파종(sowing) 그리고 양육(follow-up, caring)등과 같은 교회성장의 과정을 수행하는 것은 신적인 원리에 따른 인간의 책임, 즉 인적인 국면이다. 이러한 교회성장의 과정들은 곡식을 심고 가꾸는 원리에 준한 것으로서, 교회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기 때문이다. 곡식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선 곡식을 심을 토양을 시험하여 옥토를 선택해야 한다(test and choice of good soil). 아무 땅에나 곡식을 심는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길가와 같은 밭에 씨를 뿌린다면, 토양이 굳어 있고 단단해서 씨가 싹이 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들이 와서 씨를 먹어 치운다고 하셨다(마 13:19). 마찬가지로 매우 강퍅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면, 물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파해야 하지만(딤후 4:2), 전도의 효과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귀들에 의해서 복음의 싹이 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환영하지 않는 곳은 떠나라고 했다. 아니면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골 4:3).
그러므로 효과적으로 결실을 볼 수 있는 토양인지 테스트하고 좋은 토양을 선택해야 한다. 다음으로, 밭을 갈아야 한다(tilling). 밭을 가는 이유는 땅이 씨를 받아 들이도록 하며, 싹이 날수 있는 부드러운 토양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이것은 복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condition)을 만들어주는 작업이다. 그 다음의 과정은 파종(sowing)하는 순서이다. 여기서 부터 인적인 국면 중에서 인간의 정성이 중요한 부분이다. 잘 파종하고, 잘 가꾸는 것(caring)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종들은 밭을 테스트하고 선택해서 갈고, 씨를 뿌리고 가꾸게 하는 일들로서 이것은 인적인 국면(human aspect)이요, 자라게 하시고 결실하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로서 이것은 신적인 국면(Divine aspect)이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고전 3:6, NIV).
에프 제이 메이(F. J. May)는 교회성장을 위한 11개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를 대략 살펴보면, (1) 위로 부터의 하나님의 능력(power from on high),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3) 함께 조화를 이룬 통일된 사역(work together in harmony and unity), (4) 영적인 은사들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선용될 수 있는 사역의 잠재력(the potential of spiritual gifts and ministries available to the body of Christ), (5) 기도의 사역(the ministry of prayer), (6) 목회의 신학(theology of ministry), (7) 복음의 설교및 가르침의 위임(anointed preaching and teaching of the gospel), (8) 교회성장을 위한 말씀의 효력(the influence of the Word for church growth), (9) 초자연적인 기적들, 표적들, 이적들(supernatural miracles, signs, and wonders), (10)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God sees the world from the perspective of love), 그리고 전도와 교회성장을 위한 기본적이며, 성경적인 계획(a basic, biblical plan for evangelism and church growth)등이다. 이들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성장을 위하여 메이(May)가 제시한 최우선적인 것(top priority)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종들이 그의 뜻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들을 통하여 주신 인간의 전략들(human strategies)을 효과있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교회성장 싸이클의 필수적인 여섯단계의 과정(the six essential phases of the church growth cycle)를 제시하였다. 즉 첫째, 동원화(mobilization)로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 증인들의 동원화하는 것이다. 둘째, 무장(equiping)으로 전교인이 그들의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이다. 셋째, 수용성(climate of receptivity)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넷째, 중생의 사역(effecting regeneration)으로 거듭남과 영적은사를 개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다섯째, 협동(incorporation)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데 있어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여섯째, 참여(involvement)로서 온 교인들을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적인 과정(phases)들에 비추어 볼 때에, 교회성장의 단계를 성경말씀에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동기부여(motivation): 씨의 준비와 개발(preparation and development of seeds).....교인들에게 비젼을 제시하고, 그 비젼을 발전시켜 동기를 부여하여 준비시킨다.
(2) 동원화(mobilization): 밭을 기경함(cultivation the soil)...교회성장을 위하여 수용할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한다.
(3) 참여(involvement and participation): 씨를 뿌리는 것(sowing or seeding).....평신도들을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4) 교육과 훈련(training): 양육(feeding or follow-up).....제자훈련과 같은 훈련을 통하여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무장시킨다.
(5) 사명수행(commitment): 결실, 생산(producing the fruits and seeds)...가서 제자를 삼아 세례주고 가르쳐 지키게 한다.
이에 관한 성경말씀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교훈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성장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 4:26-29). 예수께서 이와같이 사람들에게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교회성장의 단계는 생명체의 성장과정에 비유하여 설명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의 무기적(無機的)인 기관(an inorganic institution)이 아니라 인간의 몸과 같이, 유기적(有機的)인 기관(a living organization)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의 머리를 그리스도로 비유하여, 인간의 몸과 같은 유기적인 기관으로 설명될 수 있다(엡 1:22; 4:15; 5:23; 골 1:18). 교회성장이란 하나의 생명의 원리(principle of life)에 의하여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교회성장의 전략 (STRATEGIES FOR CHURCH GROWTH)
지금까지 신적인 면과 인적인 면으로서의 교회성장의 원리들을 성경에 비추어서 거론하였다. 사실, 교회성장의 원리와 단계들은 생명체의 경우와 같이 서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성장 전략들은 다같이 전도(선교)와 교회 부흥회(목회)들로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근래 연구와 실천경험(實踐經驗)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을 수행하는데 실제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 연구와 경험들을 통하여 교회성장을 위한 훌륭한 전략들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전략들이 성령의 역사보다도 교회성장의 우선적 방법으로 취하기 쉽다는 것이다.
교회성장 전략이 실제로 성령의 역사와 양립할 수 있는가? 사실, 그들 사이에 조화의 원리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들을 조화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내적인 양립성, 즉 죄의 성품과 성령의 소욕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갈 5:18).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체험에 의하여 그 원리를 로마서에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 잡아 오는 것은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롬 7:18-8:2).
그러면 이 두 가지 상반된 요소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물론, 그 대답은 위에서 말한 바울 사도의 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성령에게 맡기는 일이다. 그것은 인간의 소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에 맡겨야 한다(롬 8:5-11).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역사에 우선권을 맡기는 것이다.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사역을 전적으로 위임받은 다른 보혜사이시다(요 14:16, 17, 26). 이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5-26)고 말씀하시고, 성령께서 하실 사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 16:7-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전략이 전적으로 무시되어서는 아니된다. 인간의 전략은 성령의 역사에 따라 이차로 반드시 채용되어야 한다. 물론, 케인(Kane, Herbert J.)이 "드믈기는 하지만, 교회성장의 지지자들이 신적인 요소들 보다 인간적인 요소들을 강조해 왔다"고 말한 것과 같이 인간적인 요소들이 신적인 요소들 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인간의 전략은 절대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의존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에 의존할 때만이 교회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교회성장에 대한 절대주권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뜻이며, 그렇다고 해서 교회성장의 인적인 면을 무시하시는 말씀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의 전략에 있어서 인간의 전략을 교회성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다. 헌터(Hunter, Kent R.)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은 사역을 크게 증가시키기 위하여 제자들의 사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제자들(disciples)은 하나님께서 사역을 위하여 사용된 하나의 도구들(instruments)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즐겨하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용해야 할 만큼 무엇이 부족하시거나 무능하셔서가 아니라, 자기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그 본래의 목적대로, 인간을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이다. 인간이 타락한 죄인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간을 다시 구속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교회성장 전략의 성서적 기초(Biblical Foundation of Strategy)
전술한 바와 같이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에는 신적인 국면과 인적인 국면이 있는바, 이 두 면은 양립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같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에 이상적인 교회성장의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인간적인 방법 내지, 더 나아가서 사단적인 방법으로 성장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양적인 증가로서, 외적인 성장에 국한될 뿐 질적인 성장에 이르는 이상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주도하에 인간이 도구가 되어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교회성장에 대한 양면성을 말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나니..."(고전 3:67). 바울 사도는 인간이 전략을 세웠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시행해야 함을 성경의 실례를 통하여 잘 보여주고 있다. 본래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 선교전략을 세웠으나,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그 전략을 변경하여 마게도냐로 갔다(행 16:6-10). 베드로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이방인에게는 가지 않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으나, 하늘에서 부터 내려온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행 10:9-48)고 한 의미에서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은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능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공동사역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 말은 전술한 바와 같이 동일한 입장과 권위에서의 신인협동 사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성장 전략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성경에는 여러가지 형태의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들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성경을 보면 여러가지 종류의 전도전략을 위한 구조들이 기록되어 있다. 즉, (1) 일대일 전략(the man on man strategy), 즉 면대면의 정면전략(face to face strategy: 요 3:1-15; 4:7-30), (2) 이삼명 전략 (the two or three strategy: 눅 24:13-35; 막 9:2-8; 요 11:1-44), (3) 열두제자 전략(the twelve strategy: 마 6:12-16), (4) 칠십문도 전략(the seventy strategy: 눅 10:1), (5) 일백이십문도 전략(the one hundred twenty strategy: 행 1:15) (6) 오백문도 전략(the five hundred strategy: 고전 15:6), (7) 매스 전략(the masses strategy: 마 14:13-21; 행 2:41)등 다양한 전도전략들을 접할 수 있다.
에디 깁브스(Eddie Gibbs)는 사회학자들에 의해 분석된, 규모와 기능에 있어서 다른 세 가지 형태의 그룹들 사이에 구별되는 전략상의 세 개의 그룹구조 개념을 소개하였다. 다시 말하면, (1) 12명으로 구성된 제일그룹(the primary group), (2) 13명에서 최고 175명으로 구성된 제이그룹(the secondary group), (3) 175명 이상으로 구성된 제3그룹(the tertiary group)이다. 제1그룹은 친히 대면해서 전도하는 단위로서, 깊은 개인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준비하게 된다. 제2그룹은 개인적인 상호관계 보다는 사회활동을 강조한다. 제3그룹은 코뮤니티를 위한 기회로, 축제사건을 준비하게 한다. 신약성경에서 인용한 교회성장 전략의 형태에 있어서 또 다른 접근이 워치만 니(Watchman Nee)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그는 성경에서 착안하여 (1) 베드로의 그물 던지기형(the net-throwing or net-drawing style of Peter: 마 4:18-19; 행 2:40), (2) 요한과 야고보의 그물 깁기형(the net-patching style of John and James: 마 4:21), (3) 바울 사도의 천막 만들기형(the tent-making style of Paul: 행 18:3)으로 분류했다. 이것은 매우 톡특하고 흥미있는 발상(finding)이다. 그물 던지기형은 전도사역(evangelism)과 같은 교회성장 전략을 의미하고 있고, 그물 깁기형은 목사의 목회사역(pastoral care)을 통한 교회성장 전략을 의미하며, 그리고 천막 만들기형은 제자훈련사역(disciple-making ministry)으로서의 교회성장 전략을 의미하고 있다. 이들 교회성장 전략형들 가운데서, 본서는 천막 만들기형(tent-making style ministry)에 관심을 가지고, 제자훈련 사역을 통한 이상적인 교회성장에 관해서 논하고자 한다. 이러한 비유적인 표현(metaphorical expression!!)으로 볼때에, 이 전도전략이 바울 사도가 사용한 하나의 자급자족 사역(self-supporting ministry)이기는 하지만, 바로 예수께서 최초에 그의 열두 제자들을 만드신 것과 같이, 제자삼기 전략(disciple-making strategy)에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교회성장을 위한 매우 기본적인 전략이다. 예수께서도 맨 처음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한 그의 전도전략으로 단지 열두 사람을 훈련시키셨다.
결론적으로, 교회성장을 위한 성서적, 신학적인 기초를 세우는데 있어서, 성경에서는 조직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몇가지 구성요소들을 생각할 수가 있다. 즉, (1) 사람들의 선택(a person or people to be chosen), (2) 비젼을 통한 동기부여 (motivation through a vision), (3) 목표설정에 의한 동원화 (mobil-ization by setting the goal), 그리고 (4) 교회성장을 위하여 미리 예정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전략 (the strategy as the means to accomplish a predetermined goal for church growth)등을 생각할 수 있다. 목사가 교회성장을 위한 분명한 비젼과 전략이 없으면 교회성장을 위한 방향이 없고 추진력이 없기 때문에 교회성장을 위한 운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목사가 확실한 비젼을 가지고 분명한 목표를 설정한 후,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전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은 그 전략수행을 위하여 전술을 감안해서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성장 전략을 위한 준비 (Preparation for the Strategy)
교회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전략은, 먼저 비젼을 갖는데(possession of vision)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교회성장 전략은 비젼이 없이는 주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성장 목표가 비젼 없이는 설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비젼을 가지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전략을 세우는 방법론은 교회성장 방법론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첫째로, 비젼을 받아야(receiving a vision)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비젼이란 하나님의 제단으로 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젼을 받으려면 목사가 제단에 엎드러져 기도해야 한다. 이사야는 유다의 성군이었던 웃시야 왕이 죽자 캄캄한 나라의 장래를 바라보며, 낙심 가운데, 성전 제단에 엎드러져 기도할 때에, 제단으로 부터 나라의 장래에 대한 하나님의 비젼을 보고 믿음과 용기와 사명감을 회복하였다(사 6:1-13). 사무엘은 성전에서 상거하다가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삼상 3:1-14).
둘째로, 받은 비젼을 교인들에게 보여 주어야(showing) 한다. 비젼은 항상 교인들이 분명히, 그리고 계속적으로 지켜 볼 수 있도록 교회의 강단으로부터 들려지고 보여져야 한다. 목사는 항상 그 비젼에 관한 메시지를 계속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해서 목사는 자기의 교인들이 비젼의 분위기(visionary atmosphere)에 휩싸이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모든 교인들이 그 비젼에 오리엔트(oriented)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교인들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셋째로, 교인들이 그 비젼의 제창자인 목사와 동일화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목사가 그 비젼에 동정(identification)되듯이 교인들도 그 비젼에 동정(同定)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함께 그 비젼에 미쳐야 한다. 교인들은 그 비젼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비젼을 가진 지도자(指導者), 즉 목사(pastor: vsionary leader)와 동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이 없이는 교회성장 전략은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동역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들이 누구이며(identity), 그들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what they are supposed to be doing)에 대한 보편적인 비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넷째로, 그 비젼은 교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되고(developed), 분명해져야 한다. 만약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인들이 그 비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들은 교회가 그의 목표를 설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그 비젼은 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개발되어 선명해져야 한다. 더구나 받은 비젼을 받은자까지도 선명하지 못하고, 불투명하여 확신이 없다면, 그 비젼은 죽은 비젼(dead vision)이나 다름이 없다.
다섯째로, 교회는 그 비젼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교인들을 전체적으로 동원해야(mobilization) 한다. 모든 사람이 교회성장을 위하여 그 비젼을 수행하여 성취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사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 더구나 거대하고 방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에는 무한한 인력과 투자를 요하게 되기 때문에, 온 교인들이 함께 동원되어 물심 양면으로 투자해야 한다. 가나안의 비젼을 바라보며 전진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백성을 돌보는 일에도 지쳐서 쓰러질 지경이 될때, 그의 장인 이드로(Jethro)의 충고를 받아들여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으로 조직화된 백성들의 협조를 받아서 그 일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출 18:17-27).
여섯째로, 지도자들은 물론, 교인들도 그 비젼이 성취되도록 기다려야(waiting) 한다. 성경은 이를 비유로 설명한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6)고 했다. 다시 말하면, 비젼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어떠한 과정이 있어서 시간을 요하니까 조급히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라는 뜻이다. 성경에 보면, 때와 기한이 있다고 수없이 말씀하고 있다(전 3:1-8; 갈 6:9; 단 7:22; 막 1:5; 눅 1:20; 벧전 5:6; 갈 4:4; 막 14:41; 눅 22:14; 요 4:21; 7:30; 12:23; 16:2; 17:1).
일곱째로, 교회성장을 위하여 전략계획(planning strategy)이 수립되어야 한다.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계획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교회의 현재 상황(state of the church), 목표설정(setting goal), 프로그래밍(programming), 방법론(methodology), 재검토(review), 평가(eval!!uation)등에 관한 자료들(data)을 면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전략계획은 아무리 불안정되고 불확실하다 하더라도, 교회가 미래를 향하여 책임있게 진행시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데이타의 정확한 분석을 통하여 교회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교회가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프로그래밍의 방법을 개발하여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재 검토하고 평가(eval!!uation)해야 한다. 어떠한 면에서 과정(procedure)과 결과(result)는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교회성장에 대한 욕심이 앞서다 보면, 교회성장을 위한 진행과정을 무시하게 되는데 이는 건전한 교회성장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한다. 결과는 과정에 의하여 그 가치가 평가된다. 과정이 건전할 때에 그 결과도 건전하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그리고 정확한 평가(eval!!uation)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평가에 기초하여 차기전략(次期戰略)을 수립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성장 전략의 방법론 (Methodology of the Strategy)
군사전략 과학(military strategy science)에 있어서와 같이,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에 있어서도 다양한 전술들이 있다. 전략(strategy)의 개념이 전체적인 과정(overall process)인 반면에, 전술(tactics)의 개념은 전략에 기여하는 여러가지 활동(various activities)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 전략과 전술은 상황(context)에 따라 언제든지 변경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전략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황에 따라 선택되어져야 한다. 이와같은 전략의 변경 가능성에 대하여 피터 와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떠한 목표가 설정되었을 때에, 그것을 성취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결코 없다. 전략을 세우기 전에 그 목표를 성취시키기 위하여 가능한 한 여러가지 대안들을 마련하여, 그 중에서 최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견해가 허용되었을 때에,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도덕적인 책임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비록 죠셉 플리쳐(Joseph Fletcher)가 그의 저서인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였지만,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다비스(John Jefferson Davis)는 "상충된 도덕적 책임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실패한 경우가 상황윤리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죠셉 플리쳐는 "기독교 윤리는 진리가 아니며, 더 이상 법제화된 행동의 체계적인 규범이 될 수 없고, 기독교 윤리의 정수(精髓)는 바로 상황윤리로서, 그 원리, 즉 기독교적 결정규범은 사랑: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비기독교적인 실용주의 윤리(non-Christian pragmatic ethics)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줄 수 있는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기독교윤리가 아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 실용주의가 성경에 계시된 교리적, 윤리적 원리들에 위배되지 않는 한, 교회성장을 위한 전략에 유용할 수도 있다. 이와같은 경우에, 피터 와그너(Wagner, Peter C.)는 이것을 "성화된 실용주의" 혹은 "성별된 실용주의"(consecrated pragmatism)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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