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날개 교회 비전
행 2:42-47
88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었을 때 아마도 전 세계의 시선을 끈 개회식의 절정은 한 소년이 침묵 속에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 한복판을 지나던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1984년 로스 엔젤리스 여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었을 때 준비위원회는 개막식행사를 위한 한 멋진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국가가 연주될 때 올림픽 주 경기장 서쪽으로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새인 흰머리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 오른 후 경기장 잔디 아래로 낙하하여 오류기가 있는 횃대 위에 사뿐히 내려앉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조류학자들과 조련사들이 동원되어 밤비라는 이름의 독수리를 선정하여 특별히 고안된 훈련을 시켜 왔습니다. 드디어 연습 비행을 하는 날이 왔습니다. 한번의 실패에 이어 두 번째 경기장 서쪽에서부터 밤비를 놓아주자 잠시동안은 멋진 곡선을 그리는가 했더니 이어 그는 중심을 잃고 운동장 한복판으로 급강하하여 땅을 찍고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원인분석이 있었는데 첫째 이유는, 밤비가 비만했다는 것이었고, 둘째 이유는 날개의 균형이 없었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셀교회를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현대교회나 교인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비상하지 못하는 이유를 같은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첫째, 오늘의 교회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려는 나머지 비만해 졌다는 것과, 둘째는 두 날개의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와 교우들의 건강한 신앙의 미래를 위하여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려고 합니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교회와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질문1. 두 날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셀교회 전문가들은 이 두 날개중 하나는 대그룹 혹은 축제로서의 주일모임을 의미하고, 또 하나의 날개는 소그룹, 우리교회의 경우 목장모임을 의미합니다. 교회사상 가장 생동하는 교회였다고 믿어지는 초대교회 즉 사도행전의 교회는 바로 이 두 날개를 사용했던 교회였습니다. 오늘의 본문 46절에 보면 초대교인들은 어디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성전에서와 집에서 가졌습니다. 성전모임과 가정모임/대그룹모임과 소그룹모임-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두 날개였던 것입니다.
셀 연구가인 빌 벡햄 박사는 그의 저서인 '제2의 종교개혁'에서 대그룹모임의 유익이 하나님의 초월성을 경험하는 것이라면, 소그룹모임의 유익은 하나님의 내재성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예배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은 위대하고 높으신 하나님, 의로우신 하나님이나, 반면 소그룹 모임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은 낮아지신 하나님, 사랑이신 하나님 곧 친구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날개 경험이 다 요청됩니다.
질문2. 소그룹날개는 왜 필요합니까?
여기까지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한국교회는 전통적으로 구역예배를 통해 소그룹의 기능을 강조해 오지 않았는가를 반문하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어느 정도 이 기능을 감당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면에서 이 전통적인 구역예배의 기능이 소그룹날개의 역할을 할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소그룹모임은 대그룹모임과 성격이 다를 때에만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교회의 경우, 구역예배는 주일 대 예배의 축소판이어서 대예배의 보완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소그룹모임이 한번 더 모이는 모임으로만 존재할 뿐 교회화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 셀교회의 회복이 요청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개척교회도 교회인 것처럼 작은 목장교회도 교회인 것입니다. 목장교회에는 목사도 없지 않은가를 질문하시겠지요. 그 대답은 목자가 목사라는 것입니다. 평신도 목사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셀교회 전문가들과 신학자들은 평신도가 목사로 불리우지 못할 어떤 신학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이 바로 만인 제사장직의 본질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저력은 모든 평신도가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언제부터 교회는 한 날개를 잃어 버렸는지 아십니까? 콘스탄틴 대제가 서기313년 가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이후부터의 일입니다. 집에서 모이는 모임대신 성전에서 모였고, 평신도 목자의 역할대신 안수받은 성직자의 역할이 강조되었습니다. 주중모임대신 주일모임만으로 대체되었고, 교제의 모임은 상실된채 예배만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교회구조는 이제 가라의 구조가 아닌, 오라의 구조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공격적인 교회가 아닌 방어적 교회가 된 것입니다.--그 결과 무력한 구경꾼 평신도가 탄생하게 되고, 그들은 모든 거룩한 일은 목사에게 위임하고 세속적이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그러나 다시 오늘 초대교회의 원형을 보십시오 42절,46절에 의하면 집에서 성찬(단순한 교제일수도 있지만, 사도행전의 용례는 분명 그 이상의) 이 이루어지고, 찬양과 말씀 사역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47절에 보면 구원의 역사가 힘있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그룹날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질문3. 두 날개는 우리에게 어떤 비상을 약속합니까?
만일 우리 모두가 두 날개 교회의 지체가 되어 하늘을 나르기 시작한다면 세가지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첫째, 모든 곳이 사역의 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의 장이 교회당 안에서 뿐 아닌 모든 곳이 될 것입니다. 둘째, 모든 날이 사역의 날이 될 것입니다.(주일만이 아닌 모든 날에서 말씀이 선포된 것입니다) 셋째, 모든 신자가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 소위 신학교 나온 목회자만이 아닌 모든 평신도들이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야말로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한 이유가 이해가 되십니까? 목장교회운동은 단순히 목장모임을 강조한다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것은 저와 여러분의 사역에 대한 기존 생각의 틀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사제의 손에만 있던 성경을 평신도의 손에 돌려준 사건이었다면, 제2의 종교개혁은 목회자의 손에만 있던 사역을 평신도의 손에 되돌려 주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지도자 무용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적 지도자는 바로 모든 신자들이 이런 사역을 감당하도록 가르치고 훈련하는 자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야말로 교회는 두 날개를 펼쳐야 할 때입니다. 우리 개인의 신앙도 이 두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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