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부가 본 '하느님과 하나님'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면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들로부터 빈번히 받는 질문들이 몇 가지 가 있었다. "가톨릭은 마리아를 믿는 종교가 아니냐?", "목사님은 결혼을 하는데 왜 신부님은 결혼을 하지 않느냐?", "하느님이 맞냐? 아니면 하나님이 맞냐?"는 등의 질문들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월요일 아침 조회 대면 애국가를 크게 부르면서 특히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부분을 더욱 열창하던 개신교를 믿던 친구들의 모습들이 기억에 남는다. 분명히 교과서에는 "하느님이 보우하사"라고 나와 있는데 왜 저렇게 부를까 하는 의심들을 품었던 기억들도 있다.
우리 가톨릭의 '하느님', 그리고 개신교의 '하나님'은 어떤 차이가 있고 왜 그런 이름으로 불리워야 하는 것인가? 이 글을 통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함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모색해 보고자 한다.
1, 하느님과 하나님에 대해서
가) '하느님'의 사전적이고 일반적인 의미
과연 국어 사전 내에서는 하느님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종교어로서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됨.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 짐. 하늘. 황천'이라고 정의된다. 이를 살펴보면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가톨릭에서만 사용하는 용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사전에서는 '그리스도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천지(天地)의 창조주(創造主)이며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존재로서, 우주 만물을 섭리로써 다스림, 천주(天主), 하나님'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사전에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하느님을 개신교(改新敎)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가톨릭의 '하느님'과 개신교의 '하나님'은 결코 다른 단어를 의미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천공신(天空神) 개념으로 볼 때 하느님은 우리말로는 하늘, 한자로는 천(天)의 존칭어인데, 광활하고도 높은 창공은 종교적 궁극자 및 최고원리의 상징으로서 인류 종교현상 속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종교표현이다. 종교학자들은 고대인들이 하늘이나 땅을 단순한 현상이나 물체로 예배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타나는 신적인 힘을 보고 그 거룩함의 신성을 경외한 것임을 밝혀내었다. 가장 오래된 문자문화를 지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아누(Anu)신, 가나안 지방의 엘(El)신, 그리스의 제우스(Zeus)신들은 모두 천공신(天空神)으로서 다신(多神)들 중에서 그들이 아버지 혹은 천상회의의 임금으로서 권위의 상징이었다.
나) 한국 고유의 신앙으로서 받아들여진 '하느님'
중국에 처음 그리스도교를 소개하는데 성공한 마테오리치(Matteo Ricci)가 유교경전에 나오는 상제 혹은 천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과 같은 절대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야훼를 천주(天主)라고 번역하고 유교적 용어를 빌어 그리스도교를 중국 지식인들에게 소개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쓴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은 조선 후기의 실학의 선구자요 서학(西學)의 학문적 연구를 시작한 이익(李瀷)은 "천주는 곧 유가의 상제이다"라고 평했다. 이 근본적 공통점이 그리스도교가 짧은 시일 내에 한국인들의 심성에 깊이 뿌리박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실이었다.하느님은 하늘에만 계신 하늘님이시다,그래서 천주님 이시다.
다) 개신교가 말하는 '하나님'
개신교의 경우는 한국 전래의 형태가 구체적인 국내선교나 교리전파에 앞서서 국외에서 성서의 한글번역이 선행되었고, 또한 그후 한국 개신교의 공식적인 '하나님' 칭호에 대한 태도는 그들이 시대별로 사용한 성서기록에 의거했기 때문에 곧 그들의 '하나님' 칭호에 대한 변천은 성서 번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먼저 대체적으로 한글성서의 번역과 사용시기를 구별해 보면 먼저 개인역시대(1882-1903), 공인역시대(1904-36), 개역시대(1937-51), 맞춤법 통일안에 따른 개정판시대(1952-70), 신·구교공동번역시대(1971-현재)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한글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를 채용할 때 계속적으로 상관된 개념은 곧 '하늘'(heaven)과 '하나'(one)이다. 그리고 이들 개념의 복합, 지역적 방언, 한글맞춤법과 한국어 발음의 변천 등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 살펴진다.
'하나님'이란 명칭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하나'를 의미하므로 유일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크다'를 의미하는 '한'에 통하는 말이므로 신의 위대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명칭보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낫다고 한다. 하나님과 하느님 사이에 무슨 근본적 차이는 없는 것으로 이들도 인정하지만 개신교의 신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되는 '하나님'이 더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온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또한 현재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리스도교의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그리스도교의 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통속적인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무당 종교의 신으로 오해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이렇듯 기타 토속, 외래종교도 사용하는 신 명칭인 '하느님'과 구별, 개신교의 하나님을 선별 호칭할 필요성, 그리고 국가제정의 공용어 문법체계에 꼭 합치되지 않아도 된다는 독자적 고유명사화 등의 성격을 주장하고 있다.
라) 공동번역 시대의 '하느님'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인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및 가나안 지방의 하느님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신이던 천공신 '엘'신, 혹은 엘로힘(Elohim)은 이스라엘의 고유한 신의 명칭이었던 야훼와 동일시되면서 유일신화되었고 엘신의 여러 가지 특성들도 수용되었다. 따라서 엘신 밑에 있던 많은 신들은 우상들로 배격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천사들로 격하되어 하느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사자들이 되었다. 한국의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성서공동번역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야훼를 '하느님'이라고 함께 부르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고유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하느님 신앙을 수용하자는 중요한 태도라고 하겠다.
이는 또한 가톨릭의 한문식 칭호인 '천주'를 한글화하고 개신교는 종래의 '하늘'과 연결된 하나님 개념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으로 칭호를 통일한 이유를 설명하는 측은 합당하고 정당한 칭호의 회복임을 강조하고, 민족의 고유한 언어 표현적인 신 개념의 공통성을 계승하여야 함을 밝혔다. 특히 '하나'의 의미에 연결된 '하나님'이 그 칭호로서 부당한 이유를 첫째 언어학적으로 불가능한 형태이고, 둘째 유일신 개념을 진정으로 나타내지도 못하고, 셋째 도리어 희랍철학, 중국철학, 대종교, 천도교의 개념과 오해되고, 넷째 '하느님'을 사용하는 세계와 통화를 두절시키고, 다섯째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라는 방언(方言)에서 우발적으로 도입된 표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마) 언어학적 관점에서의 하느님과 하나님
인간은 그 사회 안에 공동 유산으로서 '언어'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 언어를 통해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그 말(언어)로써 '의미'를 새롭게 창조하는 언어적 존재(Homo loguens)이며 창조적 존재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신(神) 찬미 행위의 그 모두가 언어 구조로 표현된다는 엄연한 '말의 사건'앞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이 눈을 떠보아야겠다.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면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언중(言衆)이요, 더욱이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한 신(神)의 명칭이 '하느님', '하나님' 등으로 서로 위화감을 주도록 다르다. 그리하여 한분이신 야훼를 인간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두 분으로 갈라놓은 결과를 초래하게 하였고, 나아가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가톨릭과 개신교의 일치-를 방해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작용함으로써, 야훼의 중요한 가르침인 사랑(이웃사랑)을 앞장서 실천해야 하는 교회가 오히려 그 편협함을 야기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본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감히 한국 그리스도교의 일치라는 거대한 목표를 염두하고서,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의 하나로써 가톨릭과 개신교가 달리 사용하고 있는 신(神) 명칭-하느님, 하나님-의 시비를 어원(語原)을 따져 살피는 국어학적 입장을 토대로 가려 보겠다.
① 음운론적 변천
20세기 초 성서본들에 혼용되어 있는 두 동의 동음어인 (同義 同音語) ' 하 님'(=하느님)과 하나님은 본시 언중(言衆)들이 그 어형 안의 <·>와 <ㅡ designtimesp=9188>라는 두 이형태(異形態)의 변천 관계를 바로 수용 못한 지극히 단순한 오류에서 시작된다. 즉 이 두 말은 당시에 동의어이며, 동음어인것을 이의어(異意語)로 보았다는 말이다. <·>의 동요가 15세기부터 보이기 시작했으나 기록 문자의 보수성으로 하여 <·>의 제2차 소실(문자의 불사용)은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에서폐기하기를 발표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었으니, 이것이 제1음절의 ·의 소실이다.
출처 :오요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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