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수쿠크, 둘 다 '빵꾸똥꾸'다! |
대안은 진정한 희년 정신의 회복에 있다 |
이슬람 채권법으로 인해 일부 기독교 세력과 정부가 갈등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낯선 수쿠크법으로 인해 우리 국민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를 비롯해 일부 기독교 기득권 세력은 이슬람 공포증과 혐오증으로 인해 수쿠크법에 반대하면서 힘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는 종교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쿠크법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양비론을 넘어 수쿠크법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한국 기독교, '이슬람'이기 때문에 반대한다?
수쿠크법의 대상이 이슬람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 세력의 입장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옳지 않은 태도이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이라는 이유로 인해 수쿠크법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인정받으려면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도 인정해야 한다. 만약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종교도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종교가 서로 대립하는 사회 혼란밖에는 남는 게 없다. 기독교는 네가 받고 싶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해 주어야 한다는 성경의 황금률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힘을 앞세워 정부를 압박하면서 수쿠크법에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 세력의 태도는 옳지 않으며 잘못된 종교 패권주의라고밖에는 볼 수 없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대한 반대를 이유로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종교 간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
이슬람에 대한 반대를 이유로 수쿠크법을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 세력은 자신들의 주장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우리나라에서 허용되지 않는 종교 패권주의임을 깨닫고 이를 즉각 멈추어야 한다. 아울러 다른 종교에 대해 공포심이나 혐오감이 아닌 관용과 포용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수쿠크법도 문제 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서는 빌려 준 돈에 대해 이자를 받는 것을 엄격하게 금한다. 하지만 현재의 이슬람 금융에서는 이슬람 율법을 지키기 위해 빌려 준 돈에 대한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다른 여러 편법을 동원하여 이자에 상응하는 돈을 받고 있다. 이슬람 금융에서 이러한 편법은 10여 가지나 되며, 우리 정부가 이번에 면세 혜택을 추진한 이슬람 금융 방식은 '이자라'와 '무라바하'라는 두 가지 형태이다.
이 중에서 문제가 되는 '이자라'는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에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임대차한 것으로 꾸며 이자가 아닌 임대료를 받는 방식이다. 빌려 준 돈에 대해 이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부동산이라는 실물거래를 중간에 끼워 넣는 편법이다.
수쿠크(Sukuk)는 투자자들에게 이자 대신 배당금 형태로 수익을 지급하는 이슬람 채권을 뜻한다. 즉 수쿠크는 투자자들에게 '원금+이자'가 아닌 '원금+배당금(임대 수익)'을 지급하는 것이다. 수쿠크를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간접 부동산 투자를 통해 배당금을 받는 부동산 펀드나 부동산 투자신탁(REITs: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과 실제적으로 유사하다.
결국 '이자라' 방식에 따른 수쿠크는 빌려 준 화폐에 대한 이자를 받지 않으려고 돈을 빌린 사람에게서 부동산 소유권을 형식적으로 넘겨받아 이자 대신 건물과 토지 임대료(rent)를 받는 것이다. 돈을 빌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원금+이자'를 갚는 것이 아닌 '원금+임대료(지대)'를 갚는 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소유권이 이전될 때 취득세와 등록세,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부과되는데,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수쿠크법에서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을 채권 거래로 간주하여 부동산 거래에서 발생하는 각종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수쿠크는 꾸란과 성경의 정신에 맞지 않다
수쿠크는 빌려 준 돈에 대해 이자를 받지 말라는 꾸란의 가르침과 정신을 형식적으로 지키기 위해 이자 대신 지대(rent)를 받는 더 나쁜 편법이다. 빌려 준 화폐에 대한 이자를 받지 않기 위해 부동산 소유권을 넘겨받아 부동산 사용에 대한 지대를 받는 것은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 보장이라는 성경의 희년명령과 가난한 자를 위하려는 꾸란의 정신에 어긋난다.
수쿠크법을 성경에 비춰 보면, 가난한 자에게 꾸어 준 돈에 대해 이자를 받지 말고 안식년에는 부채를 탕감해 주라는 성경의 대부법(자본법)을 회피하기 위해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이라는 성경의 토지법을 어기는 셈이다. 이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작 율법의 더 중요한 바인 정의와 자비와 믿음은 팽개치고, 작은 하루살이는 걸러 내면서 더 큰 낙타는 삼키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자에 대한 꾸란과 성경의 가르침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과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도록 이자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꾸란에서는 단순히 이자를 받지 말라고 말하지만 성경에서는 가난한 동족에게서 이자를 받지 말 것과 함께 가난한 사람이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으면 안식년에는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슬람의 수쿠크는 형식적으로는 부동산 거래를 중간에 끼워 넣어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실제 법률상에서는 채권 거래에 따른 이자로 봐 달라는 것이다. 이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이슬람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기 위해 생겨난 위선적인 모순이다.
오히려 수쿠크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무슬림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만든 그라민 뱅크(빈민 무이자·저이자 대부 은행)가 이자를 받지 말라는 꾸란의 가르침에 형식과 내용 면에서 더 충실하다. 무슬림들이 이슬람 율법을 따르는 이슬람 금융을 제대로 하려면 수쿠크가 아닌 그라민 뱅크와 같은 빈민 무이자·저이자 은행을 만드는 것이 옳다.
우리나라가 수쿠크를 운용할 만한 인프라가 되어 있는가
한편 부동산 거래에서 발생하는 각종 세금(취득세·등록세, 양도소득세)을 면제하는 수쿠크법은 토지 불로소득을 더 용인하는 것이며, 만약 수쿠크법이 토지 불로소득에 부과되는 토지보유세마저도 모두 면제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또한 다른 나라 자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부동산 매매를 했을 때는 과세를 하는데 수쿠크만 모든 세금을 면제해 준다면 형평성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수쿠크는 '하왈라'라는 이슬람 거래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거래 즉시 거래와 관련된 서류를 파기하여 불법 상속과 증여, 재벌의 계열사 부당 지원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해칠 우려도 있다. 이는 우리 경제의 투명성을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슬람 금융은 이슬람 세계에서도 아직 미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수쿠크 제도를 운용할 만한 인적, 물적, 제도적 인프라가 거의 갖추어지지 못한 실정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이슬람교와 이슬람 세계에 정통한 전문가를 찾아보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수쿠크법을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이슬람의 발흥은 기독교의 잘못 때문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수쿠크법의 내용이나 일부 기독교 세력의 과민 반응을 뛰어넘어 한국교회와 사회는 성경의 희년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슬람의 꾸란에서 이자를 금지하기 이전에 이미 성경에서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 이자를 받지 말 것과 함께 안식년에는 부채를 탕감해 줄 것을 명하고 있다.
아울러 성경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땅에서 땀 흘려 일해 자기 노동의 열매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 보장을 명하고 있다. 가난한 자에 대한 이자 금지와 안식년의 부채 탕감,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 보장을 명하고 있는 성경의 율법은 부동산 폭등과 투기로 인한 가계 부채와 빈부의 양극화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오래된 미래'이다.
이슬람은 기독교가 돈과 권력에 취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렸을 때 발흥한 종교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이자 금지와 안식년의 부채 탕감,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을 명하고 있는 성경의 안식년과 희년명령을 저버리고 기독교가 기득권이 되었을 때 철저한 이자 금지와 함께 '토지는 하나님의 것(레 25:23)'이라는 성경 말씀을 '토지는 알라의 것'이라는 구호로 바꾸어 일어난 것이 바로 이슬람이다.
꾸란에서는 이자를 받지 말라는 율법은 많이 나오지만 토지에 대한 율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슬람은 '토지는 알라의 것'이라는 구호와 함께 신의 집사인 무슬림만이 토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내세워 부패한 기독교 세계를 정복해 나갔다.
토지는 알라의 것이고 무슬림만이 토지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은 무슬림이 되면 토지를 주겠다는 토지개혁의 약속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무슬림이 되어 기독교 세계를 성난 파도처럼 휩쓸면서 뒤집었다. 즉 이슬람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기독교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저항 종교이자 혁명 종교였다.
한국교회와 사회는 성경의 희년 정신으로 돌아가야
전 세계 기독교가 가난한 자에 대한 성경의 안식년과 희년명령을 순종하여 따랐다면 이슬람이나 공산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 전쟁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의 일부 기득권 세력들이 이슬람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면서 두려워하는 이유가 과거 타락한 기독교 세계를 뒤엎은 이슬람 혁명의 공포가 떠올라서 그런 것은 아닌지 자못 의문스럽다.
지금도 여전히 성경의 희년 정신을 무시하는 한국교회는 이슬람에 대한 단순한 반대나 수쿠크법에 대한 찬반 논란을 뛰어넘어 이제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희년 정신으로 돌아가 구체적인 희년 실천 방안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성경 희년의 대부법(자본법)은 빈민 무이자·저이자 대부나 부채 탕감의 형태로, 희년의 토지법은 토지 가치 공유를 위한 토지보유세의 형태로 지금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성경의 희년 정신과는 정반대로 국민들에게 빚내서 집 사라고 권하고 있고, 부족하지만 그나마 토지 불로소득을 조금 환수하던 종합부동산세마저도 무력화시켜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겉으로만 무릎 꿇고 기도하는 척하지 말고, 진정으로 가난한 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희년 정책을 세워 우리나라와 국민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고영근 / 희년함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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