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선 '성도', 밖에선 '성희롱' |
두 얼굴의 그리스도인들, 교회는 무엇을 가르쳤나 |
강YS 의원의 성희롱 발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논란이 시작됐을 땐 단지 젊은 국회 의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정말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서울법대와 하버드대 로스쿨까지 나오고 변호사로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더군요. 변호사 시절에도 소액 주주들을 위한 싸움을 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서민들의 편에서 제법 일도 했던 사람입니다.
나이도 이제 갓 40을 넘긴 나이니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정치 경력도 18대 국회가 처음이니 '말실수' 정도 가지고 왈가왈부할 정도는 아니라며 넘어가 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남자들이 소위 'Y담'이라며 회식 자리에서 쓰는 말들이 '그렇고 그런' 수준들이니까요.
대화 내용도 대통령을 조롱하든 영부인을 끌어들이든, 아나운서들을 가지고 하든, 연예인이든, 여성 국회 의원이든, 그게 같은 동료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이거나, 조금 '수위'가 높은 발언들이라면 서로 키득거리고 웃고 즐기면 그뿐입니다. 특히 회식이나 술자리에서야 지 애비도 욕을 하는데 누군들 못할까요.
여대생들 앞에서 그런 소리 하다니, 제정신인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해서는 안 되는 상대들 앞에서 했다는 것이 경악스럽습니다. 남녀 대학생들을 앞에 두고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아무리 어른들이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말조심, 입조심, 몸조심을 하게 마련이고, 특히 대화 수준이 소위 '19금' 정도 되면 더욱더 조심스러워지는데, 이 강용석이라는 국회 의원은 이제 갓 20세가 될까 말까 하는 여대생들 앞에서, 그것도 '준다'(여성의 성을 남성에게 제공한다는 속어)는 비속어를 해 가며 그들을 농락했습니다. 동네 양아치들이나 쓸 법한 표현으로 말입니다.
남녀 간의 성적 합의에 있어서 언제부턴가 '준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저속한 용어라는 걸 잘 모르는 듯합니다. 설령 그걸 몰랐다고 해도 표현하는 자체로써 인격과 인격의 만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어린 대학생들 앞에서 소위 국회 의원이라는 사람이 쓸 언어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살인, 성폭행, 성희롱, 뇌물 수수 … 두 얼굴의 그리스도인들
강YS 의원은 국내 대형 교회 교인이라고 합니다. 이젠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는 누리꾼들의 반응입니다. 하기야 아내를 토막 낸 목사가 있고, 10대 소녀들을 성폭행한 목사가 있고, 여학생들 앞에서 '기저귀' 발언을 대 놓고 하는 목사가 있는데, 불신자들이야 기독교인들에게 무슨 '세상의 빛'을 기대하겠습니까.
또 기독교계의 대표적인 기업인 이랜드는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해고로 구설수에 올랐고, 기독교 건설 회사인 서희건설은 지난 2008년, 대표가 박영준 국무차장(당시 서울시 정무국장)과 밀착하면서 대형 교회 건설 사업 수주를 따냈다는 민주당 이석현 의원의 폭로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당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는 오로지 자신들의 성공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새벽마다 무릎 꿇고 기도를 했는지 몰라도, 신발 신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는 '세속적 속물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말씀'은 없고 '축복'만 남은 껍질뿐인 한국교회
축복은 좋은 것입니다. 사전에는 '복'이라는 말을 '좋은 운수, 큰 행운과 오붓한 행복, 삶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이라고 정의합니다. 사람의 인생에 '즐거움'과 '복'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궁극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근원적인 이유도 '복'이 있기에 이끌리는 것이겠지요.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좋은 운수, 큰 행운' 수준을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오로지 성경만이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런 성경이 기준으로 내세우는 '복'이 교회 안에서 상당히 왜곡돼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나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이나 '복'을 생각하는 것이 똑같고, 그 '복'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과정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목사님들, 도대체 뭘 가르치십니까?"
따라서 한국교회, 즉 한국교회를 다니는 교인들이 잘못된 가치관을 갖는 원인은 반드시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목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목사가 어느 신학교를 나왔든, 어느 교단의 목사이건 상관없이 '목사'라면 올바른 말씀과 정확한 성경의 기준,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하는 '삶의 방식'을 지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런 기준을 제시해야 할 목사들은 도무지 '말씀'에는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마치 '지식'만 강조하는 것으로, 그래서 '성경'을 많이 배우면 '교만'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삶은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 깨달음은 지식에서 옵니다. 그것이 철학의 시작이고, 철학을 통해서 '인생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민이나 고뇌가 없는 삶은 가치 있게 살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인류에게 도전을 주고 삶의 희망을 줬던 수많은 영웅들은 하나같이 현실을 '고뇌'했던 인물들이었고, 그런 현실 속에서의 '고뇌'가 '변화'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목회 편히 하려고 생각 없는 교인으로 만들어
두 얼굴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가치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들 나름대로 인생의 가치관이 있습니다. 어쩌면 한순간의 실수가 파멸로 이끌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은 평소에 지녔던 생각의 '저변'에서 태동합니다.
따라서 삶의 깊이가 있는 사람들은 그 '생각'을 깊이 하는 사람들이며, 어느 한 상황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판단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기 딱 좋습니다. 마냥 생각 없이 '아멘'을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야 되고, 주여 3창에 통성 기도로 눈물을 쏙 빼야만 믿음이 있고, 소위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습니다.
따라서 목사들은 이런 '생각 없이' 맹목적인 교인들을 '순종적인' 교인으로 추켜세웁니다. 오로지 목사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 목사의 말이 진리며, 목사는 곧 하나님 동생쯤 되는 줄 믿게 만들어야 목회가 편하고 자신도 별다른 고민 없이 교회를 끌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얼굴의 그리스도인, 신앙적 이분법이 키운 '괴물'
그렇다면 왜 이들은 교회 안에서는 선량한 성도나 목사이면서 교회를 벗어나기만 하면 자신의 탈을 벗어던질까요. 그건 교회와 세상을 철저히 선과 악의 개념으로 나눠 버리는 왜곡된 이분법에 있습니다. 어느 교회가 장로나 집사를 임명할 때 그가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단지 그가 십일조를 하는가, 출석률이 좋은가, 헌금 생활은 하는가, 교회 봉사는 하는가 등 대부분의 기준을 오직 교회 생활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제2의 강용석이나 성폭행 목사나 서희건설 대표와 같은 '두 얼굴'을 가려내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심지어 법원으로부터 횡령, 간통 등의 판결을 받아도 버젓이 교회 안에서 목사 노릇을 하는 실태니 오죽하겠습니까만, 최소한의 검증 시스템이라도 가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혹자는 "어떤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할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교회에서 더욱 요직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한 철저한 참회와 그에 대한 징계를 스스로 감수하도록 해야만 진정한 '공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후에 비로소 교회가 그에게 용서의 은혜를 베풀 수 있어야만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로 값싼 은혜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게 됩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아는 어떤 목회자는 과거 한때 교회 안에서 불륜 사건이 터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후 약 10년 동안 목회를 하지 않고 철저히 자신을 스스로 낮추고 참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최소한 이런 정도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강YS 의원이 속해 있는 교회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상해 보면 답답합니다. 세계 최대의 교회에서 서울법대와 하버드대를 나와서 변호사와 국회 의원이 된 교인이니,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의 '삼박자 축복'을 확실하게 받은 사람일 테니까요.
|글/진민용
|출처/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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