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그들은 ‘심판’이 아닌 ‘관중’이다 (이병왕)

수호천사1 2009. 12. 30. 18:49

그들은 ‘심판’이 아닌 ‘관중’이다

 

이병왕 | 뉴스미션 기자

 

 

최근 모 인터넷 매체에서 ‘야구 규칙으로 축구 심판을 볼 수 없다’는 칼럼을 읽었다. 교회와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언론이나 개인이 상식적인 기준으로 기독교와 교회를 비판하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이다.

칼럼의 필자는 자신의 글에서 교회법과 세상법에 대한 개인의 견해를 피력했다. 교회법에 관계된 행정 혹은 치리에 관한 문제나 특히 목회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성경과 교단법의 태두리 안에서 논의돼야 하고 일반적인 기준이나 원칙에 따라 판단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야구 규칙으로 축구 심판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심판’의 문제가 아닌 ‘경기 관람’의 문제라면 다르다. 해당 경기의 규칙을 자세히 알지 못해도 모든 종목의 경기에서 대부분의 관중은 심판의 ‘편파적 판정’이나 선수의 ‘비신사적 행위’를 분간은 한다.

심판이 똑같은 행위에 대해서 어느 편에는 반칙을 적용하고 다른 편에는 그렇지 않은 판정을 되풀이 할 경우 관중들은 야유를 보내게 된다. 심할 경우 물병 등을 던지거나 직접 경기장에 뛰어들기도 한다.

해당 경기의 자세한 규칙은 몰라도, 진행방식 정도는 알기에 격투기 종목이 아닌 경기에서 상대방을 고의로 구타하거나, 심판이 보지 못하는 틈을 타서 불공정하게 경기를 이끄는 선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칼럼의 필자가 표현한 ‘야구 규칙으로 축구 심판을 보려는 자’들, 곧 상식적인 기준으로 기독교와 교회를 비판하는 ‘교회와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언론이나 개인’은 심판이 아닌 관중인 것이다.

그들이 교회를 향해 야유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세상법에 비춰 볼 때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페어플레이’라고 하는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 플레이는 하는 선수처럼 교회가 존재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법에 따라 공정한 판정을 내려야 할 심판들이 편파 판정을 일삼고 있어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즉 교회가 자기정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만약 교회가 관중을 관중으로 보지 않고, 야구 규칙으로 축구 심판을 보려는 자로 치부하려한다면 교회는 철저히 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것이다.

관중들이 편파 판정 심판을 야유하고 비신사적 행위 선수를 비난하는 것은 아직도 그 종목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들의 애정 어린 행위를 ‘억지 부리는 심판의 꼴통짓’ 정도로 치부해버리니 남은 애정마저 거둬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최근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일고 있는 교회법과 사회법 논란을 지켜볼라치면 정말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마치 1970년대 초반 온 국민의 사랑을 받다가 급 몰락한 프로레슬링 종목을 보는 것 같아서다.

김일 선수로 대표되던 프로레슬링은 당시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으나, 주도권 문제에 따른 내분으로 김일 선수의 라이벌이던 장영철 선수가 “프로레슬링은 각본에 의한 경기”라고 폭로한 직 후 몰락,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감리회는 현재, 관중들을 대표하는 규칙 전문가들이 “너희들 경기 규칙을 살펴보니 A는 선수자격이 없으므로 너희 팀 주장이 될 수 없다”고 하는데도 일부 심판은 “너희가 알긴 뭘 알아”라며 경기를 진행시키려 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선수들은 “많은 선수들이 그를 주장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선수자격이 무슨 상관이냐”며 자기들끼리 A선수에게 주장 완장을 채워주고 “주장님, 주장님, 우리 주장님”을 외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 한, 관중들은 더 이상 감리회의 경기를 관전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어쩌면 감리회가 소속된 ‘한국교회’ 라는 리그 자체를 통째 외면해버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이 일어날까 두렵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지금 감리회 목회자들의 행위는, 예수님께서 “천국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책망하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위와 다름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부디 주님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하며 행동하는 감리교 목회자들, 아니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돼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출처 : 내 사랑 중국 ♡ MyLove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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