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학

[스크랩] 사랑의교회여, 메가처치 전도사가 되려는가?

수호천사1 2009. 12. 11. 23:44

사랑의교회여, 메가처치 전도사가 되려는가?

메가처치의 영이 세상을 휩쓰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나

입력 : 2009년 12월 01일 (화) 20:13:58 [조회수 : 5063] 신광은

 

사랑의교회가 교회당을 새로 건축한다지요. 그런데 사랑의교회의 건축을 두고 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인터넷상에서는 찬반 토론이 꽤 뜨거운 것 같습니다. 서경석 목사님께서는 사랑의교회에 건축을 재고해 달라는 공개서한까지 보내셨다고 합니다. 사실 교회가 교회당을 새로 짓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은 아마도 액수가 워낙 커서일 것입니다. 부지 매입과 건축 비용을 합치면 자그마치 2,100억 원이나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의교회에 대한 높은 기대 수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랫동안 사랑의교회는 한국교회의 모범적 교회로 자리매김해 왔기 때문에 사랑의교회의 건축은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분들이 제게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오셨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물어 오신 이유는 제가 졸저 <메가처치 논박>을 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저는 특정 메가처치의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특정 메가처치의 개별적인 문제들을 지적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무슨 자격으로 남의 교회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한단 말입니까. 저의 주된 관심은 '메가처치 현상'에 있습니다. 메가처치 현상은 개별적 문제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현상이며, 구조적  문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랑의교회의 교회당 건축 문제에 대해서 솔직히 저는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견해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을 굳이 밝혀 공론화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것이지요. 사랑의교회는 메가처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사랑의교회도 메가처치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랑의교회는 교인수가 4~5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랑의교회는 그 많은 교인들을 한데 모으고, 통합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부득불 메가처치의 구조와 질서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메가처치의 정신을 필요로 하고요. 결국 사랑의교회는 메가처치의 질서와 구조를 가지며, 메가처치의 영(spirit)을 소유한 전형적인 메가처치일 뿐입니다.

 

   
 
  ▲ 사랑의교회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크기 문제 아닙니까? 모든 게 커진 덩치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는 점점 완벽한 메가처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너무나 뻔한 이 사실을 굳이 제가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사랑의교회의 건축 문제는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모든 메가처치가 가지고 있는 문제임을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메가처치는 크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하드웨어적이고 소프트웨어적인 필요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교회당은 그 대표적인 예지요.

 

그리고 사랑의교회도 바로 이러한 메가처치의 문제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교회 측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건축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당으로는 출석 인원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공간은 포화 상태고,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주차난은 날로 심해지고, 부서 간 소통은 원활하지 못하며, 안전사고의 위험마저 커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분립 개척도 여의치가 않다고 합니다. 결국 교회당 건축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메가처치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랑의교회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크기의 문제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커져 버린 덩치 때문에 생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크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는 점점 완벽한 메가처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몸집에 걸맞은 내장이 필요하듯, 메가처치는 자신의 덩치에 맞는 구조와 질서를 모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과 방향은 불가피하게 반성육신적, 반그리스도적, 반성서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졸저에서 언급한 메가처치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랑의교회는 메가처치 현상에 사로잡힌 한국교회의 한 전형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

 

따라서 분명히 해야 할 사실은 이것입니다. 사랑의교회가 뭐라고 해명하고 설명하더라도 교회당 건축은 순전히 교회의 크기 때문에 생겨난 문제에 대한 대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마당에 무슨 하나님의 사업을 운운하며, 새 시대가 어떻고, 새 사명이 어떻고, 사마리아니 땅끝이니를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미사여구일 뿐입니다. 사랑의교회는 메가처치며, 그래서 메가처치 논리에 사로잡힌 가련한 교회입니다. 분명 사랑의교회는 크기라는 덫에 걸려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태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당 건축밖에는 대안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교회당 건축이 불가피하다고요? 옳습니다! 건축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 되어 버렸지요. 그리고 이 필연은 하나님의 역사 때문이 아니라 커져 버린 규모가 초래한 기술적 문제일 뿐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저는 사랑의교회가 좀 더 정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예언 하나 할까요. 사랑의교회는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할 것이고, 그것으로 지금의 규모의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사랑의교회는 더욱더 커질 것입니다. 이것이 뻔히 내다보이는 시나리오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자동입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동적 과정을 원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축이 불가피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는 '필연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자유의 혁명'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십자가는 생존 본능이라는 인간적인 필연을 뒤엎었습니다. 부활은 죽음이라는 자연 질서의 필연을 뒤엎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는 세상이라는 사회적 질서를 뒤엎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랑의교회가 어쩔 수 없이 건축을 할 수밖에 없노라고 해명하는 순간, 사랑의교회는 그리스도의 계시가 아닌 생존 본능과 자연 질서와 사회적 질서라는 필연의 굴레에 갇힌 교회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랑의교회가 그리스도의 계시를 붙잡고 있는 교회라면 분명 필연의 질서 가운데로 그리스도의 자유의 질서를 관통시켰을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냐고요? 모르죠. 모르니까 자유의 질서라는 겁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성령께서는 사랑의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만일 사랑의교회가 자유하게 하시는 성령님께 사로잡혀 있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자유의 질서입니다.

 

사랑의교회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랑의교회를 참 좋아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영성과 인격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따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교회가 그저 또 하나의 괴물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랑의교회는 한때 제자 양육과 평신도 훈련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역할 모델을 감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사랑의교회는 전국의 모든 중소 교회들로 하여금 메가처치를 꿈꾸도록 만드는 메가처치 전도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랑의교회는 수천억 원을 들여서라도 교회당을 건축해 더욱 큰 교회를 만들라는 메시지를 온 한국교회에 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 사랑의교회여! 진정 오늘날 메가처치의 영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메가처치 현상을 뒤엎을 대안을 보여 주실 수는 없습니까.

 

신광은 / 열음터교회 목사·<메가처치 논박> 저자

출처 :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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